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야겜에 빙의했다-555화 (555/648)

< 555화 > 어긋난 것 (1)

새로운 날이 밝았다.

겨우 하룻밤의 짧은 휴식이었지만, 이호연의 몸은 완전히 컨디션을 되찾았다.

"연락을 안 받을 거면 스마트워치는 왜 쓰는 거야."

이호연은 툴툴거리며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렀다.

지이이잉-

이른 아침부터 임솔의 연구실로 가는 길.

이제는 익숙한 마도관 로비의 엘리베이터가 내려온다.

"어차피 아직 안 자고 있겠지."

임솔이 메시지에 답장을 하지 않는 상황은 딱 하나뿐.

마법 연구에 집중하고 있을 때다.

어제부터 지금까지 답장하지 않는 걸 보면 지금까지 마법 연구에 빠져있다는 뜻.

연구자의 밤낮은 원래 뒤죽박죽이다.

지금 쯤 비몽사몽한 상태로 잠들지 못하고 연구를 더 하고 있을 게 분명하다.

'만약 자고 있다면… 아쉽지만 백아영에게 갔다가 오지 뭐.'

책상에 쪽지라도 하나 남겨놓으면 메시지에 답장을 할 거다.

[2층입니다.]

엘리베이터에 탄 이호연은 익숙한 2층에 내렸다.

그리고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 그를 반겼다.

"응? 호연 생도. 오랜만이에요."

"아, 안녕하세요. 조교 님."

이호연은 뜬금없이 연구실을 지키고 있는 임솔의 조교를 보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본래 임솔에게 조수가 있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녀가 마법 연구에 집중할 때는 연구실에 아무도 없이 비워 놓기 때문에 사실상 출근을 안 하는 날이 더 많았다.

하지만 일주일간 식음을 전폐하고 마법 연구를 하다가 백아영에게 구조된 이후, 10시간 이상 마법 연구 때문에 연락이 끊겼을 시에는 조교가 출근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즉 그녀가 있다는 건 임솔이 마법 연구를 하고 있다는 뜻.

이호연은 훈련실의 불빛을 보며 조교에게 말을 건넸다.

"오랜만에 뵙네요. 교수 님은 훈련실에 계시나 봐요?"

"네. 아, 근데 지금은 아무도 출입금지라고 하셨어요."

"저도요?"

"음, 딱히 말은 없으셨는데…."

이호연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인 조교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호연이 말없이 쳐들어간다고 해도 임솔에게 뭐라고 들을 것 같진 않은데... 조교의 입장은 그게 아닌 것 같다.

'어쩌겠어. 굳이 불편하게 만들지 말고 잠시 기다리자.'

아침 일찍 왔으니 시간이야 남아돈다.

잠시 임솔 교수님의 훈련이라도 지켜볼까.

이호연은 조교의 옆에 자연스럽게 앉은 뒤 임솔의 훈련을 감상했다.

[임솔 특제 커리큘럼 3번을 실행합니다]

"임솔 특제 커리큘럼은 또 뭐야. 큭."

직설적이면서 누가 봐도 임솔 전용이라는 걸 알 수 있는 걸 보니 임솔 교수님이 직접 만든 모양이다.

'자기가 최고니까 훈련 시스템도 자기가 만들어야 하는구나.'

최고의 자리에 있는 것도 왠지 좀 씁쓸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런 쓸데없는 생각도 잠시.

이호연은 금방 임솔의 움직임에 빠져들었다.

"저기서 저렇게… 오, 그렇지. 오. 와. 미친 사람이네 저거."

팝콘이라도 있으면 먹고 싶네.

이호연은 임솔의 마력 움직임에 집중하며 감탄을 내뱉었다.

누가 보면 임솔이 주인공인 줄 알겠어. 뭐 저렇게 무식하게 강하냐.

"저는 교수님이 훈련하는 걸 봐도 잘 모르겠던데. 호연 생도는 재밌어 보이네요."

"하하… 아니에요. 응? 근데 왜 멈추셨지."

신기하다는 듯 자신을 바라보는 조교의 눈길에 부담감을 느끼고 있는데, 갑자기 임솔이 훈련을 멈추고 무언가 골똘히 고민을 시작했다.

"글쎄요…. 교수님의 행동을 하나하나 신경 쓰기엔 제가 이해할 수 없는 게 너무 많아서."

안의 상황을 모르다 보니 이호연과 조교는 멍하니 임솔의 고민을 구경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고민을 멈춘 임솔이 바깥으로 무언가 신호를 보냈다.

[초콜릿.]

"… 이건 뭐예요?"

"교수님이 쉬는 시간마다 저한테 초콜릿을 가져달라고 부탁하시거든요. 교수님이 사고를 내는 건 거의 없으니 제가 하는 일은 보통 이거에요."

"그게 뭐야."

"그래도 이거 말고는 일이 없으니 얼마나 편한 지 몰라요."

이런 꿀알바가 있다니 부럽네.

"마침 쉬는 시간인 것 같은데 호연 생도도 같이 들어갈까요?"

"저야 좋죠."

생각보다 빠르게 임솔을 만날 수 있게 됐네.

이호연은 조교가 준 초콜릿을 손에 쥔 채 훈련실 안으로 들어갔다.

*

"훈련 실행."

[알겠습니다. 임솔 특제 커리큘럼 3번을 재실행합니다.]

혼자 사용하기엔 이상할 정도로 넓은 마법 훈련실.

은발의 마법사는 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익숙한 듯 훈련 시스템을 조정했다.

[훈련을 시작한 지 14시간이 경과했습니다. 과도한 훈련은 신체 밸런스를 망가뜨릴 수 있으니 주의….]

익숙한 경고창을 옆으로 밀어냈다.

임솔에게 14시간 훈련은 준비운동이나 마찬가지.

아카데미 측에 이 문구를 빼 달라고 몇 번이나 요청했지만 무시당한 게 아직도 억울했다.

"그때 쓰러지지만 않았어도… 쯥."

분명 아영이의 보고 때문이겠지. 그 날 이후로 조교도 강제로 출근하게 되었다.

이래서 비밀로하고 싶었는데.

겨우 일주일 굶었다고 몸에 이상이 오다니. 인간은 잘못 설계되어 있는 게 분명하다.

꽈드득-!

임솔의 눈앞에 수 십 개의 마법진이 나타났다.

자신이 직접 만든 '임솔 전용 커리큘럼.' 수 천 가지의 마법진 중 랜덤한 조합이 튀어나오는 괴랄한 난이도의 훈련이다.

"… 흐음. 왜 그랬을까."

무서운 기세로 쇄도하는 마법들을 하나 씩 쳐내는 임솔은 동시에 고민을 이어갔다.

루시퍼와 전투가 끝난 뒤로 그녀의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는 고민.

"루시퍼가 사용하던 그 마력… 그걸 어째서 조사하지 않은 거야. 임솔."

이호연과 대련이 끝난 뒤부터 느끼던 이질감을 루시퍼와 전투 이후로 깨달았다.

그건 바로 임솔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심이었다.

임솔은 일평생 마법만을 바라보며 살았다.

지금까지 자신의 마법 적 견해는 모두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아니, 실제로 완벽했다.

임솔의 마법은 틀린 적이 없었다.

언제나 최고였고, 찬사를 받았으며, 누구보다 앞서 나갔다.

… 물론 이호연이 등장하기 전의 이야기지만, 그것은 지금 중요한 게 아니다.

임솔은 자신의 마법 연구에 대한 결과물을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었고, 궁금한 게 생기면 곧바로 매달려 풀어냈다.

그녀의 연구는 주제 선정부터 결과까지 모든 게 완벽했다.

그런데 그 임솔이.

어째서 새로운 마력의 등장을 놓친 거지?

"실수? 아니야. 내가 새로운 마력을 놓쳤다고? …내가? 내가 그런 실수를 할 리가 없잖아."

임솔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되는 가정이지만, 그게 실제로 일어났으니 머리가 아팠다.

"지옥의 마력이라고 했었나."

임솔은 천천히 자신의 기억을 되짚었다.

시작은 이호연과의 대련.

자신의 제자는 발칙하게도 새로운 마력을 꺼냈다.

마지막 순간에 터져 나온 '지옥의 마력'

이 세상을 이루는 마력. 그리고 그 마력을 이용한 마법.

임솔에게 너무나 익숙한 것들이다. 그리고, 그렇기에 새로운 마력을 대처할 수 없었다.

그 불길한 마력은 임솔이 지금까지 쌓아온 마법 체계를 부정했다.

자신의 마력을 먹어치우는 것 같은 파괴적인 마력.

정보가 없었으니 역산할 수 없었고, 마력을 주입해 추가적인 대응을 할 수가 없었다.

[다음 단계(임솔 전용 커리큘럼 4번)를 실행하시겠습니까?]

어느새 쏟아지던 마법들이 멈추었지만, 임솔은 알림 창을 치운 채 고민을 이어갔다.

"아니야. 처음이 아니었어."

인큐버스를 만났을 때.

흐릿하게 남아있는 기분 나쁜 기억이지만, 임솔은 천천히 그날에 일어난 일들을 떠올렸다.

그 괴생명체가 사용하던 저급하고 기분 나쁜 마력.

그리고 이호연과 루시퍼가 사용하던 파괴적인 마력.

그 두 가지는 결국 같은 마력이었다.

'난 왜 그걸 겪고도 대처하지 않았지?'

더 빠르게 준비했다면 루시퍼와의 전투에서 훨씬 큰 도움이 될 수 있었을거다.

충분히 해낼 시간이 있었는데 왜 그러지 못했을까. 임솔은 조금 더 기억을 타고 올라갔다.

세계 곳곳에 검은 기둥이 나타났을 때.

임솔도 아카데미의 교수로서 형식적이지만 조사를 진행했다.

"그때도 느꼈었어. 그래. 분명해."

가벼운 어지럼증이었지만, 분명 루시퍼가 사용하던 지옥의 마력과 결이 같았다.

물론 검은 기둥은 변명거리가 있다.

검은 기둥이 처음 나타났을 때는 국가적 사태였지만, 주변에 있으면 약간의 어지럼증을 느낄 뿐 이상이 없다는 연구가 끝난 뒤에는 단순히 경관을 망치는 흉물 취급받을 뿐이었으니까.

'…그것부터 이상하잖아. 임솔. 정신 차려.'

고개를 휘휘 저으며 쓸데없는 생각을 지워낸다.

임솔은 자기 자신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어떤 사건이 마법과 관련되어 생길 때, 임솔은 그것을 해결할 때까지 달라붙는다.

그녀의 상태가 정상이었다면 연구할만한 새로운 마력이 나타난 걸 절대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을 거다.

그러나 임솔은 이호연의 마력을 겪기 전까지 그 마력을 무시했다.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이건 문제가 있는 게 분명하다.

"임솔. 왜 그랬어. 왜 조사하지 않은 거야. 그때 연구 중인 주제가 중요했었나? 아니,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닌데."

연구하던 주제가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서 새로운 발견을 놓치진 않는다.

임솔은 다시 한번 골똘히 머리를 쥐어짜 냈지만, 당연히 답은 나오지 않았다.

과거의 자신에게 찾아가 물어볼 수는 없는 일이니까.

"당을 채우고 나면 생각이 날까."

지금 상태로는 훈련에 집중할 수도 없다. 어차피 머리가 쌩쌩 돌아가기 위해선 당 충전이 필요하다.

임솔은 훈련실을 훈련을 종료한 뒤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을 조교에게 초콜릿을 가져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일단 당을 채우고 나서 잠으로 몸의 피로를 채우면 무언가 생각나겠지.

"하지만 이건 해결하고 자고 싶은데. 으음…."

자신의 머리를 채우던 고민의 실마리를 잡기 직전인 기분이다.

조금. 아주 조금의 기폭제만 있다면 곧바로 생각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인데….

"임솔 교수 님. 불초 제자가 왔습니다."

그때, 커다란 기폭제가 훈련실로 들어왔다.

미소를 지으며 초콜릿을 가져오는 제자를 본 임솔은 똑같이 미소로 화답하며 이호연에게 다가갔다.

탁-

"응?"

빠르게 다가가 이호연의 손에 있는 초콜릿을 빼앗은 뒤 입 안에 털어 넣는다.

머리가 띵해질 정도로 달콤한 초콜릿은 임솔의 정신을 말끔하게 만들었다.

"화나셨어요? 왜 초콜릿을…."

"마침 잘 왔어. 나랑 대련 한 번 해."

"네? 아니 교수님, 잠시만요. 제가 그러려고 온 게 아니라…."

임솔은 이호연의 대답을 무시한 채 훈련실을 조정했다.

슬슬 자야 할 시간이긴 하지만, 방금 전까지 훈련으로 몸이 뜨거워져있었으니 컨디션은 나쁘지 않았다.

이호연도 슬쩍 훑었을 때 몸의 상태가 좋아보였다.

"대련 모드. 안전은 최상. 고통은 있음."

"잠시만. 잠시만! 임솔 교수님. 아니, 솔아!"

눈치를 보던 조교가 고개를 꾸벅 숙이고 바깥으로 나가는 걸 보고 나서야 이호연은 임솔의 어깨를 붙잡은 뒤 마구 흔들었다.

이 사람이 갑자기 왜 이래?

얼굴을 보자마자 싸우다니 마법 연구하다가 머리가 돌아버린 건가?

"왜 그래?"

"그 말을 하고 싶은 게 나라고요. 왜 그러십니까 대체."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서."

"그게 뭔 지 말해주고 싸워야죠."

"루시퍼가 사용하던 지옥의 마력. 그게 마음에 걸려. 내가 어째서 그걸 준비하지 못했는 지 떠올려야해.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기분이 들어."

"…."

이호연은 임솔의 말을 듣자마자 눈을 찌푸렸다.

그래. 검은 기둥과 던전의 폭주 현상 때부터 느꼈던 무언가 어긋난 기분.

정리해서 입 밖으로 꺼내진 못하겠지만 자신도 임솔과 비슷한 걸 느끼고 있었다.

"저도 뭔가 짐작 가는 게 있긴 해요."

"나는 대련 한 번이면 잡을 수 있을 것 같아. 컨디션은 괜찮지?"

"저야 괜찮은데, 루시퍼랑 싸움이 바로 어제인데 괜찮은 거 맞아요?

"응."

마나의 축복을 받은 건 이호연뿐 만이 아니다.

마력에 있어선 임솔의 재능 또한 엄청났고, 당연히 회복력도 빨랐다.

육체적인 피로가 조금 남아있지만 그 정도는 기합으로 극복할 수 있다.

"하아. 그래. 대신 가볍게. 오케이?"

이호연은 설득을 포기했다.

눈이 돌아갔네.

차라리 적당히 어울려준 뒤에 대화를 나누는 게 나을 것 같다.

피곤해 죽겠는데.

이호연은 한숨을 내쉬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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