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야겜에 빙의했다-548화 (548/648)

< 548화 > 고백 (2)

- 현장에 나와있는 김한솔기자입니다. 정체불명의 마력이 빅토리아 아카데미를 점거한 지 벌써 반나절이 지났습니다. 내부에는 천 명 이상의 사람들이 갇혀있는 상태며, 헌터 협회의 마법사들이 구조작업을 진행 중인데요….

빅토리아 아카데미의 정문 앞엔 수 백명의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가짜 던전 마법진을 해체하려는 마법사들과 사상 초유의 테러를 취재하러 온 기자들.

아카데미 내부에 갇힌 사람들을 기다리는 가족, 친지들까지.

혼란스러운 상황 가운데. 아카데미의 이사장인 문재철은 표정을 구긴 채 마력을 일으키고 있었다.

"하필 내가 출장을 나갔을 때에 이런 일이…."

아카데미 전체를 덮은 마법진은 내부의 사람들까지 전부 삼켜버렸다.

국가적인 상황인만큼 헌터 협회에서 내로라하는 마법사들이 총동원되었지만, 아직 마법진 해석을 시작하지도 못했다.

"이봐. 아직 멀었는가?"

"죄송합니다. 처음 보는 마법진이라 전혀 해석되지 않습니다. 적어도 임솔이나 이호연 급의 마법사의 도움이 있어야…."

"그 둘이 지금 저 마법진 안에 갇혀있는데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야! 젠장! 수린아!"

이사장은 품위도 잊은 채 마법진을 주먹으로 두들겼다.

전투로 입은 상처와 노화 때문에 힘을 쓸 수 없는 자신이 너무나 무력했다.

마법진에서는 불길한 마력이 풀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 마력은 이사장도 느껴본 적이 있었다.

폭주한 던전과 검은 기둥에서 흘러나오는 정체불명의 마력과 비슷했다.

"대체 이런 끔찍한 테러를 자행한 자가 누구란 말인가…."

마법사들의 말로는 마법진 해석에 며칠은 걸릴 것 같다고 했다.

며칠이면 수 백 명이 죽기에 너무나 충분한 시간이다.

단 한 명의 피해자도 발생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일이 일어날 리는 없었다.

'부모없이 자란 그 아이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하늘이시어. 제발 우리 손녀만큼은….'

마법진에 갇힌 임솔과 이호연이라면 이 마법진을 해석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저 마법진 내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지 모른다.

마법진 해석에 시간을 쓸 여유가 존재할까.

이사장은 주먹을 꽉 쥔 채 마법진을 주먹으로 내려쳤다.

갈 곳 없는 분노의 표출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마법진이 엄청난 빛을 내뿜었고, 철벽 같던 마법진이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 응?"

이사장은 자신의 주먹을 멍하니 바라봤다.

뭐지? 왜 마법진이 부서진 거지?

혹시 자신이 한 일인가?

"이, 이사장 님이 마법진을 무너뜨렸다!"

"우와! 역시 이사장 님!"

주변에서 환호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정신을 차린 문재철은 마법진에 집중했다.

서서히 무너지는 마법진은 하나둘씩 사람들을 내뱉었다.

혼란스러운 가운데에 빛나는 마법진의 중심에 보이는 인영들.

멀리서 봐도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자신의 손녀인 문수린이었다.

"수린아…!"

손녀가 살아있다.

그 사실만으로도 문재철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보다 더욱 시선을 끄는 건 그 옆에 있는 이호연.

마법진의 중심에서 환한 빛을 내는 그의 모습은 이 사태를 구한 영웅처럼 보였다.

"이호연…!"

"이사장 님! 대체 어떻게 하신 겁니까! 이 마법진은 마법사 수 백 명이 달라붙어도…."

"개소리 그만해! 저기 영웅들이 안 보이는 거냐!"

문재철은 헛소리를 하는 기자들을 무시한 채 부서지는 마법진의 중심부로 달려갔다.

*

촤아악-

퍼져나가는 마력을 본 임솔은 눈을 크게 떴다.

"마법진이 부서지고 있어…."

이호연이 마력을 일으킴에 따라 서서히 마법진이 붕괴했다.

마법진을 컨트롤할 수 있는 중심부였기에 실시간으로 마법진이 해체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지옥의 마수들이 가루로 흩날리고, 사람들이 하나둘씩 마법진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마법적으로 엄청난 광경에 시선을 빼앗긴 임솔의 정신을 되찾은 건 백아영의 말이었다.

"솔아. 나 먼저 텔레포트시켜줄 수 있어? 분명 중상자들이 많을 거야."

"괜찮겠어? 아영이 네 상태도 좋지않아보이는데."

"난 괜찮아. 그것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더 중요해."

"… 환자는 없을 거예요. 아영 씨. 마법진 내부에 설치된 치유공간이 목숨이 위급한 사람들은 구해줄 수 있거든요."

이호연은 백아영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한 마디를 붙였다.

옆에 있던 문수린도 백아영에게 다가왔다.

"성녀 님. 너무 무리하지 마시고 쉬세요. 일이 끝나면 나머지는 제가 처리할게요."

"아… 고마워요. 학생회장."

이호연은 한숨을 내뱉었다.

마법진의 해체는 끝났다.

이제 단 몇 분만 지나면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다.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기에도 충분한 시간이다.

"루미. 우리도 드디어 나갈 수 있어…."

"다행이야 루시…."

"얘들아. 너희 둘이 도움이 많이 됐어. 다음에 호연이랑 내 연구실에 들리도록 해."

"아, 감사합니다!"

그전에, 이호연은 히로인들을 둘러봤다.

상처가 없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다들 생각보다 친해진 것 같았다.

"엘리스. 기분이 좋아 보이네."

"이제 집에 가서 씻을 수 있으니까 그렇지."

"오랜만에 언니랑 같이 씻을까? 이호연도 부르고."

"절대 싫어. 이호연이 있어도 싫어."

그녀들은 길었던 루시퍼와 전투가 끝나고 마법진을 탈출할 수 있다는 것에 기뻐하고 있었다.

진지한 말을 꺼내려는 이호연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지긋지긋한 마법진에서 이제 나갈래!"

"나도 집에 가서 쉬고 싶어. 후우."

"다들 고생하셨어요. 아, 호연이도 고생했어."

"… 응. 고마워. 다은아."

이호연은 방긋 웃는 남다은을 보며 고민을 이어갔다.

루시퍼를 처리한 이후, 모두에게 자신이 한 짓을 고백할 생각이었다.

이 가짜 던전 마법진은 자신이 만든 것이고, 모두를 위험에 빠뜨린 것도 자신이다.

히로인들에게 양해를 구하지도 않고 모두와 관계를 맺은 것도 맞다.

전부 미안하다.

할 수 있는 건 모두 하겠다.

정리되지 않은 사과의 말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하지만 자신과 히로인들의 생각은 다르다.

혼자 사과하는 분위기를 만들어봤자 그녀들이 준비되지 않았다면 하는 의미가 없다.

"음? 저 사람들은 뭐야?"

그때, 아이린이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수 십 명의 사람들이 중심부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고, 그중 선두에는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 할아버지?"

문수린은 화색을 지으며 이사장을 바라봤다.

처음 던전에 갇혔을 때 이사장도 많이 걱정했는데, 다행히 휘말리지 않은 모양이다.

"그래서 이 마법진은 뭐였던 거야? 역시 루시퍼의 짓이야?"

"그렇지 않을까요? 호연이도 함정에 빠졌으니까…."

"역시 그랬어! 그럼 저 사람들은 뭐지?"

"들고 있는 아티팩트를 보니 기자들 같아요."

"아하. 아카데미를 구한 영웅을 취재하러 왔구나! 영웅을 받들어라!"

남다은과 릴리아나는 서로 웃으며 대화를 나눴다.

영웅이라. 왠지 양심이 쿡쿡 찔린다.

그때, 조용히 있던 스칼렛이 이호연에게 다가왔다.

"호연 님. 뭔가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던 거 아니었나요?"

"…."

자신을 바라보는 스칼렛의 눈이 무섭다.

가끔 저렇게 날카로운 말을 하는 스칼렛이 고맙지만 미웠다.

이호연은 고민을 했다.

저 기자들이 못 오게 막는 건 쉽다.

마법진의 마력을 모아 중심부를 막으면 잠시 시간을 만들 수 있다.

그 사이에 히로인들에게 사과하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과연 그게 맞는 행동일까.

사과를 하는 건 좋다.

그런데 지금 이 상황에 제대로 사과가 전해질까.

그 사과에 진정성은 있나?

내 마음이 편해지기 위한 이기적인 행동은 아닌가?

'… 아직도 나만 다른 세상에 살고있는건가?'

바보같은 일을 하려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호연에게 루시퍼를 잡은 건 엄청난 수확이었다.

이제 남은 건 마왕 뿐이고, 그 전에 히로인들의 마음만 사로잡으면 된다… 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진 않았지만, 자신도 모르게 그런 마음가짐을 먹었을지도 모른다.

히로인들을 해결해야할 문제로 보면 안된다.

인간 대 인간으로 마주해야한다.

이호연은 다시 한 번 침을 삼킨 뒤, 스칼렛을 바라봤다.

"아니. 아무것도 없어. 고생했어. 스칼렛."

"고생하셨습니다. 호연 님.

"저보단 호연 님이 더 고생하셨죠."

결국 이호연은 말을 삼켰다.

지금 사과를 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뚜렷한 정신력이 없어도 내가 문제가 있네.'

사과하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다니.

이호연은 한숨을 쉬며 다가오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수린아! 문수린!"

"할아버지, 아니 이사장 님. 목소리 좀 낮추세요."

이사장 문재철이 눈물을 흘리며 달려오고, 문수린이 그를 맞이한다.

기자들이 다가온 순간 되돌리기엔 늦었다.

문수린의 옆에 선 이호연은 착잡한 마음으로 이사장에게 인사했다.

*

아카데미 테러 사건은 어찌어찌 일단락되었다.

엄청난 규모의 테러였지만 사상자는 없었고, 범인인 루시퍼는 이호연이 제압했으니 조사할 것이 많지도 않았다.

다만 어디서 아카데미의 보안이 뚫렸는지.

그리고 판데믹의 마인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것들이 앞으로 남은 과제였다.

아카데미를 주축으로 헌터 협회까지 달려들었으니 진상은 금방 밝힐 수 있겠지.

'… 사건의 진상이 영웅인 이호연이라서 문제지만.'

하아.

이호연은 거실의 소파에 누운 채 한숨을 푹 내쉬었다.

몸은 아직도 아팠지만, 자연치유력 덕분에 움직이는 데 지장은 없었다.

주범인 루시퍼를 죽인 이호연은 당연하게도 영웅 취급을 받았다.

기자들도 엄청나게 몰렸으니 기사도 우후죽순 생겨나겠지.

눈으로 확인하진 않아도 천재 마법사의 재림이라며 난리가 났을거다.

'물론 루시퍼를 잡은 건 영웅이긴 한데…. 진실을 안다면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받아들이지않겠지.'

스토리를 아는 이호연의 입장에서 루시퍼를 잡은 건 엄청난 수확이다.

하지만 진실을 안다면 어떨까.

이호연은 테러범이고, 루시퍼는 테러범에게 동조한 공범일 뿐이다.

'제대로 사과도 못했고.'

마음은 먹었지만, 결국 히로인들에게 사과하지도 못했다.

후회하진 않는다.

오히려 그때 급발진하지 않은 자신을 칭찬해주고 싶었다.

싸움이 끝나자마자 히로인들에게 갑작스러운 진실을 밝히는 것도 그녀들에게 충격이 컸을 테니까.

사과라고 받아들여지기보단 '이 새끼 갑자기 뭐라는거지?' 라는 생각이 먼저일거다.

오케이. 사과를 미룬 건 좋다.

그럼 이제부턴 어떻게 해야 할까.

이호연은 끙끙거리며 고민을 시작했다.

"… 다은아. 애기 아빠는 왜 저래?"

"모르겠어요. 돌아와서는 계속 저 상태예요."

"혹시 루시퍼의 마력에 전염된 거 아닐까?"

속닥속닥.

이호연의 집에 얹혀사는 히로인들은 식탁에 앉은 채 이호연을 관찰하고 있었다.

돌아와서 계속 힘이 없는 이호연을 보니 걱정되긴 하지만, 말 걸지 말라는 분위기를 풀풀 풍기고 있었으니 말을 걸 수도 없었다.

결국 식탁에 앉아 이호연을 관찰하는 게 끝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히로인들의 관심이 이호연에게서 옅어질 때 즈음.

이호연이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래. 내가 너무 쉽게 생각했어. 각자 찾아가서 사과하자."

"… 쟤 이상해. 역시 루시퍼의 마법진에 감염된 거 아니야? 검사라도 해보자."

"그럴리가 없잖아. 그 마법진은 내가 만든 건데."

"응?"

이호연의 머리에 손을 대보기 위해 다가오던 릴리아나는 눈을 깜박거리며 이호연을 바라봤다.

이상한 소리를 하는 걸 보니 확실히 정신이 나간 건 맞는 것 같은데, 눈은 또렷했다.

"그 마법진은 내 거 맞아. 갑자기 찾아온 루시퍼에게 권한을 빼앗겨서 전투가 일어난 거고."

"엥? 에에? 진짜로?"

"응. 그니까 네가 죽도록 싸운 것도 다 내 탓이야. 미안하다. 릴리아나."

식탁으로 걸어간 이호연은 허리를 숙였다.

자신이 마법진을 설계하지 않았다면 루시퍼와 전투가 일어날 일도 없었고, 모두가 위험할 일도 없었겠지.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었다.

"애기 아빠가 말했으니까 나도 물어볼게. 아카데미를 납치한 이유가 뭐야?"

이호연을 빤히 바라보던 레베카가 입을 열었다.

그녀는 마법진의 진실을 알고 있었지만, 이호연이 입을 열기 전까지는 조용히 지켜볼 생각이었다.

모든 사건이 끝날 때까지 이호연이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혼자 찾아가서 물어볼 생각이었는데… 그래도 말을 해줘서 다행이었다.

"정확히는 아카데미를 납치한 게 아니에요. 레베카 씨를 납치한 거죠."

"나를 납치하다니?"

레베카는 갑작스러운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고, 이호연은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말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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