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야겜에 빙의했다-542화 (542/648)

< 542화 > 파멸의 루시퍼 (6)

루시퍼의 공격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임솔과 이호연의 마법으로 어떻게든 방어하는 데에 성공하긴 했지만, 주변에 퍼진 충돌의 여파는 엄청났다.

"하아. 흐으읏…."

거대한 마력의 파동이 중심부를 강타한 후.

남다은은 애장인 검을 지팡이처럼 든 채 간신히 균형을 유지했다.

지옥의 마력이 가득 찬 공간에서 긴 시간 싸움을 이어간 남다은에게 루시퍼의 마력은 치명타였다.

물론 남다은뿐 만이 아니다.

다른 히로인들도 거대한 마력의 격돌에 주저앉거나 간신히 서있었다.

"… 레베카 씨. 괜찮으세요?"

"결계가 박살난 게 조금 아프긴 하네."

레베카는 배를 쓰다듬으며 눈을 찌푸렸다.

룬의 결계가 박살나며 그 충격을 그대로 받은 탓이다.

"으응? 뭐야 이거."

"… 왜 그래? 릴리아나."

"뭔가 이상해. 내 마력이 돌아오고 있어."

"마력이?"

옆에서 떠드는 소리가 들렸지만, 남다은은 릴리아나 대신 이호연이 서있는 정면을 바라봤다.

남다은은 눈 앞에 보이는 장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 호연아?"

남다은은 보았다.

푸른 마력이 폭발하고, 거대한 힘을 감당하지 못한 공간이 굴절하는 모습.

이호연은 지금까지의 모습과 전혀 다른, 터무니없이 짙은 마력을 내뿜고 있었다.

두근. 두근.

이호연의 몸에 활기가 넘쳐흐른다.

마력 회로에 마력이 가득 차고, 전투 감각이 몸을 뜨겁게 달군다.

"이런 느낌이구나? 내가 만들었지만 잘 만들긴 했네."

루시퍼가 누리던 마법진의 힘은 생각보다 대단했다.

이호연을 중심으로 마력이 휘몰아친다.

회전하며 나선을 그리는 마력은 끝없이 확장하며 이호연에게 힘을 불어넣었다.

지이잉-

탁. 탁. 탁.

나선형의 마력은 허공으로 퍼졌고, 어두웠던 중심부에 밝은 빛이 퍼져나갔다.

이호연이 장악한 가짜 던전의 중심부가 밝아지기 시작했다.

가득 찬 지옥의 마력이 이호연의 몸에 흡수되고, 이호연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마력으로 전환했다.

동시에 이호연의 눈이 금빛으로 빛났다.

개안. 심(心)

몸 곳곳이 욱신거리는 건 여전했지만, 마력 회로에 마력이 가득했다.

"진작 이렇게 됐으면 얼마나 좋아. 시발. 힘들어 뒤지겠네."

이호연은 금빛으로 눈을 빛내며 다시 자신의 소유가 된 마법진을 훑었다.

본래 주도권을 빼앗기고 이미 작동한 마법진을 되찾는 것은 불가능이나 마찬가지.

마천궁을 펼쳤다고 하더라도 이런 거대한 마법진은 더더욱 힘들었다.

하지만 각성한 개안은 루시퍼의 마력이 들어차 있는 마법진의 틈을 찾아냈고, 이호연은 루시퍼와 대치하면서 마법진에 마력을 주입했다.

'그래도 시간 안에 빼앗아서 다행이야.'

마법진의 틈을 찾은 순간부터 시간 싸움이었다.

이호연은 루시퍼가 눈치채기 전에 마법진의 주도권을 강탈해야 했고, 다른 곳에 신경을 쓰지 못하도록 루시퍼의 시선을 끌어야 했다.

개안의 모든 힘을 마법진에 쏟은 만큼 루시퍼의 공격을 막아내는 게 꽤나 힘들었지만… 그 대가는 톡톡히 받았다.

자신이 만들었지만, 가짜 던전 마법진의 위력은 대단했다.

아카데미 전체를 감싸기 위해선 많은 양의 마력이 필요했는데, 루시퍼는 그 마력을 끌어다 자신의 힘으로 사용했다.

'… 마법진 내부가 말이 아니네.'

루시퍼는 마법진의 상태를 신경 쓰지 않고 마력을 함부로 사용했다.

마법진이 붕괴하든 말든 상관없기 때문이겠지. 그 덕분에 마법진은 완전히 망가져있었다.

이호연은 손 끝을 움직여 마법진을 살폈다.

가짜 던전 마법진은 본래 여러 함정과 시련이 준비되어 있었지만, 지금 대부분의 기능이 손상되어 있었다.

'사람들이 한 곳으로 모이고 있어. 중심부를 찾는 건가?'

이호연은 던전 내부의 지도를 펼쳤다.

던전 내부에는 아카데미의 교수를 포함한 고급 인력들이 많이 있다.

루시퍼가 마력을 전부 빼간 덕에 괴수들의 공격이 없고, 다른 함정도 발동하지 않고 있으니 사람들을 구하며 탈출구를 찾는 건 당연한 일이다.

'오케이. 파악 완료.'

이호연은 순식간에 마법진의 구성을 수정했다.

마법진이 붕괴하지 않으며 마력을 끌어낼 수 있는 방법을 떠올리는 건 쉬웠다.

내부의 사람들이 한 곳으로 모이기 시작하며 많은 빈 구역이 생겨났고, 텅 빈 공간을 구성하는 것은 전부 잉여 마력이었다.

쿠우우웅-!

이호연은 마법진을 축소했다.

마법진 전체에 굉음이 퍼지며 쓸데없는 마력들이 전부 중심부로 돌아왔다.

"… 마천궁 전개."

마천궁을 펼쳤을 때 느껴지는 전능함.

이 안에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오늘은 더욱 확실하게 느껴졌다.

몸 안에 들어오는 마력을 인식한 이호연은 확신했다.

루시퍼 저 새끼는 병신이다.

"이런 힘을 가지고도 날 못 이겼으면 그건 재능 문제야."

이호연은 주변을 둘러봤다.

힘들게 버티고 있던 히로인들이 전부 헐떡거리고 있었다.

루시퍼의 공격 한 번에 전투 불능 상태가 된 것이다.

'더 시간을 끄는 건 좋지 않을 것 같네.'

히로인들의 체력도 문제지만, 이 싸움을 더 끌고 싶지가 않았다.

저 미친놈을 지금 죽이지 않으면 또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지이잉-!

이호연은 손을 앞으로 치켜들었다.

마법진에서 흘러나오는 지옥의 마력을 자신의 푸른 마력으로 치환한다.

이호연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마력이지만, 마천궁이 있다면 가능했다.

지옥의 마력을 깔끔하게 자신의 마력으로 변환하고 최적화된 마력 술식으로 위력을 증폭시킨다.

파지지직-

"슬슬 끝내자. 이 악마 새끼야."

마천궁 내부에 번개가 흐르기 시작했다.

이호연이 소환한 거대한 번개 줄기는 수십 갈래로 나뉘었고, 하나하나가 이호연의 의지대로 움직였다.

눈앞의 모든 존재를 잡아먹을 기세인 백색의 섬광들은 하나둘씩 하늘로 떠올랐다.

'내 전력을 막아내면서 동시에 마법진에 파고들었다고?'

루시퍼는 미간을 좁히며 이호연의 마력을 바라봤다.

가짜 던전 마법진의 통제권이 완전히 넘어갔다.

자신이 이 던전을 통제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지만, 루시퍼는 마법진 자체를 빼앗긴 것에 놀라고 있었다.

마법진에 신경을 쓰진 않았다고해서 아예 관심을 두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호연이 한 행동은 자신이 먹고 있던 식사를 눈앞에서 전부 뺏어먹던 것이나 마찬가지.

그걸 눈치채지 못했다면, 마법사로서 완벽한 참패였다.

"…."

루시퍼는 입을 다문 채 정면을 노려봤다.

지옥의 마력을 완벽하게 소화한 이호연의 마력은 루시퍼가 다루던 마력 그 이상이었고, 지상을 질주하는 번개는 루시퍼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을 정도로 강대했다.

'마안.'

하지만 아직 끝나지않았다.

이미 몇 번이고 꺾은 이호연을 이제 와서 이기지 못할 리가 없다.

루시퍼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번개를 노려보며 마력을 일으켰다.

아니, 일으키려 했다.

콰앙-!

루시퍼가 마안을 가동함과 동시에, 번개 하나가 루시퍼의 머리를 내리찍었다.

"크윽! 이게 무슨…."

그야말로 찰나의 시간이었지만,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자신의 몸은 소리보다 빠른 번개에 반응했다.

루시퍼는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바닥은 루시퍼의 발자국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고, 서있던 자리는 까맣게 탄 자국이 남아있었다.

다급하게 도망친 것 같은 추한 발자국.

루시퍼는 이호연의 번개에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을 쳐버렸다.

…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적을 눈앞에 두고 겁먹어본 적이 있었나?

마법사로서의 패배가 아니다.

전사로서 완벽한 패배.

'도망쳐야 한다.'

루시퍼는 생각했다.

그는 지금 어느 때보다 냉정했다.

루시퍼는 지금까지 어떤 싸움이든 도망쳐본 적이 없었다.

수천 마리의 마수들과 맨 몸으로 대치했을 때도 마력이 떨어지면 주먹으로 적을 분쇄하던 게 루시퍼다.

그렇게 만들어진 게 파멸의 루시퍼라는 이명이었다.

목숨을 건 싸움은 루시퍼도 즐기는 일이지만, 어디까지나 승산이 보였을 때의 이야기다.

자신이 사용하던 마법진의 마력은 이호연이 차지한 상태고, 자신의 컨디션은 만전이 아니었다.

굳이 상대의 승리가 확실한 곳에서 싸움을 이어갈 필요가 없다.

마법진의 위력을 체험했던 루시퍼였으니 더욱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었다.

파지지직-!

루시퍼의 실드가 다가오는 번개를 막아낸다.

하지만 하나를 막아도 사방에서 번개가 몰아친다.

"흡…!"

루시퍼는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도망칠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인간 세상이라는 익숙지 않은 공간에서 보험을 들어놓지 않을 정도로 루시퍼는 멍청하지 않았다.

조금만 틈을 만든다면 은신처로 몸을 이동할 수 있다.

그때, 루시퍼의 앞에 있던 이호연이 입을 열었다.

"루시퍼."

"…!"

"내가 두려운가 봐?"

이호연은 입꼬리를 올렸다.

각성한 개안은 루시퍼의 심리를 완벽히 읽어냈고, 어떻게 해야 그를 막을 수 있을 지도 알 수 있었다.

"지옥에서 태어난 가장 흉악한 악마. 파멸의 루시퍼라 불리며 지옥을 주름잡던 마왕의 후계자가 인간에게 두려움을 느끼며 도망칠 생각이야?"

루시퍼는 넋이 나간 눈으로 이호연을 바라봤다.

저 인간 놈이 하는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 이해는 하지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지옥에서 불리던 호칭들을 어떻게 아는 거지?'

아니, 호칭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이호연의 말을 들은 루시퍼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인간에게 저런 말을 듣는다고? 마왕의 후계자인 자신이?

루시퍼는 그 사실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 교만하구나. 이호연."

머리가 뜨겁다.

냉철하고 침착했던 루시퍼의 머리에 분노가 차오른다.

"오만하고, 무례하며, 불손해."

루시퍼가 가진 부정적인 감정이 증폭된다.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열등감이라는 감정의 씨앗이 피어나며 금방 루시퍼의 몸을 가득 채운다.

자신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분노가 차오른다.

"이호연. 감히 인간 주제에 내 계획을 모두 망치고, 내 마법진을 빼앗았다는 이유로 기고만장하는구나."

루시퍼는 떨리는 다리를 억지로 전진시켰다.

이호연의 영역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정신을 놔버렸냐? 그게 왜 네 거야."

이호연은 루시퍼의 말을 듣고 헛웃음을 지었다.

기억 조작이라도 당한걸까.

이호연은 '감정 증폭'에 마력을 쏟아부으며 루시퍼의 상태를 살폈다.

지금까지는 루시퍼의 마안과 마력을 뚫어내고 감정 증폭을 사용하는 것이 불가능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각성한 개안과 마천궁 그리고 마법진의 보조까지 받는 이호연은 루시퍼의 감정을 손쉽게 건드릴 수 있었다.

"죽여주지. 건방떨던 과거의 너를 원망하게 만들어주마."

쿵. 쿵.

루시퍼는 위기감을 보내는 몸의 신호를 무시했다.

온몸을 채우는 부정적인 감정은 눈앞의 적이 가진 강함을 잠시 망각하게 만들었다.

'마안.'

루시퍼는 마안에 읽히는 이호연의 감정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공포. 불안감. 압박감.

이호연의 감정은 여전히 불안정했다.

"… 떨고 있구나. 버러지다운 허세야."

저 모습은 전부 허풍이다.

그럼 그렇지. 자신은 지옥의 제왕이자 마왕의 후계자다.

겨우 인간에게 질 리가 없다.

자신감을 얻은 루시퍼는  자랑인 날개를 활짝 펼쳤다.

모든 것을 집어삼킬 기세인 칠흑의 마력이 다시 중심부를 채우기 시작했다.

그 순간.

콰지지직-

찰나에 다가온 수십 줄기의 번개가 루시퍼의 전신을 강타했고.

루시퍼의 오른팔이 깔끔하게 떨어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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