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야겜에 빙의했다-540화 (540/648)

< 540화 > 파멸의 루시퍼 (4)

지이잉-

따뜻한 빛이 이호연의 몸을 감싼다.

백아영이 가진 치유의 마력은 이호연에게 부드럽게 스며들었다.

누워있던 이호연은 주먹을 쥐었다 피며 몸 상태를 체크했다.

'이제 일어나도 될 것 같은데?'

워낙 상처가 심해서 거의 한 시간을 죽은 듯이 누워있었다.

바닥에 손을 짚은 이호연은 신음을 흘리며 상체를 일으켰다.

"끄흐으. 후우."

"여보. 아직 일어나면 안 돼…."

"제가 가지 않으면 더 위험할지도 몰라요. 아영 씨도 알잖아요."

"…."

백아영은 슬쩍 시선을 돌렸다.

직접 싸우지는 못하지만, 전투의 흐름은 백아영도 읽을 수 있었다.

얼핏 보면 비등비등해 보여도, 체력 소모나 누적된 상처를 보면 한쪽이 점점 밀리고 있다는 것은 명백했다.

하지만 힐러로서 중상인 환자를 전장으로 보내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일.

심지어 그 환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였다.

"그, 그래도 조금만. 딱 5분만 더 치료하면 될 것 같은데…."

"아영 씨. 생각해주는 건 고마워요. 근데 10분 전에도 10분만 있어달라고 했잖아요."

"… 흑."

이호연은 울상을 짓는 백아영의 머리를 쓰다듬은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걱정해주는 건 고맙지만 시간이 없다.

뚜두둑-

잠시 움직이는 것 만으로도 관절이 소리를 질렀다.

몸이 부서질 것처럼 아팠다.

하지만 괜찮다.

몸 내부에는 마력이 충분했고, 의식은 또렷했다.

마력 회로와 근육이 자신의 의지에 반응한다.

몸이 의지대로 움직이는 것에 감사를 느끼게 될 줄이야.

'됐어. 이 정도면 충분해.'

이호연은 이것보다 나쁜 컨디션으로 루시퍼와 몇 시간이나 대치했다.

지금도 히로인들이 루시퍼와 싸우고 있다.

일어날 수 있는데 계속 누워있을 순 없었다.

"저는 싸움에 합류할게요. 아영 씨도 다른 사람들을 챙겨주세요."

"으응. 알겠어."

가장 가까이 있던 사람은 임솔.

이호연은 몸 내부에서 마력을 회전시키며 임솔에게 다가갔다.

가까이가자 루시퍼에게 마력을 쏟아부으며 땀을 흘리는 임솔과 루시의 뒷모습이 보인다.

특히 루시는 한계가 가까워졌는지, 표정이 안 좋았다.

화악-

이호연은 슬쩍 루시의 뒤에 서서 마법진에 마력을 더했다.

수 백개의 불화살은 루시가 혼자 만들어낸 것보다 훨씬 뜨겁고 파괴적인 힘을 가진 채 루시퍼에게 쇄도했다.

"아…?"

갑작스럽게 느껴진 익숙한 마력에 루시는 뒤를 돌아봤고, 이호연을 확인하자마자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이호연! 괜찮아진 거야?"

"호연 씨…!"

"응. 이제 싸울 만 해."

이호연은 눈을 크게 뜬 루시와 루미에게 미소를 지어줬다.

다들 고생하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아팠다.

"우리 제자, 움직여도 괜찮은 거 맞아?"

임솔은 마법진에서 눈을 떼지 않고 대답했다.

마법에 집중하고 있었지만, 제자의 마력이 평소보다 빈약한 것은 느낄 수 있었다.

"이 정도면 괜찮아요. 그것보다 루시퍼는 어때요?"

"… 생각보다 많이 강해. 근접진에 도움이 필요할 것 같아."

이호연은 루시퍼를 바라보며 눈을 찌푸렸다.

루시퍼는 루시의 불화살을 피하지 않았고, 임솔의 마력포도 일부는 허용하며 공격 일변도를 이어갔다.

"루시퍼는 왜 방어를 안 하는 거죠?"

"작전을 바꾼 모양이야. 다른 사람들은 무시한 채 스칼렛만 집요하게 노리고 있어."

임솔의 말대로, 루시퍼는 자잘한 공격 정도는 허용하며 스칼렛에게 달라붙고 있었다.

동시에 모두를 상대하는 게 힘들다는 걸 알고 한 명씩 줄여나가려는 속셈이겠지.

괴물 같은 재생력이 있으니 할 수 있는 오만한 전투 방식이었다.

"… 위험할 것 같은데."

스칼렛의 회피력이 뛰어나긴 하지만, 루시퍼의 집중 공격을 받는다면 그녀도 위험하다.

루시퍼의 몸에 상처가 쌓이기 전에 스칼렛이 공격에 스치기라도 한다면….

타앙-

그때, 스칼렛이 루시퍼의 공격에 스쳤다.

가벼운 공격인데도 스칼렛은 곧바로 중심을 잃었다.

'가속.'

그럴 줄 알았어.

이호연은 떨리는 주먹을 꽉 쥔 뒤, 빠르게 마력을 회전시켰다.

*

그리고 지금.

루시퍼는 정면의 인간들을 내려다봤다.

어째서, 사냥이 이렇게 길어진 것인가.

단 한 걸음만 남은 상태였다.

이호연을 생포하기 직전이었고, 날파리 한 마리를 줄이기 직전이었다.

이호연에게 방해를 받고.

다음은 릴리아나.

다시 이호연까지.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시간이 있었다면 모든 것을 끝냈을 텐데.

처음에는 흥미롭게 봐줄 수 있었지만, 루시퍼는 자신의 거사를 막는 것들이 점점 짜증 나기 시작했다.

"이호연!!!"

루시퍼는 마력을 끌어올렸다.

인간들의 공격은 귀찮을 뿐 자신에게 위협이 되지 않았다.

이호연이 돌아오긴 했지만, 그의 상태는 정상이 아니다.

아까처럼 싸우지는 못할 것이다.

질 이유가 없었고, 모든 상황이 자신에게 웃어주고 있었다.

"가만히 누워있었다면 고통을 느끼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결국 너도 멍청한 인간이었구나."

루시퍼는 자신의 마력에 흠칫거리는 인간들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결국 버러지일 뿐.

이호연 하나가 추가된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다.

저 자신감 있는 모습을 당장이라도 찢어버려야 한다.

우드득-

루시퍼가 서있는 공간이 일그러진다.

짙은 마력이 그의 몸을 휘감는다.

첫 목표는 이호연이다.

생포같은 건 머리 속에서 지운다.

마왕의 후계자로서 위엄이 떨어지지만, 그 정도는 어쩔 수 없었다.

콰앙-!

"… 허어."

이호연은 침을 꿀꺽 삼켰다.

루시퍼에게서 살기가 뿜어져 나온다.

생포를 포기하고 진심으로 여기 있는 사람들을 죽여버릴 생각이다.

정확히 말하면 치유 공간에 처넣겠다는 거지만, 루시퍼에게는 그 정도도 자존심을 포기한 것일 터.

이호연은 엄청난 위압감에 압도당한 채 루시퍼를 노려봤다.

쿠우웅-! 마법진 전체를 부술 기세의 마력이 루시퍼의 주먹에 깃든다.

루시퍼가 밟은 땅이 요동치고, 순식간에 이호연의 앞까지 쇄도한 루시퍼의 주먹이 뻗어졌다.

'여기까진 뻔해.'

속도는 여전히 감당하기 힘들지만, 첫 공격으로 자신을 노릴 거라는 것은 예상하고 있었다.

개안.

가속.

루시퍼의 주먹을 피한 이호연은 거리를 벌리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이호연도 치료를 받는 동안 루시퍼의 대책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의 속도와 힘은 자신보다 뛰어나다.

첫 공격은 피할 수 있었지만, 그다음부터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스치기만 해도 치명타인 루시퍼의 공격을 대비할 방법부터 찾아야 한다.

가속으로 더 빠르게 움직인다?

아니.

마력이 부족하고 블러드 비트도 사용하지 못하는 지금, 속도를 빠르게 하는 건 출력이 안 좋다.

두근.

이호연은 온몸을 채우는 전투 감각에 몸을 맡겼다.

방법은 한 가지.

내 속도를 늘릴 수 없다면, 상대의 속도를 읽을 수밖에 없다.

이미 구상은 끝났다.

루시퍼의 공격은 파괴적이었다.

잠시라도 긴장을 놓았다간 가루가 되어버릴 공격을 수 없이 쏟아낸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이호연의 전투 감각은 빛난다.

이길 수 없는 상대 앞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힘.

아무리 높은 벽을 만나도 뛰어볼 기회 정도는 만들어주는 게 이 능력이다.

이호연은 금빛으로 빛나는 눈동자에 마력을 집중했다.

가슴 깊은 곳부터 온 몸으로 활기를 퍼트린다.

끓어오르는 전투 감각과 반대로 머리는 차갑게 식는다.

눈에 미약한 통증이 느껴진다.

개안을 처음 익혔을 때와 비슷했다.

'개안을 뛰어넘어, 루시퍼의 마안을 흉내낸다.'

모든 것을 읽어내는 루시퍼의 마안.

루시퍼가 태어났을 때 부터 지닌 것이지만, 마법에 극한에 이른다면 따라하지 못할 것도 없다.

개안은 마력을 읽어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시퍼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이유는, 이호연의 마력이 루시퍼의 마력을 이겨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현상 자체를 읽어내면 되잖아."

잠시 눈을 감았다 뜨자 이호연의 금빛 눈동자가 더욱 환하게 빛났다.

느껴지지 않던 것이 느껴지고,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인다.

개안의 능력이었던 마나의 시각화를 넘어선 대상의 내면을 직시하는 힘.

'개안. 심(心)'

번뜩-. 한 단계 성장한 개안이 이호연의 눈에 자리 잡았다.

"이상한 짓거리를 하는 구나."

공격이 빗나갔지만, 루시퍼의 마력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그는 다시 이호연에게 접근했다.

'이제 볼 수 있어.'

공격에 담긴 힘은 여전히 강대했지만, 이제는 읽어낼 수 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루시퍼의 주먹이 이호연의 눈앞까지 다가왔고, 동시에 공간 전체를 짓누르는 루시퍼의 마력이 이호연을 휘감았다.

몇 시간 전에 이호연을 누더기로 만들었던 그 마력이다.

하지만, 그때와는 결과가 달랐다.

이호연은 루시퍼의 마력에 휩쓸리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미풍이 스쳐가듯 루시퍼의 마력을 흘려낸다.

"… 흠?"

루시퍼는 주먹을 거두며 거리를 벌렸다.

이호연의 전투력은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방금 공격은 피할 수 있는 게 아니었을 텐데.

어떻게 피했는지 알 수가 없다.

"큭."

이호연은 미소를 지었다.

방금 루시퍼의 공격을 흘린 건 이호연의 개안이 각성했기 때문이지만, 부가적인 요인도 있었다.

"강한 척하더니, 보기보다 체력이 많이 빠진 모양이네."

"… 개소리를 하는 군."

아무리 루시퍼라도 이호연과 몇 시간이나 드잡이질을 한 후 여성진들과 싸움을 지속하는 건 힘들었던 모양.

약간의 반동은 각오하고 정면에서 흘려낸 거였는데, 아무런 반동이 없었다.

공격이 아까보다 가볍다는 뜻이다.

갑자기 진심을 내며 생포를 포기한 것도, 마음 한 구석에서는 길게 전투를 이어갔다가는 패배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겠지.

"이호연…. 크읍!"

서걱-

루시퍼의 팔을 형체가 없는 검이 베어낸다.

남다은은 방심하는 적에게 시간을 주지 않았다.

곧바로 루시퍼의 마력이 상처를 뒤덮었지만, 공격을 허용하는 것이 좋은 신호는 아니었다.

"크아아아아!"

루시퍼의 붉은 마안이 빛난다.

이호연의 마법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괜찮다.

눈 앞에 보이는 모든 것을 죽여버리면 그만이다.

쿠우우웅-! 루시퍼의 몸을 감싼 마력이 세차게 일어났다.

- 화르륵!

루시퍼의 주변에 지옥의 불길이 떠올랐다.

수 십 수 백개의 불길이 퍼짐과 동시에, 루시퍼의 몸을 감싼 마력에서 칠흑의 광선이 쏘아진다.

무시무시한 굉음을 낸 공격이 공간을 휘저었다.

이호연은 환하게 빛나는 금빛 눈동자로 주변을 둘러봤다.

마력을 읽는 것에서 한 층 더 진화한 개안은 개안으로 보이지 않던 것도 읽어낼 수 있었다.

"룬의 결계."

이호연은 마력을 일으켰다.

비슷한 타이밍에 레베카가 펼치는 룬의 결계와 루미의 쉴드에 자신의 마력을 집어넣는다.

"뭐야. 내 마법이…?"

"으, 음음?"

레베카와 루미도 놀라서 자신들의 마법진을 재확인했다.

따로 말을 맞춘 적도 없는데, 처음부터 하나였던 것 처럼 마법진이 합쳐진다.

콰아아-!

강하게 연성된 쉴드가 루시퍼의 마법을 가로막는다.

루시퍼의 마법을 막아낸 이호연은 아까부터 눈에 걸리던 것을 다시 확인했다.

"이제 이런 것도 보이는구나?"

이호연은 중심부를 구성하는 마법진을 바라봤다.

아니, 단순히 보는 게 아니었다.

마법진의 구성을 통찰하고 내부를 읽어낸다.

이미 루시퍼의 마력에 장악당한 마법진의 틈을 꿰뚫었다.

그리고, 루시퍼를 제압할만한 방법이 이호연의 머리에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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