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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야겜에 빙의했다-538화 (538/648)

< 538화 > 파멸의 루시퍼 (2)

"엘리스, 조심해…! 언니 뒤에 있어야지!"

"… 저게 뭐야?"

대열의 가장 뒤에서 아이린과 함께 중심부로 들어온 엘리스는 루시퍼를 보자마자 눈을 찌푸렸다.

거대한 몸에서 흘러나오는 무서울 정도의 기세.

그리고 그 앞에서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는 릴리아나.

둘 사이에서 느껴지는 중압감에 엘리스는 자신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아이린은 엘리스를 뒤로 숨기며 입술을 깨물었다.

"저게 루시퍼야. 저번과는 다르게 생겼지만… 확실해."

"저 괴물이 루시퍼라고?"

"맞아. 근데 저 놈이 들고 있는 건 뭐지? …… 설마?"

"… 응. 이호연이네."

릴리아나 처럼 금방 알아챈 건 아니지만, 아이린도 눈을 크게 떴다.

엘리스는 정면을 바라보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하지만 그녀가 나서기 전에 릴리아나의 마력이 움직였다.

우드득-

"이제 이런 것도 쉽거든?"

릴리아나를 중심으로 공간을 채우던 마력이 수축했다.

당연히 엘리스를 누르던 지옥의 마력의 중압감도 줄어들었다.

서걱-

빈 공간을 공략하는 남다은의 기습적인 공간참.

루시퍼의 가슴에 깊은 자상이 새겨졌다.

"크아아악!"

스르륵-

동시에 루시퍼에게 잡혀있던 이호연이 이 쪽으로 둥둥 뜬 채 날아왔다.

이호연에게 충격이 전혀 가지않는 세밀한 마력 컨트롤.

문수린의 염동력이었다.

"호연이는 챙겼어. 성녀 님. 호연이를 부탁해요."

"우리 제자가…."

"아, 아아아… 안돼…."

백아영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이호연에게 마력을 들이부었다.

이호연의 몰골은 끔찍할 정도였다.

심각한 외상과 출혈은 위급한 치료가 필요해 보였고, 몸 내부는 더욱 심각했다.

마력 회로는 망가져있었고, 장기와 뼈에도 손상이 심했다.

"말도 안 돼… 여보. 여보…."

백아영은 이호연의 상태를 파악하자마자 마력 회로의 모든 마력을 끌어올렸다.

어떻게 보면 운이 좋다고 볼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지금까지 목숨이 붙어있는 것도 천운이었고, 여기서 딱 10초만 늦었다면 아무리 성녀라도 구하지 못했을 터.

백아영은 이호연의 코 앞까지 다가온 죽음을 몰아냈다.

엘리스도 마음 같아선 이호연의 치료를 돕고 싶었지만, 성녀가 붙어있는 이상 자신은 방해일 뿐이다.

'… 여보라는 호칭은 뭐지? 아니, 그건 나중에 생각하자. 저 여자는 왜 갑자기 분위기가 바뀐 거야?'

엘리스는 릴리아나의 뒷모습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멍청한 사람 같았는데, 전투에 들어가니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어쩌면 자신의 아버지와 비슷한 부류일지도 모른다.

바람둥이면서 가벼운 아버지도 전투를 할 때는 진지하게 변하니까.

'아무튼 나도 준비해야겠네.'

릴리아나의 평가를 고친 엘리스는 마력을 끌어올렸다.

아무래도 이 던전에서 빠져나가려면 저 괴물을 물리쳐야 하는 것 같다.

이호연도 그걸 알기에 혼자 싸우고 있던 것이겠지.

자신이라고 가만히 있을 순 없다.

물론 그전에.

앞에서 벌벌 떨고 있는 고양이 두 명을 보살펴야 한다.

"루시, 루미. 너희들은 호연이를 치료하는 성녀 님을 지켜줘."

엘리스는 루시와 루미에게 다가갔다. 돌려서 말했지만, 명백한 축객령이었다.

루시와 루미의 실력이 뛰어난 건 엘리스도 인정하고 있다.

이런 싸움에서 경험이 있냐 없냐는 중요한 요소다. 자신의 실력이 뛰어나더라도 실전에서는 그 실력을 발휘할 수가 없으니까.

벌벌 떠는 게 눈에 보이는 데 같이 싸우자고 할 수는 없다.

"시, 싫어요. 우리도 싸울 수 있어요."

"나도… 도망치기 싫어. 이호연의 복수를 할 거야."

눈에 눈물이 맺힌 루시와 루미는 동시에 주먹을 쥐었다.

싸움이 무섭더라도 여기서 도망치면 이호연을 저렇게 만든 놈에게 복수를 하지 못한다.

그건 무서운 싸움보다도 싫었다.

"너희들 마음은 알지만… 정말 위험해. 그리고 성녀 님을 지켜주는 것도 이호연을 도와주는 거나 마찬가지야. "

엘리스는 정면을 힐끔거리며 전투를 준비하는 아이린의 옆에 섰다.

루시와 루미를 후방으로 빼내고 싶지만, 더 이상 대화할 시간은 없다.

저 괴물이 언제 덤벼들지 모른다.

'이호연이 때려주고 싶은 나쁜 남자인 건 맞지만, 그렇다고 남이 때리는 걸 보고 있을 순 없지.'

엘리스는 피투성이가 된 이호연의 모습을 떠올리며 이를 악 물었다.

그때, 백아영의 옆에 있던 임솔이 루시와 루미에게 다가왔다.

"얘들아. 이 쪽으로 와."

"임솔 교수님?"

저벅. 저벅.

온몸에 푸른 마력을 두른 임솔이 루시와 루미 앞으로 나섰다.

"내 옆에서 보조해줘. 루시 생도는 공격, 루미 생도는 방어 위주로 내 호흡에 맞추면 돼."

"임솔 교수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니야. 너희들의 실력이라면 충분히 도움이 될 거야."

임솔은 부글부글 끓는 화를 최대한 억제하며 정면을 노려봤다.

전투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이 이성을 잃는 것이다.

자신은 교수로서 생도를 챙기고 모범을 보여야한다.

'… 오늘은 조금 힘드네.'

아마 자신만 이렇게 화가 난 건 아니겠지.

이호연의 모습을 본 모두가 화를 참고 있다.

학생회장은 직접 이호연을 옮기면서도 분노를 참았다.

여기서 자신만 흥분하는 건 교수로서 말도 안되는 일.

게다가 이호연의 복수를 위해선 침착하게 싸움에 임하는 게 중요하다.

감정을 가라앉힌 임솔은 눈을 부릅뜨고 정면을 바라봤다.

"릴리아나 쟤가 저렇게 강했어? 스칼렛. 그런 정보는 미리 말해줬어야지."

"… 저도 처음 봅니다."

"그럼 뭔데? 이호연 때문에 각성이라도 했다는 거야?"

"장난이 아니고, 정말 그럴지도 모릅니다."

아이린은 릴리아나 주변에 떠오른 마력을 보며 눈을 깜박거렸다.

물론 자신도 화가 난 건 맞다. 이호연이 저렇게 당한 걸 보는 건 처음이었으니까.

'… 근데 옆에서 저 정도로 분노하고 있으니까 막상 화를 낼 수가 없네.'

아이린은 세련된 검을 뽑으며 전투를 준비했다.

그녀는 거리를 벌리는 전투도 가능하지만, 엘리스가 있으니 오늘은 근접에서 보조할 생각이었다.

화르륵-

그때, 아이린의 머리 위에 거대한 기운이 모이기 시작했다.

'아마겟돈.'

임솔의 마법이었다.

그녀는 마력의 예열이 끝나자마자 가장 강력한 마법을 시전 했다.

남다은의 기습에 당한 적이 재생하도록 시간을 줄 생각 따윈 없다.

그 옆에 서있던 루시는 당황하며 임솔에게 말했다.

"교, 교수님. 어떻게 하면 될까요?"

"자신감을 가지고 네 판단대로 움직여. 루시 생도 정도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거야. 루미 생도는 내가 방어하려고 할 때 도와주면 돼. 혹시나 반응하지 못하면 먼저 깔아주면 더 좋고."

"네, 넵!"

"알겠습니다…!"

임솔의 주변에 마나가 모이기 시작한다.

던전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굉장히 답답했는데, 확실히 이 공간은 릴리아나가 마력을 털어내 준 덕분에 조금은 쉬웠다.

"루시… 화이팅."

"응. 루미. 이번에도 잘 지켜줘."

루시와 루미도 임솔의 지시에 따라 마법을 준비했다.

쌍둥이들에게 이런 극한 상황의 경험은 없었지만, 이상할 정도로 마음이 차분했다.

임솔의 응원 덕분일지도 모르고, 어쩌면 이호연을 생각한 마음 덕분일지도 모른다.

치이익-

쿵.

루시퍼는 가슴의 상처를 마력으로 덮은 채 눈앞의 인간들과 거리를 좁혔다.

자신이 인간 따위에게 질 거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가만히 맞아주는 건 용납할 수 없다.

"릴리아나. 아직 조금 불편한데, 더 막을 순 없어?"

"나도 이게 최대야! 공간은 장악했지만 저 자식이 원래 가지고 있는 마력은 막기가 힘들엉…!"

루시퍼에게서 흘러나오는 지옥의 마력은 아이린이 본래의 힘을 발휘할 수 없게 만들었다.

아이린은 답답함을 느끼며 검을 한 번 털어냈다.

"언니! 조심해!"

그 순간, 아이린의 눈앞에 시커먼 무언가가 치솟았다.

본능적으로 검을 들어서 막았지만, 어마어마한 물리력에 아이린은 뒤로 날아갔다.

"크흡…!"

콰아앙-!

손 끝이 부서질 것 같은 충격.

압도적인 힘의 차이는 절망감을 느껴질 정도였다.

폭탄에 맞은 것처럼 날아가던 아이린은 문수린의 부드러운 마력에 받아졌다.

"진짜 말도 안 되잖아…. 커흡."

가벼운 헛기침에 붉은 피가 배어 나온다.

겨우 한 번의 공격을 허용했고, 그 마저도 문수린의 마력 덕분에 충격을 최소화했다.

그럼에도 이 정도의 충격이라니.

이호연은 대체 저 괴물하고 어떻게 일대일로 대치했던 거지?

파앙-

다행히 아이린은 혼자가 아니었다.

아이린이 튕겨 나가는 동안 스칼렛의 예리한 참격이 루시퍼의 팔을 노렸다.

루시퍼는 늦지 않게 반응했지만, 스칼렛에게 다가가는 주먹을 엘리스가 베어냈다.

쾅-!

텅 빈 루시퍼의 가슴에 릴리아나의 마력이 꽂히고.

서걱-

동시에 남다은의 공간참이 루시퍼의 피부를 스치며 지나갔다.

오늘 처음 합을 맞춘 그녀들의 호흡은 완벽했다.

가짜 던전을 돌파하며 맞춘 것도 있지만, 그녀들의 실력과 재능이 압도적이었기에 모일수록 강해졌다.

짧은 교환이 끝나고, 문수린의 마력에 이끌려 뒤로 물러나자마자 쏟아지는 마법 세례.

수 백개의 불화살과 원소 구체가 루시퍼의 머리 위로 떨어진다.

"엘리스 아가씨! 이 쪽으로!"

"고마워. 스칼렛."

"아이린 님도 괜찮으십니까?"

"다행히 살아있어."

"저희는 정면 싸움보다 미끼 역할을 하는 게 좋아 보입니다."

"… 나도 그렇게 생각해. 엘리스! 언니 뒤에 숨어 있어."

"난 괜찮으니까 언니나 조심해."

엘리스의 검에 얼음이 휘감긴다.

몸이 날아갈 것처럼 가벼웠다.

레베카와 문수린 덕분이었다.

그녀들은 각각 룬의 결계와 염동력을 펼치고 있었다.

루시퍼의 속도는 느려지고 아군의 속도는 빨라지는 마법이 전장 전체를 채웠다.

전투의 흐름은 완벽했다.

문제는 저 괴물이 규격 외라는 것.

스르륵-

'나쁘지 않군.'

루시퍼는 재생하는 팔을 보며 마안을 붉게 빛냈다.

릴리아나의 마력은 확실히 위협적이었다.

루시퍼가 장악한 마법진의 마력을 대부분 날려버렸으니까.

몸은 정체불명의 결계 때문에 무거웠고, 이상한 마력이 자신을 사방에서 끌어당겼다.

게다가 여러 곳에서 덤벼드는 인간들은 각각 까다로운 패턴을 가지고 있었다.

…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루시퍼는 마왕의 정식 후계자다.

마법진의 마력 따위 없어도 그의 강인한 육체와 압도적인 마력.

그리고 마안은 여전히 존재했다.

"하나하나가 이호연 만도 못한 버러지. 귀찮은 파리들이 모여봤자군."

인간은 아무리 강해봤자 인간.

이호연 정도의 돌연변이가 아니라면 버러지들이 뭉쳐봤자 자신에게 위협이 될 순 없다.

압도적인 힘으로 부숴 버리면 그만이다.

치이이익-

루시퍼의 마력이 잘려나간 몸을 대체한다.

기껏 상처 낸 몸이 곧바로 복구되었다.

뜨거운 불화살과 빛의 포격이 루시퍼에게 쏟아진다.

지옥의 마력으로 만들어진 실드가 마법을 막아내며 흩어지고, 루시퍼는 여자들의 면면을 살폈다.

'긴장하고 있군. 겁먹은 채 떨고 있으며, 절망을 느끼고 있다."

루시퍼의 마안은 속일 수 없다.

눈앞의 인간들은 이호연과 다르게 평범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루시퍼를 보며 까마득한 힘의 차이를 느끼고 있다.

저게 정상적인 인간의 반응이겠지.

'… 이상하군.'

분명히 공포를 느끼고 있는데도, 인간들은 이호연과 비슷한 기세로 덤벼들고 있었다.

루시퍼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지옥에서 보지 못한 광경이다.

남을 위해 희생하고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것.

자신의 목숨보다 남을 위하며 압도적인 힘을 가진 자신에게 덤벼드는 것.

루시퍼는 이 쪽을 바라보는 인간들을 보며 이질감을 느꼈다.

그리고 표정을 구기며 중얼거렸다.

"…… 구역질이 나는구나."

지옥에서 보지 못한 광경이라고 해서, 동정심을 느끼거나 감동을 느끼는 게 아니다.

약하디 약한 인간 주제에 자신의 눈앞에서 고개를 꼿꼿이 들고 있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나름 유흥 정도는 될 것 같으니… 몇 명 정도는 살려놔도 되겠지."

짜증 나긴 하지만, 흥미롭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릴리아나와 그 외 인간 몇 명 정도는 이호연과 함께 생포해놓을 생각이다.

어쩌면 저들 사이에서 괜찮은 연구가 진행될지도 모른다.

쿠우우웅-!

새어 나오는 마력이 루시퍼의 전신을 감쌌다.

루시퍼의 위세가 중심부를 짓누르며 공간 전체가 울린다.

엄청난 기세에 루시퍼를 바라보던 여자들의 긴장은 더욱 심해졌고.

루시퍼는 섬뜩한 안광을 내뿜으며 눈앞의 인간에게 쇄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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