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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야겜에 빙의했다-535화 (535/648)

< 535화 > 가짜 던전 (7)

뜨겁다. 이마에 생긴 자상에서 내려오는 피가 시야를 가린다.

퉷.

이호연은 입에 찬 피를 토하듯 뱉었다. 입술을 꾹 닫아봤자 피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입을 가득 채운 피가 전투를 방해하니, 차라리 뱉어버리는 게 낫다.

"… 머리 아프네."

피를 너무 많이 흘린 탓일까. 시야가 흔들린다.

제대로 서 있을 수 없었다.

"이해할 수 없군. 인간이 이렇게 강건할 줄이야. 하지만 이호연 네가 인간을 뛰어넘었다 해도 오래 버티진 못할 텐데. 어째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거지?"

"너랑은 짊어진 게 다르다니까."

강한 척을 하며 앞을 째려봤지만, 이호연은 실제로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였다.

온몸을 혹사시킨 전투의 대가는 확실했다.

넝마가 된 옷은 재생되지 않았으니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고, 너덜거리는 팔다리는 곧 떨어질 것 같았다.

머리부터 발 끝까지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 곳이 없었다.

보통 인간이었다면 이미 쇼크사하고도 남았을 고통이었지만, 이호연의 전투 감각과 뚜렷한 정신력. 그리고 높은 재생력은 엄청난 고통 속에서도 서있게 만들었다.

두근. 두근.

이런 몸상태인데도 심장의 두근거림은 멈추지 않았다.

이미 블러드 비트는 꺼져있었다. 이호연을 감싸는 마천궁도 존재하지 않았다.

더 이상 마나 회로가 반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남은 건 전투 감각에 의존한 본능에 맡기는 전투.

"몇 번이고 말하지만 더 싸워봤자 개죽음일 뿐이다. 지금이라도 무릎 꿇고 목숨을 구걸하는 편이 나을 텐데."

"…."

이호연은 숨을 고르며 루시퍼의 말을 들었다.

헛소리인 걸 알지만, 그나마 루시퍼가 저렇게 헛소리를 중얼거릴 때마다 조금씩 회복할 수 있었다.

텅 비어버린 마나 회로에 마나가 조금씩 돌아간다.

'이 쪽을 생포하려는 게 다행이긴 하네.'

가짜 던전 마법진에는 치유 공간이 있다.

생명체가 죽음에 다다르면 자동으로 이동하는 곳인데, 루시퍼는 자신을 그곳에 보낼 생각도 없는 모양이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직접 무릎 꿇게 만들겠다는 자존심이겠지.

그 자존심이 이호연을 버티게 하고 있었다.

'조금만 더.'

두근.

이호연은 회복한 마력을 끌어올렸다.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

어차피 물러설 곳도 없고, 포기할 생각도 없었다.

길었던 전투 중, 이호연도 아무것도 못하고 당한 건 아니다.

틈을 노려 루시퍼에게 몇 번이나 상처를 입혔다. 하지만 저 괴물 같은 재생능력은 턱시도까지 원래대로 복구해버렸다.

하지만 상처를 입혔다는 건 아직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의지는 대단하군. 살면서 본 생명체중에 가장 공격적이야."

타앗-

이호연의 마력과 루시퍼의 마력이 충돌했다.

최대한 효율적으로 구성한 마력방출.

방금까지 골골대던 모습과 다르게, 꽤나 날카로운 공격이었다.

"난 네 놈을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루시퍼는 표정을 구겼다.

"쥐어짜낸 마력으로 날 죽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그 생각 자체가 나에 대한 모욕이다!"

"미친 새끼."

루시퍼는 갑자기 화를 내기 시작했다.

그 상황 자체가 어이없었지만, 그가 뿜어내는 힘은 장난이 아니었다.

루시퍼의 날개에서 엄청난 기운이 쏟아졌고, 이호연은 금방 뒤로 물러나야 했다.

온몸이 너덜너덜한 이호연과 다르게 풀컨디션인 루시퍼의 마력은 너무나 압도적이었다.

잠시 뒤로 물러서 몸을 가다듬으려던 그때.

"커흡…!"

이호연의 복부에 거대한 충격이 꽂혔다.

이호연의 몸은 이미 한계에 다다른 상태였다.

생포할 목적이라면 힘을 조절해야겠지만, 자신에게 덤벼든 자에게 격의 차이를 느끼게 해주는 것도 자신이 해야 할 일.

루시퍼는 강한 마력을 담아 이호연의 배에 주먹을 박아 넣었다.

쿵-

중심부를 넘어 던전 전체로 퍼질 만큼 거대한 파장.

몇 번이고 중심부를 울렸던 그 마력이 이호연의 몸 전체에 파고든다.

"아…."

털썩-

아무리 강한 육체를 가지고 있다 해도 결국은 인간.

이호연의 몸은 결국 차가운 바닥에 쓰러졌다.

'이런 씹…."

지이이이이잉-

난잡한 이명이 귀를 가득 채운다.

자신의 심장소리마저 들리지 않으니, 전투 감각도 완전히 꺼져버린 것 같았다.

저벅. 저벅.

"아직도 살아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군."

루시퍼는 힘이 다한 인간을 내려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이겼지만 저 질긴 목숨은 인정하는 바였다.

"너에게는 정말 감탄했으니, 대화를 해볼까. 네가 믿지는 않겠지만, 나는 인간 세상을 멸망시킬 생각이 없다. 내게 이곳만큼 흥미로운 곳은 없으니까."

"…."

루시퍼가 무언가 말을 하고 있었지만, 잘 들리지 않았다.

이호연은 조금씩 작아지는 이명을 들으며 차가운 바닥을 느꼈다.

"몇 번이나 말했듯이 네가 원한다면 인간 여자들도 살려줄 수 있다. 아, 칼리오페와 몇몇 인간들은 먼저 대화를 나누고 싶군. 특히 칼리오페와는 할 말이 많다. 얼마 전, 그녀의 금제를 풀 수 있는 열쇠를 찾았으니까."

"믿을 게 없어서 악마 새끼를… 믿겠냐. 크흡."

이호연은 온몸을 때리는 고통을 견디며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짜증을 참지못하고 한 마디 던졌더니 곧바로 고통이 찾아왔다.

바닥은 이호연의 피로 웅덩이가 만들어져 있었다.

온몸의 피가 다 쏟아진 것 같은데 살아있는 것도 신기했다.

이 정도의 주인공 버프라면 다시 일어날 수도 있지않을까.

털썩-

바닥을 짚고 일어나려던 이호연은 다시 웅덩이에 얼굴을 처박았다.

아무리 재생력이 뛰어나더라도, 특정한 선을 넘어버린 이상 다시 회복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 이호연의 몸은 선을 넘다 못해 찢어버린 상태였다.

"왜 나를 믿지 못하는 거지?"

"…."

"이호연. 너는 날 잘 아는 것처럼 행동하는구나. 하지만 네가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내 신뢰는 증명되었다고 생각한다."

지랄.

이호연은 욕지거리를 삼키며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루시퍼는 모르겠지만 이 세계는 기본적으로 게임이고, 신과의 내기다.

결국 인간 세상에는 마왕이 강림하고, 이호연은 모든 여자들을 공략한 상태로 마왕을 막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은 멸망한다.

애초에 그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루시퍼가 인간 세상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의 흥미를 채워주기 때문.

더 이상 흥미로운 것들을 찾지 못한다면 결국 인간 세상도 지옥과 똑같아지겠지.

"흐음…."

루시퍼는 이호연을 내려다보며 눈을 찌푸렸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호연이 약해진 지금.

그의 힘은 여전히 읽을 수 없었지만, 감정은 읽을 수 있었다.

느껴지는 것은 엄청난 불신과 분노.

루시퍼는 자신에게 저런 감정을 쏟아내는 이호연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죽는 것이 억울한가? 나는 몇 번이나 기회를 줬다고 생각하는데."

"…."

"강자를 만나면 죽는 건 당연한 이치다. 싸울 때에는 자신의 죽음도 생각해야 한다."

"…."

이호연은 조용히 몸 내부를 회복하는 데에 집중했다.

루시퍼는 자신을 죽일 생각이 없다.

아직 기회는 분명 남아있을 거다.

"죽음에 대한 분노는 아닌 것 같군. 그렇다면 뭐지?"

루시퍼도 이호연이 힘을 모으는 것은 당연히 알고 있다.

하지만 저 상태의 이호연은 아무리 마력을 모아도 자신에게 대항할 수 없다.

그걸 알기에 내버려 두고 있는 것이다.

지금 그의 관심사는 이호연이 마력을 모으는 게 아니다.

궁금한 것은 그가 저렇게 분노하고 있는 이유.

단순히 패배에 대한 분노가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면 그 인간 여자들인가?"

루시퍼는 이호연을 내려다보며 대화를 걸었다.

이호연이 자신의 마안을 피하는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선 사소한 정보라도 얻는 편이 좋다.

그가 처음부터 신경쓰고 있었던 여성체들. 거기 비밀이 있을 것 같았다.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감정이 격화되는 군. 여자를 지키기 위해서인가? 하지만 그건 이상해. 너는 왜 이런 마법진을 설계해 여자들을 가둔 거지? 마법진이 없었다면 나는 인간 여자의 존재 따위 몰랐을거다. 즉, 위협하지도 않았겠지."

"…."

"다른 목적이 있다는 뜻인데…. 네 여자로 만들기 위해 가둬놓고 정신이라도 주무를 생각이었나? 그렇다면 실망이다. 인큐버스들이나 할만한 저급한 생각이군."

"지랄하지 마."

이호연은 이를 악 물었다.

저딴 악마 새끼가 하는 말에 더 이상 귀를 기울이고 싶지가 않았다.

히로인들이 루시퍼에게 언급되는 것 자체가 기분 나빴다.

지이잉-

루시퍼의 붉은 눈동자가 빛난다.

눈앞의 인간의 감정을 읽어낸 루시퍼는 의문을 느꼈다.

"이미 자신의 여자라는 건가. 그럼 어째서 납치한 거지? 이 마법진은 거대한 공간 전체에 작동했다. 다른 인간들은 무슨 의미지?"

"…."

"단순 흥미인가? 하지만 이호연 네가 그런 성격으로는 보이지 않는군. 게다가 그 여자들은 네게 애정을 느끼고 있었다. 서로 애정을 느끼고 있는데 어째서 이런 일을 벌인거냐?"

"… 역겨우니까 그 입에 내 여자들을 담지 말라고."

"릴리아나를 포함한 인간 여자들을 전부 욕심내고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너는 악인이구나."

"개소리하지 마."

루시퍼는 이호연을 내려다봤다.

저 비정상적인 회복력이 몸을 회복해주고 있었지만, 그가 일어나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아직 대화의 장은 끝나지 않았다.

"약한 주제에 탐욕을 가지고 있는 것. 그것이 악인인 이유다. 네가 내게 패배한 순간 인간들은 내 전리품이나 마찬가지다. 무슨 짓을 하든 내 자유다. 그러니 분노하는 것은 오만한 일."

이호연은 루시퍼의 말을 무시하며 자신의 몸 내부를 체크했다.

아직 움직이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 일어난다고 이길 수 있을까.'

정신은 몸을 따라가기 마련.

엉망진창이 된 몸 때문에 이호연의 마음도 꺾였다.

이미 몇 번이나 싸웠다.

제대로 된 컨디션으로도 이기지 못한 루시퍼를 지금 이길 수 있을까.

하지만 이호연은 발버둥 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아니, 이렇게 말하는 게 맞겠군. 넌 위선자다."

"뭐?"

"네 마음속에는 너 자신도 속이는 위선이 들어차 있구나."

루시퍼의 마안이 이호연을 위아래로 훑었고, 마음속으로 이호연의 평가를 한 단계 내렸다.

마에스트로에게서 느꼈던 기분 나쁜 감정이 그대로 느껴졌다.

자신이 행동하는 이유를 다른 곳에서 찾는 것.

"내 마안은 속일 수 없다. 너도 마에스트로와 비슷한 부류의 인간이군. 어쩌면 그런 존재이기에 마안을 피하는 것인가."

마왕의 후계자로서 품위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이호연의 기세 자체는 인정할만하지만, 품위가 없다면 짐승이나 마찬가지.

아쉽게도 이호연과의 대화는 흥미롭지 못했다.

"대화는 끝이다. 마안을 피하는 이유는 천천히 알아내야겠군"

지금은 안되겠지만, 시간을 들여 연구할 수 있다면 충분히 알아낼 수 있을터.

루시퍼는 마력을 끌어올리며 이호연의 몸을 들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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