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야겜에 빙의했다-534화 (534/648)

< 534화 > 가짜 던전 (6)

- 캬르르.

- 꾸릅, 꾸르릅.

촤악-

남다은의 공간참이 다가오는 괴수의 몸을 두 동강 냈다.

중심부로 다가가는 길목에는 괴상한 지옥의 괴수들이 깔려있었다.

"와… 칼이 닿지도 않았는데 다 죽었어."

"릴리아나 씨는 자주 보셨으면서 왜 그러세요. 창피해요."

남다은은 입을 떡 벌리고 박수를 치는 릴리아나를 보며 부끄러운 듯 웃었다.

중심부로 가는 길, 벌써 몇십 마리가 넘는 괴수들을 쓰러뜨렸다.

이호연이 만들어놓은 던전의 장치 대부분은 중심부와 가까이 있었다.

당사자인 이호연은 최대한 빠른 지름길로 찾아갔지만, 레베카는 던전의 구조를 그 정도로 파악하지 못했다.

가는 길이 험난한 건 당연한 일이다.

"루시, 나 역시 무서워…."

"… 나도. 아까 그분들은 괜찮겠지?"

"거기는 교수님들이 많았으니까 괜찮을 거야."

중심부를 향하던 중 다른 구역의 사람들도 몇 번 정도 마주했는데, 다행히 문수린이 걱정하던 비전투 인원만 있는 구역은 없었다.

이것도 이호연의 설계였다.

히로인들이 모이는 구역을 제외하고는, 어느 정도 마력량이 있는 사람들을 구역마다 분배했다.

어차피 감정 증폭이 있으면 공포나 두려움같은 감정을 증폭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쿵.

- 쿵. 쿵. 쿵.

중심부에 가까워질수록 울려 퍼지는 불길한 마력에 레베카는 눈을 찌푸렸다.

"확실히… 마력 파동이 강해졌어."

소리뿐만이 아니다.

중심부에서 퍼져 나오는 기분 나쁜 마력 파동이 소리와 함께 일행을 덮치고 있었다.

피부를 아리는 마력과 소리의 간격은 점점 짧아졌고, 레베카도 더욱 조심스럽게 탐색을 이어갔다.

"레베카. 근데 중심부에 이호연이 있는 건 맞아? 갔더니 그냥 쿵쿵 소리만 나면 어떡해?"

"이곳은 자연적으로 생성된 던전이 아니라 인위적인 마법진이야. 저런 수상한 소리가 발생하는 건 이상한 일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지."

"그러니까, 결국 가능성 아니야? 만약 갔는데 이호연이 없으면?"

"…."

오늘따라 왜 이렇게 똑 부러지게 말하는 거지?

평소 같았으면 별말 없이 따라왔을 텐데.

레베카는 슬쩍 릴리아나의 얼굴을 바라봤다. 다행히 릴리아나는 단순히 말동무가 필요해서 말을 건 것뿐이었다.

표정을 보고 안심한 레베카는 달라붙는 릴리아나를 무시하며 던전 탐색을 계속했다.

사실 릴리아나의 말이 틀린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가능성이 높다 뿐이지, 중심부에 이호연이 무조건 있는 건 아니다.

레베카가 이렇게 확신하는 이유는 단 하나.

그녀가 이 마법진 설계에 관여했기 때문이다. 중심부는 던전의 모든 것을 컨트롤하는 곳이라 괴수가 없다.

그러니 중심부에서 들려오는 굉음은 이호연이 무언가를 하고 있다고 보는 게 맞다.

하지만 그런 정보를 전부 말할 순 없으니, 레베카도 적당히 변명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다행히 임솔이 실력을 보증해준 덕에 릴리아나를 제외하곤 캐묻는 사람이 없었다.

쿵-

쿠구구궁-

중심부에 다가갈수록 일행들은 말이 없어졌다.

진한 지옥의 마력때문에 온 몸에 소름이 돋기 때문이다.

이 정도의 마력이라면 굳이 보지 않더라도 알 수 있다.

중심부에 들어가는 순간 엄청난 것을 마주하게 될 거라는 걸, 여기 있는 모두가 예상하고 있었다.

"아… 엄청 오래걸린당."

단 한 명. 릴리아나만 빼고.

지옥의 마력에 익숙한 그녀는 다른 여자들보다 긴장감을 덜 느끼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던전 내부가 바깥에 있을 때보다 컨디션이 좋아졌다.

심지어 귀여운 쌍둥이와 친구까지 되었으니 릴리아나는 살짝 기쁘기도 했다.

"쌍둥아. 나랑 같이 가자."

"안돼요. 저랑 루미는 전방을 주시해야 해요."

"죄송합니다…."

"으음. 구랭. 그럼 다은이는?"

"저도 지켜야 할 자리가 있어서요. 릴리아나 씨도 자리가 있지 않아요?"

"그렇긴 하지만…."

릴리아나는 아쉬운 듯 한숨을 삼켰다.

평소에는 이 정도만 해도 남다은과 스칼렛이 릴리아나와 놀아주는데, 지금은 둘 다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그냥 징징거려볼까. 으, 그건 아닌 것 같아.'

결국 릴리아나도 고집을 꺾고 루시와 루미 뒤에서 진형을 지켰다.

아무리 눈치가 없는 릴리아나라지만 다들 험악한 분위기인 것은 읽을 수 있었다.

'공기는 좋아도 뭔가 으스스하긴 하네.'

지옥의 마력이 넘쳐나는 만큼 릴리아나에게 기분 좋은 공간이긴 하지만, 분위기 자체가 음산했다.

조심스럽게 쌍둥이의 뒤를 따르던 릴리아나는 문득 달콤한 향을 맡았다.

킁킁.

'이호연의 향기가 나는데.'

그것도 굉장히 귀여운 여자와 섞인 이호연의 냄새였다.

남다은의 것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향기.

그 주체는 쌍둥이.

깨끗이 씻어서 이호연의 향을 지워낸다고 해도, 서큐버스의 후각은 속일 수 없다.

눈앞의 쌍둥이에게는 이호연의 향기가 확실하게 풍겼다.

"오… 너희 쌍둥이는 이호연이랑 어떤 사이야? 엄청 깊은 사이인가 보네."

릴리아나는 별 생각없이 말을 던졌고.

흠칫.

긴장하며 전진하던 일행이 순간 멈췄다.

모두가 알고 있었다.

여기 있는 여자들과 이호연 사이에 썸씽이 있다는 것.

하지만 그걸 입 밖으로 꺼내는 사람은 없었다.

처음에 마구잡이로 주변을 찌르던 문수린도 중심부에 가까워짐에 따라 선두에서 긴장하며 걷고 있었다.

"… 릴리아나 님. 그 얘기는 조금 나중에 하시죠."

"그래. 릴리아나.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아."

"그런가? 그럼 나중에 물어보구."

스칼렛과 레베카가 나서서 헛소리를 하는 릴리아나를 말렸다.

설마 던전에서도 저런 태도를 구사할 줄이야.

"… 저 여자는 정말 대단하네."

"그러게. 엘리스는 저렇게 자라면 안돼."

"나는 이미 다 자랐어."

뒤에 있던 엘리스도 내심 놀랐다.

사람이 몸매는 파괴적인데 마음은 저렇게 순수할 줄이야.

아니, 멍청한 건지 순수한 건지 모르겠네.

쿵.

콰아앙-!

릴리아나의 말에 다들 긴장이 살짝 풀렸던 그 때, 엄청난 굉음이 들림과 동시에 정면에서 지옥의 마력이 폭발했다.

지금까지 흘러나오던 마력이 장난이라는 듯, 엄청난 기세로 터져나온 마력의 돌풍이 일행에게 쇄도했다.

"이런 미친… 모두 내 뒤에 숨어!"

곧바로 펼쳐지는 룬의 결계와 실드 마법진.

정면에서 가장 빠르게 반응한 레베카가 정면에서 룬의 결계를 펼쳤고, 그 뒤로 임솔의 실드가 이 중으로 겹쳐졌다.

"마력은 내가 조절할 테니 자리에 가만히 있어! 아영아. 보조해줄 수 있어?"

"으응. 해볼게."

임솔은 빠르게 마력을 펼쳤다.

레베카의 룬의 결계에 편승해 일행 전체를 막을 수 있도록 강한 형태를 구축했다.

"온다!"

타아앙-!

마력의 돌풍이 룬의 결계를 덮쳤다.

엄청난 기세로 다가온 마력이지만, 레베카와 임솔의 마력을 뚫어낼 순 없었다.

타다다당- 타다다당-

연신 결계를 때리던 마력이 끝나고, 레베카가 주변을 확인했다.

"다들 괜찮아?!"

"네. 레베카 씨랑 교수님 덕분에 살았어요."

선두에 있던 문수린은 금방 자리에서 일어나 뒤를 살폈다.

혹시나 마력에 피해를 입은 사람을 찾기 위해서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는 것 같네요.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지…?"

레베카와 임솔의 결계가 워낙 튼튼했고, 다들 실력자였으니 부상을 입은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저 정체불명의 마력은 주의할 필요가 있었다.

그때.

털썩-

"릴리아나 씨?"

"괘, 괜찮으세요?"

"릴리아나 님?"

"아, 아아… 아아아."

쌍둥이와 스칼렛의 사이에 있던 릴리아나는 몸을 비틀거리며 바닥에 무릎 꿇었다.

지옥의 마력에 노출된 이후로 다리가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머릿속을 파내는 것 같은 고통이 느껴졌다.

"릴리아나…?"

"아아아! 아, 아아. 아아아아악!"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가온 아이린의 팔을 떨쳐낸 릴리아나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바닥에 뒹굴었다.

인간 세상에서 겪어보지 못한 진한 지옥의 마력이 릴리아나의 뇌로 파고들었다.

머릿속이 찢어지는 것 같이 아팠다. 릴리아나는 어떻게든 정신을 붙잡기 위해 주먹을 꽉 쥐었다.

- 어쩔 수 없는 일이에요. 칼리오페는 서큐버스니까요. 서큐버스가 가지기에 너무나 강한 힘을 가지고 태어났어요.

그녀에게 걸려있는 금제.

자기 자신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금제가 엄청난 양의 마력에 노출되며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게다가 이 마력은 평범한 지옥의 마력이 아니었다.

최상급 악마이자 그녀의 핏줄인 루시퍼가 진심으로 뿜어내는 마력.

그것에 직접 노출되었으니, 릴리아나의 금제를 자극하기엔 충분했다.

- … 딸이 네 년의 자리를 넘볼까 겁내는 것은 아니고?

릴리아나의 기억이 뒤죽박죽이 된다.

지옥을 휘어잡던 강한 힘. 자신을 추종하던 추종자들. 눈을 마주치기만 해도 겁먹던 지옥의 괴수들. 걸어 다니기만 해도 무릎을 꿇던 주변의 마수들.

그녀의 기억에 없는 장면들이 스쳐 지나간다.

- 아무리 당신이라도 그런 말은 하지 말아 주시죠. 혈연을 소중히하는 서큐버스에게 모욕이니까요.

촤아아아악-

본 적 없는 것들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쳐갔다.

릴리아나는 온 힘을 다해 몸을 움직였다. 이 기분 나쁜 기억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눈을 떴다.

"허억…. 하아. 하아…?"

눈을 깜박거린다. 몸을 감싸던 기분 나쁜 마력이 흩어지고, 자신을 둘러싼 여자들이 보였다.

다들 걱정스러운 눈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릴리아나 님. 괜찮으십니까?"

"릴리아나 씨. 정신 차리세요."

깜박. 깜박.

양 옆에서 스칼렛과 남다은이 몸을 흔든다.

눈을 깜박인 릴리아나는 비틀비틀 몸을 일으켰다.

"금방 괜찮아질 거야. 몸에 힘 빼."

지이이잉-.

다가온 백아영의 밝은 마력이 릴리아나의 머리로 파고든다.

성녀의 능력은 정신적인 문제도 조치를 취할 수 있었다.

"… 뭐야."

릴리아나는 두통에 눈을 찌푸렸다.

기억이 흐릿하다.

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

방금까지 생생하게 보던 광경이 흐릿하게 기억에서 사라져 간다.

유일하게 남은 건 딱 하나.

릴리아나는 고개를 돌렸다.

지옥의 마력이 터져 나온 곳.

그곳에서 익숙한 기운이 느껴진다.

"루시퍼."

"응? 릴리아나. 무슨 소리야?"

릴리아나는 몸을 일으켰다.

몸이 날아갈 것 같이 가벼웠다.

이 공간 자체가 릴리아나가 활동하기 좋다고 해도, 이상할 정도로 강해졌다.

"저기, 치료는…."

릴리아나의 감각이 열린다.

그녀의 금제는 완벽하게 풀리지 않았다.

하지만 단단했던 자물쇠는 충분히 헐렁해졌고, 릴리아나의 안에 잠들어있던 마력이 깨어났다.

"중심부에 루시퍼가 있어. 가자. 레베카. 전투 준비해."

"저기, 릴리아나? 릴리아나!"

날카로워진 감각은 순식간에 적을 파악했다.

릴리아나는 앞장서서 뛰기 시작했다.

그 뒤를 급하게 따라간 레베카는 릴리아나를 보며 침을 삼켰다.

'… 뭐지?'

분명 겉모습은 똑같았다. 하지만 저 자신감 있는 걸음은 뭘까.

레베카는 릴리아나의 뒤에서 마법진을 열기 시작했다.

릴리아나의 손이 닿는 곳마다 마법진이 자동으로 역산되었고, 그 능력을 본 여자들의 눈이 다시 한번 커졌다.

"… 여기야. 레베카."

릴리아나는 순식간에 마법진의 틈을 열었다.

중심부로 통하는 지름길.

이호연이 걸어간 길을 릴리아나가 직접 개방했다.

촤악-

릴리아나는 어두컴컴한 중심부로 통하는 길을 열어젖혔다.

온몸을 통과하는 지옥의 마력에 몸이 저릴 정도였는데, 중심부의 한가운데에는 두 개의 인영이 서있었다.

"저건…."

한 명은 검은 턱시도를 입은 남자.

머리에 솟아난 산양의 뿔과 위로 솟아있는 탐스러운 날개.

우락부락해진 몸과 곳곳에 흐르는 지옥의 마력까지.

보기만 해도 공포에 사로잡힐 것 같은 외형이었다.

그리고 그런 루시퍼에게 목을 잡힌 채 공중에 떠있는 붉은 피에 범벅이 된 인간 한 명.

신체의 대부분이 피에 가려져 있었지만, 레베카는 그 사람을 곧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 애기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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