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야겜에 빙의했다-531화 (531/648)

< 531화 > 가짜 던전 (3)

'… 갑자기 왜 지랄이야.'

이호연이 가진 감정이 강렬하게 흔들린다.

'뚜렷한 정신력'을 가진 이호연이지만, 섹스를 할 때나 여자와 관련된 사안에는 자주 당황하곤 한다.

이건 특전이고 뭐고, 이호연이라는 주인공이 가진 선천적 문제다.

애초에 싸움 도중에 갑자기 저런 말을 하는 이유는 뭐지?

"너 정도의 강함을 가진 인간이 싸움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를 이제야 알겠군. 마법진으로 한 곳에 모아놓은 그 여자들 때문인가?"

"개소리하지 말고 덤비지 그래?"

"재미있어. 이호연. 겨우 암컷 때문에 목숨을 걸다니, 너 또한 인간이구나."

지옥의 마수 중에도 여성체를 밝히는 종은 분명 존재하지만, 루시퍼는 이호연의 생각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지옥에서 모든 것의 기준은 힘이다.

친구? 우정? 여자?

그런 건 결국 강한 자가 차지한다.

지옥이 아니라 인간 세상도 마찬가지다.

루시퍼는 그런 것들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지만,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가질 수 있다.

결국 압도적인 힘 앞에서는 하등 쓸모없는 것들이다.

다른 사람을 위해 목숨을 거는 건 멍청한 행동이다.

'그러나 저 행동은 멍청하다는 말로도 설명이 되지 않는군.'

그 인간 암컷들을 위해 이호연이 희생하는 거라면, 어떻게든 납득할 수 있다.

그런 멍청한 죽음은 수도없이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이호연이 하는 행동은 희생이 아니라 낭비다.

루시퍼는 이호연을 생포한 뒤에 미련 없이 던전을 떠날 것이다.

남은 인간들이 어떻게 되든 그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 암컷들에게 특별한 점이 있는 건가?'

인간 중 루시퍼의 흥미를 끌었던 인간이 없는 건 아니다.

인간 세상에 떨어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릴리아나 칼리오페를 찾으러 다니던 때.

괜찮은 인간 무리가 있었다.

자신에게 상처를 입혔던 인간과 그 주변에서 같이 싸우던 인간들.

모두 인간의 여성체였다.

"호오…. 익숙한 마력이 있었구나. 어째서 이걸 눈치채지 못했지?"

루시퍼는 마법진에 새겨진 공간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마법진을 완벽하게 장악한 루시퍼였기에 금방 그 공간을 파악할 수 있었다.

치유 공간 이상으로 강력하게 보호되고 있으면서, 특수한 마력 패턴을 가진 인간이 들어왔을 때 한 곳으로 몰아넣는 장치가 되어 있다.

"이건 꽤 흥미롭군."

가짜 던전 내부를 확인한 루시퍼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호연에게 모든 신경을 쏟고 있어서 눈치채지 못했다.

아니, 사실은 저 공간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설마 저곳에 릴리아나가 있다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으니까.

"릴리아나 칼리오페가 마법진 내부에 있을 줄이야. 이것 또한 이호연 너의 계획인가?"

"…."

왜 저런 소리를 하나 했더니, 진짜 호기심이었던 모양이다.

놈에게 정보를 줄 필요는 없다.이호연은 대답 대신 마력을 끌어올렸다.

번개를 불꽃처럼 쏘아 올리고, 바람을 만들며 공기의 흐름을 바꿨다.

"지옥에서 태어났다면 모든 서큐버스를 홀릴만한 얼굴인데, 인간으로 태어난 게 너의 유일한 오점이구나."

"조용히 좀 하지? 쓸데없는 말을 하는 거 보니 후달리나봐?"

"아니. 너라는 인간에 대한 호기심일 뿐이다. 궁금한 게 많지만, 대화의 장을 만들고 천천히 묻도록 하지."

루시퍼의 주변으로 어두운 마력이 진동한다.

마력을 움직인 루시퍼는 이호연이 만들어낸 바람을 자연스럽게 막아냈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도 좋다. 잔재주는 얼마든지 받아줄 수 있으니까."

"하."

혀를 찬 이호연은 바람을 거두고 곧바로 다른 마법을 사용했다.

자신의 주변에 마천궁 전개에는 성공했지만, 이 공간 전체를 주무르는 루시퍼에게 저런 마법으로는 대응하기 힘들었다.

'거리를 좁힐 수가 없어.'

한 번 허를 찔린 탓일까.

루시퍼는 이호연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덕분에 아까 같은 요행은 할 수가 없다.

'아니, 거리를 좁힌다고 이길 수 있는 건가?'

시야각 밖에서 들어간 스파이럴이 통하지 않았다.

루시퍼의 반응 속도는 이호연의 상상 이상이었다.

촤아악-

이호연은 자신을 노리는 루시퍼의 마력 칼날을 피해냈다.

칼날 하나하나에 담긴 파괴력은 이호연의 몸을 갈기갈기 찢을 정도였다.

'한 번 뚫어내야 해.'

연달아 날아오는 공격을 피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점점 구석으로 몰리고 있었다.

구석으로 몰리면 사방에서 날아오는 마력포를 피하기 힘들어진다.

이호연은 회피를 포기하고 룬의 결계를 3겹으로 둘렀다.

"지금."

급소를 노리는 칼날과 마력포를 뚫고 나감과 동시에 가속.

이호연은 루시퍼를 향해 돌진했다.

까드득-!

'크리스탈 필드.'

동시에, 이호연의 등 뒤에 숨어있던 아크에서 차가운 냉기가 피어올랐다.

몸에 스치기만 해도 얼어붙는 극저온의 냉기가 루시퍼의 발을 묶었다.

"호오."

화아악-

하지만, 루시퍼의 날개가 한 번 펄럭이는 것 만으로 이호연은 뒤로 물러나야 했다.

어둠을 뒤흔드는 충격파는 크리스탈 필드를 날려버리는 것으로도 모자라 가속한 이호연의 몸까지 뒤로 밀려나게 만들었다.

"하아. 하아…."

"겨우 그 정도밖에 보여주지 못하는 건가?"

이호연은 루시퍼의 말을 무시하며 몸을 흐르는 마력을 체크했다.

'슬슬 몸에 부담이 느껴져.'

마천궁과 블러드 비트.

둘 다 이호연의 마력에 개입하는 마법과 스킬이다.

이미 한계는 벗어난 지 오래.

높은 치유력으로 조금씩 치유하고는 있지만, 몸이 갉아먹히는 건 막을 수 없다.

이제부터는 정신력으로 버텨야 한다.

"너의 호기심을 채워주지. 지옥의 마수를 잘 아는 것 같던데, 네가 모르는 종류도 많이 있을 거다."

미소를 짓는 루시퍼의 등 뒤로 수 백개의 검은 점이 나타난다.

자그마한 점은 점점 커졌고, 하나하나가 지옥의 마수로 변했다.

- 크에에엑!

- 크르, 크르릉!

- 꾸으급. 꾸에엑.

루시퍼의 마력에서 태어난 수 백 마리의 지옥의 마수가 이호연을 향해 돌진한다.

지옥의 마수는 원작에서 나온 적이 있다. 마왕의 패턴 중에 지옥의 마수를 소환하는 패턴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에 대한 정보는 당연히 이호연의 머릿속에 들어있었다.

파지직-

이호연의 몸을 중심으로 마력이 진동하기 시작한다.

만들어내는 것은 번개. 저 많은 물량을 상대하려면 최대한 효율적인 전투를 해야 한다.

금색의 눈이 빛난다. 사고를 가속한다.

이호연은 마법을 뽑아내면서도 연산을 멈추지않았다.

마수들의 속도와 힘에 대비한다.

가장 효율적인 이동 경로와 공격 루트를 계산한다.

꽈드드득-

번개로 만들어진 칼날이 가장 앞에서 달려오는 마수의 머리를 두 동강 낸다.

마수들은 단순히 돌진하는 게 아니다. 각자 생각을 가진 독립적인 개체다.

그래서 더욱 정신력의 소모가 심했다.

'이렇게 소모전으로 가면 안 좋은데….'

하나. 둘. 셋. 넷. 다섯….

아무리 세어도 끝이 없이 다가오는 마수의 머리를 분쇄하고, 아크로 번개를 컨트롤하며 뒤에 있는 마수들의 심장을 꿰뚫는다.

자신의 목숨을 집요하게 노려오는 마수의 이빨을 피하며 빈 틈을 파고든다.

거대한 가짜 던전 마법진에서 마력을 제공받는 루시퍼와 다르게 이호연이 가진 마나는 한정적이다.

극한에 다다른 마나 컨트롤은 소량의 마력으로도 마수들을 죽여나갔지만, 오래 시간을 끌 수록 불리해지는 것은 결국 이호연이다.

화르륵-

"끄아아아!"

이를 악 문 이호연은 지끈거리는 두통을 참아내며 마력을 내뿜었다.

날카로운 마력 칼날로 마수의 머리를 베어내고 아크로 번개를 컨트롤하는 와중에도 더블 캐스팅을 멈추지 않았다.

이클립스.

거대한 검은 태양에서 쏟아지는 빛이 중심부를 비춘다.

어마어마한 마나를 쏟아부은 만큼, 검은 태양은 마수들을 집어삼키며 루시퍼에게 떨어졌다

여유로운 표정을 짓던 루시퍼는 순식간에 다가온 검은 태양에 흠칫하며 뒤로 물러났지만, 루시퍼의 주변을 감싸던 마력까지 집어삼킨 이클립스는 결국 루시퍼에게 도달했다.

"크윽…!"

루시퍼는 짧은 신음을 뱉으며 뒤로 물러났다.

강한 신체를 가진 루시퍼라도 저런 고위 마법을 제대로 맞으면 무사하지 못한다.

최대한 빠르게 후퇴했지만, 이번에는 대처가 느렸다.

설마 몇 백 마리의 마수와 전투를 이어가며 저런 거대한 마법을 준비할 줄이야.

치이익-

"…."

루시퍼는 반 정도 타버린 오른팔과 왼 팔을 보며 입을 다물었다.

느껴지는 것은 놀라움과 분노.

루시퍼가 인간 세상에서 상처를 입은 게 처음은 아니다.

릴리아나 칼리오페와 만났을 때도 인간에게 상처를 입었던 적이 있다.

하지만 그때의 루시퍼는 변명할 거리가 많았다.

인간 세상에서 눈을 뜬 지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었고, 방심을 했으며, 만전의 상태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물론 이호연을 생포하는 게 목적이니 전력을 다하진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방심을 하지도 않았다.

"이호연…."

이호연은 마법사다.

그렇기에 같은 마법으로 짓밟고 싶었다.

그것이 마왕의 후계자로서 품위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 꾸물꾸물

반 정도 떨어져 나간 팔을 검은 마력이 채우기 시작한다.

루시퍼는 이호연에게 차가운 시선을 보냈다.

저 인간은 아직도 자신의 빈틈을 찾으려 하고 있었다.

'예상외로 시간이 지체되고 있다.'

지옥의 마수 군대를 소환하는 마법은 엄청난 마력이 드는 마법이다.

가짜 던전 마법진의 지원이 없었다면 루시퍼에게도 큰 부담이었을 터.

자신의 역량 이상의 마법을 사용해놓고 이호연에게 상처를 입었다는 것이, 루시퍼를 분노하게 만들었다.

만약 가짜 던전 마법진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면.

이호연이 직접 만든 이 마법진이 없었다면.

마법사 대 마법사의 전투에서 자신이 압도당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루시퍼의 머리를 스쳤다.

"… 기분 나쁘군. 이런 감정을 느껴본 게 얼마만인 지 모르겠어."

펄럭-

루시퍼는 거대한 날개를 펼쳤다.

몸을 사용하는 건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마왕의 후계자로서 품위가 떨어지는 행동이기도 하고, 상대가 마법사라면 마법만 사용하는 게 루시퍼의 자신감 표출이었다.

그리고 오늘 그 자신감이 깨졌다.

"마법으로 제압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부족하군. 인간 세상에서 내 몸을 사용한 적은 사냥을 할 때뿐이었으니 자신감을 가져도 좋다."

"… 지랄을 해라. 진짜."

이호연은 루시퍼가 뿜어내는 마력의 충격파를 피하기 위해 몸에 룬의 결계를 둘렀다.

지옥의 포식자가 펼치는 마력의 폭풍.

단순히 날개를 펼친 것 만으로 공간이 한층 무거워졌다.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루시퍼의 마력이 룬의 결계에 부딪히며 갈라졌다.

'저게 최종 진화체야?'

이호연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겨우 날개를 펼친 것 만으로 이 정도의 부담감이 늘어나다니.

정체가 뭐냐고.

우득- 우드득-

루시퍼는 몸 내부의 균형을 맞추는 듯 목을 비틀고, 어깨를 붕붕 돌렸다.

마치 격투기 선수라도 되는 것 같은 모습에 이호연은 침을 삼켰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루시퍼가 이호연의 시선에서 벗어났다.

파아앙-

루시퍼를 놓침과 동시에 둔탁한 질량의 공격이 자신의 몸을 강타했다.

자신이 무언가에 맞았다는 걸 인지한 순간. 이호연의 몸은 벽에 처박혀있었다.

"커헉…!"

중심부의 벽에 처박힌 이호연은 눈앞이 하얘졌다.

뱃속에서 올라오는 붉은 피를 그대로 바닥에 뱉어냈다.

눈앞에 있던 루시퍼는 어느새 원래 있던 자리에 고고히 서있었다.

"지금이라도 포기하는 걸 권하지. 이호연. 너의 실력에는 경의를 표하마. 나를 이렇게 즐겁게 만들어 준 것은 릴리아나를 제외하고 너뿐이다."

"… 좆까."

스륵-

이호연은 피가 흘러내리는 턱을 닦아냈다.

방금 공격은 꽤 아팠다.

사실 아직 뭐에 맞은 건 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아마도 주먹이겠지.

이호연은 자신의 상태를 확인했다.

뼈가 몇 군데 부러진 것 같고, 내장에도 충격이 심했다.

룬의 결계가 없었다면 비유가 아니라 정말 가루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쓰러질 순 없었다.

'… 이제부터 안 맞으면 그만이야.'

두근. 두근.

전투 감각과 뚜렷한 정신력이 극한의 상황에서도 정신을 붙잡을 수 있게 만들었다.

높은 자연 치유력은 몸이 붕괴되는 와중에도 꾸역꾸역 버티게 했다.

이호연은 자세를 바로잡고, 뻐근한 몸을 억지로 움직이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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