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야겜에 빙의했다-530화 (530/648)

< 530화 > 가짜 던전 (2)

가짜 던전 중심부의 공간이 요동친다.

현재 마법진의 주인은 루시퍼이기 때문에 내부의 마력을 컨트롤 하는 것도 루시퍼다.

타아앙- 지옥의 마력이 폭발하며 루시퍼의 진한 악의와 살의가 이호연의 몸을 강타했다.

루시퍼의 두 눈은 붉게 빛나고, 거대한 검은 날개가 펼쳐진다.

"인간 세상에서 이런 모습을 보여줄 줄이야. 인간 중에서 내 뿔과 날개를 본 인간은 없었으니, 영광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루시퍼는 가짜 던전 마법진에 넘치는 지옥의 마력을 중심부로 모았다.

미쳐버린 악마가 내뿜는 살기를 느낀 이호연은 다시 한번 자신과 루시퍼의 격차를 뼈저리게 실감했다.

임솔을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모든 부분에서 압도당하는 감각과는 조금 달랐다.

강아지가 처음 호랑이를 만났을 때처럼.

아예 다른 종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이다.

"마천궁 전개."

이호연은 마천궁을 전개하며 사방을 압박하는 지옥의 마력을 떨쳐냈다.

진심을 다해야 하는 자신과 다르게 눈앞의 루시퍼에게는 여유까지 느껴졌다.

이런 환경에서 자신이 지는 걸 상상할 수 없겠지.

'… 이런 싸움은 오랜만이네.'

서로의 목숨을 걸고 임하는 전투.

그나마 임솔과의 대련에서 최대한의 진심을 뽑아냈지만, 실제로 목숨을 걸진 않았다.

지옥에서부터 매일같이 사선을 넘어오던 루시퍼와는 경험부터가 달랐다.

두근. 두근.

하지만, 이호연의 몸은 매일 목숨을 건 사투를 뛰어넘은 검투사처럼 전투태세를 갖췄다.

이호연이 가진 [전투 감각]은 루시퍼에게서 풀풀 풍겨 나오는 살기를 버틸 수 있게 만들어줬다.

"본 적이 있는 마법이다. 이 환경에서도 쓸 수 있는 건 놀랍지만, 나를 너무 우습게 보고 있구나. "

루시퍼는 이호연의 마력을 본 적이 있다.

전혀 꿰뚫어 볼 수 없는 신기한 마력이지만, 지금처럼 지옥과 가까운 환경에서 자신과 영역을 다투는 건 오만 그 자체.

파아앙-

루시퍼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지옥의 마력이 점점 늘어난다.

일대를 감싸는 마력의 폭풍.

불길함이 가득 찬 마력은 공간 내부를 진동시키며 이호연을 압박했다.

"이곳은 나 루시퍼의 영역이다. 최근 몇십 년간 내 영역을 침범한 자 중 살아남은 자가 없었으니, 너는 운이 좋군."

"지랄하네 진짜."

운이 좋니 영광이니 자존심이 더럽게 쎈 자식이다.

미친 듯이 휘몰아치는 바람에 얼굴을 가린 이호연은 주변의 마력을 확인했다.

이호연의 필살기인 마천궁이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루시퍼의 마력이 마법진 자체의 보조를 받아 너무나 강하기 때문이다.

이호연은 몇십 미터 떨어진 곳에 서있는 루시퍼를 쏘아보며 이를 악 물었다.

절대 이길 수 없을 거라고 생각되는 강적을 상대할 때는 자신이 상대보다 우위에 설 수 있는 점을 찾아야 한다.

대표적으로 힘, 스피드, 수 싸움.

그 외에 다른 요소들까지.

'영역을 잡지 못하면 승산이 없어.'

던전 내부는 이미 루시퍼의 지옥의 마력으로 가득 차 있다.

이런 환경에서 전투를 이어나가는 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

무슨 짓을 해서라도 마천궁을 전개해야한다.

이호연은 다시 한번 마력을 끌어올렸다.

"… 마천궁 전개."

두근. 두근. 두근.

이호연의 몸 주변에 일렁거리는 푸른 마력이 남색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퍼져나가는 마천궁의 파장이 주변 공간을 장악하기 시작한다.

임솔과 대련에서 사용했던 지옥의 마력을 섞은 마천궁.

주변 마력에 지배력을 행사하는 마천궁은 루시퍼의 마력에 대응하며 이호연의 영역을 구축했다.

"호오…."

루시퍼는 지옥의 마력을 익숙하게 다루는 이호연을 보며 눈을 크게 떴다.

인간이라고 무시할 정도의 마력이 아니었다.

게다가 자신의 마력이 산재해있는 이곳에서 저 정도의 마법을 보여주는 걸 보면, 이호연의 실력은 루시퍼의 생각보다 한참 위라고 봐도 무방하다.

"얼마나 날 재미있게 해 줄지 기대되는구나."

루시퍼는 이호연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 앞으로 모이는 칠흑의 마력이 점점 덩치를 키운다.

단순한 마력포였지만, 거기에 담긴 기세는 너무나 강렬했다.

"…."

이호연은 루시퍼의 손에서 모이는 마력포를 보고 곧바로 아크를 띄웠다.

몸 주변에서 돌아가는 3개의 마력구는 동시에 이호연이 사용할 수 있는 마법 중 가장 강한 마법을 그려냈다.

'이클립스.'

마력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른다.

3개의 아크에서 그려내는 검게 물든 태양.

이호연은 등 뒤에 아크를 띄우고도 연산을 이어갔다.

금색의 눈을 빛내며 루시퍼가 쏘아낼 마력포의 궤도를 계산한다.

루시퍼와 자신의 거리는 몇십 미터 남짓.

가속을 사용한다면 순식간에 달라붙을 수 있는 거리였다.

'첫 공격에 최대한 많은 피해를 입혀야 해.'

언제나 그렇듯 상대가 방심한 타이밍이 가장 큰 기회다.

이호연은 루시퍼의 능력을 알고 있지만, 루시퍼는 이호연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 빈틈을 노려야한다.

아무리 루시퍼가 튼튼하다고 해도 근거리에서 스파이럴을 맞고 버틸 순 없을 거다.

"과연. 화력으로 덤빌 생각을 하는 건가. 가진 능력이 뛰어난 건 알겠지만, 인간 세상의 우물에 갇혀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는군."

저 검은 태양에 담긴 마력이 엄청나긴 했지만, 루시퍼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루시퍼는 평온한 표정으로 손을 털어냈다.

손 앞에 모여있던 마력포가 이호연을 향해 일직선으로 쏘아졌다.

콰아앙-

한 줄기였던 마력포는 갑자기 세 갈래로 나뉘어 이호연에게 쇄도했다.

공간을 진동시키는 거대한 위력에 이호연도 침을 삼켰다.

반응은 빨랐다.

마력포가 3갈래로 나뉘는 건 알고 있었다.

3개의 아크에서 만들어낸 작은 이클립스가 각각의 마력포에 대응한다.

루시퍼의 마력과 충돌한 이클립스가 산산조각 나고, 떨어지는 파편을 룬의 결계로 막아낸다.

여기까지 전부 예상 범위 안.

마력포를 돌파한 이호연은 몸을 가속했다.

성장한 이호연의 마력과 마천궁.

그리고 블러드 비트까지 곁들인 가속은 이전까지 가속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순식간에 엄청난 속도를 증폭한 이호연은 흐릿한 잔상을 남기며 루시퍼의 측면에 도달했다.

파지지직-

동시에 손에 만들어지는 스파이럴.

스치기만 해도 치명상을 만들어낼 뇌전이 이호연의 손에서 요동친다.

"… 음?"

아직 이호연을 발견하지 못한 루시퍼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이호연의 스파이럴이 루시퍼에게 충돌했다.

꽈지지지지직-!

불길한 마력을 집어삼키는 스파이럴이 빠르게 회전했고, 이호연도 그 반발을 이기지 못해 멀리 튕겨 나왔다.

"큽…!"

콰아앙!

거대한 폭발에 휩쓸린 이호연이 눈을 감았다.

루시퍼의 마력과 충돌한 스파이럴은 엄청난 굉음을 내며 사라졌다.

잠시 후, 시야가 회복된 뒤 정면을 바라본 이호연은 연기 속에서 움직이는 인영을 발견했다.

"… 공간을 가속하는 기술인가? 꽤 흥미로운 마법을 사용하는구나."

탁- 탁-

턱시도에 묻은 먼지를 털어낸 루시퍼는 연기 밖으로 태연하게 걸어 나왔다.

그리고 조금도 놀라지 않은 듯 이호연을 내려다봤다.

루시퍼의 마안은 어디까지나 그의 신체의 일부다.

그의 타고난 반사신경과 육체 능력은 비록 이호연의 마력을 읽을 수 없더라도 위험한 상황을 빠르게 대처할 수 있다.

"… 미친 괴물 새끼."

이호연은 표정을 바꾸진 않았지만, 참담한 심정을 느끼고 있었다.

분명 스파이럴은 제대로 들어갔다. 손 끝에 느껴지는 감촉을 이호연은 확실히 감지했다.

'근데 상처가 하나도 없다고?'

아마도 루시퍼는 그 짧은 시간에 무언가 대응을 한 모양이다.

가장 큰 기회를 놓쳤으니, 앞으로 전투가 더 어려워질 것은 자명한 일.

"강하구나."

한편, 루시퍼는 아직 미소를 지었다.

실로 믿어지지 않는 강함이다.

일개 인간이 자신과 합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루시퍼의 흥미가 폭발했다.

"너는 확실히 인간이라는 종을 아득히 뛰어넘었어. 마왕의 정식 후계자인 나. 루시퍼가 인정 하마."

"인정이고 영광이고 그만 좀 해라. 짜증나니까."

지옥 놈들은 전부 이상했는데, 루시퍼도 역시 정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무모해. 그런 방식으로 싸워서는 날 이길 수 없다."

"닥쳐."

이호연의 강함은 인정한다.

이제 루시퍼는 이호연을 다른 인간과 아예 다른 종으로 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 싸움이 성립되는 것은 이호연의 강함보다는 루시퍼의 손대중 덕분이었다.

그를 생포하려는 생각을 버리고 전력을 다한다면 언제라도 압살 할 수 있다.

루시퍼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고, 심지어 이호연도 알고 있었다.

"그 정도로 강한 존재라면 너도 느끼고 있겠지. 내가 너보다 강하고, 넌 나보다 약하다. 내가 너에게 죽을 가능성은 미약하다. 그런데 왜 싸움을 포기하지 않는 거지?"

"… 닥치라고 했지. 나도 너 같은 새끼들하고 싸우기 싫어 이 개새끼야."

누가 좋아서 목숨을 거는 줄 아는 건가?

자신의 목숨을 걸고 싸우는 걸 즐기는 미친놈은 마인이나 지옥에 사는 놈들 뿐이다.

누구보다 평범한 인간 이호연은 절대 그런 이상한 생각을 가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 쪽에도 지켜야 할 것이 있고, 사정이 있다.

가장 가까운 건 사랑하는 여자들.

그리고 이호연 때문에 던전에 갇힌 사람들.

넓게는 이 세상 전부까지.

모든 것이 이호연의 어깨에 달려있다.

어깨가 무거운 만큼 해야 할 일이 많다는 뜻이다.

"나도 책임져야 할 게 많거든…. 내가 싼 똥은 내가 치워야지."

이럴 줄 알았으면 가짜 던전 마법진 같은 건 처음부터 안 만들었을텐데.

이호연은 몸을 바로 세우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어차피 상대가 자신보다 약했던 적은 거의 없다.

이호연이 할 일은 언제나 똑같다.

끝까지 빈 틈을 물고 늘어져 상대를 죽여버리는 것.

그러니 절대 포기할 수 없다.

"호오…."

붉게 빛나는 루시퍼의 마안과 대비되는 금안이 루시퍼의 마력을 훑는다.

루시퍼는 전의를 불태우는 이호연을 보며 궁금증을 느꼈다.

이호연은 인간 세상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강한 인간이고, 그 중에서도 단신으로 루시퍼에게 대항할 수 있는 건 이호연 혼자 뿐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런데도 저 인간을 간절하게 만드는 원인이 뭘까.

'가짜 던전 마법진.'

아마 이곳에 비밀이 있을 터.

루시퍼는 다시 한번 마법진을 되돌아봤다.

"가두어져 있는 인간들을 위해서인가?"

첫 번째 후보는 인간.

루시퍼는 이해할 수 없지만, 같은 종으로서 동정심을 느끼는 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상한 점은 이 마법진의 주인이 이호연이라는 것.

저 인간들은 원래부터 갇혀있어야 할 운명이다.

'아니야. 이호연을 저렇게 간절하게 만드는 원인은….'

루시퍼는 마법진에서 의문을 느꼈던 점을 떠올렸다.

어느 한 곳.

치유 공간만큼이나 공 들여 만들어진 구역이 있었다.

"그래. 한 곳에 모아놓았던 특별한 인간들이 있었지. 그 인간들이 목표였구나."

"…."

이호연의 마음이 움직인다.

보이지 않던 감정이 새어 나온다.

그의 마안이 다시 이호연의 감정을 읽어냈다.

루시퍼는 이호연의 반응을 보며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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