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야겜에 빙의했다-529화 (529/648)

< 529화 > 가짜 던전 (1)

가짜 던전 마법진의 중심부.

검은 공간 한가운데에 한 남자가 서있었다.

항상 숨기고 다녔던 뿔과 검은 날개가 드러났다.

가짜 던전 마법진은 루시퍼의 능력으로도 꽤 부담되는 마법진이었으니 전력을 발휘해야 했다.

"이런 대규모 마법을 만들어낼 수 있다니… 정말 인간이 맞는지도 의문이군."

루시퍼는 사람들이 픽픽 쓰러지는 걸 바라보며 지루한 표정을 지었다.

가짜 던전의 중심부에서는 던전 전체를 통솔하고 확인할 수 있다.

마법진을 탈취하자마자 자연스럽게 알게된 정보다.

"아직 부족한가, 세부 조정이 필요하군. 어느 정도 익숙해질 필요가 있어."

스윽-

루시퍼는 자연스럽게 손 끝으로 마법진을 조정했다.

지옥에서도 본 적 없는 최상급 마법진이지만, 이 던전은 이상하게도 지옥의 마력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루시퍼에게 익숙한 마력이다.

"굉장히 이질적인 마법이야. 무엇이 목적인 지 모르겠어."

이 마법진은 범위에 들어온 생명체를 교묘하게 만들어진 던전에 빠뜨린다.

던전은 굉장히 견고하고,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기에 바깥에서 역산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루시퍼로서는 이런 엄청난 마법을 어디에 사용하려고 했는 지 이해할 수 없었다.

"게다가 너무나 친절하군."

사람을 죽이는 게 목적이라면 어떻게든 이해할 수 있다.

비효율적이라도 살인자의 취향이 독특하다고 생각하면 되니까.

하지만 이 던전은 살상력이 없었다.

마수들은 공격성이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고,

던전 안에 있는 인간이 중상을 당하거나 죽음에 가까워지면 정신을 잃고 치유 마법이 깔려있는 특수한 공간으로 격리된다.

그야말로 비효율의 극치.

손볼 곳이 한 두 개가 아니었다.

루시퍼의 손에서 불길한 마력이 새어 나온다.

던전에 새로운 마력을 입히기 시작한다.

친절한 치유 공간을 폐쇄하고, 지옥의 마수들의 공격성을 증가시킨다.

동시에 이호연의 위치를 파악한다.

"… 치유 공간에 프로텍터가 걸려있는 건가? 정말 이상한 인간이야. 아니, 역시 인간이 아닌 건가?"

마수들의 호전성을 강하게 만든 루시퍼는 던전의 위험성을 늘리며 이호연의 위치를 파악했다.

그의 마력은 당연히 외우고 있었으니 금방 찾아낼 수 있었다.

"음?"

다른 인간들이 서로 뭉쳐서 상황을 파악하는 동안.

빠르게 중심부로 다가오는 한 점이 있었다.

"언제나 특출난 인간이구나. 내가 여기 있다는 걸 파악하고 있어."

이호연.

그의 마력이 이 쪽으로 다가오고 있다.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겠군."

이 던전을 빼앗은 이유는 인간따위를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다.

제 1 목표는 이호연의 생포.

루시퍼는 던전을 컨트롤하는 마력을 잠시 멈추고, 중심부의 안 쪽으로 걸어갔다.

*

'가속.'

몸을 가득 채우고 남은 마력이 외부에도 맴돈다.

이호연은 가속까지 사용하면서 중심부로 달려갔다.

두근. 두근.

점점 빠르게 뛰는 심장이 중심부에 가까워지는 걸 알게 했다.

길이 뒤틀리고 복잡해졌지만, 기본적으로 지도를 기억하고 있었기에 금방 찾아올 수 있었다.

지잉-

덜컥.

특정한 선을 넘자마자, 순간적으로 머리가 지끈거리며 주변이 뒤틀렸다.

자신이 제대로 땅을 밟고 서있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이호연은 마력을 일으키며 정신을 각성했다.

"…."

어릴 적, 아무 이유 없이 뱅뱅 돌다가 멈췄을 때 같았다. 이호연은 어지러움이 가시지 않은 머리를 좌우로 흔들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어두운 공간이 펼쳐진다.

이호연이 직접 설정한 가짜 던전의 중심부.

그곳에는 검은 턱시도를 입은 채 이 쪽을 바라보는 남자가 서있었다.

머리 위로 뻗어있는 산양의 뿔. 뛰어난 화가가 불길함을 표현한 것 같은 날카로운 눈매.

모든 걸 통달한 것처럼 깊은 눈빛. 탄탄한 몸과 흘러넘치는 마력.

루시퍼가 이호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초대하지 않은 손님이 찾아왔군."

"… 초대하지 않은 손님은 너겠지. 새끼야."

루시퍼는 이호연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귀에 강하게 꽂히는 낮은 목소리.

이호연은 눈을 찌푸린 채 루시퍼를 노려봤다.

두근. 두근. 두근.

가만히 서있는 것만으로도 느껴지는 강렬한 존재감.

전투 감각이 몸을 휘감는다.

포식자를 만난 초식동물이 된 것처럼 오금이 떨리고, 온몸이 도망치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다.

"… 씨발."

이호연은 그대로 살려달라고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고 싶은 감각을 느꼈다.

이대로 정신을 잃어버리면 마음 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상대는 마왕이야. 강한 게 당연하지.'

원작 최고의 보스.

지옥의 최강자이자 온갖 괴상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괴물.

이호연은 표정을 관리하며 입을 열었다.

"… 대체 어떻게 마법진을 어떻게 장악한 거냐? 분명 아무런 흔적도 없었는데."

"내 마안은 사물을 관측할 뿐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인간의 마법진 치고 뛰어나긴 했지만, 내 마안을 피할 순 없었지."

"지랄하네 진짜."

"마법진을 장악한 이유는 궁금하지 않은 건가?"

"닥쳐."

이호연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어디선가 스트레스를 받을 때 욕을 하면 스트레스 해소 효과가 있다는 연구를 본 적이 있다.

'틀린 말은 아니네.'

마음으로는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지만, 욕지거리를 뱉으면 조금이나마 나아진다.

루시퍼가 마법진을 장악한 이유는 당연히 이호연 본인이다.

그걸 알기에 이렇게 달려온 것이다.

이호연은 몸에 마력을 둘렀다.

루시퍼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무형의 압력을 막아내기 위해서였다.

"우리가 친분을 나누었던 기억은 없는데, 네 반응은 마치 나를 잘 아는 것 같군."

"… 주워들은 게 많거든."

"그렇다면 어디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까. 나는 너라는 인간에게 많은 기대와 흥미를 갖고 있었다. 이호연."

루시퍼의 마안이 붉게 빛났다.

목표는 이호연이었지만, 결과는 역시나 뿌옇다.

저 인간의 힘, 마력 패턴, 능력. 그 어떤 것도 꿰뚫을 수 없었다.

"실제로 마주하니 더욱 놀라워. 내 마안을 피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인간 주제에 이런 재능과 능력을 가지고 있다니. 축복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

이호연은 조용히 루시퍼의 말을 들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건 모두 중요한 정보가 될 수 있었다.

흥미로운 표정으로 이호연을 바라보던 루시퍼는 표정을 굳히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너의 감정이 보이는구나."

"… 뭐?"

루시퍼에게 마안이 통하지 않는 것은 벽이나 마찬가지였다.

지옥의 마왕성을 두르고 있는 마력이 그러했고, 인간 세상에서도 그랬다.

마왕을 소환하려는 마에스트로의 힘. 그리고 이호연까지.

그 중에서도 이호연은 특별했다.

힘의 일부만 가려지는 마에스트로와 다르게 모든 힘이 가려지고, 인간으로서 가진 감정도 흐릿하게 보일 뿐 대부분 가려졌다.

한 때는 이호연도 초월적인 존재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이호연은 무슨 이유인 지 몰라도 예전보다 조금 더 뚜렷하게 감정을 볼 수 있었다.

"내가 두렵나?"

"…."

"지금 너의 감정은 그렇게 보인다. 당장이라도 꼴사납게 도망치고 싶은 걸 필사적으로 숨기고 있어."

그가 인간으로서 가진 감정들이 루시퍼에게 쏟아진다.

공포. 두려움. 불길함.

여러 부정적인 감정이 느껴진다.

그가 초월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건 알겠지만, 이상한 점은 놀라는 감정이 추가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의 감정을 낱낱이 들켰는데도 이호연은 루시퍼의 마안을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아니, 아예 루시퍼라는 존재를 궁금해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나를 두려워하면서도, 내가 네 감정을 읽는다는 것에 대해서 전혀 놀라지 않아. 게다가 나를 아주 잘 아는 것 같군. 이호연. 대체 너의 정체는 뭐지?"

이호연은 혼자 떠들고 혼자 궁금해하는 루시퍼를 보다가 머리를 벅벅 긁었다.

루시퍼 입장에서는 어이없겠지.

마법진을 강탈당해놓고 이유도 궁금해하지 않고, 마안에 보이지도 않으면서 그의 마안을 잘 아는 듯이 행동하니까.

하지만 이호연이 그걸 설명해줄 이유는 없었다.

루시퍼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든 알바가 아니다.

오히려 이상한 오해를 해준다면 더욱 고맙겠지.

'딱히 정보를 내놓을 것 같진 않네.'

이호연은 천천히 감정을 가라앉혔다.

자신의 감정을 지운다.

서서히 몸의 떨림이 사라지고,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옅어진다.

"뭐지? 마안이…."

"이제 마안이 좀 안 보이나 보네."

루시퍼를 처음 봤을 때 자신이 놀랐던 것처럼,

이번에는 루시퍼가 놀랄 차례다.

그의 마안은 어디까지나 이 세계의 힘.

신에게 특전으로 받은 자신의 능력을 뚫을 수 없다.

'뚜렷한 정신력'

루시퍼가 자신의 감정을 더욱 잘 읽을 수 있던 이유는, 이호연이 '뚜렷한 정신력'을 사용하지 않도록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호연은 눈앞에 벌어지는 일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의 루시퍼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제는 내가 두려워졌냐?"

개안.

이호연의 눈이 금빛으로 빛난다.

루시퍼의 붉은 마안이 찌푸려진다.

"… 나와 싸우려는 건가?"

"그럼 남의 마법진을 약탈해간 놈을 그냥 봐줄까."

블러드 비트.

이호연의 마력 회로가 두 배 이상 팽창한다.

두근. 두근.

전투 감각이 몸의 감각 하나하나를 깨운다.

'뚜렷한 정신력'이 켜진 순간, 어떻게 해야 효율적으로 루시퍼를 상대할 수 있을 지에 대한 생각이 머리에 가득 찬다.

"좋은 선택이 아닐 수도 있다. 이곳에 가득 차 있는 것은 지옥의 마력. 인간인 네가 아무리 발버둥 치더라도 날 이길 순 없다. 차라리 대화를 나누는 게 너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르지."

"그건 네 생각이고."

이 환경이 이호연에게 불리한 건 사실이지만, 그런 걸 고려할 때가 아니었다.

현재 마법진의 주인은 루시퍼.

가짜 던전은 이호연의 의도와 다르게 변질되었다.

본래 위험성보다 훨씬 위험해졌고, 실제로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 환경이 되었다.

그렇기때문에 최대한 빨리 주도권을 빼앗아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호연이 '감정 증폭'이라는 마법을 전제하에 던전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감정 증폭'은 가짜 던전 마법진에서 중요한 요소였다.

사람들의 불안감과 공포를 증폭시킬 수 있었으니 그만큼 신경 쓸 게 적어진다.

이호연은 마수들의 공격성을 낮추었고, 혹시나 히로인을 위협할 요소들을 거의 다 배제했다.

'치유 공간에 대한 접근을 철저하게 막았으니, 그것까지 수정하기엔 시간이 부족했을 거야.'

이호연도 이런 상황에서 전투를 이어가고 싶진 않다.

하지만 지금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해내야한다.

"크하하… 큭."

루시퍼는 이호연과 상반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가리고 웃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삶을 사는 동안, 루시퍼에게 인간은 언제나 하찮은 존재였다.

그 생각은 지옥에 있을 때도 인간 세상에 있을 때도 변하지 않았다.

마음만 먹으면 손 짓 한 번으로 세상에서 지울 수 있는 존재였다.

눈앞의 이호연은 달랐다.

마안을 막아내는 특별한 존재면서 수상한 점이 너무나 많다.

자신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흥미로움으로 가득 찬 인간.

지루한 인생의 변환점이다.

루시퍼는 온몸의 힘을 끌어올렸다.

인간이라는 생명체는 가진 힘에 비해 자존심이 비대하다.

궁금한 것은 많지만, 이호연을 잡은 뒤 천천히 물어보면 된다.

처음부터 이호연을 생포할 생각이었으니 계획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좋다. 대화로 해결될 가능성은 처음부터 낮을 거라고 생각했으니. 억지로 대화의 장을 만들어보지."

말이 끝남과 동시에, 루시퍼의 살의가 폭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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