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야겜에 빙의했다-528화 (528/648)

< 528화 > 엎질러진 물 (6)

빅토리아 공원에 들어온 아이린과 여자들은 주변을 확인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이호연은 어디 있는데…? 빅토리아 공원에 들어왔다면서."

"이렇게 안 보이는 게 더 수상한 거야. 입구에서 출입은 확인했으니까."

아이린은 서운해하는 릴리아나를 달래며 빅토리아 공원 안 쪽으로 들어갔다.

돌아다니면서 마주친 아이리스 길드원들에게 이호연의 행방을 물었지만, 단 한 명도 이호연을 본 사람이 없었다.

"아무도 본 사람이 없는 건 확실히 수상하긴 하네요."

"그러게. 애기 아빠가 숨어서 돌아다니는 건 확실한 것 같아."

스칼렛과 레베카도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호연이 공원에 들어온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으니 레베카의 말대로 숨어 다닌다고 보는 게 맞겠지.

비밀이 너무 많은 남자였다.

"호연 님의 결계… 레베카 님이라면 뚫을 수 있나요?"

"어… 자신감은 없네. 솔직히 말하면 풀컨디션인 애기 아빠의 결계는 나도 감당이 안 될 때가 많아."

룬의 결계는 레베카의 마법이다.

숙련도 자체는 레베카가 압도적이기 때문에 결계를 꿰뚫어 볼 때도 많지만, 평균적으로 이호연의 마력을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럼 어떻게 할 거야. 나 더워서 힘들… 응?"

릴리아나가 툴툴대려던 그때.

검은 기둥의 마력으로 가득 찬 빅토리아 공원의 구석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공원에 있던 모두가 느낄 수 있을만한 강한 위력의 마력 파동.

"뭐, 뭐야. 방금. 다들 느꼈어?"

릴리아나는 가장 먼저 소리를 질렀다.

지옥의 마력이 이렇게 터지는 건 그녀로서도 낯선 일이었다.

"… 네. 저도 느꼈습니다. 엄청난 마력이네요."

"테러? 테러인가? 길드원들의 연락은 아직 없는데."

"단시간에 이런 화력으로 터져 나오는 걸 보니, 무언가를 막고 있던 결계가 부서진 것 같아. 왠지 불안해. 빨리 가보자."

마력을 느낀 건 릴리아나뿐만이 아니다.

아이린과 스칼렛, 레베카도 당연히 마력을 감지했다.

"아이리스 길드에 연락은… 아니다. 우리끼리 가보자."

"저도 그게 좋을 것 같습니다."

빅토리아 공원을 가득 채운 검은 마력.

그녀들은 조심스럽게 폭발의 근원지로 다가갔다.

*

"내 마력에 반응하질 않아…. 설마 마법진을 전부 장악했다고?"

이호연은 회전하기 시작한 마법진을 보며 눈을 크게 떴다.

가짜 던전 마법진은 이미 자신의 마력을 무시하며 작동하고 있었다.

이렇게 거대한 마법진을 탈취당하다니.

도대체 언제부터 준비하고 있었던 거지?

콰과광-

다급한 이호연과 다르게 마법진은 태연하게 작동을 이어갔다.

이호연은 이를 악 문 채 마력을 움직였다.

개안.

블러드 비트.

두근. 두근.

순식간에 불어난 이호연의 마력이 마법진에게 쇄도했다.

어떻게든 주도권을 빼앗으려는 다급한 발악.

하지만 가짜 던전 마법진은 꿈쩍도 하지 않은 채 주변의 마력을 빨아들였다.

"통제가 되지가 않잖아…. 큭!"

마법진은 이미 자신의 통제를 벗어났다.

누군가의 마력을 잔뜩 받아들인 채 가짜 던전을 개방하고 있었다.

콰아앙-!

마법진의 중심에서 일어난 거대한 폭발.

그 안에 담긴 마력은 이호연이 직접 넣었으니, 얼마나 강대한 지 알고 있었다.

가짜 던전은 아카데미 전체를 뒤덮어야기에, 아카데미에 있는 보안 마법진을 순식간에 전부 부숴버려야 한다.

이호연의 룬의 결계가 아무리 강하더라도 막아낼 수 없었다.

우두두-

주변의 나무들이 꺾이고 모래바람이 휘몰아친다.

손을 들어 얼굴을 막은 이호연은 심각한 눈빛으로 주변을 살폈다.

"흔적도 없이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만큼 마법 실력이 뛰어나면서 지옥의 마력을 쓸 수 있는 사람.

당연히 단 한 명뿐이었다.

"루시퍼밖에 없어."

루시퍼는 마법사로서도 지옥에서도 알아주는 실력자였다.

애초에 이호연을 제외하고 지옥의 마력을 사용하는 마법사는 루시퍼 밖에 없기도 하고.

'언제 이런 짓을 한 거지…?'

며칠 전까지만 해도 마법진에는 아무 흔적도 없었다.

그런 단시간 안에 마법진 전체를 장악할 수 있는 건가?

이호연은 표정을 구기며 마법진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무식할 정도로 파괴적인 마력. 지배할 수 없으니 억지로 마법진을 붕괴할 의도였다.

하지만 상황은 이호연의 의도와 정 반대로 흘러갔다.

폭주하기 시작한 가짜 던전 마법진은 주변 모든 것을 집어삼킬 기세로 흉흉한 마력을 내뿜었다.

검은 불꽃이 타오르고, 사방에서 불길한 마력이 풍겼다.

"시발…."

두근. 두근.

이호연의 심장이 빠르게 뛴다.

전투 감각의 징조.

몸은 전투를 준비하고 있고, 이미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이성적으로는 알고 있다.

불길함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듯한 지옥의 마력이 허공으로 솟아올랐다.

이호연은 한 쪽 눈을 감은 채 다가오는 마력의 폭발을 대비했다.

"… 애기 아빠!"

그때, 뒤에서 커다란 고함이 들렸다.

고개를 돌린 이호연은 그제야 가까이 다가온 4명의 여자를 발견했다.

"이, 이게 뭐야. 이호연! 너 아카데미에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아이린은 온몸에 소름이 끼치는 불길한 마력을 느끼며 서서히 다가왔다.

휘몰아치는 검은 마력의 태풍.

그 가운데에 서서 얼굴을 가리고있는 이호연은 마치 악의 최종 보스 같았다.

"지옥의 마력이 이렇게나… 마왕이라도 나오는 거야?!"

릴리아나도 당황한 것은 마찬가지.

또 이호연이 무언가에 휘말렸다고 생각했는데, 그 반대였다.

이호연은 아이린의 뒤를 따라 놀라는 릴리아나를 보며 황당한 듯 말했다.

"아니, 다들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거예요?"

"아이린이 오자고 해서… 그보다 애기 아빠는 지금 뭐 하는 거야? 괜찮아?"

레베카는 놀란 표정으로 이호연을 바라봤다.

빅토리아 공원 전체를 채운 검은 마력은 곧 아카데미까지 잡아먹을 기세였다.

"…."

이호연은 다가오는 여자들을 보며 눈을 질끈 감았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까.

가짜 던전 마법진을 회수하려는 도중 루시퍼의 수작질을 발견했고, 강제로 마법진이 펼쳐졌다.

이호연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오해없이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지, 지금 나는…."

화르르륵-

이호연은 뒤에서 피어나는 불길을 보고 정신을 차렸다.

이대로 마법진이 전개되면 눈앞의 여자들도 가짜 던전에 휘말리게 된다.

"나중에 설명할게요. 일단은 도망을…!"

이호연의 얼굴이 불길한 마력에 잠식된 순간.

"애, 애기 아빠!"

"호연 님!"

화아악-

들려오는 비명과 동시에 세상이 뒤집혔다.

방금까지 마법진 중앙에 있던 이호연의 모습이 사라졌다.

"어, 어떻게. 분명 애기 아빠는 마법진에 마력을 넣고 있지 않았어."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저 마법진이 곧…!"

콰아앙-!

이호연이 사라진 직후.

엄청난 양의 마력 폭발이 일어나며 아카데미 전체를 감쌌다.

*

"뭐, 뭐야. 여긴 어디야! 꺄악!"

눈을 뜬 이호연이 가장 먼저 들은 건 여성의 날카로운 비명 소리였다.

이호연은 빅토리아 공원의 구석진 수풀 사이가 아닌, 전혀 다른 공간에서 눈을 떴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폈다.

혐오스러운 괴수들이 돌아다니고, 불길한 마력이 공기를 가득 채운다.

가짜 던전을 설계한 이호연도 당황할 정도로 끔찍한 광경이었다.

그건 주변도 마찬가지였는지, 처음 보는 광경에 혼란에 빠진 사람들이 많았다.

"살려줘! 살려달라고!"

"모두 진정해라! 생도는 가까운 교수의 밑으로 모여!"

아카데미의 생도와 임직원들은 위기 상황임에도 금방 정신을 차렸다.

최대한 뭉치며 주변 상황을 파악하고, 테러 대처 메뉴얼대로 움직인다.

'이건….'

이호연의 계획과 똑같았다.

가짜 던전이 생기고, 주변에 마수들이 나타난다.

마수들은 급하지 않게 천천히 생도들에게 다가온다.

자신들이 위험한 상태에 빠졌다는 걸 자각하게 하기 위해서다.

"이런 씨발…."

공간을 가득 채운 지옥의 마력은 이곳이 탈출할 수 없는 던전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각인시킨다.

이호연은 자신이 만든 가짜 던전에 직접 들어오게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 다들 진정해요! 테러인 것 같습니다. 아마도 던전에 갇힌 것 같아요!

- 괴수들과 싸우지 마세요! 다들 뭉쳐야 합니다!

이 던전은 모두 이호연이 만들어낸 환상이다.

안에서 상처를 입거나 죽더라도, 별개의 공간에 격리될 뿐 죽지 않는다.

이호연의 마지막 양심이었고, 그런 특이한 조건을 걸었기에 마법진은 더욱 만들기 어려웠다.

하지만, 지금 던전의 주인은 이호연이 아니었다.

"아, 아악! 꺄아아아악!"

"서, 서영아! 여기, 여기 응급 환자가 있어요!"

"김태현!! 안돼!"

곳곳에서 유혈이 낭자한다.

아카데미의 생도와 임직원이라고 해서 모두 전투력이 높은 건 아니다.

이곳에 나오는 마수들은 이호연이 엄선한 지옥의 강한 마수들이다.

괴수들과 전투가 일어난다면 엄청난 피해자가 나오는 건 당연한 일.

'어째서 마수들이 공격하는 거지?'

자신이 설정했던 조건과 달랐다.

이호연은 주변을 둘러봤다.

혹시나 히로인이 있을까 둘러봤지만, 아는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지금쯤 같이 있겠지.'

가짜 던전 자체가 히로인들을 목표로 한 계획이다.

이호연의 위기상황을 만든 뒤 그녀들의 마음을 자극하는 것.

그 뒤에 목숨을 바쳐 여자들을 구하는 퍼포먼스까지 할 생각이었다.

그 광경을 모든 히로인들이 봐야 하기 때문에, 목표인 히로인들은 가짜 던전의 한 곳으로 모이도록 설정해놨다.

'여기는 꽤 거리가 있는 것 같은데… 어디로 가야 하는 거지?'

가짜 던전의 내부 지도는 이호연의 머릿속에 들어있다.

잠시 기억을 뒤져본 이호연은 눈을 찌푸렸다.

"너무 멀어. 게다가 길이 바뀌었을 가능성이 있어."

생도를 먼저 공격하지 않아야 할 마수들은 포악하게 변했고, 조작이었던 가짜 던전이 현실이 되어버렸다.

게다가 지금 이호연이 있는 공간도 그의 기억과 정확히 일치하지 않았다.

세세한 길은 바뀌었을 가능성이 있다.

'… 어떻게 해야 하지? 다시 생각해보자.'

지금 이호연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히로인들을 찾아가는 것이 방법일 수도 있고, 일단 주변에 있는 마수들을 처리해 민간인을 구하는 게 방법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호연은 다른 방법을 떠올렸다.

"… 중심부로 가야 해."

가짜 던전 마법진의 내용은 크게 변경되지 않았다.

핵심 술식에 그어진 지옥의 마력으로는 주도권만 가져올 수 있을 뿐, 마법진에 새겨진 기본적인 것들은 바꿀 수 없다.

그런데 그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괴수들이 현실이 되었고 이호연이 있는 공간도 세세한 부분은 달라졌다.

이런 조작을 하려면 시전자도 가짜 던전 내부에 있어야 한다.

가짜 던전의 중심부.

모든 것을 컨트롤할 수 있는 그곳에, 루시퍼가 있었다.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