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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야겜에 빙의했다-523화 (523/648)

< 523화 > 엎질러진 물 (1)

"하아. 하으앗…."

남다은은 침대에 엎드린 채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호연과의 밤은 그녀에게 커다란 만족을 선사했고, 언제나처럼 정신을 쏙 빼놨다.

"고생했어. 다은아. 같이 자자. 이리 와."

"… 으응."

이호연은 남다은의 등을 쓰다듬었고, 남다은은 눈을 피하며 이호연의 품에 안겼다.

섹스를 하기 전에는 몰려오는 성욕 때문에 부끄러움이 없었지만, 끝나고 나면 뒤늦게 창피함이 몰려온다.

'이런 걸 현자 타임이라고 했었나?'

저번에 릴리아나에게 배운 것 같은 단어를 떠올리며 남다은은 이호연에게 안겼다.

"…."

이호연은 남다은을 보며 침을 삼켰다.

섹스는 잘해놓고, 이제 와서 부끄러워하는 게 너무 귀여웠다.

방금까지 자신의 정액을 탐내던 암컷이 다시 남다은으로 돌아왔다.

그 갭이 너무 꼴려서, 다시 하고 싶어 졌다.

"… 한 번만 더 할까?"

"응…? 호연아?"

"안 되겠어. 진짜 한 번만 더 하자."

"아, 안되는데… 저번에도 분명 이렇게, 흐읏…."

남다은은 그제서야 이호연을 밀어냈지만, 이미 스위치가 켜진 이호연을 막을 순 없었다.

이호연은 남다은의 가슴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흐, 흐으응… 아, 아앙… 호연아, 아응, 안돼. 내일 아카데미가…."

"한 번만 하면 몇 시간은 잘 수 있잖아. 미안해."

"으, 그럼 딱 한 번만…."

벽에 걸린 시계를 본 남다은은 이번에도 큰일 났다는 걸 직감했다.

하지만… 그녀도 그렇게 싫진 않았다.

*

평소보다 조금 늦은 아침.

기지개를 켠 남다은은 하품을 하며 아카데미 등교를 준비했다.

"피곤해. 으, 끄흐으읏."

"미안…."

이호연은 피곤한 표정으로 옷을 챙기는 남다은을 보며 미안함을 느꼈다.

분명 한 번만 할 생각이었는데… 그게 자신의 마음대로 되질 않았다.

결국 둘은 동이 트는 시간이 되어서야 간신히 잠에 들었다.

"… 괜찮아. 나도 자제하지 못했어."

"내 잘못이지. 다음에는 진짜 이러지 않을게."

남다은은 고개를 숙이는 이호연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어젯밤의 짐승 같던 모습과 전혀 다른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고마워. 더 늦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빨리 가볼게. 호연이는 이번 주까지 쉬는 거지?"

"응.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미안하다. 아카데미까지 데려다줄게. 같이 가자."

"아니야. 다희도 밖에서 기다리고 있으니까 다희랑 같이 가면 돼. 나야말로 아침 못 차려줘서 미안해. 먼저 갈게."

"… 알겠어. 조심해서 가. 다은아."

이호연은 비틀거리며 아카데미에 등교하는 남다은을 배웅했다.

어젯밤에는 같이 즐겼지만, 저렇게 혼자 아카데미에 가는 걸 보니 죄책감이 드네.

'나만 책임 없는 쾌락을 즐겼구나.'

뒤늦게 미안한 표정으로 남다은을 바라봐도 그녀는 이미 떠난 상태였다.

심지어 아침을 차려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까지 들으니 진짜 나쁜 놈이 된 거 같아서 기분이 참 묘했다.

"… 넌 왜 늦게 일어났냐?"

"원래 밤늦게 재밌는 게 많이 한 단 말이야."

이호연은 식탁에 앉아있는 릴리아나에게 다가가 그 옆 자리에 앉았다.

릴리아나도 엄청나게 피곤한 표정이었다.

그래도 어제는 약간 텐션이 낮아 보였는데, 하루 만에 회복한 게 역시 릴리아나다웠다.

냠냠.

릴리아나는 식빵에 잼을 치덕치덕 발라 입으로 가져갔다.

그게 맛있어 보여서 식빵에 손을 올리자, 릴리아나는 손목 스냅을 이용해 이호연의 손등을 탁 때렸다.

"아파! 야, 갑자기 왜 그래."

"왜 그러긴! 너 때문에 내가 아침밥을 못 먹고 식빵을 먹고 있잖아!"

"그게 왜 나 때문인데?"

"서큐버스에게는 숨겨도 아무 소용없어."

"…."

릴리아나의 말을 들은 이호연은 그제서야 일련의 대화를 이해했다.

남다은을 피곤하게 만들어 그녀가 급하게 등교해 아침을 만들지 못했고, 그 덕분에 릴리아나가 식빵으로 아침을 때우고 있다는 것이다.

'이해는 하겠는데….'

아니, 그래도 식빵을 못 먹게 하는 건 좀 억울하네.

자신이 집에서 그 정도 위치도 안 되는 건가?

'누가 보면 내가 식객인 줄 알겠어. 여기는 내 집이잖아.'

굳이 따지자면 식객은 릴리아나다.

이호연이 억울함에 강제로 식빵을 뺏으려던 그때.

"화내지 마시고 차라도 한 잔 드시죠."

평온한 목소리의 스칼렛이 차와 쿠키를 내왔다.

막 구워진 초콜릿 쿠키를 보고 화가 사라진 이호연은 조용히 쿠키를 집어먹었다.

"스칼렛, 레베카 씨는?"

"오늘은 처리할 일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본업이라고 하시더군요."

"아하. 스칼렛 너는 쉬는 거고?"

"예. 오늘은 딱히 일정이 없네요."

"나도 쿠키 먹을랭."

"너는 식빵이나 먹지 그래."

"남자가 찌질해."

"참나. 진짜 어이가 없네."

이호연은 헛웃음을 지으며 릴리아나에게 쿠키를 넘겼다.

히히 웃은 릴리아나는 쿠키를 집어들고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말은 취소할게. 고마워."

"아침부터 보기 좋은 모습이네요."

스칼렛은 따뜻한 블랙커피를 홀짝이며 이호연의 맞은편에 앉았다.

'흠….'

이호연은 스칼렛을 바라보며 눈을 깜박거렸다.

평소와 같은 차분한 표정이지만, 어제 남다은에게 비밀을 듣고 나니 왠지 의심된다.

아이리스 길드 출신인 스칼렛은 감정관리가 익숙하다.

혹시나 그녀만 아는 중요한 사실이 있을지도 모른다.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습니까?"

"… 아니, 오늘따라 예쁜 거 같아서."

"감사합니다. 오늘은 제 차례라고 미리 서비스해주시는 건가요?"

내심 기분 좋은 듯 웃는 스칼렛을 보며, 이호연은 스칼렛의 상태창을 확인했다.

★ 히로인 상태창

[스칼렛]

- [ 호감도 : 100 ] ( + 1.3)

- [ 성욕 : 75 ]

- [ 식욕 : 40 ]

- [ 피로도 : 60 ]

현재 상태 : 오늘은 아이린 씨가 안 부르시니 집에서 쉬어야겠네요. 근데 이 사람은 갑자기 왜 이러지?

[호감도 100 달성 시 이호연을 위해 봉사합니다.]

… 너무 의심병에 걸렸나?

이호연은 스칼렛이 가져다준 차를 마시며 상태창을 닫았다.

다행히 상상하지 못할 만큼 이상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서로 얼마나 많은 대화를 나눴는 지도 궁금하긴 하네….'

남다은에게 듣기로는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서로 정보를 공유한 건 확실하다.

게다가 저주라는 단어까지 나왔다.

엘리스만 알던 그것을 모두가 공유했다는 건 이제 자신의 바람기도 의심받을 때가 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장 더 캐내는 건 위험해.'

지금 당장 굳이 의심 사는 행동을 할 필요는 없다.

이호연이 해야 할 일은 최대한 빨리 벌려놨던 일을 원래대로 되돌리는 것.

그 후에는 얼마든지 의심받아도 괜찮다.

'일단… 가짜 던전 마법진은 중단해야 해.'

나중에 다시 시도하는 한이 있어도, 지금은 마법진을 회수해야 한다.

가짜 던전 마법진은 히로인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위기상황을 연출해 이호연에 대한 애정을 키우는 계획이다.

여자들이 눈치챈 순간부터 계획은 물 건너갔다고 보는 게 맞겠지.

게다가 계획을 준비하는 동안 많은 것이 바뀌었다.

주변의 상황. 그리고 이호연의 마음가짐.

지금의 이호연에게는 루시퍼라는 강적이 나타났지만, 머리는 조금 더 냉정하게 생각할 수 있는 상태였다.

'그럼 모든 걸 다시 생각해야 되는데… 머리 아프네.'

일단은 마법진을 폐기하고 나서 생각하자.

진실을 밝히며 무릎꿇고 고백하든, 다른 짓을 계획하든.

벌려놓은 일을 들키지않는 게 제일 중요하다.

이호연은 쿠키를 입에 와구와구 집어넣었다.

릴리아나가 자신의 쿠키를 뺏기위해 어깨를 때렸지만, 신경쓰지않았다.

"고민이라도 있으십니까? 표정이 안 좋으시네요."

"… 아니, 그냥 아침이라 그래."

"어제 너무 격렬해서 그런 거겠지. 다은이 표정이 안 좋던데."

"시끄러워."

릴리아나에게 핀잔을 준 이호연은 한숨을 푹 내뱉었다.

차라리 어제 울적한 릴리아나가 귀여웠는데, 오늘은 또 저런 상태가 되어버렸네.

"크흠. 나는 잠시 나갔다 올게. 다들 오늘은 쉬는 거지?"

"저는 그럴 것 같습니다."

"나는 방송할 거야."

"알겠어. 나도 할 일이 있어서 슬슬 나갈 준비를 해야겠네."

이호연은 남은 쿠키를 전부 먹어치우고 차를 입 안으로 털어 넣었다.

딱히 할 일이 없으니, 지금 당장 빅토리아 공원으로 갈 생각이었다.

"아침부터 어디 가는 거야?"

"오랜만에 마법 연구 좀 하려고."

언제나처럼 마법 연구라는 변명으로 릴리아나에게 대답한 이호연은 테이블에서 일어나 옷을 챙겨 입었다.

'그러고 보니 빅토리아 공원은 지금 어떻게 되어있으려나.'

루시퍼의 습격 이후로는 가본 적이 없으니 지금 상태가 궁금하긴 했다.

혹시 통행금지라도 당했으면 어쩌지?

몰래 잠입하는 건 엄청 귀찮은 일인데.

이호연은 귀찮은 일이 없길 바라며 집 밖으로 빠져나왔다.

빅토리아 공원에는 금방 도착했고, 이호연은 곧바로 눈을 찌푸렸다.

"안 좋은 예감은 틀린 적이 없구나."

공원 내부에는 수많은 헌터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공원을 조사하고 있었다.

옷에 달려있는 마크는 헌터 협회의 징표.

이미 아이리스 길드에게서 협회로 권한이 넘어간 모양이다.

"그래. 그런 일이 있었는데 아무것도 없을 거라는 생각이 이상한 거겠지."

아이리스 길드가 담당하고 있을 때는 편하게 출입이 가능했지만, 헌터 협회가 담당하고 있다면 말이 다르다.

물론 이호연의 이름값이라면 들어갈 수는 있겠지.

하지만 아이리스 길드처럼 절차를 생략할 수가 없다.

먼저 이호연의 이름을 대고, 신원을 밝힌 뒤 출입 목적을 말해야한다.

그 후에 헌터 협회와 협력해서 빅토리아 공원을 들어가면,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힘들어진다.

'차라리 몰래 들어가는 게 나아.'

어차피 이호연의 수준이라면 절대 걸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물론 아주 낮은 가능성으로 걸릴 수도 있지만,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응?"

룬의 결계를 사용하기 위해 구석으로 가던 이호연은 입구 쪽에 서있는 여성을 발견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익숙한 얼굴.

아이리스 길드의 한국 지부장 강효린 박사였다.

'저 사람이 왜 여기 있지?'

이호연은 오랜만에 보는 강효린 박사에게 인사를 건네러 다가갔다.

"강효린 박사님. 여기서 뭐하세요?"

"응? 호연 생도. 오랜만에 보네요."

"네. 근데 한국 지부장 님이 여기에는 왜 서있으신 거예요?"

강효린 박사는 입구를 지키는 문지기처럼 서있었다.

예전에 친해졌던 아이리스 길드원이 생각나서 괜히 마음이 쓰렸다.

"아, 아무래도 아이리스 길드의 일이다 보니 아이리스 길드가 주축으로 조사 중이거든요."

"그래요? 겉으로 보기엔 헌터 협회 사람들만 있는데."

"안 쪽에는 아이리스 길드원들이 있어요. 아, 한국 지부장인 저도 불려나왔지만 저는 그중에서도 가장 쉬운 일을 찾은거에요."

"…."

왜 이 사람은 일을 안 하는 걸로 자랑스럽게 웃는 거지?

이런 사람이 한국 지부장을 맡는 게 정말 맞는 일일까.

강효린 박사는 이호연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호연 생도는 무슨 일인가요? 이곳에 좋은 추억이 있지는 않을 텐데."

"아… 그냥 지나가는 길이었어요."

"으흠. 그렇군요."

"… 혹시 제가 뭐라도 도와드릴까요? 저는 빅토리아 공원도 자주 와봤으니까요."

이호연은 강효린 박사의 표정을 살피며 방금 떠올린 변명을 꺼냈다.

'이건 그냥 들어갈 수 있겠네.'

몰래 들어가는 것보다는 당연히 정식으로 들어가는 게 낫다.

그리고 강효린 박사를 구슬리기는 어렵지않아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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