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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야겜에 빙의했다-522화 (522/648)

< 522화 > 제물

어두운 저택 안.

마에스트로는 거대한 악마의 조각상을 보며 기도를 이어갔다.

마왕에게 계시가 오지않는 건 알고있지만, 이제 기도는 그의 일상이 되었다.

이런 기도라도 하지않으면 그의 마음이 쉴 시간이 없었다.

저벅저벅.

그때, 다가오는 발소리에 마에스트로는 상념에서 깨어났다.

"게일이군요."

"정기 보고입니다. 마에스트로 님."

그의 새로운 비서는 판데믹의 테러 현황을 정리한 서류를 마에스트로에게 가져왔고, 서류를 살핀 마에스트로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얼마 전, 판데믹은 마인들을 제한하는 규율을 모두 없앴다.

그 이후로 마인들은 본성을 숨기지않고, 자신이 판데믹인 것을 드러내며 테러를 자행했다.

목표는 최대한 많은 인간의 사살.

수준급의 마인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테러의 시작을 열었고, 그와 비슷한 모방 범죄가 일어났다.

전 세계가 혼란에 빠진 건 당연한 일.

판데믹이라는 한 집단때문에 세계의 경제가 마비되었다.

그 일을 일으킨 주범인 마에스트로는 덤덤하게 게일이 준 서류를 확인했다.

"게일, 이게 전부겠죠?"

"예. 저번 주에 비해 테러의 양이 비약적으로 늘어났습니다."

"확실히 그렇군요…."

마에스트로의 새로운 비서.

게일.

그는 간부 중에서도 판데믹의 충실하며 동시에 강한 마인이었다.

최소한의 보고체계만 지키고 나머지는 자율적으로 움직이라는 마에스트로의 명령을 충실하게 수행하기 위해, 그는 마에스트로에게 고개를 숙인 뒤 방 밖으로 나가려 했다.

"게일. 잠시만요."

"예. 다른 명령이 있으십니까?"

마에스트로의 말에 발을 멈춘 게일은 꼿꼿이 선채 다음 명령을 기다렸다.

비서가 된 이후로 보고 말고 다른 일을 맡는 건 처음이었으니, 꽤나 긴장되었다.

"잠시 거기서 대기하세요."

서류를 내려놓은 마에스트로는 게일의 몸을 훑었다.

그에게 걸린 세뇌는 아직 단단했다.

가끔씩 너무나 세뇌가 강해 오히려 역효과가 나는 마인도 있었지만, 다행히 게일은 부작용 없이 충실히 판데믹을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판데믹을 위해 일하는 모습이 보기 좋군요. 게일. 언제나 고생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과분한 칭찬입니다. 마에스트로 님."

마에스트로의 뜬금없는 칭찬에 게일은 살짝 놀라며 고개를 숙였다.

판데믹의 마인들은 모두 마에스트로를 존경하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그의 압도적인 카리스마와 분위기.

인간임에도 마인보다 더욱 마인 같은 그의 모습은 모든 마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런 그가 자신에게 따뜻한 감사를 표하고 있었으니,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은 당연한 일.

"좋아요. 당신의 판데믹에 대한 충성심은 제가 영원히 기록해놓겠습니다."

"아닙니다. 저는 그저 명령에 따랐을 뿐…. 음…?"

아주 잠시.

게일은 마에스트로의 말에 의문을 느꼈다.

분명 자신을 칭찬하는 말인데도 어색함이 느껴졌다.

마치 병상에 누워있는 곧 생을 마감할 노병에게 전하는 마지막 인사 같았다.

그 의문이 풀리기도 전에, 마에스트로는 게일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푸욱-

"큽……?"

일은 순식간에 벌어졌다.

게일의 가슴을 꿰뚫은 마에스트로의 손은 깔끔하게 게일의 심장을 터트렸다.

"마, 마에스트로 님…."

세뇌 때문에 저항하고 싶어도 저항하지 못했겠지만, 저항을 할 수도 없을 정도로 빠른 일격이었다.

게일은 고통도 잊은 채 눈을 벌벌 떨며 마에스트로를 바라봤다.

"정말 수고했어요. 게일. 당신은 먼저 간 아크만과 태비시, 그리고… 음. 여러 마인들과 같은 길을 걷는 겁니다. 판데믹을 위한 길이에요."

"아…."

마에스트로는 자신의 심장을 꿰뚫었음에도 인자하게 웃고 있었다.

그 얼굴을 본 게일은 죽음을 납득하고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이미 강하게 세뇌된 판데믹의 마인들은 자신의 생보다 판데믹의 안정을 우선시한다.

보스의 판단으로 자신이 죽어야 한다면, 당연히 목숨을 바친다.

그것이 마에스트로의 세뇌였고, 판데믹의 간부가 가지는 마음가짐이었다.

… 하지만.

그런 게일도 결국은 마인.

숨이 끊기기 전 삶의 마지막 순간.

마인 특유의 삶에 대한 열망이 불타올랐다.

'… 아크만과 태비시?'

그도 아는 이름이었다.

마에스트로의 전 비서들.

특히나 판데믹에 충성심이 강하고, 오래 활동해 전투력은 떨어졌지만 마인 중에서도 유명한 마인들이었다.

지금의 게일과 똑같은 상황이다.

최근 마에스트로의 비서가 계속해서 교체되었다.

하나같이 싸움 중 행방불명되었는데, 만약 그들도 이렇게 죽은 거라면?

"… 서, 설마 사라진 비서들이 전부… 크, 크흐읍!"

"이제야 알아챘군요. 마인들은 이상하게 마지막 순간에 세뇌가 풀리는 걸. 역시 확실히 마무리 하도록 조심해야겠어."

마에스트로는 재밌는 것을 본 아이처럼 입꼬리를 올렸다.

지금까지 그에게 죽은 마인들은 모두 마지막 순간에 진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다. 저항하고 싶어도 저항할 수 없다.

"괜찮습니다. 당신의 희생 덕분에 마왕님의 강림이 1초라도 앞당겨질 테니까요."

바둥바둥.

마에스트로에게 심장이 꿰뚫린 게일은 다른 마인들처럼 그에게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머리와 다르게 아직 세뇌에서 벗어나지 못한 몸뚱아리는 결국 마에스트로에게 목숨을 바쳤다.

약 1분 정도 지났을까.

마인의 눈에서 빛이 사라졌다.

철푸덕-

게일을 바닥에 던진 이후.

마에스트로는 손에 묻은 피를 닦지도 않은 채 조각상을 향해 몸을 돌렸다.

악마 같은 형상을 한 거대한 조각상.

마에스트로가 항상 기도하는 곳이었다.

조각상의 왼손에 들려있는 커다란 성배.

마에스트로는 성배를 들어 올려 조심스럽게 품에 안았다.

성배의 내부에는 칠흑같이 어두운 물이 찰랑거리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불길한 마력을 내뿜는 그것은 검은 기둥과 비슷했다.

절반 정도 채워져 있는 성배를 본 마에스트로는 눈을 찌푸렸다.

"거의 늘어나지 않았어. 턱없이 모자라다."

마왕을 소환하기 위한 지옥의 성배.

이것은 갑자기 자신에게 나타났다.

평소처럼 기도를 이어가던 날.

조각상이 들고 있던 평범한 성배에 정체불명의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고, 그것은 테러가 늘어날수록 빠르게 불어났다.

마에스트로는 자연스럽게 확신했다.

이 성배가 모두 차오르면 마왕이 강림한다.

성배가 차오르는 기준은 복잡했다.

지역 하나를 날려 많은사람을 죽여도 조금만 차오를 때도 있었고, 겨우 몇 명을 죽였는데 눈에 보이도록 차오른 적도 있었다.

확실한 기준은 딱 하나.

거대한 마력과 인간의 부정적인 감정.

가장 좋은 것은 인간들이 소위 말하는 거물들.

그들을 죽이면 성배의 양이 늘어난다.

마법사 학회에서 꽤 이름 있던 마법사를 잡았을 때.

중국의 S급 헌터들을 싱크홀을 이용해 단체로 매장시켰을 때.

모두 성배가 눈에 띄도록 차올랐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마에스트로는 판데믹의 마인들을 풀어 전 세계를 혼란에 빠뜨렸고, 세계 곳곳에서 부정적인 감정들이 폭발했다.

그 과정에서 많은 네임드 헌터들까지 죽었다.

그럼에도 성배는 아주 조금만 차올랐을 뿐.

마왕을 소환하기엔 부족했다.

'더 큰 제물이 필요하다.'

마에스트로는 직감했다.

이 이상으로 성배를 채우기 위해서는 평범한 인간으로는 부족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이 세계의 운명과 관련이 있는 자들.

단신으로 운명을 뒤트는 능력을 가진 자.

이호연. 그리고… 루시퍼.

저벅. 저벅.

마에스트로는 조각상에 성배를 다시 올려놓고, 몸을 돌렸다.

이호연과 루시퍼.

그 둘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둘 중 하나라도… 제물로 바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루시퍼는 마왕의 사도다.

당연히 제물로 사용하기엔 이치에 맞지 않지만, 며칠 전부터 루시퍼의 분위기가 일변했다.

마치 마에스트로와 마왕의 정체를 의심하는 듯한 그는 마에스트로와 거리를 두었다.

그와 동시에, 성배도 루시퍼를 제물로 인식했다.

'이 세계의 비밀을 알아낸 것인가.'

이 세계의 비밀은 마에스트로도 알지 못했지만, 루시퍼가 계획하는 일은 마에스트로도 알고 있다.

일에 사용하기 위해서 마인들을 많이 데려갔기 때문이다.

이호연을 생포해 마안의 비밀을 풀어내고 지옥의 마왕을 강림시키겠다는 것.

어찌보면 자신과 비슷한 목표였다.

"루시퍼의 마안은 확실히 골칫거리인데…."

루시퍼의 마안은 이호연을 제외하면 세상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볼 수 있었다.

그렇기에 루시퍼는 이호연에게 큰 흥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루시퍼가 모르는 것이 있었는데, 자신의 세뇌 또한 루시퍼가 읽어낼 수 없다는 것이다.

세뇌는 막을 수 있더라도 그 자체를 인식할 순 없었다.

그 증거로, 몰래 몇 번이나 집어넣은 세뇌의 명령어를 루시퍼는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운이 좋다면 루시퍼를 세뇌할 지도 모른다.

스윽.

마에스트로는 집무실에 들어와 고민을 이어갔다.

아무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 이 곳은 마에스트로가 조용히 고민하기 위한 장소다.

전 세계에 소환된 검은 기둥.

그것들은 지옥의 마력을 내뿜으며 지옥과 지구의 환경을 동화시키고 있다.

지옥과 지구를 연결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단 한 번만 제대로 연결되더라도, 공간과 공간 사이에 틈이 엄청나게 확장된다.

처음이 어려울 뿐, 이미 흠집이 난 공간의 틈은 얼마든지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호연…."

마에스트로는 한 인간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의 운명의 대척자.

이호연은 최근 엄청난 성장을 이루었다.

무력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마에스트로가 모르는 '무언가'도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그것은 정신적 면모일 수도 있고, 다른 특수한 요소일 수도 있다.

확실한 건 점점 강해지는 그를 마왕이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다급해진 것이겠지.

"… 크윽."

마에스트로는 심해지는 두통에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는 더 이상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지옥의 동화 작업이나 마왕의 강림 준비를 잠시라도 멈추면, 온 몸이 비틀어지는 고통이 찾아왔다.

마에스트로는 통신기를 현장에 연결했다

- 치직. 치지직… 예. 마에스트로 님.

- 게일이 전투로 사망했습니다. 다음 비서는 당분간 필요없으니 비는 인원이 시간마다 보고하러 오도록하세요.

- 알겠습니다.

- 검은 기둥을 장악하는 길드에 대한 습격 현황도 정리해서 보고하도록 해요. 다음 현장은 직접 가겠습니다.

- 지, 직접 말입니까?! 당장 준비하겠습니다!

통신을 끊은 마에스트로는 의자에 몸을 맡긴 채 눈을 감았다.

이미 자신은 늦었다.

인간을 죽이고, 지구를 멸망시키기 위한 판데믹의 행보는 멈출 수 없었다.

자신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다.

괴물. 혹은 귀신.

아니, 자신의 정체는 중요하지 않다.

이렇게 된 이상 이 추한 삶을 끝까지 발버둥 치겠다.

마왕을 소환해 인간이라는 종을 이 세계에서 없애겠다.

'… 나는 이 굴레에서 해방될 수 있는건가.'

마에스트로는 두통이 찾아오기 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는 슬슬 다음 일을 시작해야한다.

자신을 더 막다른 곳까지 몰아붙여라.

막지 못하면 죽는 것은 너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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