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야겜에 빙의했다-505화 (505/648)

〈 505화 〉 505화. 루시퍼 (2)

* * *

검은 기둥 근처에서 일어나는 던전의 폭주 현상은 전 세계의 골칫거리였다.

뿜어져 나오는 지옥의 마력과 강한 괴수들.

조사하는 과정부터 던전을 공략하는 것까지, 몇 개의 길드가 합쳐서 움직여야 할 정도다.

저벅. 저벅.

작은 벌레 하나 없는 어두운 동굴.

이곳은 파리에 나타난 폭주한 던전이다.

도시 한 복판에 나타났으니, 프랑스 최고의 길드인 아이리스 길드를 필두로 몇 개의 길드가 협업해 조사를 이어가던 구역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지금 이곳에는 단 한 명을 제외하고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던전 내부를 걷는 검은 턱시도를 입은 남자.

루시퍼.

단순히 걷는 것만으로도 죽음의 기운을 내뿜는 그는, 주먹을 쥐었다 피며 몸 상태를 점검했다.

"몸 상태는 완벽하군."

인간 세상의 마력에 적응한 루시퍼는 이제야 힘을 전부 사용할 수 있었다.

아직 이 세계의 마력은 기분 나빴지만, 전 세계 곳곳에 있는 검은 기둥에서 흘러나오는 지옥의 마력 덕분에 빠르게 몸을 추스를 수 있었다.

인간 여자에게 입은 상처도 전부 회복했으니 이제는 움직여야 할 시간이었다.

그 첫 번째가 바로 인간 세상의 조사.

루시퍼는 인간들이 던전 폭주 현상이라고 명명한 것에 흥미를 가졌다.

인간들에게는 던전의 폭주 현상이겠지만, 루시퍼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일이었다.

던전의 환경이 지옥과 비슷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심하게 폭주한 던전 중 몇몇은 지옥과 공간이 연결되고 있었다.

그렇다고 루시퍼가 지옥으로 넘어갈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몇몇 던전은 정말 지옥이라고 해도 의심하지 않을 정도였다.

지옥의 마력이 흘러나오는 검은 기둥으로도 모자라 지옥화 되어가는 던전들.

모든 일이 루시퍼에게 웃어주고 있었지만, 그는 의심을 멈추지 않았다.

"… 너무나 부자연스럽다."

루시퍼는 지옥에서부터 인간 세상에 관심이 많았다.

당연히 인간 세상에 대한 연구도 멈추지 않았는데, 몇 년 간의 연구로 차원의 연결이 얼마나 어려운 지를 뼈저리게 배웠다.

인간이 지옥에 떨어지는 것도 어쩌다 차원이 흐트러질 때뿐.

그렇기에 인간 노예는 희귀했고,두 세계의 접점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지금 일어나는 일은 너무나 부자연스러웠다.

마치 누군가 조종이라도 하는 것처럼, 인간 세상과 지옥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 인간이 말하던 신이라는 게 이런 것인가…."

마에스트로라는 인간이 매일같이 부르짖는 신.

루시퍼는 마왕과 신은 다르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전지전능한 존재가 정말 있다면, 이 현상도 설명할 수 있을까.

루시퍼는 그런 생각을 하며 던전 내부를 걸었다.

던전 곳곳에는 그가 죽인 인간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지옥에서 살아온 루시퍼에게 약자가 죽는 건 숨을 쉬듯이 당연한 이치였으니, 인간들의 죽음을 봐도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끄으윽… 이, 개 같은 새끼가…."

그때, 바닥에 쓰러져있던 인간 중 하나가 신음을 내며 루시퍼를 노려봤다.

루시퍼는 신기한 듯 바닥을 쳐다봤다.

"신기하군. 넌 어떻게 살아있는 거지? 힘 조절을 한 적은 없는데."

던전을 조사하고 있던 아이리스 길드의 조사원.

운 좋게 공격에 빗맞아 목숨을 연명한그는 마지막 기력을 짜내 루시퍼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이… 판데믹의 앞잡이 새끼. 인간을 포기하고도 그렇게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냐?"

이미 자신의 몸은 망가졌다.

죽은 척하고 루시퍼를 보내더라도 살아날 수 없겠지.

그렇다면, 자신을 거둬준 밤의 황제님을 위해 루시퍼의 정보를 전달한다.

그게 아이리스 길드원으로서 마지막 일이었다.

조사원은 몰래 챙겨 온 아티팩트를 아이리스 길드의 비상연락망에 연결했다.

물론, 루시퍼는 인간이 꾸미는 짓 따위에 관심이 없었다.

그의 마력이 일렁거리는 것을 마안으로 파악했지만, 굳이 막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인간, 넌 신이라는 존재를 믿고 있나?"

눈앞의 인간은 자신을 마인으로 오해하고 있었다.

해명할 필요는 없었으니, 루시퍼는 마침 지금 고민하던 문제를 인간에게 공유했다.

인간의 시선이라면 자신의 고민을 해결해줄지도 모른다.

"지옥에 초월적인 존재가 정말 있다면 이 상황을 설명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면 인간 세상의 신도 있을 텐데."

"닥쳐! 네가 아무리 발악해봤자다. 밤의 황제님이, 너희를 모두 죽여버릴 테니까…!"

"아니면 인간 세상의 신은 자신의 세상을 멸망하게 내버려 둘 생각인가? 지옥의 동화까지 얼마 남지않았다."

"무슨 개소리냐…! 그전에 네 정체를…. 크읍, 아아아아악!"

"이 곳을 조사하던 인간도 정보가 없는건가."

우득.

꾸드드드득.

조사하던 인간도 정보가 없다면, 인간에게 더 이상 기대할 것은 없다.

미천한 인간에게 자신의 정체를 설명해줄 시간은 없었으니,루시퍼는 남자의 가슴을 밟아 심장을 부순 뒤 자리를 떴다.

던전을 빠져나온 루시퍼는 허공을 바라봤다.

루시퍼가 활동을 재개한 지 몇 시간 만에 던전 3개를 조사했고, 의문은 하나도 풀리지 않았다.

앞으로 더 조사를 이어가더라도 자신이 가진 이 세계에 대한 의문은 풀리지 않겠지.

깊게 파고들어 봤자 답이 나오지 않는다면, 고민을 멈추는 게 맞는 일이다.

'비정상적인 강자 몇 명을 제외하면 내게 위협이 될만한 인간은 없다.'

게다가 원인을 모를 뿐, 모든 상황은 루시퍼에게 웃어주고 있었다.

이 세계와 지옥의 마력은 결이 너무나 달랐다.

지옥에서 인간을 경험한 루시퍼도 시간이 걸렸으니, 다른 인간들이라면 적응하지 못하는 게 당연한 일이겠지.

대부분의 인간들은 아직 지옥의 마력에 적응하지 못했다.

인간에게 극독이나 마찬가지인 검은 기둥의 위험성은 이상할 정도로 무시받고 있었다.

이것 또한… 누군가 그렇게 의도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호연. 그리고 릴리아나.'

루시퍼가 통제할 수 없는 변수는 단 둘.

자신에게 상처를 입혔던 인간도 고려해야겠지만, 마안에 읽히지 않는 저 둘보단 나았다.

허공을 바라보던 루시퍼는 발걸음을 옮겼다.

다음으로 향할 곳은 한국.

기본적인 조사는 대부분 마쳤으니,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아카데미에 있는 마법진을 탈취한다.'

지옥의 동화를 도우며 이호연을 죽이는 게 '신'이라는 놈이 원하는 것.

하지만 루시퍼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이호연을 생포해 마안을 막을 수 있는 이유를 알아내야 한다.

마왕의 자리. 그리고 그 다음까지 생각한다.

턱시도의 먼지를 털어낸 루시퍼는 쑥대밭이 된 던전을 뒤로하고 한국으로 향했다.

*

엘리스의 집 안.

루시퍼가 나타났다는 소식을 들은 아이린은 입술을 깨물며 발을 동동거렸다.

비상연락망을 돌렸으니 금방 스칼렛이 오겠지만, 그 사이에도 불안함은 어쩔 수 없었다.

루시퍼가 나타난 곳은 한국.

혹시나 엘리스에게도 그 손길이 닿을 수 있는 위치였다.

"세상이 우리를 방해하고 있어…."

루시퍼는 이호연을 신경쓰고 있었고, 하필 한국에 나타났다.

셋이 보낼 해피라이프를 방해하는 놈들이 너무나 많다.

아이린은 한탄을 하며 차를 준비했다.

루시퍼가 나타났다지만 바로 뛰쳐나갈 수 있는 건 아니다.

각 기관들에게도 정보를 공유했으니, 그 다음에 움직여야한다.

띵동.

울리는 벨소리에 뛰어나간 아이린 문을 열었고, 문 앞에 서있는 5명을 보며 눈을 깜박거렸다.

"안녕하세요. 아이린 씨."

"… 응?"

분명 비상 연락은 스칼렛에게만 했다.

그런데 문 밖에 서있는 건 5명.

아니, 여자들 4명은 그렇다 치자.

저 여자들과는 모든 정보를 공유했으니, 같이 오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혹시 몰라 그녀들의 차도 준비했으니까.

그런데 이호연은 왜 있는 거지?

'… 할 얘기가 얼마나 많은데.'

루시퍼에 대한 이야기도 그렇고, 엘리스에게 들은 정보도 있었다.

이걸 공유하고 싶었는데 이호연이 와버렸으니 계획이 틀어졌다.

이대로 손님들을 바깥에 내버려 둘 순 없었으니, 아이린은 손님들을 거실로 안내했다.

자리에 앉은 이호연은 세팅되어있는 커피잔을 확인했다.

자신의 자리 앞에만 없는 건 좀 의문이었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아이린 씨. 루시퍼가 나타났다면서요. 당장 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음… 그렇게 급한 일은 아니야. 소재지를 파악했지만 그 주변의 위험도 알아야 하고 기관의 협력도 필요해. 아, 맞아. 저번에 네가 부탁했던 루시퍼의 정보야. Wild Gladiator 하고 Strange nightmare가 서면으로 정리해줬어."

"아, 고마워요."

이호연은 아이린이 준 서류를 꼼꼼히 읽어 내려갔다.

대부분은 자신이 알고 있던 것과 같았지만, 혹시 몰랐던 정보를 얻을 수도 있으니까.

이호연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동안.

아이린은 여자들과 인사를 나눴다.

"오랜만이네. 다은아. 할 말이 많으니까 긴장은 풀어."

"… 아이린 씨. 알겠습니다. 아, 호연아. 나도 봐도 될까?"

"아이린. 우리도 봐도 괜찮지?"

"당연하지."

남다은과 레베카는 이호연의 서류를 같이 확인했고, 릴리아나도 그 옆에서 조잘거렸다.

당연히 스칼렛도 그 뒤에 붙으려 했는데, 어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크흠. 크흠…."

누가 봐도 자신을 봐달라는 것 같은 헛기침.

서류를 확인하려던 스칼렛은 고개를 돌려 아이린을 바라봤다.

아이린은 스칼렛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눈동자를 좌우로 돌렸다.

"…?"

아이린이 보낸 눈짓은 너무나 익숙했다.

입을 열 수 없는 상황에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사인.

달달 외운 아이리스 길드의 암호 체계는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었다.

스칼렛은 잠깐 이호연의 눈치를 살피며, 눈을 깜박거렸다.

'무슨 일입니까. 아이린 님.'

'스칼렛. 이호연 쟤는 왜 데려온 거야?!'

'그야 전투가 일어날지도 모르니까요. 가장 강한 전력을 데려오는 게 합리적이지 않습니까? 호연 님이 외부인도 아니고, 루시퍼에 대한 정보도 알아야 하니까요.'

'그렇긴… 하지만! 너희한테 할 얘기가 있었단 말이야. 이호연에 대한 중요한 정보라고.'

'그럼 미리 말해주면 좋지않습니까. 제가 나중에 틈을 만들테니 걱정하지마시죠."

끄덕끄덕.

의사소통을 마친 아이린은 표정을 가다듬었다.

그녀의 입장에선 아카데미에 협력을 구하러 간 엘리스가 돌아오기 전에 대화를 끝내고 싶었다.

"이것도 확인해볼래?"

"이건 뭐예요?"

"습격당한 길드원이 보낸 신호야. 아쉽게도 영상은 없지만…."

­ 인간, 넌 신을 믿고 있나?

루시퍼의 목소리.

끄아아악 하는 소리와 함께 녹음은 끊겼지만, 약간의 대화가 남아있었다.

신에 대해 말하는 의미불명의 대화였다.

"저 자식 혹시 사이비에 빠진 거 아니야? 지옥에도 사이비들이 엄청 많거든."

"… 그런 건 아니겠지."

릴리아나의 헛소리에 대답한 이호연은 루시퍼의 말에 대해 생각했다.

신 어쩌고 하는 걸 보면 저 자식도 마에스트로와 정보를 공유하는 건 확실하다.

하지만 중요한 정보가 없었다.

"아이린 씨, 그래서 루시퍼는 어디 있는 건데요? 위험한 거에요?"

"32번째 검은 기둥이야. 서울 외각에 있는 은신처를 찾았어."

"검은 기둥…."

지옥 출신인 루시퍼에게 홈그라운드나 마찬가지니, 당연히 거기 숨어있겠지.

"응. 여러 기관에 협력을 요청했으니 금방 답이 올 거야. 그 다음에 어떻게 움직일 지 생각해보자."

이호연은 눈을 찌푸렸다.

루시퍼와 전투가 일어난다고 치면 지옥의 마력을 모르는 대부분의 헌터들은 쓸모가 없어진다.

차라리 소수정예를 구성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지만… 정체를 모르는 괴수에 목숨을 걸만한 사람은 없을 것 같았다.

'루시퍼의 정보가 필요하긴 한데….'

차라리 자신 혼자라도 갔다 올까.

생각하고 있던 그때.

눈을 크게 뜬 아이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왜 그래요?"

"… 엘리스가 곧 도착한대."

"네?"

"생각보다 빨라. 아카데미에서 답장을 바로 준 모양이야. 어쩌지? 지금 오면 안 되는데… 으으음. 일단 집으로 돌아갈래? 내가 다시 부를게."

"…."

아이린이 저러는 이유도 이해가 간다.

엘리스는 이호연의 여자들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일분 일초가 중요하다.

느닷없는 상황이 당황스러운 건 이호연도 마찬가지였지만,루시퍼가 나타났는데 쓸데없는 데에 시간을 버릴 순 없다.

"아니요. 제가 엘리스한테 말해볼게요."

바로 옆 집에 살면서 언제까지 숨길 수도 없다.

지금 정도면 나쁘지않은 타이밍일지도 모른다.

정 안되면 그때라도 도망치면 되니까.

이호연은 침을 꿀꺽 삼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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