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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야겜에 빙의했다-502화 (502/648)

〈 502화 〉 502화. 나쁜 남자 이호연 (2)

* * *

이호연의 방.

레베카의 말을 들은 이호연은 정신이 빠져나간 것 같았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호감도가 100인 레베카에게 그런 말이 나왔다는 게 꽤나 충격이었다.

'틀린 말이 아니라 더 기분이 이상하네….'

말도 안되는 말이라면 헛소리라고 일축하겠지만, 틀린 말은 또 아니었다.

실제로 어느정도 공감하고 있었으니까.

"공장의 단순 작업… 와. 진짜 미치겠어 아주."

이호연은 침대에 누운 채 몸을 이리저리 비틀었다.

레베카의 말이 잊혀지지않고 가슴에 박혔다.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남이 보면 그렇게 느껴지는 걸까.

물론 노력과 성공이 비례하는 건 아니다.

그래도 나름 성의있게 행동했다고 생각했는데.

하지만 자신이 생각한 정성이 그녀들에게도 정성은 아니었다.

'… 일처럼 한 적도 있긴 하지.'

예쁜 여자는 좋지만, 이호연도 사람이다.

매일같이 즐거운 데이트를 즐길 텐션이 나오진 않는다.

가끔은 의무감에 한 적도 있었다.

'쓰레기처럼 한 적도 있고.'

아이린에게는 참 나쁜 짓을 많이 했다.

백아영도 그렇고, 루시나 루미에게도 잘못을 했다.

"다 아는데도 왜 이렇게 서운하냐. 쩝."

이호연은 레베카의 얼굴을 떠올리며 아쉬운 한숨을 내뱉었다.

확실히 공감은 하지만, 아무리 맞는 말을 들어도 인간인 이상 서운한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런 곳에서 포기하고 주저앉느냐, 혹은 이겨내느냐가 일류와 삼류를 가르는 지점이다.

본래 몸에 좋은 약은 쓴 법.

상남자이자 일류인 이호연은 여기서 무릎 꿇지 않는다.

그의 정신을 유지해주는 특전인 [뚜렷한 정신력].

이게 있는 한 이호연은 다시 일어설 수 있다.

멍하니 침대에 누워있던 이호연은 몸을 일으켜 방 안을 둘러봤다.

그의 눈에 보인 건 테이블에 올려져있는 타로 카드.

릴리아나가 효과가 좋다며 사온 것이다.

이호연은 별 생각없이 타로 카드를 집어 들었다.

겉에 그려져 있는 그림이 멋있어서 집어 든 건데, 그곳에 쓰여있던 문구가 이호연의 시선을 다시 빼앗았다.

­ 스스로를 속이고 있지는 않나요? 과연 당신은 최선을 다하고 있나요? 직접 자신을 심판해보세요.

마치 자신에게 말하는 것 같은 문구.

오기가 생긴 이호연은 타로 카드를 뽑았다.

"… 세 장이었나? 하나. 둘. 셋."

타로점이 세 장인 건 그도 알고 있었다.

이런 오컬트를 믿는 성격은 아니지만, 지금은 마음이 싱숭생숭해서 뭐라도 하고 싶었다.

"릴리아나한테 이런 걸 왜 돈 주고 사냐고 뭐라 할 처지가 아니네."

방에 들어왔는데 할 게 하나도 없어서 릴리아나가 두고 간 타로 카드를 하고 있는 상황이 참 씁쓸했다.

다음에는 잡동사니를 사도 뭐라고 하지 말아야지.

탁. 탁. 탁.

이호연은 카드를 세 장 뽑아 테이블에 내려놨다.

첫 번째는 천둥이 떨어지는 불타는 탑. 타워.

두 번째는 나무에 매달려 있는 남자. 행맨.

세 번째는 산양의 뿔이 달린 악마. 데빌.

"이건 무슨 뜻이야? 딱 봐도 나쁜 놈들만 나온 것 같은데."

이런 건 인터넷을 찾아보면 된다.

이호연은 스마트 워치를 실행해 타로 해석을 검색했다.

예상대로 해석은 금방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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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정운 : 이성을 육체적으로 탐하며 뜻밖의 상황이 펼쳐지지만, 나락으로 떨어지며 아무런 진전이 없어진다.

­ 사업운 : 큰 이득을 취하려다가 되려 원래 계획하던 일까지 망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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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랄하네 진짜. 이딴 카드 다신 하나 봐라"

이호연은 타로를 집어던지고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괜히 기분만 나빠졌다.

역시 자신과 오컬트는 결이 맞지 않는다는 걸 다시 느꼈다.

"방에 컴퓨터라도 놓을 걸 그랬나."

이호연은 안좋은 결과가 나온 타로를 머리에서 지우고, 텅 빈 방을 둘러보며 입맛을 다셨다.

생각해보면 웃기긴 하다.

하루 종일 게임만 하던 삶이었는데 이 세계에 오고 나서는 방에 게임기 하나 없다니.

바뀌어도 너무 바뀌긴 했다.

자신도 하루 아침에 이렇게 바뀐 게 신기할 정도였다.

"일단 타로카드는 치우고… 어떻게 할지 생각 좀 해봐야겠네."

이호연은 바닥에 널브러진 카드를 주우며 생각했다.

원래는 오늘 밤에도 빅토리아 공원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가짜 던전 마법진을 실행하기 전 까지는 매일 준비를 해야 하니까.

'오늘은 쉴까.'

몸 상태도 그렇지만 가장 큰 문제는 이호연의 멘탈이었다.

레베카의 충언을 들은 오늘은 도저히 나갈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사실 이것도 남 탓을 하려면 얼마든지 가능했다.

이 세계의 신이 이호연에게 요구한 건 최대한 많은 여자를 공략하라는 것.

그는 그 요구치를 정확히 말해주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이 사단이 난 것이다.

애초에 몇 명이라고 정해놨으면 이럴 일도 없잖아.

'… 이런 생각이 날 피폐하게 만드는구나.'

이호연은 고개를 휘휘 저었다.

그 일이 어떻게 일어나든, 책임을 남에게 돌리는 게 문제다.

자신의 행동에서 일어난 일은 일단 자신이 책임을 져야한다.

게다가 만에 하나 그게 신 때문이라도, 이미 일은 일어나버렸고 신은 도와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해결할 방법을 찾는 데 힘을 쏟는 게 맞겠지.

'운명….'

사실 이호연이 하렘을 어렵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원작에 하렘 엔딩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호연의 행동은 원작의 정보를 따르는 게 대부분이었다.

모든 히로인들을 그렇게 상대했으니 더더욱 그랬다.

성격이나 행동은 원작과 똑같으면서 하렘 엔딩만 가능하다는 게 말이 안되잖아.

'하지만 아이린의 마음을 바꾸긴 했어.'

운명에게 강하게 잡혀있던 아이린이 마음을 돌렸다.

어느새 엘리스와 관계가 개선된 것도 모자라 다른 여자들과 친분을 나누고 있었다.

모든 건 바뀔 수 있고,원작에 존재하지 않는 하렘 엔딩도 가능하다는 것도 증명되었다.

그 방식을 가짜 던전 계획이라는 것으로 너무 무리하게 만든 건 아닐지조금 더 생각을 해보는 게….

끼이익.

"… 응?"

그때, 고민하던 이호연의 방 문이 열렸다.

빼꼼. 하고 고개를 내민 붉은 머리.

이호연을 보며 눈을 깜박거리는 게 꽤 귀여웠다.

"애기 아빠. 들어가도 괜찮을까?"

"레베카 씨? 아… 들어오세요."

무슨 일이 있는 걸까 고민해봤는데, 오늘 밤은 레베카의 차례였다.

임신을 하고 싶어 하는 그녀는 소중한 기회를 날리기 싫었을 거다.

그러니 약간 어색한 상황에도 꿋꿋이 찾아온 거겠지.

이호연은 문을 열고 레베카를 맞이했다.

사실 레베카의 말이 아직도 기억나지만, 굳이 티를 내진 않았다.

"… 스칼렛, 넌 뭐야?"

"크흠. 안녕하십니까…."

하지만 그 뒤에 따라온 금발 머리까지 모르는 척 할 순 없었다.

이호연은 레베카의 뒤에 쪼르르 따라붙어온 스칼렛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스칼렛은 왜 여기 있는 거지? 오늘은 레베카의 차례였는데.

"저희가 너무 심하게 말한 것 같아서요. 호연 님을 좋아한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왔습니다."

"… 근데 왜 그런 차림으로?"

이호연은 둘의 차림을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몸에 딱 달라붙어 몸매를 드러내는 검은색 원피스.

이상하게 천을 곳곳에 아낀 원피스사이로 하얀 피부가 보였는데, 오히려 전부 보여주는 것보다 야했다.

"애기 아빠가 슬퍼할까 봐 달래주려고 그렇지. 이리 와."

레베카는 자연스럽게 침대에 앉았고, 스칼렛도 그 뒤를 따라 이호연의 옆 자리를 차지했다.

자연스럽게 무릎 위에 손을 올리는 게 이제는 약속처럼 굳어졌다.

침대에 앉은 레베카는 미처 치우지 못한 타로 카드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저건 뭐야? 타로 카드? 혼자 하고 있던거야? 설마 점이라도 치고 있었어?"

"… 아무것도 아니에요. 신경 쓰지 마세요."

"의외로 저런 걸 신뢰하셨군요. 귀여운 부분도 있네요."

"아무것도 아니라니까."

이호연은 익숙하게 자신을 놀리는 둘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예쁜 여자 둘이 야한 옷을 입고 있는 건 확실히 힐링이 되었지만,자신을 위해 무리하게 텐션을 높이는 게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쓴웃음을 레베카는 곧바로 눈치챘다.

"역시 뚱해있네… 미안해. 애기 아빠."

"괜찮아요. 사과하지마세요."

"먼저 말해놓고 이런 말 하는 것도 웃기지만, 그럴 의도로 말한 건 아니야. 혹시 원망할 거면 스칼렛 양을 원망해줘. 나는 분위기에 탔을 뿐이야."

"… 레베카 님. 그렇게 빠져나가시면 안 됩니다."

"정말 괜찮다니까요. 덕분에 다시 생각할 기회도 생겼으니까요."

사실 갑작스럽게 들어온 팩트폭행이 당황스럽긴 했지만, 언젠가 맞을 거라면 지금이 제일 적기였다.

이호연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선 다른 사람의 의견이 필요했다.

성숙한 둘이라면 확실히 도움이 되겠지.

레베카는 이호연의 표정을 살피며 급하게 할 말을 생각했다.

"으음… 애기 아빠는 장점도 많은 사람이야. 착하고, 능력도 있고, 얼굴도 잘생겼잖아. 여자가 꼬이는 것도 당연하겠지. 저기… 아이리스 길드장처럼."

"레베카 씨. 어제부터 가만히 있는 길드장 님은 왜 자꾸 얘기하는거에요."

"… 그냥 갑자기 생각났거든. 왠지 미안하네."

이호연을 위로하려다보니 계속 다른 바람둥이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밤의 황제는 조금 다릅니다. 그 사람은 달콤함에 꼬이는 일벌을 내치치않고 전부 받아주니까요. 대신 일벌이 여왕벌로 올라오는 건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호연 님은 전부 여왕벌이니, 양과 질의 싸움일까요."

"스칼렛, 없어보이니까 제발 그런 말은 그만해."

아이리스 길드장이 바람둥이라곤 하지만, 엘리스와 아이린의 장인어른이다.

장인어른이 없는 곳에서 너무 욕을 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게다가 여왕벌과 일벌이라니. 사람한테 그런 비유는 좀 그렇잖아.

"호연 님은 꼬이는 게 아니라 직접 찾아가는 것 같긴 하지만, 저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음가짐?"

"예. 본래 여자라는 생물은 사랑이 필요한 법이니까요. 그걸 채우는 게 중요하겠죠. 어중간하게 대답을 미루기만 하면 안됩니다."

레베카와 스칼렛은 귀여운 동생을 상담하는 기분으로 머리에서 조언을 생각해냈다.

사실 여자가 많은 남자는 쓰레기가 맞지만… 둘 다 이호연을 좋아하고 있었으니 적당히 색안경을 끼면 어떻게든 조언을 해줄 수 있다.

"…."

이호연은 스칼렛의 말을 듣고도 입을 열지 못했다.

가슴으로 이해는 한다.

조금 더 진실하게 행동하고 사랑에 열과 성을 다하라는 뜻이겠지.

그 한 문장이 왜 이렇게 힘든 걸까.

이호연도 참 답답했다.

"애기 아빠. 이리 와. 키스해줄게."

"… 지금요?"

"응. 오늘은 내 차례잖아."

고민하는 이호연의 무릎 위로 레베카가 올라왔다.

애초에 위로는 몸으로 할 생각이었으니, 빨리 하는 편이 나아보였다.

생긋 미소를 지은 레베카는 그대로 이호연의 몸을 덮었다.

이호연도 무언가 말을 하려 했지만, 그전에 이호연의 상체를 눕힌 레베카가 키스를 이어갔다.

부드럽게 입술이 맞닿고, 서로의 혀가 입 안에서 섞인다.

엄청난 테크닉이 있는 건 아니더라도 레베카의 따뜻한 마음은 느껴졌다.

"후음… 쪽."

옆에서 스칼렛이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었는데, 이호연은 괜찮지만, 레베카와 스칼렛이 합의한 사항인 지가 궁금했다.

키스를 끝낸 이호연은 레베카의 몸을 지탱하며 스칼렛에게 물었다.

"스칼렛도 계속 있는 거야?"

"일단은 저도 위로 역할이니까요. 옆에서 감초 역할은 할 생각입니다."

레베카의 섹스에 스칼렛이 감초 역할이라니 이건 3P 아닌가?

그렇게 위로해준다면 팩트폭행도 환영이다.

스칼렛은 눈을 빛내는 이호연을 보자마자 고개를 저었다.

"그런 눈으로 보지마시죠. 정말 구경만 할 거니까요. 레베카 님과도 대화가 끝났습니다."

"… 이상한 눈으로 본 거 아니야."

이호연은 시선을 돌리며 레베카의 몸을 쓰다듬었다.

고민은 잠시 미뤄두고, 일단은 레베카의 위로를 받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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