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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야겜에 빙의했다-499화 (499/648)

〈 499화 〉 499화. 비밀스러운 일 (2)

* * *

참 좋았다.

임솔과 섹스는 완벽했고, 침대에 누워 임솔이 깨어날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었다.

첫경험인 여자는 그 후에 케어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혹시 시간이 남으면 백아영이나 만날까 고민하고있었는데… 상상하지도 못한 일이 터졌다.

문 틈으로 임솔과 섹스를 훔쳐보던 도둑고양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아.. 어디 간 거야."

대충 옷을 챙겨 입고 재빨리 병실 밖으로 나온 이호연은 주변을 둘러봤다.

백아영은 당연히 보이지 않았는데, 찾아보려 해도 병원의 구조를 잘 몰랐으니 어디로 가야 할 지도 알 수 없었다.

'룬의 결계.'

임솔의 병실에 들어오는 건 백아영뿐이지만혹시 모르니 룬의 결계를 두껍게 펼쳤다.

"일단은 나가보자."

임솔의 병실은 구석진 곳이라 사람이 돌아다니질 않았다.

이호연은 큰 복도 쪽으로 걸어간 뒤, 어딘가로 향하는 의사를 붙잡고 물었다.

"죄송한데, 혹시 성녀 님 보셨나요? 이 쪽으로 오신 것 같은데."

"네? 성녀 님 말씀이신가요? 아마 지금 담당 환자 진료 중이실 겁니다."

"아… 그럼 그다음에 갈 곳은 어디인 지 아세요?"

"아마 성녀 님의 개인실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미리 일정을 잡고 오신 겁니까? 성녀 님은 마음대로 만날 수 있는 분이 아닌데요."

"네네. 감사합니다."

이호연은 고개를 꾸벅 숙이며 백아영의 개인실이라는 단어를 기억했다.

임솔과 대화 중에 한 번 나왔었지.

분명 '병실과 가까운 곳에 아영이의 개인실이 있어서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온다.'라고 말했었다.

임솔이 저렇게 말할 정도로 가깝다면 굳이 다른 사람에게 묻지 않아도 금방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호연은 층 전체를 둘러본 뒤에 한 층 아래로 내려갔다.

"… 여기구나."

예상대로, 백아영의 개인실은 바로 밑 층에서 찾을 수 있었다.

[백아영 성녀 님]

­ 무단 출입시 처벌

백아영의 대기실은 구석이 아니었고 사람도 종종 돌아다녔다.

막상 들어가려니까 긴장되긴 했지만, 피할 순 없었다.

애초에 이 안에 없을 확률도 있으니 빨리 확인해야한다.

이호연은 마음을 단단히 먹고 문을 두드렸다.

똑똑.

"아영 씨. 안에 있어요?"

잠시 기다려봤지만 대답은 없었다.

"… 하아."

이호연은 한숨을 내쉬었다.

대답이 없다고 안에 아무도 없다는 뜻은 아니다.

미세하게 느껴지는 백아영의 마력.

그리고 조금씩 들리는 부스럭거리는 소리.

이호연의 날카로운 감각은 안에 사람이 있다는 정보를 전달했다.

모르는 척 하고 돌아가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그냥 들어갈게요. 죄송해요."

안에 백아영이 있다는 사실을 안 순간 그냥 돌아갈 순 없다.

드르륵.

이호연은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

타다다닥.

"아, 으아…."

백아영은 복도를 내달렸다.

응급 환자가 나타났을 때도 지금처럼 전속력으로 달려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이호연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몸을 가득 채운 오묘한 감정이 그녀를 움직이게 했다.

드르륵. 쾅!

개인실에 들어온 백아영은 문을 부술 기세로 닫은 뒤 곧바로 침대에 몸을 던졌다.

온몸이 간질간질한 이상한 감각.

백아영은 울상을 지은 채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으으…."

왜 한심하게 도망친 걸까.

지금 뭐하는 짓이냐고 쏘아붙이기라도 했어야 했나?

아니, 거기선 누구라도 도망쳤을 거다.

애초에 임솔은 자신과 동맹관계. 지금 뭐하는 짓이냐고 하는 것도 웃기다.

'… 그, 그런 음란한 섹스를 하다니.'

이호연이 다른 여자와 관계를 가지는 걸 어렴풋이는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봤을 때 그 충격은 말로 설명하기가 힘들었다.

그 점잖던 임솔이 앙앙 거리며 안기는 것도 너무나 어색했다.

이호연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당장 자리를 피해야 한다는 생각만 들었고, 아직도 두근거리는 심장은 잠잠해질 생각이 없었다.

"다음에 봤을 때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대하면… 괜찮을까."

백아영은 고개를 휘휘 저었다.

이미 서로 눈이 마주친 이상, 그런 일은 벌어질 수가 없다.

둘 중 한 명은 티가 날 게 분명했다.

높은 확률로 그건 자신이겠지.

'솔이한테도 그런 면이 있구나….'

좋아하는 남자에게 박히는 친구의 모습이 눈에서 계속 아른거린다.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를 빼앗긴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나빴다.

웬만한 취향은 받아줄 수 있는 백아영이지만, 아직 그런 쪽은 준비하지 못했다.

"… 짜증나아앙."

억울했다.

분명 자신이 먼저 이호연을 좋아했을 텐데.

하지만 이호연과 먼저 알게 된 것은 임솔이다.

저 관계가 만약 자신보다 먼저라면… 억울한 건 임솔일지도 모른다.

"으, 으읏…. 흑."

백아영은 자신도 모르게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조울증이라도 생긴 것 처럼 기분이 왔다갔다한다.

자기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백아영도 모르고 있다.

이 슬픈 감정을 잠재우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그걸 알 수가 없다.

똑똑똑.

­ 아영 씨. 안에 있어요?

"… 히익."

백아영은 자신도 모르게 숨을 참았다.

목소리의 주인은 이호연.

이렇게나 빨리 찾아오다니. 예상외였다.

이 시간이라면 임솔을 내팽겨치고 바로 달려온 거겠지.

'… 나가기 싫어.'

약간은 기뻤지만, 지금 이호연의 얼굴을 보기 싫었다.

'흡.'

백아영은 인기척을 죽인 채 숨을 참고 이불을 뒤집어썼다.

지금 이호연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상상도 안된다.

곧바로 침대에 몸을 던지느라 문을 잠가놓지 않은 건 치명적인 실수지만, 아마 이대로 있으면 이호연도….

"그냥 들어갈게요. 죄송해요."

드르륵.

"…."

"아영 씨?"

"…."

"하아."

이호연은 머리를 긁적였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는 백아영을 무시하고 나가는 방법도 있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대화를 해야 했다.

촤악­

"히익… 아, 아… 으, 으응. 안녕. 잠들어버렸네. 음…."

"…네. 그랬구나."

억지로 이불을 젖히자, 백아영은 하품을 하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눈 주변이 불그스름한 걸 보면 눈물이 나기 직전인 것 같았다.

이호연은 말없이 침대에 걸터앉았고, 백아영도 그 옆에 조용히 앉았다.

일단 얼굴을 마주하긴 했다.

변명을 하든 설득을 하든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하지만 지금 상황은 꽤 어색했다.

화를 내거나 펑펑 울거나 둘 중 하나일 줄 알았는데, 백아영은 긴장한 듯 눈을 깜박거리며 주먹 쥔 손을 무릎에 올린 채 정자세로 앉아있었다.

★ 히로인 상태창

[백아영]

­ [ 호감도 : 100 ] (+ 3.0)

­ [ 성욕 : 70 ]

­ [ 식욕 : 20 ]

­ [ 피로도 : 30 ]

현재 상태 : 무, 무슨 말을 해야 하지. 언제부터 했는지? 아니야. 그럼 밥은 먹었니? 그것도 이상한데….

[호감도 100 달성시 이호연의 애정을 갈구합니다.]

상태창을 봐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나마 아예 포기한 게 아니라 백아영도 무슨 말을 할지 고민 중이라는 점은 이호연도 안심할 수 있었다.

"… 아영 씨."

"으응? 호연아. 무, 무슨 일로 온 거야?"

백아영은 평소보다 훨씬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누가 보면 자기가 잘못한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니 더욱 죄책감이 들었다.

"임솔 교수님하고 있던 일, 다 봤죠?

"흡…."

기다렸다는 듯 몸을 파르르 떠는 백아영을 본 이호연은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렸다.

웃으면 안 되는 상황인 걸 알지만, 귀여운 걸 어떡해.

다행히 이호연에게 상황을 구분할 능력은 남아있었다.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은 뒤, 백아영을 빤히 바라봤다.

"으, 읏… 미안해요. 여보…."

"… 왜 아영 씨가 미안해요. 내가 미안한 것도 아니고."

"훔쳐볼 생각은 아니었는데. 그, 그냥 뭐하나 궁금해서… 놀라게 해주려고…."

고개를 숙이고 훌쩍거리는 백아영을 보니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이호연이 아무리 멘탈이 튼튼하다지만, 이 상황은 너무나도 가혹했다.

"… 하아."

여기서 강하게 나가는 방법도 있다.

아무리 그래도 다른 사람과 관계를 훔쳐보는 건 아니지 않냐고.

정색하고 말하면 통할 것 같은 분위기다.

… 물론 그러진 않을 거지만.

"여보. 뽀뽀."

"지, 지금은… 으, 쪼옥…."

이호연은 백아영의 뒤통수를 잡은 채 입술을 겹쳤다.

일단 흥분을 진정시킨 다음에야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았다.

"쪽… 쪼옥… 아아… 읏."

"이제 괜찮죠?"

"…."

백아영은 미소를 짓는 이호연을 보며 코를 훌쩍거렸다.

이호연의 얼굴을 보니 답답한 게 조금은 가시는 것 같았다.

"여보…."

"응. 괜찮아요."

토닥토닥.

이호연은 자신에게 안기는 백아영을 끌어안았다.

얼굴을 가슴에 비비적대며 꼼지락거리는 게 강아지가 주인에게 안기는 것 같았다.

잠시 백아영을 안은 채 기다리자, 백아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 솔이랑 관계를 물어봐도 괜찮을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으면요."

"혹시 나보다 솔이랑 먼저 한 건…."

"모든 걸 걸고 오늘이 처음이에요."

"거짓말쟁이."

백아영은 이호연의 몸을 살짝 밀어내며 눈을 찌푸렸다.

자신이 그 섹스를 봤는데도 그런 말을 하다니.

아무리 자신을 무시해도 그런 거짓말은 안 통한다.

"그, 그런 격렬한 걸 했으면서 어떻게 처음이야…."

"… 진짜예요. 저랑 교수님하고 대련 기억하죠? 거기서 제가 이기면 하기로 했거든요. 그래서 둘 다 죽을 기세로 싸운 거예요."

"아, 아… 그래서 그렇게 열심히…."

"네. 섹스가 좀 심했던 건 교수님이 하고싶은 걸 다 하게해준다고 해서…."

백아영은 그제야 둘의 대련이 왜 이리 치열했는 지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호연의 말을 듣자마자 좋은 가정도 하나 떠올랐다.

"그러면… 솔이가 몸을 준 건 약간 거래 같은 거지? 서로 마음은 없는 잠깐의 바람 같은…."

"…."

이호연은 입을 다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니지.

임솔은 자신을 원하고 있다. 백아영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아니면 안 된다고 말해온 여자다.

방금 첫경험을 하고 왔는데 거짓말을 하기는 쉽지않았다.

"흑… 여보…."

이호연의 표정을 본 백아영은 금방 우울해졌다.

임솔도 진심이라는 건 당연히 알고있었다.

거짓말이라도 지금만큼은 진심이라고 말해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 나쁜 사람.'

하지만 진심을 말해주는 게 기쁜 자신도 문제가 있었다.

백아영은 이호연에게 벗어날 수 없었다.

결국 그녀는 울상을 지은 채 이호연의 가슴을 때리는 수밖에 없었다.

"… 왜 여보는 여자가 많을까."

"여보…."

"여보는 왜 나한테만 있어주지 않는 걸까. 너무 슬퍼요."

자신도 모르게 찔끔 눈물이 났다.

이호연에 대한 서운함과 슬픔. 동맹이라고 말해놓고 혼자 서운해하는 자신에 대한 한심함과 찌질함.

이런 상황이 생긴 억울함.

여러 감정이 백아영의 마음을 아프게 만들었다.

"……."

울먹이는 백아영을 보니 차마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차라리 찾아오지 말 걸 그랬나 하는 후회도 생겼지만,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사실 이호연도 백아영에 대한 감정은 조금 특별했다.

모든 여자를 공평하게 좋아하지만, 백아영은 가장 먼저 호감도 100이 된 여자다.

봉사활동을 하며 쌓은 추억.

던전 실습에서 생긴 일들.

양호실에서 나눴던 관계들.

그녀와 추억은 하나하나 버릴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런 백아영이 우는 걸 보면, 이호연도 마음이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냥 다 놓고싶다.'

꾸역꾸역 지어낸 말을 하며 상황을 모면하는 것도 이호연에게 가해지는 스트레스 중 하나였다.

미루기만하다가 가짜 던전에 모든 해결을 맡기는 것도 그렇고, 이 답답한 상황이 너무나 싫었다.

충동스럽게, '한 명 정도는… 솔직하게 말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아영 씨."

잠깐의 고민 뒤에 이호연은 입을 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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