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8화 〉 498화. 비밀스러운 일
* * *
"성녀 님. 고생하십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실례가 안 된다면 잠시 응급진료 교육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이번에 저희 팀에 들어온…."
"죄송해요. 지금은 담당 환자 진료가 바빠서…."
"담당 환자라면…아앗, 임솔 교수님이셨죠? 죄송합니다!"
미소를 지으며 다가온 의료팀의 직원은 백아영의 말을 듣자마자 도망치듯 뒤로 돌아갔다.
까다롭기로 소문이 난 VVIP 임솔 교수의 악명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솔이가 그 정도는 아닐 텐데…."
백아영은 쓴웃음을 지으며 직원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의료팀의 인원들은 임솔을 두려워하곤 했다.
임솔의 성격을 아는 백아영이 보기엔 낯을 가리는 성격 때문에 괜히 틱틱대는 건데, 다른 사람이 보기엔 그냥 까칠한 vip겠지.
자신이 임솔 담당을 하겠다는 소리에 안심하는 직원들의 표정이 아직도 생생했다.
저벅. 저벅.
백아영의 하루 일과는 간단했다.
응급실에서 응급환자를 상대하거나, 오래 입원해있는 환자들의 건강검진이다.
다만 임솔이 입원한 이후부터는 달랐는데, 임솔은 VVIP면서도 다른 의사나 간호사들을 불편해했기 때문에 백아영이 전담할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백아영은 임솔의 치료에 전념할 수 있었다. 하루 종일 옆에 붙어서 재활치료를 하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다른 일을 도와주려고 해도 임솔의 담당이기때문에 시간을 오래 비울 수도 없고, 할 일이 없으니 시간이라도 떼우는 것이다.
의료팀 사람들도 그 편이 편하다고 해줬다.
저벅. 저벅.
백아영은 오늘도 구석에 있는 임솔의 병실로 향했다.
VVIP인 임솔은 병실 중에서도 제일 구석에 있었는데, 위치가 위치다 보니 사람의 발길도 거의 없었다.
'지금 쯤이면 한참 놀고 있겠지.'
임솔은 중환자지만, VVIP라서 면회 시간에 제한이 없었다.
즉 이호연과 얼마든지 시간을 즐길 수 있다는 것.
백아영은 이호연이 나올 때 까지는 휴식시간이다.
사실 면회 타임은 응급치료가 아닌 이상 방해하지 않는 게 불문율이지만…자신은 담당관이니까 괜찮다.
적어도 변명할 거리는 있다는 뜻이다.
"…."
다다닷.
주변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백아영은 임솔의 병실로 슬쩍 다가갔다.
백아영이 이곳에 온 이유는 간단했다.
이호연과 다른 여자가 같이 있는 걸 보는 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남자가 다른 여자와 무슨 대화를 하고,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가 너무나 궁금했다.
일종의 질투심. 혹은 시샘.
'근데 어떻게 들어가지?'
자신있게 문 앞까지 온 백아영은 새삼스럽게 자신이 담이 작다는 걸 깨달았다.
문 앞에 선 백아영은 조심스럽게 문에 마력을 흘렸다.
백아영의 전투 능력은 약한 편이지만 마력을 흘려 결계의 유무 정도는 파악할 수 있다.
물론 결계의 위치를 사전에 파악해야하지만, 임솔의 병실에 결계가 있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녀는 자신의 사생활을 노출하는 걸 극도로 꺼려했다.
혼자도 아니고 남이 면회까지 왔다면 당연히 결계를 쳤겠지.
예상대로 마력이 막히는 걸 느낀 백아영은 혹시 몰라서 챙긴 의료도구들을 보며 생각을 이어갔다.
둘은 저 안에서 뭘 하는 걸까.
혹시 자신이 생각하는 그렇고 그런 짓까지….
'여보는 솔이랑도 야한 짓을 하는 사이일까?'
잠깐의 바람은 자신의 넓은 아량으로 용서해줄 수 있다.
특히 임솔은 자신과 동맹이기도 하고, 웬만한 일은 모두 공유할 수 있는 사이다.
하지만 마음먹었다 해도 직접 눈으로 본다면 어떤 충격을 받을지… 자신도 알 수 없었다.
'아니야.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지도 몰라.'
사실 평화롭게 대화를 나누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둘 다 마법에 진심인 사람들이니, 대련의 복기라도 하고 있겠지.
그럼 자연스럽게 챙겨 온 의료 도구를 내밀며 메디컬 체크하러 온 척하면 된다.
그러기 위해서 장비까지 준비했으니까.
'근데 무언가 하고 있으면 어쩌지…?'
자꾸 쓸데없는 고민이 든다.
이 앞까지 와놓고 이런 고민을 하다니, 자신의 소심함에 백아영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 있게 문을 두드리며 들어가 버릴까 생각도 했지만, 둘이 떠드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아니고 이런 두꺼운 결계가 쳐져있다면 그럴 수도 없었다.
백아영에게는 그럴 용기가 없었다.
'…작전상 후퇴.'
결국 백아영은 36계 줄행량을 펼쳤다.
그녀의 소심함도 이유였지만, 더 큰 건 도피였다.
위험을 감수할 바에는 피해버리겠다는 도피성 후퇴.
문 앞까지 와놓고 후퇴라는 한심한 선택을 했지만, 저 문을 열면 안 될 것만 같았다.
결국 백아영은 몸을 돌렸다.
흐으윽….
"…응?"
하지만 병실에서 새어 나오는 달콤한 목소리를 들은 백아영은 곧 걸음을 멈췄다.
사사삭.
닌자처럼 벽에 달라붙은 백아영은 병실의 문에 귀를 갖다 대었다.
방금 들은 목소리는 결계를 뚫고 나온 목소리다.
혹시나 자신이 잘못 들은 건 아닐까 했지만….
철퍽. 철퍽.
흐그, 흐그... 흡... 하앙...!
들린다.
살이 맞닿는 찰진 소리와 절조 없는 신음소리.
"히, 히익…."
병실에 있는 사람은 두 명이었으니, 흘러나오는 음란한 소리의 원인도 분명했다.
상황을 파악한 백아영은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다행히 이 주변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이건 천운이나 마찬가지.
갑자기 결계가 없어진 이유는 모르겠지만, 지금 상황은 꽤 심각하다.
한 두 명이 오는 건 백아영이 돌려보낸다고 쳐도 여러 명이 오기라도 하면 굉장히 복잡해진다.
당장 조치를 취하는 게….
하아앙…! 흐, 흐윽…아, 아아아앙!
"…."
병실 너머에서 들려오는 생생한 신음에 백아영은 입을 다물었다.
이래서 도망치려고 했던 건데.
친구의 저런 목소리를 들으면, 도저히 발을 뗄 수가 없다.
백아영은 조심스럽게 문에 손을 올렸다.
이호연은 섹스할 때 주의력이 약해진다.
결계가 깨진 것도 모른다면 이것도 모르겠지.
수많은 경험으로 이호연의 빈틈을 알고 있는 백아영은, 조심스럽게 병실의 문을 열었다.
스르륵.
환자가 자는 동안에도 조용히 건강 체크를 할 수 있게 만들어진 문은 소리 하나 내지 않고 부드럽게 밀리며 병실의 내부를 보여줬다.
두근. 두근.
이렇게 심장이 두근거린 적이 있었을까.
이호연에게 덮쳐졌을 때만큼이나 가슴이 벌렁거렸다.
아예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다.
임솔과 자신은 동맹관계였다. 동맹인데 자신만 관계를 맺는 것도 이상하다. 공평하지않다.
내심 그렇고 그런 관계라는 걸 예상은 했지만, 실제로 보는 건 다른 이야기였다.
"헉…."
백아영은 숨을 죽인 채 살짝 열린 문틈을 주시했다.
엎드려 있는 임솔과 골반을 잡고 허리를 움직이고 있는 이호연.
몇 번이고 자신에게 들어왔던 자지가 임솔의 몸에 들어가고 있었다.
보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저기 엎드려있는 임솔을 누가 까칠한 VVIP라고 생각할까.
짐승처럼 엎드린 채 이호연에게 몸을 맡긴 임솔은 지금 이 순간 하나의 암컷에 불과했다.
"깊은 건 어때요. 기분 좋아요?"
"흐, 흐윽…아, 천천히. 흡. 조금만, 천천, 좋아…아앙…!"
"이 쪽이 좋구나?"
"하아, 아, 아아, 으아아아앙!"
임솔과 이호연의 몸이 격렬하게 섞인다.
흐느끼는 임솔과 즐기고 있는 이호연.
빨려 들어가듯 임솔의 안에 박히는 두꺼운 자지.
백아영은 침을 삼켰다.
저게 자신의 안에 들어왔을 때의 감촉이 살아나는 것 같았다.
"아…."
임솔의 몸을 짓누르듯이 자지를 박아넣는 이호연의 모습은 두려울 정도였다.
그 밑에서 달콤한 신음을 흘리는 임솔도 마찬가지.
자신도 이호연의 앞에선 저렇게 음란해지는 걸까.
이상한 기분이 든다.
나쁜 짓인 건 알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임솔과 이호연의 섹스에 빠져든 백아영은 결국 자리를 피하지 않고 멍하니 둘의 관계를 지켜봤다.
*
허리가 아프다.
남자에겐 허리가 전부라는 말을 최근 들어서야 이해하고 있었다.
허리를 움직이는 동안에는 쾌감에 묻혀 아픔도 잊게 된다.
자세를 잘못 잡은 것도 알아챌 수가 없다.
사정하고 나서야 아픔이 몰려오니, 평소에 관리를 잘해놔야 한다.
"솔아. 솔아?"
툭. 툭.
이호연은 임솔의 뺨을 톡톡 건드렸다.
다행히 새근새근 숨 쉬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면 괜찮은 모양이다.
"처음인데 너무 강하게 했나... 아니야. 이 정도면 됐지 뭐."
하고 싶은 걸 다 하게 해 준다는 백지 수표가 있었는데 이 정도로 끝내준 것에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
만약 자신이 나쁜 놈이었다면 얼마나 창피한 짓을 시켰겠어.
야외 플레이나 방뇨 플레이.
주인님이나 오빠 플레이.
생각해놓은 건 많지만, 그도 양심이 있다보니 실행으로 옮기진 않았다.
"솔이도 기분 좋았던 거 같고…다행이네."
쮸부붑.
녹진한 보지에서 자지를 꺼낸다.
임솔은 몸을 움찔거리며 반응했다가 다시 편안한 표정으로 숨을 쉬었다.
따악.
침대를 더럽히는 섹스의 흔적을 지운 이호연은 임솔의 음부에서 새어 나오는 정액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나중에 피임 마법도 알려줘야지.
그래도 임솔은 임신하고 싶다고 달려들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혹시나 레베카나 백아영처럼 달려들진 않을까 고민이었는데.
'이제 진짜 끝이네.'
모든 히로인들과 관계를 끝냈다.
이제 남은 건 하렘엔딩과 마왕 뿐.
가장 큰 벽 두 개가 남긴 했지만, 이제 부담은 조금 덜어도 되지않을까.
이호연은 화장실에서 손이라도 씻기 위해 자연스럽게 몸을 돌렸다.
"…아?"
"…히익."
그리고, 열려있는 문 틈을 확인했다.
그 사이로 보이는 익숙한 얼굴.
살랑거리는 흑발과 푸른색 눈동자.
오밀조밀하게 모여있는 동그란 이목구비와 새하얀 의복.
누가 봐도 백아영이었다.
'…어째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당신이 왜 여기 있어.'
하지만 곧 떠올렸다.
이곳은 병실이고, 백아영은 임솔의 담당의사다.
그녀의 직장이니까 당연히 여기 있는 게 맞겠지.
그렇다면 왜 결계를 치지 않았을까.
'결계를 안쳤다고?'
아니, 분명히 확인했다.
이호연은 베테랑이었다.
공공장소에서 섹스 중 결계를 치지 않는 초보적인 실수를 저지르진 않는다.
'…설마 섹스에 집중하다 보니 풀린 건가?'
이호연은 한숨을 내쉬며 눈을 찌푸렸다.
그 가능성이 제일 높겠지.
여자와 있을 때 집중력이 약해지는 건 자신의, 아니 이 '몸'의 버릇이었다.
눈앞의 여자에게 집중하느라 다른 것들에 대한 집중력은 이상할 정도로 떨어진다.
고치려고 해도 바뀌지않는 걸 보면 체질이라고 보는 게 맞겠지.
신경 쓰고 있긴 했는데, 결국 사달이 나버렸다.
"으, 으아…."
타다다닥.
백아영은 이호연과 눈을 마주치고는 파르르 떨더니 자리를 떠났다.
마치 호랑이를 마주친 초식동물 같아서 귀여웠다.
"… 이런 씹."
하지만 곧 이호연도 정신을 차렸다.
지금 가버리면 어떡하라고.
알몸으로 병실에 남겨진 이호연은 상황의 답답함에 욕지거리를 뱉었다.
이호연은 룬의 결계를 설치해 병실에 아무도 못 들어오게 만든 뒤, 곧바로 옷을 챙기기 시작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