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야겜에 빙의했다-473화 (473/648)

〈 473화 〉 473화. 실전 대련 (4)

* * *

­ 사장님. 크림 와플 하나 주세요.

­ 엄마. 오빠 대련은 언제 시작하는 거야?

아카데미 내부에는 자체적인 상가가 형성되어 있다.

오늘은 꽤나 큰 행사가 있었으니, 오가는 사람들이 더욱 늘어나며 상가에도 활기가 돌았다

방학이 끝나자마자 대목이 찾아온 상점 주인들에게는 웃음꽃이 피었고, 상가를 이용하는 손님들도 새로운 경험에 기뻐했다.

"역시 레베카는 능력녀야. 오랜만에 사람이 많은 곳 오니까 힘들긴 해도 나쁘지 않네!"

"으응. 나도 아카데미 안은 처음이야. 다은이가 있으니까 확실히 편해."

"네, 제가 안내해드릴게요."

그리고 상가를 걷는 5명의 여자들.

앞장선 남다은은 다른 여자들을 데리고 아카데미 내부를 안내했다.

본래 목적은 대강당에서 대련 구경이지만, 이호연의 대련은 가장 마지막.

사람이 많아 복잡하기도 했고 다른 사람의 대련을 볼 바에는 맛있는 거나 먹자는 릴리아나의 제안에 다같이 상가로 나왔다.

"기껏 나왔으니까 좀 재밌는 걸 하고 싶은뎅. 시청자들도 엄청 재밌을 거라고 했어."

릴리아나는 상가를 이리저리 구경하며 고개를 돌렸다.

아카데미 안으로 들어온 건 그녀도 오랜만이라 기분이 들떴다.

"릴리아나 님이 좋아하는 닭꼬치 가게가 저기 있습니다."

"오, 역시 스카웃이야. 가자!"

"언니. 나도 닭꼬치 먹어도 돼?"

"응. 언니가 사줄게."

"그나저나 아카데미 시설이 엄청나게 좋네. 애기 아빠도 그렇고 다은이도 그렇고 공부할 맛이 날 것 같아."

"세계 최고라고 하니까요. 프랑스에 있는 아카데미는 평범한 대학교 같았습니다."

레베카는 결계를 유지한 채 잡담을 하며 거리를 걸었다.

상가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레베카와 다른 여자들에게 시선을 두지 않았다. 그녀의 결계 덕분이었다.

귀찮은 관심을 받기는 싫었으니 바깥에 나올 때는 항상 룬의 결계를 치곤 했다.

총총총.

닭꼬치를 파는 가게로 다가간 릴리아나는 자신만만하게 닭꼬치를 주문했다.

"아저씨. 닭꼬치 줘."

"아, 생도 분이시군요. 무슨 맛으로 드릴까요?"

"으음. 셰프 추천으로?"

"알겠습니다."

"아저씨. 저희도 두 개 부탁드려요. 아, 스칼렛 씨랑 레베카 씨도 드실래요?"

"저는 괜찮습니다."

"나는 하나 줘~."

룬의 결계에는 인식 저하 마법까지 섞여있었으니, 상가 이용에도 무리가 없었다.

레베카는 닭꼬치를 물고 있는 릴리아나와 남다희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여기 있어요. 레베카 씨."

"고마워."

레베카는 남다은이 건넨 닭꼬치를 받았다.

나중에 아이가 태어나면 저런 느낌일까.

가끔 이해가 안 되는 행동을 하지만, 그것마저도 귀여웠다.

"여기 애기 아빠도 있었으면 좋을 텐데. 그치? 스칼렛 양."

"그는 바쁘니까요. 아마 대련이 끝난 뒤에도 오늘은 만나기 쉽지 않을 겁니다."

이호연이 바쁜 건 당연했다.

그는 점점 유명해지고 있었고, 아카데미에서도 제일가는 유망주였다.

대련이 끝나고도 주목은 이어지겠지. 아마 오늘은 만나기 힘들 지 않을까.

"의외로 같이 사는 게 손해 같기도 하고. 중요할 때 관심을 덜 받는단 말이야."

"저도 조금 더 신경 써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역시 그렇지? 뭐, 애기 아빠가 하는 일도 찾아야 하니까 우리도 할 일이 많지만. 아쉽긴하네. 맞아. 아이린 씨랑은 어떻게 되고 있어?"

"그날 이후로 연락은 자주 하고 있습니다. 무언가 정보를 찾으면 공유하기로 했는데 아직 성과가 없는 모양이네요."

"하긴. 바로 찾을 수는 없겠지."

레베카는 스칼렛과 대화를 이어가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닭꼬치를 먹는 릴리아나와 남다희가 귀여웠기 때문이다.

멍하니 둘을 바라보던 레베카는,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으, 으음...."

"릴리아나?"

평소처럼 이상한 소리를 하며 닭꼬치를 먹던 릴리아나의 표정이 굳기 시작했다.

그녀의 동공은 떨리고 있었고, 불안한 듯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고 있었다.

레베카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릴리아나에게 다가갔다.

"릴리아나, 무슨 일이야?"

"... 이상해. 너무, 너무 짙은 마력이...."

"마력...?"

마력이라는 단어를 들은 레베카는 룬의 결계를 넓게 펼쳤다.

그리고, 그제서야 이상한 흐름을 느꼈다.

정체불명의 마력을 따르는 사람들이 한 방향으로 걷고 있다.

마치 이곳에서 벗어나려는 것처럼, 방금까지 장사를 하던 사람들까지 무언가에 홀린 듯 상가 저 편으로 걸어갔다.

"이게 무슨. 잠시만... 어...?"

사람들이 향하는 곳의 정반대 방향.

그곳에서 검은 마력이 피어나고 있었다.

그 가운데에는 한 남자가 서있었다.

레베카는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걸 느꼈다.

이호연과 대련을 하며 지옥의 마력의 힘은 충분히 체험했다.

... 저 정도로 강하다면, 대체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 걸까.

레베카는 다가오는 검은 마력을 보며 침을 삼켰다.

*

마왕의 제1 후계자, 루시퍼.

그는 당당한 자태로 아카데미 내부를 걸었다.

귀찮은 일이 없도록 마안을 이용해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흩어지게 만드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인간 세상에서 루시퍼는 이질적인 존재였으니 당연한 처사지만, 지옥에서 받았던 경외의 시선이 없는 건 어색한 일이었다.

"이곳에 있는 인간들은 모두 약하군."

루시퍼는 깔끔한 검은 턱시도를 입고 있었다.

인간의 복장 중 가장 품위 있는 옷이 이 검은 턱시도였다. 마왕의 후계자인 자신이라면 당연히 이걸 입어야 한다.

­ 오빠. 나 저거 사줘.

­ 으, 으응? 아, 알겠어....

비록 약한 인간들이었지만, 인간 세상 구경은 나쁘지 않은 여흥이었다.

지옥과 인간 세상을 연결하는 건 루시퍼도 관심이 있는 주제였다.

처음에는 단순히 식민지로 삼을 예정이었지만... 마왕이 갑자기 칩거에 들어가고, 인간 세상에 떨어진 이후 그의 생각은 바뀌었다.

마왕성에서 느낀 자신의 무력함.

세상에는 자신의 마안을 막는 존재가 있었다.

마왕성의 마력은 그렇다치자.

하지만 인간 주제에 자신의 마안을 막다니?

루시퍼는 마에스트로가 보여준 이호연이라는 인간에게 흥미가 갔다.

하지만 이호연을 어떻게 찾아야 할지는 알지 못했다.

지금은 계획 없이 돌아다니고 있지만, 시간이 오래 걸린다면 지나다니는 인간이라도 사로잡아야겠지.

"... 음?"

거리를 걷던 루시퍼는 짙은 지옥의 마력을 느꼈다.

아카데미의 한편에 검은 기둥이 있었으니 지옥의 마력이 흐르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지금 느낀 건 조금 달랐다.

누군가 인위적으로 만들어놓은 것 같은 마력.

아카데미 곳곳에 지옥의 마력이 깔려있었다.

마치 지옥의 마법사들이 사용하는 마법진 같았다.

"이 수상한 것들은...? 이런 곳에 어떻게 마법이 있는 거지? 내가 모르는 지옥의 마법사가 있는 건가."

루시퍼는 흥미로운 것을 발견한 듯 미소를 지었다.

누군가 지옥의 마력을 이용하고 있었다.

그게 누구든,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겠지.

흥미로운 것들이 늘어날수록 그의 즐거움도 늘어난다.

지잉­.

루시퍼의 마안이 붉게 빛났다.

모든 것을 읽어내는 루시퍼의 마안은 자신이 가야 할 길마저 읽어낸다.

이호연이라는 남자를 찾기 위해 왔지만, 그 남자만큼 흥미로운 것을 찾아버렸다.

조금 더. 조금 더.

루시퍼는 지옥의 마력을 감지하는 데에 신경 썼다.

의문의 마법은 그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그리고.

결국 찾아냈다.

"...... 칼리오페?"

자신이 찾던 마법과 다른, 전혀 기대하지 않은 선물.

집중하지 않았다면 느끼지 못했을 미약한 실의 존재를 인지했다.

'형제의 마력.... 릴리아나 칼리오페가 여기 있는 건가?'

루시퍼는 무언가에 홀린 듯 마력의 실을 쫓았다.

흥분, 설렘, 들뜸.

여러 가지 감정이 루시퍼의 가슴을 달구었다.

긴 삶 동안 지금처럼 신기한 기분을 느꼈던 적은 없었다.

설마 이렇게 빠르게 칼리오페의 흔적을 찾다니. 생각치도 못한 수확이다.

그의 기분이 마력으로 바뀌어 일렁였다.

릴리아나 칼리오페를 조금 더 빠르게 찾기 위한 마력.

루시퍼는 마력에 노출된 인간을 모두 밀어냈다.

하나둘씩 주변의 인간이 사라졌고,루시퍼는 차분하게 마력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를 발견했다.

"... 찾았다."

검은 머리와 보랏빛 눈동자.

총기 있는 눈과 날카로운 표정.

멀리서 봐도 알 수 있다.

자신의 형제이자 유일했던 경쟁자.

릴리아나 칼리오페였다.

그리움과 향수가 차오른다.

전쟁이 일상이던 시대. 마왕의 자리를 두고 치열하게 경쟁하던 그때가 떠올랐다.

저벅. 저벅.

루시퍼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릴리아나의 옆에 방해되는 인간이 많았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루시퍼의 감정이 고조되는 만큼 지옥의 마력이 주변으로 흘러나왔고, 스칼렛을 비롯한 다른 여자들도 눈치챌 수밖에 없었다.

"으, 으으...."

"... 미안해. 다희야."

털썩­

루시퍼가 가까워질수록 룬의 결계 내부에 있던 남다희도 루시퍼의 마력에 노출되었다.

남다은은 멍해진 눈으로 걸음을 옮기려는 남다희의 몸에 마력을 불어넣고, 잠시 기절시켰다.

동생을 뒤로 숨기며 루시퍼를 노려본 남다은은 조용히 말했다.

"혹시 아시는 분인가요? ... 저는 아니에요."

"제 지인도 아닙니다. 아마 적이라고 생각해야겠죠."

"으, 으... 머리 아파. 스카웃. 나, 조금 힘든데."

"릴리아나. 정신 차려. 아으. 이번엔 또 뭐야. 집을 나올 때마다 이런 트러블이 일어나면 평생 가정주부일을 할 수밖에 없잖아. 응?"

"...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그냥 가정주부로 합류하고 싶습니다."

"스칼렛이라면 환영할게. 아, 내 애는 내가 볼 테니까 걱정하지 마."

"네. 하지만 지금 상황은 벗어나야겠네요."

스칼렛은 정면에서 걸어오는 남자를 노려봤다.

훤칠한 키와 괜찮은 얼굴. 온화한 인상과 분위기까지.

온몸에서 불안한 기운과 살의를 내뿜고 있다는 것만 빼면, 나쁘지 않은 남자였다.

"릴리아나 칼리오페. 여기 있었구나. 내가 너를 얼마나 찾아다녔는지 아는 거냐. 묻고 싶은 게 아주 많다. 갑자기 사라진 이유는 뭔지. 어째서 인간 세상에 있는 건지. 아직 마왕의 자리를 포기하지는 않은 건지. 그리고... 음?

루시퍼는 마안으로 릴리아나의 몸을 훑었다.

그녀의 모든 게. 자신과 경쟁하던 그때와 같았다.

얼굴부터 몸에 있는 마력까지 같았....

"... 뭐지?"

루시퍼는 눈을 찌푸렸다.

아직 인간 세상에 완전히 융화되지 않았으니, 실수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루시퍼는 다시 한번 마안을 빛냈다.

하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그녀의 몸을 가득 채우고 있는 마력은 릴리아나 칼리오페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마왕성에서 자주 봤던 요망한 여왕. 서큐버스 퀸의 마력이었다.

그것도 평범한 마력이 아닌, 강한 금제였다.

"금제...? 릴리아나 칼리오페.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몸에 있는 금제를 네가 모르진 않을 텐데... 어떤 걸 봉인하고 있는 거지?"

"뭐, 뭐야. 시발. 이 미친놈들. 또 아는 척이야. 으, 으으...."

릴리아나는 두통을 참으면서도 지긋지긋한 감정을 느꼈다.

항상 자신들만 아는 말을 해대는 지옥 놈들은 이제 지긋지긋하다.

쓸데없는 채팅만 하는 시청자를 보는 것 같았다.

"무언가 문제가 있군. 괜찮다. 마침 이호연이라는 인간을 찾아야 했으니, 너라면 여흥으로 충분하겠지."

루시퍼는 지옥의 마력을 갈무리했다.

자신이 흥미를 가지고 있는 것은 딱 한 명.

릴리아나뿐이다.

그 주변에 있는 방해물은 제거해도 되겠지.

"이번에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는데, 또 애기 아빠 문제였어? 싸우기는 싫은데...."

"저도 함께하겠습니다. 레베카 님."

"... 저도요."

레베카와 스칼렛, 그리고 남다은은 동시에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상대의 정보는 없지만 느껴지는 마력으로 알 수 있었다.

어둡고 광포한 마력의 폭풍이 공기를 좀먹는다.

온몸의 세포는 도망치라는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남다은은 침을 꿀꺽 삼켰다.

곧 있을 대련은 이미 남다은의 기억에서 잊혀졌다.

지금 중요한 것은 눈앞의 상대에게서 살아남는 것.

'... 호연아. 내가 할 수 있을까.'

할 수 없다고 해도 해내야 한다.

남다은은 짧은 기도를 마치고 검을 뽑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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