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야겜에 빙의했다-471화 (471/648)

〈 471화 〉 471화. 실전 대련 (2)

* * *

"… 생각보다 늦었네."

이호연은 엘리스의 집에서 나오며 스마트워치를 확인했다.

예전 기억을 되짚으며 엘리스의 몸을 마사지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즐겨버렸다.

바깥은 이미 어두웠다.

아카데미가 끝나고 동아리방에 들렸다가 엘리스까지 만났으니 시간이 늦는 건 당연하겠지.

물론 몇 걸음만 걸어도 집에 도착하기에 시간은 문제가 아니었다.

'슬슬 준비도 해야겠네.'

하지만 이호연은 집이 아닌 다른 곳으로 향했다.

아카데미 주변에 있는 빅토리아 공원.

방학이 끝나며 개방되었던 빅토리아 공원은 검은 기둥이 발견됨과 동시에 폐쇄되었다.

이호연은 공원을 지키는 아이리스 길드원에게 당당하게 걸어갔다.

"안녕하십니까."

"이호연 생도 님. 늦은 밤인데 고생하십니다."

"네. 잠시 확인할 게 있어서요."

아이린과 협력을 하고 있던 이호연은 출입도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

물론 원래는 안되지만, 현장에서 규칙이 완벽하게 지켜지지는 않으니까.

'아이린하고 매일 같이 다닌 보람이 있네.'

안 쪽에 들어간 이호연은 고개를 들어 검은 기둥을 바라봤다.

어느새 성장이 끝난 검은 기둥은 다른 지역에 있는 검은 기둥과 비교해도 될 정도로 거대했다.

이 정도면 아카데미 전체의 마력을 차단하는 것도 쉽겠지.

"으음…."

이호연은 마력을 조금씩 흘리며 마법진을 준비했다.

지옥의 마력이 대부분인 마법진이기 때문에, 보안이나 안정성을 위해 마법진의 핵심은 이 곳에 설치하기로 했다.

가짜 던전을 소환하는 마법진.

계획 자체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지만, 사실 이제 와서 계획을 엎는 것도 이상했다.

마법진도 완성했고 감정 증폭이라는 기술도 생겼다.

준비는… 완벽했다.

'한 번에 못할 테니까 천천히 준비해야지.'

대형 마법진 설치는 본래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특히 아카데미 전체를 감싸는 가짜 던전 마법이라면, 아카데미 곳곳에 촉매도 만들어야 한다.

"오늘은 틀만 잡자."

이호연은 기둥 주변에 마법진의 틀을 잡았다.

들키지않도록 보안에 신경썼으니, 아이리스 길드원들에게 걸리진 않겠지.

몇 분간의 마법진 설치를 끝낸 이호연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아이리스 길드원에게 인사를 건네며 공원 밖으로 나갔다.

공원을 빠져나온 이호연은 곧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창문 밖의 불이 꺼지지 않은 걸 보니 아직 잠들진 않은 것 같았다.

'혹시 나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니겠지? '

늦게 돌아온다는 말을 하진 않았다.

괜히 불안해진 이호연은 빠르게 집으로 들어갔다.

"나 왔어."

현관을 열자 히로인들이 보였다.

커피를 마시는 스칼렛과 티비를 보는 릴리아나. 그리고 책을 읽는 레베카.

언제나와 같은 집의 분위기였지만, 뭔가 이상했다.

… 왜 밤중에 저러고 있는거지?

"다들 안 자고 있네? 뭐 하고 있었어요?"

"어, 으음… 그냥. 별 거 안 했어…."

"…?"

이호연은 자신의 눈을 피하는 남다은을 보며 의문을 느꼈다.

남다은한테 저런 어색한 분위기가 나온 적이 있었나?

하지만 이호연의 의문이 입 밖으로 나오기 직전, 스칼렛이 입을 열었다

"호연 님도 늦으셨네요. 엘리스 양의 집에서 나오는 건 봤는데요."

"내일 대련 때문에 확인할 게 있어서 잠깐 아카데미에 갔었어.

"그렇군요. 내일은 중요한 대련이니까요."

엘리스의 집에서 나오는 건 어떻게 알았지?

역시 자신을 기다린 걸까. 괜히 미안해진다.

"내일 뭐하는뎅? 나도 알려줘."

"빅토리아 아카데미에서 실전 대련이 있습니다. 거기 호연 님과 다은 양이 출전하죠."

"아, 나도 본 것 같아. 모든 생도가 참여하는 큰 행사라며?"

"네. 맞아요. 호연이가 마지막 경기에요."

"에엥… 모든 생도가 참여하면 방송을 못하잖아."

릴리아나의 방송은 아카데미의 생도인 척하는 게 컨셉이다.

처음부터 기숙사에서 하던 방송으로 유명해졌으니, 아직도 생도라고 알고 있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릴리아나, 그럼 우리도 놀러 갈까?"

"오… 싸움 구경은 재밌을 것 같아."

"잠시만요. 아카데미에 오려고요?"

여자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이호연은 갑작스러운 대화의 흐름에 당황했다.

갑자기 당신들이 왜 오는거야.

"왜? 애기 아빠가 싸우는 것도 볼 수 있고 좋잖아. 나도 아카데미 행사가 궁금하거든."

"일단 행사도 아니고, 애초에 구경은 관계자만 가능할 텐데요. 생도의 지인까지는 가능하니까 스칼렛은 그렇다 쳐도… 레베카 씨와 릴리아나는 신분이 없잖아요."

"나는 가짜 신분이 있어. 릴리아나는 목걸이로 데려가면 되고."

"…."

그러고보니 레베카한테는 수많은 위조 신분이 있었다.

"목걸이는 잘 안 보여. 나도 그냥 걸어갈래."

"그럼 그냥 몰래 들어가자."

"좋아 좋아. 내가 실력을 평가해줄게."

"… 으음. 뭐. 괜찮겠지."

약간 걱정되긴 했지만 아마 괜찮을 거다.

사고를 치겠다는 것도 아니고, 와서 노는 거니까. 레베카와 릴리아나는 불안해도 스칼렛이 있다면 둘을 관리해줄거다.

게다가 레베카의 결계라면 들킬 일도 없다. 임솔이라면 눈치챌 수도 있지만… 임솔은 레베카의 얼굴을 알고있다.

솔직히 별로 관심도 없을 것 같고.

"주변 노점에는 릴리아나 님이 좋아하는 닭꼬치도 많을 겁니다."

"오… 닭꼬치 좋아."

이호연은 기뻐하는 릴리아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재밌게 놀아라.

설마 별 일 있겠어.

*

수요일.

오늘은 교수 실전 대련이 있는 날이다.

남다은은 남다희와 놀아줄 겸 릴리아나 일행과 합류했고, 이호연은 혼자 대강당으로 향했다.

"와… 뭐 이렇게 복잡해."

수업에서 실전 비중을 대폭 늘린다더니, 진짜 제대로 준비한 모양이다.

이호연은 엄청나게 몰린 사람들 사이를 지나가며 대강당 안으로 들어갔다.

대강당에는 오전부터 대련이 꽉 차있었다.

수업을 대체해서 열리는 실전 훈련이었으니, 훈련에 참여하지 않는 생도들도 강당에 모여서 관람해야 했다.

"대련을 이렇게 어마어마하게 할 줄은 몰랐네."

이호연은 대강당에 붙어있는 커다란 벽보를 바라봤다.

벽보에는 오늘 대련하는 생도들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었다.

첫 날인만큼, 대련에는 유망주와 에이스들이 나섰다.

1학년 중에는 이호연을 제외하고 루시와 엘리스. 그리고 남다은까지.

'애들이 역시 강하긴 해.'

자신만큼은아니지만,히로인들도아카데미의중심이고유망주다.

실전대련에서기대받는건이상한일이아니다.

그때,이호연은벽에전단지를붙이고있는익숙한얼굴을발견했다.

"아,선배님."

"응?호연후배. 오랜만이네."

이호연은학생회의선배를보며인사를건넸다.

왜벽보를붙이고있나했더니,오늘대련은학생회가주도한다고했었지.

엄청열심히준비한모양이다.

"고생하시네요."

"에이.뭘.학생회장님이제일열심히시지."

이호연은머쓱하게웃는선배를보며문득생각했다.

'…생각해보면나도학생회홍보부인데.'

처음몇번은모델로열심히일했는데,그뒤로는일을전혀안했다.

물론이호연의입장에서는억울했다.

불러줘야일을하지.모델한테일을안주는데어떻게일을해.

그래도…이렇게다들열심히하는걸보면뭔가미안한 감정이 든다.

"좀도우러가볼까."

이래보여도학생회실에방도있는학생회멤버다.

이호연은한참대련을준비하고있는대강당의중심으로향했다.

생도들과인터뷰를하고있는기자들과 찾아온가족들을뚫고들어가니,찾던얼굴이보였다.

"응.그건그쪽에놔줘.아니,조금더생도들이름이잘보이게."

"알겠습니다!"

이호연은학생들을지휘하며대련장을정비하는문수린을발견했다.

…예쁘네.

역시사람은자신의일에몰두할때제일매력적이다.

­회장님은진짜예쁘지않아?

­당연하지.기자들도엄청나게와서사진을찍어갔잖아.

잠시 문수린을 구경하고 있었더니 주변에서문수린의외모를칭찬하는소리가들려온다.

맞는말이긴하지.그나저나기자들이사진을찍어간다라.

예전이었으면그것때문에스트레스를받아했을것같은데, 요즘은 스트레스를 안 받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찰칵.

"어?"

그때, 이호연의의 코 앞에서 셔터음이 들렸다.

눈을 돌려보니 바로 옆까지 다가온 문수린이 스마트워치로 이호연의 얼굴을 찍었다.

"깜짝이야. 수린 누나?"

"무슨 생각하고 있었어? 완전히 빠져있던데."

"누나 보고 있었죠. 예뻐서 놀라고 있었는데 순식간에 다가왔네요."

"에이. 거짓말."

"진짜에요. 아, 이거 먹으면서 하세요."

이호연은 오는 길에 산 커피를 내밀며 미소를 지었다.

★ 히로인 상태창

[문수린]

­ [ 호감도 : 100 ] ( + 1.0 )

­ [ 성욕 : 80 ]

­ [ 식욕 : 55 ]

­ [ 피로도 : 70 ]

현재 상태 : 일부러 여기까지 와줬구나. … 진짜 날 보고있었나?

[호감도 100 달성시 이호연에 대한 의존이 심해짐.]

"고마워. 역시 호연이 뿐이네."

"네. 준비할 게 많은가봐요?"

"으응. 아직도 많이 남았어."

"사실 저는 가벼운 훈련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사람이 많을 줄은 몰랐어요."

"성대하게 준비하고 있지. 이사장 님이 훈련이 아니라 행사처럼 보이게 해달라고 엄청 부탁하셔서.아무래도 아카데미의 정기적인 행사로 만들고 싶은가봐."

"아하…."

"오랜만에 아카데미로 관심이 쏠렸다고 기뻐하시더라."

어쩐지 단순한 대련이 아닌 것 같았는데, 어른의 사정이 있는 모양이다.

임솔과 대련이 전 세계로 퍼지길 원하진 않았는데… 어쩔 수 없겠지.

"아버님 상태는 어때요?"

"저번에 봤을 때랑 똑같아. 회복 중이셔."

이호연은 며칠 전, 병원에 갔을 때를 떠올렸다.

문성민의 상태는 백아영 덕분에 많이 호전되었다.

물론 아무리 백아영이라도 문성민을 인간으로 되돌리는 건 불가능했지만,그래도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정도로는 회복되었다.

그리고 문성민은 의식을 찾자마자 나와 대화를 요구했다.

­ 우리 수린이를 잘 부탁한다.

­ 네.

­ 나는 죗값을 모두 치를 생각이다. 네가 나 대신… 수린이를 지켜줘야 해. 미안하다.

­ 알고 있습니다. 걱정하지마세요.

­ 나는 과거를 후회하고 있지만, 너희는 그렇지않았으면 좋겠다. 다른 여자한테 눈 돌리지 말고, 오로지 수린이만을 사랑해주거라.

­ ………… 옙.

이호연은 그날의 대화를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괜히 또 미안해지네.

하필이면 아내만을 바라보며 복수를 위해 마인이 되어버린 문성민에게 그런 말을 들었다.

하렘을 만드는 자신은 기분이 이상해지는 게 정상이겠지.

이호연은 고개를 저은 뒤 문수린을 바라봤다.

"누나, 제가 도와드릴 일은 있어요?"

"응? 아니야. 호연이는 오늘 대련도 있잖아."

"그렇긴 한데 저도 학생회잖아요. 매일 놀기만 하니까 좀 양심이 찔리네요."

"앗… 맞아. 호연이도 학생회였지?"

… 수린 누나도 내가 학생회인걸 까먹은 걸까.

역시 너무 놀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럼 이 자료들 좀 의료팀으로 전달해줄래?"

"이건 뭐예요?"

"생도들의 신상이 정리된 자료야. 치료에 필요하다고 해서 작성했거든."

"알겠어요. 제가 전달할게요."

"응응. 대련도 힘내. 혹시 져도 너무 슬퍼하지는 말고. 내가 위로해줄게!"

"네. 지면 꼭 찾아갈테니까. 누나도 너무 무리하지는 마세요."

이호연은 다시 무대로 돌아가는 문수린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혹시 지더라도 수린 누나한테 위로받으면 되겠구나.

"근데 의료팀이면 아영 씨도 있겠지?"

가는 김에 인사라도 하자.

이호연은 자료를 챙긴 채 대강당 한 편에 있는 의료팀으로 향했다.

* * *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