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0화 〉 460화. 개학 (2)
* * *
새 학기가 시작하는 날.
생도들은 끝나는 방학에 아쉬워하며 아카데미로 돌아오고, 오랜만에 만난 생도들끼리 담소를 나누며 활기찬 분위기를 내뿜었다.
이호연의 집도 마찬가지.
아카데미에 가는 이호연과 남다은은 나갈 준비를 했다.
"다들 일하러 가는구나. 스카웃만 일하러가면 이제 이 집은 내 차지야. 집 소개 방송을 하겠어!"
"레베카 씨가 있잖아."
"앗, 그렇넹. 레베카는 왜 아직도 백수지?"
"… 그걸 나한테 물어보면 어떡해."
이호연은 릴리아나와 대화를 나누며 옷을 입었다.
오랜만에 입는 생도복.
알아서 관리되는 마법의 옷걸이에 걸어놓은 덕에 구김 하나 없었다.
이호연은 레베카의 변호를 위해 릴리아나에게 말을 이었다.
"레베카 씨도 곧 뭔가 하겠지. 언제까지 백수는 아닐 거야."
"레베카 님이라면 지금도 방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뭐? 정말?"
"예. 정확히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수입이 꽤 되는 모양이에요."
이호연은 스칼렛의 말에 내심 놀랐다.
방에서 노는 백수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고?
'… 생각해보면 판데믹에 있을 때도 돈이 꽤 많았다고 했지.'
쌓아놓은 인맥도 있고 돈도 많다.
그런 레베카에게 수입원이 있는 건 당연한 거 아닐까.
… 사실 아침마다 임신을 위한 체조같은 걸 하면 오해할 수 밖에 없다.
"내가 레베카 씨를 너무 무시했구나."
"레베카 씨가 얼마나 친절한데. 항상 다희도 잘 챙겨줘."
"그렇긴 하지."
어쩐지 마법진 연구가 끝났는데도 안보인다 했더니 일이라도 하는 모양이다.
이호연은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는 남다은과 집 밖으로 나섰다.
"잘 다녀왕~."
"다치지 말고 조심해서 가시길 바랍니다."
릴리아나와 스칼렛은 현관까지 따라와 둘을 배웅했고, 저택을 빠져나온 이호연은 머쓱하게 웃으며 남다은에게 말을 걸었다.
"이게 뭐라고 배웅까지 해."
"그래도 둘의 마음이 느껴져. 레베카 씨도 나오진 않았지만 축하한다고 해줬고."
"… 그러니까 그걸 잘 모르겠어."
개학이 축하할 일인가?
이호연은 아직도 자신이 뭘 축하받는 건지 이해하지 못했다.
"오랜만에 가는 길이야."
"그러게."
"다희도 같이 가면 좋았을 텐데."
"미성년자들은 혹시 몰라서 등교를 미룬다고 했었지?"
"응."
원인은 당연히 검은 기둥 때문이다.
아카데미의 생도들은 무슨 일이 생겨도 자기 보호가 가능하지만, 그 밑의 중고등부는 아직 수준이 부족한 학생이 많다.
게다가 아카데미가 멈추는 건 여러모로 고민이 필요한 일이니 나름 괜찮은 조치겠지.
남다은과 거리를 걷다 보니 서서히 생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익숙한 생도들.
아카데미에 다니며 한 번쯤은 본 얼굴들이다.
"아는 얼굴들이 보이지않아?"
"맞아."
"방학 때 너무 열심히 돌아다녔더니 아카데미 가는 게 어색해."
"나도 장 보러 다니기만 했어."
이호연은 남다은과 대화를 나누며 거리를 걸었다.
단둘이 걸으며 대화하는 것도 오랜만이다.
사람이 많은 집에서 남다은과 단 둘이 되려면 침대 밖에 없었으니까.
"호연아."
"응?"
"요즘 고민이라도 있는거야?"
"갑자기?"
"릴리아나 씨가 호연이가 악몽을 꿨다고 해서."
"… 아아. 무슨 말인가 했네. 아니야. 그냥 기분이 안 좋아서."
이호연은 주먹을 쥐었다.
미친 서큐버스 같으니라고.
모성애를 품은 가슴으로 안아줄 때는 언제고 그걸 얘기하고 다녀?
천사인 줄 알았는데 악마였구나.
오늘 돌아가자마자 복수해야지.
"… 나는 언제나 호연이 편이니까 걱정하지 마."
"고마워. 다은아."
남다은은 이호연의 고민이 궁금했다.
아무리 숨기려 해도 그의 표정에서 전부 티가 났으니 모를 수가 없었다.
'호연이도 나름대로 생각이 있겠지.'
그럼에도 남다은은 캐묻지 않았다.
자신의 도움이 필요하면 이호연이 직접 말해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전까지는 직접 캐묻지 않을 거다.
★ 히로인 상태창
[남다은]
[ 호감도 : 100 ] ( + 2.1 )
[ 성욕 : 65 ]
[ 식욕 : 30 ]
[ 피로도 : 35 ]
현재 상태 : 나한테도 말해주면 좋을 텐데… 무슨 일일까?
[호감도 100 달성시 이호연에 대한 사랑이 매우 돈독해짐.]
이호연은 상태창과 남다은의 옆얼굴을 보며 씁쓸한 감정을 느꼈다.
남다은의 맹목적인 사랑은 당연히 알고 있다
그녀는 이호연에게 모든 걸 바치기로 했고, 자신이 여자를 얼마나 들이든 허락할 가능성이 높다.
'… 하지만 남다은만 뺄 순 없어.'
레베카나 스칼렛, 그리고 릴리아나는 계획에 넣지않아도 된다.
그녀들은 이미 이호연의 사정을 대부분 알고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다은은 아카데미에 같이 있다.
'그렇다고 미리 말해주기에는 좀…."
혹시나 계획에 이상이 생길 수도 있다.
아카데미 전체를 납치하는 계획이다.
괜히 불안요소를 만들기는 싫었다.
완벽하게 처리하지 않으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
'… 쩝.'
"다 왔어. 호연아."
"응. 점심에 보자."
아카데미에 도착하고 남다은과 헤어졌다.
사실 루시 루미 쌍둥이와 남다은이 친해졌으니 이제 그럴 필요가 없지만… 여기서 헤어지는 건 남다은의 고집이었다.
혹시나 자신 때문에 이호연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길까 걱정하는 것이다.
드르륵
한 달만에 들어온 A클래스.
문을 연 이호연은 교실 안으로 들어갔다.
시끌시끌하던 교실의 생도들이 잠깐 고개를 돌리고, 이호연을 보자마자 눈을 크게 뜬다.
원래도 유명했지만방학 동안에 더욱 유명해진 이호연은 들어오자마자 모든 생도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 야. 이호연 왔는데? 자퇴한다며.
이상하다. 내가 아는 아이리스 길드 오빠가 자퇴하고 아이리스 길드로 간다고 했는데.
나는 임솔 교수님의 비서로 취직했다고 들었어.
엥? 성녀 님의 조수 아니었어?
진짜 잘생겼네. 짜증나게.
"…."
저런 헛소문들은 너무 많아서 신경도안쓴다.
지금까지 봤던 것 중에 제일 재밌던 건 고액의 연봉을 받고 중국으로 망명한다는 거였지.
그때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헛웃음만 지었던 기억이 난다.
"좋은 아침이야."
"으, 으응. 안녕."
저렇게 관심을 가져주는 데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것도 미안하니, 괜히 얼굴을 자주 봤던 생도 하나에게 인사를 해주고 자리로 향했다.
지정석이라고 할 수 있는 안 쪽에는 루시와 루미가 이미 자리 잡고 있었다.
며칠 전에도 봤지만 아카데미에서 보니까 기분이 새롭네.
'그리고… 엘리스는 어딨지?'
고개를 돌려 엘리스가 항상 앉는 자리를 확인했다.
일주일이나 연락을 무시한 엘리스의 상태를 꼭 보고 싶었다.
아이린이 괜찮다고 해서 걱정은 안했지만, 혹시 모르니까.
엘리스는 사람과 떨어져 있는 자리에 앉은 채 이호연을 흘겨보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간 이호연은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엘리스. 좋은 아침."
"… 응. 안녕."
역시 화는 안 났구나.
만약 정말 화났다면 아이린에게도 반응이 왔을 거다.
일주일간 연락을 안 받은 건 단순히 삐져서인가?
★ 히로인 상태창
[엘리스]
[ 호감도 : 96 ] ( +1.1 )
[ 성욕 : 80 ]
[ 식욕 : 20 ]
[ 피로도 : 30 ]
현재 상태 : 연락을 안 받았으면 집으로 찾아오기라도 해야지.
"…."
역시 그랬어야 했나?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서 내버려 뒀는데, 역시 여자의 마음은 너무 어렵다.
"오늘 집으로 가도 돼?"
"… 내일."
"알겠어."
엘리스가 고개를 돌리는 바람에 이호연도 쩝. 하고 입맛을 다신 뒤 자리를 떠났다.
그래도 이제 연락은 받아주겠지.
"이호연. 첫날이라고 일찍 왔네?"
"호, 호연 씨…!"
"좋은 아침."
이호연은 루시와 루미의 사이에 앉으며 인사를 건넸다.
루시루미 쌍둥이는 곧바로 이호연에게 말을 걸어왔다.
"너무 보고 싶었어요."
"맞아. 루미랑 얼마나 슬퍼했는데."
"우리 며칠 전에 데이트하지 않았어?"
"그래도요…."
루시 루미 쌍둥이는 이후로도 재잘재잘 말을 걸었다.
음.
이 익숙한 분위기.
마음이 편해지는 타이밍이지만, 이호연은 다른 생각을 했다.
'꿈이 잊혀지지가 않네.'
루시와 루미가 슬픈 표정으로 이호연을 떠나는 악몽이 떠올라버렸다.
꿈은 어디까지나 꿈일 뿐이지만 이렇게 가까이서는 생각이 날 수밖에 없었다.
집에서 처음 남다은과 스칼렛을 봤을 때도 이런 기분이었지.
지금이라도 둘이 자신을 매도하며 사라질 것 같았다.
'상태창.'
★ 히로인 상태창
[루시]
[ 호감도 : 100 ] (+ 1.4 )
[ 성욕 : 70 ]
[ 식욕 : 40 ]
[ 피로도 : 40 ]
현재 상태 : 같이 있으니까 좋다. 근데 얘는 아침부터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호감도 100 달성시 이호연과 루미가 함께 있을 때 성욕이 대폭 늘어남.]
★ 히로인 상태창
[루미]
[ 호감도 : 100 ] (+ 1.7 )
[ 성욕 : 87 ]
[ 식욕 : 30 ]
[ 피로도 : 10 ]
현재 상태 : 호연 씨가 고민이 있으신가…?
[호감도 100 달성시 루시와 있을 때 이호연에게 적극적으로 변함.]
'… 얘들은 대체 고민을 어떻게 눈치채는거야?'
둘의 얼굴과 호감도를 보니 불안감이 조금은 줄었다.
하지만 루시와 루미도 다른 여자를 허락할 것 같진 않았다.
결국은 가짜 던전 계획을 생각할 수 밖에 없다.
"그러고 보니 아카데미의 기둥 보셨어요?"
"응. 봤지."
"그래서 오늘 개학을 하냐 마냐로 말이 많았다고 해요."
"중요한 일이잖아. 아카데미 내부에 그 이상한 기둥이 나타났다고 하니까. 게다가 아직 작아서 커지면 더욱 위험하다고 하던데."
"…응. 그렇지. 위험하지. 맞아. 그러고 보니 그거 봤어? 새로 생긴 도넛 전문점."
"아! 저 봤어요."
이호연은 기둥에 대한 주제를 넘기기 위해 다른 주제를 꺼냈다.
도넛부터 시작해서 카페나 식당.
"그러고보니 호연 씨는 그 만화…."
"루미, 나도 아는 영화 얘기로 해줘."
"아, 으응. 그럼 영화로…."
책이나 게임 같은 일상적인 이야기로 넘어갔다.
루시 루미 쌍둥이와 잡담을 나누다 보니 마음에 차있던 고민도 조금은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드르륵.
"오랜만이다. 다들 표정이 좋구나."
얼마나 이야기를 하고 있었을까.
올백머리의 김진혁 교수가 A클래스에 들어왔다.
저 교수님도 오랜만에 보네.
"방학 동안 잘 쉬었나. 아카데미에 돌아왔으니 다시 긴장상태로 돌아오도록 해라."
김진혁 교수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손가락을 두드리며 허공을 조작했다.
"첫날부터 미안하지만, 일정을 안내해주마. 아카데미의 교육과정이 바뀌었어. 이번 학기부터 실전 수업이 대폭 늘어난다."
이호연의 눈앞에 홀로그램 모니터가 나타났다.
몇 달간의 일정을 쭉 지켜보다 보니, 눈에 걸리는 게 있었다.
'교수 실전 대련?'
교수 실전 대련이라는 항목이 매주 있었다.
이름만 봐서는 교수와 대련을 하는 수업 같은데.
"보다시피 교수와 대련을 하는 수업이 생겼다. 앞으로 매주 수요일에는 수업대신 교수와 실전처럼 대련하고 피드백을 받는 시간을 가진다. 모두가 보는 곳에서 하는 만큼, 자신의 대련이 아니더라도 도움이 될거다."
오, 그럼 수요일에는 수업 없는 건가?
그렇겠지. 개꿀 아니야?
앉아서 듣는 수업보다는 남이 싸우는 걸 구경하는 게 더 재밌는 법.
생도들의 반응은 대부분 괜찮았다.
"일정표에 모든 일정이 정리되어 있으니까 궁금한 건 따로 묻도록 해라. 그리고 아카데미에 나타난 검은 기둥으로 걱정이 많을 텐데, 위험성은 거의 없다. 하지만 지금도 조사 중이니 절대 가까이 가지 말도록해라. 두통이나 미열은 물론이고…"
김진혁 교수는 검은 기둥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위험성부터 지금 하고 있는 조사까지.
아마 아카데미에서 안내하라고 한 것 같은데, 검은 기둥을 직접 설치한 입장으로선 듣기가 힘들었다.
이호연은 김진혁 교수의 말을 대충 넘기며 먼 산을 쳐다봤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