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5화 〉 455화. 아이리스 자매 (6)
* * *
"… 응. 할 수 있어."
"뭐?"
"물론 엘리스가 원한다면 하지않을거야."
"그게 무슨 소리야. 언니…."
엘리스에 말에 대답한 아이린은 확실하게 마음을 정리했다.
어떻게 보면 처음부터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아이린의 목표는 언제나 엘리스였다.
이호연에게 마음이 간 적도 있지만, 이호연의 자지가 아무리 기분 좋더라도 엘리스를 포기할 수 없었다.
엘리스도, 이호연의 자지도 둘 다 아이린에게 필요했다.
그러니까… 같이 하면 된다.
엘리스가 결혼할 남자와 자신도 결혼한다면, 모든 일이 해결된다.
평생 엘리스와 같이 살 수 있고, 평생 엘리스와 같이 잠자리를 보낼 수 있다.
물론 아이리스 길드의 딸로서두 딸이 한 남자와 결혼하는 게 세간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이상할 수도 있다.
… 하지만 아무리 안 좋아도 친동생과 결혼하는 것보단 좋겠지.
아직 친동생과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 세상에서 태어난 엘리스는 이미 잘못된 교육을 받아버렸다. 아이린이 엘리스와 가장 가까이 지낼 수 있는 방법은 이것뿐이다.
"엘리스 네가 첫 번째여도 괜찮아. 언니는 무조건 엘리스 다음. 엘리스가 원한다면 언니는 다른 사람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거야. 평생 독신인 척 살 거고, 너희 둘이 모두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할 때도 진심으로 축하해줄 거야. 나는…옆에 있기만 하면 돼. 정말 그거면 괜찮아."
"… 그렇게 이호연이 좋은 거야? 옆에 있는 걸로 만족할 정도로? 대체 왜 그러는 건데? 내가, 내가 먼저 좋아하는 남자였잖아…."
엄마의 여성관을 물려받은 건 엘리스뿐만 아니라 아이린도 마찬가지.
아이린이 말하는 건 완전히 정실에서 물러나겠다는 것이고, 그건 엘리스에겐 추한 일이었다.
아이린이 이호연에게 이렇게 빠질 계기가 뭔 지 엘리스는 너무나 궁금했다.
"아니. 엘리스. 언니가 좋아하는 건…."
"잠시만요. 아이린 씨."
이호연은 눈을 크게 뜨며 아이린을 말리려 했다.
엘리스를 좋아한다는 선언을 해버리면 상황이 얼마나 꼬일지 상상도 안된다.
"이호연의 자지뿐이야. 이호연은 좋아하지 않으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언니는 잠자리에 끼워주기만 하면 돼."
"…."
이호연은 그냥 입을 다물었다.
저 미친 여자는 하필 단어를 골라도….
★ 히로인 상태창
[아이린]
[ 호감도 : 92 ] (+ 1.1)
[ 성욕 : 80 ]
[ 식욕 : 40 ]
[ 피로도 : 50 ]
현재 상태 : 무슨 일이 있어도…오늘 결판을 낼 거야.
'… 그리고 안 좋아한다고 하기엔 좀 높지 않나.'
아이린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지만, 한 달간 아이린의 호감도도 엄청나게 올랐다.
그래도 말하는 걸 들어보니 엘리스는 그 이상으로 높은 모양.
아마 호감도로 따지면 120 정도 되지 않을까.
엘리스는 아이린의 말에 눈을 찌푸렸다.
물론 그녀도 아예 공감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이호연의 자지는 엄청나니까.
자지뿐만 아니라 손길이나 목소리. 잘생긴 외모까지.
이호연은 잘난 부분이 한 두 개가 아니고, 엘리스 또한 이호연에 대한 사랑의 시작이 거기였다는 걸 부정하진 않는다.
…하지만 그래도 이상하지 않나?
"그게 더 이상하잖아. 사랑도 없이 몸만 원한다니, 그건 그냥…짐승이야."
"사랑이 없다니. 무슨 소리야. 엘리스. 너무나 사랑하고 있어. 그 대상이 이호연이 아닐 뿐."
"이호연의… 하아. 그곳을 사랑하는 건 사랑이 아니야. 언니. 언니는 삐뚤어져있는 거야."
엘리스는 자지라는 단어를 발음하기 싫어서 고개를 저었고,아이린은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엘리스는 아직도 오해하고 있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건 그런 게 아닌데.
"아니야. 엘리스. 내가 사랑하는 건, 처음부터…내 동생 엘리스뿐이었어."
"…응?"
"이호연이 아닌, 엘리스. 바로 너야."
엘리스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사랑이라니?
당연히 엘리스도 아이린을 사랑하고 있다.
하지만 아이린이 말하는 사랑은 가족으로서의 사랑이 아니다.
아이린의 분위기만 봐도 알 수 있다.
like가 아닌 love.
친언니인 아이린이 친동생인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한 것이다.
"…언니?"
"계속 좋아했어. 엘리스가 어릴 때부터. 우리는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 우리 자매의 아름다움을 감당할 수 있는 건 우리 밖에 없잖아. 당연한 일이야. 물론 이호연은 예외로 두고."
고개를 꼿꼿이 든 채 엘리스를 바라보는 아이린에게는 진심이 느껴졌다.
너무 갑작스러운 고백.
엘리스는 당황스러움에 눈을 떨었다.
"아니…갑자기 이상 하잖아. 너무 이상해. 언니. 우리는 가족이야. 가족하고 어떻게 그런…?"
그때, 엘리스는 이곳에 이호연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무리 그래도 남 앞에서 저런 이야기를 듣는 건 너무 창피했다.
엘리스는 고개를 돌려 이호연을 바라봤다.
하지만, 이호연은 의외로 놀라지 않고 담담한 표정을 짓고있었다.
'…결국 말했구나. 이제 어쩌지.'
당연하게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엘리스는 평온한 표정의 이호연을 보며 놀란 듯 물었다.
"이호연. 너도 알고 있던 거야…?"
"…응."
"어떻게…? 나는 모르겠어. 왜 둘 다 아무렇지 않아 하는 거야. 너는 어떻게 알고 있는 거고? 나한테는 왜 말 안해줬어?"
엘리스는 혼란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다.
안 그래도 머리가 복잡했는데, 점점 더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하아.
이호연은 뒤통수를 긁으며 입맛을 다셨다.
'이제 나도 모르겠다.'
아이린이 잡혔을 때부터 계획이 완전히 틀어졌다.
이제는 상황에 맞출 수밖에 없다.
이호연은 아직도 당황한 엘리스를 보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아이린 씨가 다가온 게 애초에 너 때문이니까."
"… 뭐?"
"너를 지키겠다고 나한테 찾아왔어. 엘리스 대신 자신이 희생하겠다면서. 난 애초에 오해인 걸 알았지만, 네가 없는 동안 다 알면서도 아이린 씨랑 관계를 가진 거야. 그러니까 너무 아이린 씨를 미워하지 마. 그냥 순수한 사람이야. 다 내가 잘못해서 그래.…내가 뭐든지 책임질게."
이호연은 씁쓸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너무 욕심이었을지도 모른다.
여자들에게 미움받는 게 무서워서, 너무 겁을 먹었다.
엘리스는 이호연을 믿고 있었다. 친언니와 바람을 피우고 있는데도 그 정체불명의 저주를 먼저 생각해줬다.
물론 호감도의 영향이 크겠지만, 결국 엘리스는 자신을 믿어줬다.
오히려 여자들을 믿지 못한 건 이호연이었다.
차라리 처음부터 솔직하게 말했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 하."
엘리스는 갑작스럽게 들어오는 정보들에 두통이 느껴졌다.
그녀는 이제 겨우 한국에 돌아왔다.
오랜만에 언니를 보고, 이호연도 보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아주 잠깐 의심이 생겼지만, 단순한 해프닝일 거라고 생각했다.
가벼운 테스트를 했을 뿐인데 거기 아이린이 걸렸고,그때부터 모든 게 망가졌다.
이게 뭐야.
아이린은 자신을 좋아하고, 이호연은 그걸 알면서 아이린과 만난 건가?
언니는 처음부터 이호연을 노렸던 게 아니라 이호연에게서 나를 지키려고 한 것이다.
물론 자신은 이호연에게 위협따위 받고있지않았지만….
그게 옳든 그르든, 평소의 언니처럼 엘리스를 생각한 일이다.
그렇다면 아이린을 이용한 이호연이 나쁜 놈인가?
하지만 이호연은 저주가 걸려있다. 여자가 다가오면 자연스럽게 방비가 약해질 것이다.
그럼 아이린이 도둑고양이가 아닌가?
사실 이호연에게서 지켜주기보다는 아이린도 엘리스를 노리고 있었다는 말이 맞다.
엘리스는 생각을 정리하지 못했다.
애초에 친언니에게 고백받는 상황에 평정을 유지하는 사람 따위는 없겠지.
그래도 이것 하나는 알 수 있었다.
엘리스는 이호연과 아이린을 좋아한다.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도 그건 변하지 않을거다.
하지만, 이호연은 사랑해도 아이린을 사랑하진 않는다.
언니의 마음은 무조건 거절해야 한다.
할 말을 정한 엘리스는 아이린을 바라봤다.
아이린은 아직도 눈을 파르르 떨면서 긴장한 채로 서있었고, 엘리스는 그 모습을 보며 말을 이었다.
"…언니."
"응. 엘리스."
"난 솔직히 모르겠어. 언니가 그러는 것도…난 이해할 수 없고, 내게 언니는 그냥 언니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야. 그러니까 언니의 마음은…받아줄 수 없어. 절대로."
아이린은 실망한 티를 숨기며 표정을 관리했다.
거절당할 건 당연히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언제 이 마음을 표현할 수 있을까.
엘리스가 다른 남자와 이어지고 행복하게 사는 걸 멀리서 지켜보는 것보단, 이호연이라는 남자를 사이에 두는 편이 낫다.
"…엘리스 너에게 뭔가 원하는 건 아니야. 난 그냥 너희 옆에만 있으면 돼. 평소대로 대하면 되는거야. 둘이 사랑을 나누든 꽁냥 거리든 상관없어. 대신 나도 조금만. 아주 조금만 나눠주면 돼."
"언니…. 하아, 호연아. 네가 얘기해봐. 설마 너도 저 이상한 말에 동의하는 거야? 우리 둘 사이에 언니가 끼어드는거잖아."
"…."
이호연은 둘을 보며 생각했다.
어차피 아이린이 모든 걸 고백한 순간, 더이상 정상적인 관계로 돌아갈 순 없다.
지금 상황을 흐지부지하게 끝내버리면, 엘리스와 아이린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생기겠지.
그리고 이호연은 엘리스와 아이린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한다.
그건 이호연도 바라지 않는 일이다.
"…엘리스."
"그래. 무슨 말이라도…."
"딱 한 번만 해보면 안 될까?"
"한 번이라니?"
"아이린 씨 말대로…. 세 명이서 딱 한 번만 해보자."
이호연은 자신이 생각해도 웃긴 말을 직접 내뱉었다.
하지만, 방법이 없잖아.
이호연의 입장에서는 아이린과 엘리스를 둘 다 포기할 수 없었다.
내기의 신을 만난 게 얼마 전이다.
모두를 위해서라도, 자신은 모든 여자를 데려가야한다.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내 얼굴을 봐서라도 한 번만 해보면 안 될까? 엘리스. 진심으로 하는 부탁이야."
이호연의 말을 들은 엘리스의 눈이 크게 떠졌다.
이호연은 미안한 감정을 느끼면서도 엘리스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결국 자신이 부담해야 한다.
엘리스가 아이린에게 감정을 쏟아내게 하고 싶지 않았다.
아이린에게 나쁜 짓도 많이 했으니, 이제 갚을 때가 됐지.
설령 경멸의 눈빛을 받더라도 자신에게 돌아오도록.
이호연은 최대한 쓰레기같은 말을 내뱉었다.
'또 도와주는 건가?'
엘리스의 옆에 있던 아이린도 이호연의 말에 깜짝 놀랐다.
이번에도 도와줄 거라고는 상상도 안 했는데…. 저런 걸 직접 자신의 입으로 부탁할 줄이야.
아이린은 중요한 순간에 자신을 도와주는 이호연에게 감사를 느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동생의 반응을 살폈다.
"하아…."
엘리스는 손으로 눈을 가렸다.
그래.
이호연 저 남자가 변태에 미친놈인 건 알고 있었다.
요즘 조금 덜해졌다 싶었는데, 똑같구나.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원래 알고 있었으니 괜찮다.
3p?
그게 뭐 어쨌단 말인가.
이미 웬만한 일은 각오하고 있었다.
이호연의 여자 친구가 되기 위해선 야한 속옷에서 끝날 거라고는 상상도 안 했다.
이호연이 그런 남자가 아닌 건 알지만, 온갖 더러운 일까지 각오했다.
물론 아이린과 같이 섹스를 하는 게 그 이상으로 어려울지도 모르겠지만….
엘리스는 슬쩍 아이린을 쳐다봤다.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언니의 모습.
평소 자신을 챙겨주는 언니의 모습이 겹쳐보였다.
자신이 핀잔이라도 주면 사과하는 그 얼굴과 똑같았다.
… 솔직히 말하면 궁금하기도 했다.
아이린이 정말 자신을 좋아하는 것일까.
둘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아이린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현상 자체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가까운 친족 사이에는 감정적 거부감이 생긴다고 하는데, 어떻게 저렇게 맹목적으로 사랑을 말한단 말인가.
어쩌면…둘이 짜고 자신을 속이려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가능성은 적어도, 아예 배제할 순 없다.
아이린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게 엘리스에게는 그만큼 충격이었다.
그러니 같이 섹스를 하는 동안 감시를….
'…그냥 이호연이 좋아하니까 하는 걸로 할까.'
언니를 섹스하는 도중에 감시하다니. 그것만큼 이상한 말이 어딨을까.
엘리스는 쓸데없는 생각을 지워냈다.
그냥 직접 겪어보면 된다.
이호연이 성욕에 미친 놈이라 아이린과 함께 자신을 속였다면, 그때가서 화를 내면 된다.
그때는 절대 참지않는다.
무릎 꿇는 것 정도로 용서하지 않을 거다.
만약 아이린이 자신을 정말 사랑하고, 이호연이 그걸 도운거라면….
'정말 모르겠어.'
그때가서 생각해봐야겠지.
엘리스는 자신을 바라보는 둘을 보며,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