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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야겜에 빙의했다-453화 (453/648)

〈 453화 〉 453화. 아이리스 자매 (4)

* * *

이호연은 이미 문 밖의 마력을 인지했지만 그렇다고 상황이 바뀌는 건 아니었다.

침대에서 일어난 엘리스는 몸에 얇은 흰색 가운을 두르며 이호연에게도 똑같은 가운을 내밀었다.

고급 원단의 가운.

이호연이 주섬주섬 몸에 가운을 두르는 동안, 엘리스는 문 앞으로 걸어가 천천히 문을 열었다.

끼이익.

"읍. 으읍…."

사지가 묶인 채 입도 막혀있는 아이린은 문을 연 엘리스를 보고 당황을 숨기지 못했다.

그 뒤에는 이호연의 모습도 보였다.

저번에는 이호연에게 이런 추태를 당했는데, 이번에는 친 동생인 엘리스에게 당한 것이다.

창피함과 부끄러움. 수치. 치욕.

여러 감정들이 아이린에게 쏟아졌다.

쥐구멍이 있다면 숨고 싶고, 당장 신이 자신을 죽여준다면 죽고싶을 정도였다.

'저 상태로 몇 시간이나 있었던 걸까.'

프랑스에서 아이린을 사로잡았던 기억이 겹쳐진다.

이호연은 아이린을 동정하며 엘리스의 옆에 섰다.

"언니. 이게 무슨 짓이야?"

엘리스는 팔짱을 낀 채 손가락을 움직여 아이린을 묶은 마력 밧줄을 없앴다.

사실 몇 시간이나 잡아놓을 생각은 없었는데, 이호연과 섹스가 너무 좋아서 잠깐 아이린을 잊고 있었다.

살짝 미안함을 느끼긴했지만, 그렇다고 언니의 잘못이 없어지진 않는다.

"에, 엘리스…."

드디어 자유의 몸이 된 아이린은 엘리스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눈을 마주쳤다.

"하아…. 정말."

엘리스는 아이린을 좋아했다.

과거에는 몰라도, 지금은 충분히 자랑스러운 언니라고 생각했다.

그렇다 보니 웬만한 일은 넘어가겠지만… 이호연과 관계를 건드리는 건 곱게 넘어갈 수 없었다.

"왜 내 방을 훔쳐보려고 한 거야? 이호연이 온다고 내가 말했잖아."

"엘리스. 언니는 그냥…."

"설마 걱정해서 그랬다는 소리를 할 건 아니지? 나도 이제 어른이야. 언제까지 날 10살 취급하려는 거야?"

"그, 그런 게 아니야. 엘리스, 언니가 정말…."

"동생이 남자랑 만나는 데 그걸 훔쳐보는 건 언니가 생각해도 이상하잖아. 안 그래? 언니는 내 부모님이 아니야. 아니, 엄마나 아빠라도 내 방을 훔쳐보려고 하면 화낼 텐데, 언니가 뭐라고 나한테 참견이야."

"엘리스…."

아이린은 처음 보는 엘리스의 모습에 몸을 파르르 떨었다.

언제나 착하고 귀여운 동생이었다.

가끔 반항적이긴해도 그 모습마저 귀여웠다.

그런데 왜?

어째서?

자신은 그냥 엘리스가 걱정되어서 따라왔을 뿐이다.

이호연.

그 짐승에게 연약한 엘리스가 당하진 않을까.

혹시 자신처럼 억지로 범해지고 있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이었다.

… 아마도, 그게 맞을 거라고 생각한다.

"대체 언제까지. 언제까지 이런… 하아. 후우…."

아이린에게 감정을 쏟아내던 엘리스는, 숨을 고르며 감정을 진정시켰다.

이렇게 해서는 끝이 안 난다.

엘리스는 오늘 담판을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 언니. 응. 그래. 이건 내 잘못도 있다고 생각해."

"그게 무슨 말이야. 엘리스…."

"다들 나를 어린 애로 생각해. 엄마도. 아빠도. 언니도."

엘리스는 의외로 화가 나지 않았다.

그냥 이 상황 자체가 잘못되었다.

자신은 어린아이가 아니다.

하고 싶으면 할 수 있는 나이고, …남자를 고르고 싶으면 남자를 고를 수 있는 나이다.

엘리스는 가족의 인식을 깨트릴 타이밍이 왔다고 생각했다.

"나, 이호연과 정식으로 교제할 거야. 마음 같아선 전 세계에 기사라도 내고 싶지만… 지금 그러진 못하겠지?"

엘리스는 고개를 돌려 이호연을 바라봤다.

자매의 싸움을 구경하다 갑자기 시선을 받은 이호연은 살짝 당황했지만, 곧바로 말을 이었다.

"어, 음. 아무래도 조금 그렇긴 하지."

"좋아. 그러면 엄마 아빠한테만 말하면 되겠지. 그 정도만 해도 세계의 유력인사들은 다 알 테니까."

"아…."

아이린은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 같았다.

자신이 그걸 막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데.

엘리스와 이호연의 관계를 끊고 싶었다.

그래서 이호연에게 처녀를 바치고, 섹스에 적응하며 몸도 마음도 조교 당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엘리스가 저렇게 말해버리면,자신은 어떻게 하란 말인가.

"안돼… 엘리스. 그건 안돼…. 저 , 저 남자가 얼마큼 더러운 남자인지 알잖아. 근데 그런 건…."

"… 호연이를 욕하지 마. 언니. 이호연을 선택한 나를 욕하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한 번만 더 그런 짓을 하면 진짜 화낼거야."

"그, 그럴 수가…."

아이린은 억울함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저렇게 강하게 나온다는 건, 이미 이호연에게 빠져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즉, 이호연과 엘리스는 이미 연인관계였다는 것.

자신에게 처음부터 숨기고 있었다.

'친구 관계라고 했으면서.'

아이린은 이호연이 원망스러웠다.

처음부터 그렇게 말해줬다면.

이미 엘리스와 연인관계라고. 건들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다면, 아이린의 대처도 달라졌을까.

'… 아니.'

그 때의 자신은 멈추지 않았을 거다.

오히려 더 귀찮게 방해하려 했겠지.

생각해보면 말로 하지 않았을 뿐, 둘의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둘은 마사지라는 이름의 섹스를 하는 관계다.

그런 상황에서 엘리스만이 피해자라고 판단한 자신의 실수.

이호연의 입장에서는 아이린이 눈엣가시였을 거다.

엘리스에게 눈이 멀어 허상을 쫓았다.

자신의 몸으로 이호연의 시선을 돌려보려는 것도 실패였다.

엘리스가 이호연에게 순종적이라면 이호연도 아쉬운 게 없어진다.

어차피 엘리스가 모든 걸 해주는데, 아이린이 모든 걸 해준다고 말해봤자 아이린을 고를 이유가 없으니까.

사랑하는 동생은 자신을 미워하고, 몸을 조교 해버린 남자에게는 동생에게 밀려난 상황.

아이린은 허망함을 느끼며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엘리스… 너무해. 너무해…."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이호연에게 다가가지 않았을 텐데.

그럼 그 쾌락도 몰랐을 텐데.

이제는 모든 게 엉클어 졌다.

사랑하는 동생에겐 연인이 생겼고, 그 연인에게 받은 쾌락은 잊을 수 없다.

이제 자신은 어떻게 해야하는걸까.

아이린은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엘리스와 이호연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도 잊었다.

아이린은 주저앉은 채 눈물을 글썽거렸다.

"왜, 왜 우는 거야. 언니…? 내가 남자랑 사귄다는 게 그렇게 슬픈 일이야?"

엘리스는 갑자기 울기 시작한 아이린을 보며 당황했다.

엘리스는 정말로 아이린에게 화가 나지않았다.

그저 아직도 자신을 어린아이라고 생각하는 인식 자체가 짜증 났을 뿐이다.

동생을 사랑하는 언니의 심한 과보호.

그 과보호가 너무 심해서 나도 이제 다 컸다고 말했을 뿐이다.

그게 눈물까지 흘릴 일인가?

동생의 성장에 대한 기쁨의 눈물이라기엔 너무 서글픈 표정이었다.

엘리스는 일단 바닥에 주저앉은 아이린에게 다가갔다.

"언니. 언니… 왜 그래. 내가 너무 심하게 말한 거야? 상처받았다면 미안해."

"엘리스… 내가 미안해. 정말 미안해…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무슨 소리야 정말…."

엘리스는 당황하며 아이린을 끌어안았다.

이 정 많은 언니가 내 말에 상처라도 받은 게 아닐까 걱정이었다.

이호연보다도 자신을 챙겨주는 게 아이린이라는 건 엘리스도 잘 알고 있다.

"언니. 일단 뚝 그치고…."

아이린의 등을 쓸어내리며 별생각 없이 아이린의 몸을 훑었던 엘리스는,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집에서 입는 편한 복장인만큼 아이린의 옷은 매우 얇았다.

그런데, 다리 사이만 마치 오줌이라도 싼 것처럼 엄청나게 젖어있었다.

그게 오줌이 아니라는 것을, 경험이 많은 엘리스는 알 수 있었다.

'… 어째서?'

고민은 짧았다.

섹스 중간중간마다 결계가 약해질 때가 있었다.

바로 엘리스가 절정에 달할 때.

어떻게든 정신을 차릴 때마다 마나를 공급했지만, 그 사이에 엘리스가 관계하는 것을 보거나 들었을 수도 있다.

친언니가 자신의 섹스를 봤다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잠시.

엘리스는 이상함을 느꼈다.

아이린이 사과하는 모습.

'… 너무 어색했어.'

아이린은 바닥에 주저 않은 채 그럴 생각이 아니었다고 펑펑 울고 있었다.

마치… 이번 일이 아닌 다른 일을 후회하는 것 같았다.

"언니."

"응. 엘리스…."

"그러면, 내가 묻는 말에 대답해줘."

엘리스는 훌쩍이는 아이린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녀의 가슴에 불안한 감정이 스멀스멀 나타났다.

엘리스가 아이린에게 화가 나지 않은 이유는, 단지 과보호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문 앞에 설치한 함정 마법진은 당연히 아이린과 이호연의 관계를 의심해 설치한 것이다.

하지만, 마법진을 설치하던 순간에는 이호연의 확답을 받기 전이었다.

지금의 엘리스는 아이린을 의심하지 않았다.

'이호연이 아니라고 했으니까.'

엘리스는 이호연을 믿었고, 그렇기에 그가 아니라고 한 순간 아이린에 대한 의심을 지워냈다.

가장 큰 가능성이 아니었으니, 아이린이 마법진에 걸린 이유는 과보호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만약 그게 아니라면….

"… 언니. 이호연과는 아무 사이도 아니지? 확실하게 말해줘. 단 둘이 만나거나 잔 적은 없는 거지?"

"아…?"

아이린은 갑작스러운 질문에 자신도 모르게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했다.

놀람과 당황을 숨기는 건 아이린에게 쉬운 일인데도 하필이면 지금 실패해버렸다.

최대한 빠르게 수습하려 했지만, 이미 엘리스는 아이린의 진심을 읽었다.

아이린의 동공이 커지는 걸 본 엘리스는 고개를 돌려 이호연을 바라봤다.

"호연아. 너, 너…."

해명이 필요했다.

자신에게 아니라고 말했으면서.

설마 거짓말을 한건가?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이호연은 자신을 바라보는 엘리스의 시선에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둘이 잘 풀리는가 싶더니, 엘리스의 눈치가 너무 좋았다.

그래.

언젠가 이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물론 엘리스가 아이린에게 잡히는 건 전혀 상상하지 못했지만… 아이린과 자신의 관계가 엘리스에게 들켰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는 예전에 고민을 끝내놨다.

나쁜 놈 포지션은, 이미 쓰레기인 자신이 맡기로 했다.

"미안해. 엘리스. 내가 거짓말을 했어."

"너… 그게 무슨 말이야. 아니라고 했잖아. 아니라면서. 분명 아니라고…."

"… 미안. 전부 내 잘못이야. 아이린 씨는 잘못 없어."

이호연은 허리를 90도까지 숙였다.

전부 자신의 잘못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다.

들키기 전이면 몰라도 들킨 이상 해명할 사람은 필요하다.

'내가 희생해야지 어쩌겠어.'

만약 아이린이 희생한다면, 둘의 관계는 최악까지 다다른다.

하지만 이호연이 희생한다면, 시간이 걸릴 뿐 어찌어찌 복구할 수 있을 거다.

아이린과 엘리스의 관계도… 안 좋아지겠지만 최악은 아니겠지.

그러니까 직접 하는 게 맞다.

"… 하. 하. 하아."

기가 찬 듯 이호연을 바라보던 엘리스는, 고개를 돌려 아이린을 바라봤다.

아이린은 눈을 크게 뜨며 이호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남자가 왜? 같은 눈빛이었다.

엘리스의 시야에 방금까지 눈물을 글썽거리던 아이린과 이호연을 보며 놀란 아이린의 얼굴이 겹쳐졌다.

… 그랬구나.

자신이 없는 동안.

대충 어떻게 흘러갔는지 알 것 같았다.

"… 이 도둑고양이 같은 년이."

모든 원흉은 아이린이다.

엘리스는 이를 악 물고 아이린을 노려봤다.

"…?"

그리고 여전히 허리를 숙이고 있던 이호연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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