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9화 〉 449화. 방학의 끝 (6)
* * *
세계 곳곳에 정체불명의 검은 기둥이 솟아난 지 몇 주나 지났다.
당연히 각 국에는 비상사태가 선포되었고, 전 세계의 헌터들이 갑자기 나타난 기둥의 조사에 매달렸다.
기둥 주변에서 느껴지는 심한 두통과 마력 이상 현상은 강한 헌터도 피할 수 없었다. 조사 과정에는 많은 인력이 필요했다.
조사 과정이 힘들고 비밀스러운 만큼 이상한 소문도 퍼져나갔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검은 기둥에 엄청난 보물이 숨겨져 있다는 유언비어가 퍼져 세상 물정 모르는 일반인과 하급 헌터가 몰래 다가가 목숨을 잃는 사고도 있었다.
그 뒤로 엄중한 관리에 들어간 검은 기둥은, 오늘도 불길한 마력을 내뿜고 있었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처음에는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혼란스러웠던 사회가 거짓말처럼 진정되고, 모두가 검은 기둥이 있는 일상에 적응했다.
세계 곳곳에 몇 백개나 되는 거대한 기둥이 솟아나긴 했지만, 그중에는 바다에 솟아난 것도 있었고 깊은 산 속에 솟아난 것도 있었다.
바다 너머에 있는 나라의 전쟁이 일반인에게는 아무 감흥이 없는 것과 같다.
결국 검은 기둥은 일부의 문제였다.
해저에서 갑작스럽게 솟아오른 검은 기둥은 이번이 324번째로 보고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나타났던 검은 기둥과 차별점은 없지만, 긴장을 늦춰서는….
검은 기둥은 지금 이 시간에도 어딘가에서 솟아나고 있다.
그중에서 동해의 무인도에 나타난 검은 기둥.
그 앞에 한 남자가 서있었다.
"볼 때마다 기분이 나쁘다니까… 판데믹 놈들은 뭐 이런 걸 소환하냐."
불길한 마력을 풀풀 뿜어내는 검은 기둥 앞에 선 이호연은 표정을 구기며 중얼거렸다.
검은 기둥은 기본적으로 국가나 헌터 협회의 엄중한 관리를 받지만, 아카데미의 학생회장인 문수린과 아이리스 길드 1 팀장 아이린의 도움을 받으면 몇 번이고 관찰할 수 있었다.
이호연은 검은 기둥을 우두커니 바라봤다.
전 세계 헌터들이 검은 기둥에 대해 조사한 연구가 몇 개나 나와있었다.
사실 그걸 읽는 것만으로도 대부분의 정보는 얻을 수 있겠지만, 역시 직접 눈으로 보는 것보다 못했다.
지잉. 지이잉.
이호연은 가슴에 손을 얹은 채 이리저리 튀는 마력을 컨트롤했다.
확실히 검은 기둥의 주변에 있으면 마력이 느려진다.
흘러나오는 지옥의 기운. 직접 피부에 닿는 이 기분나쁜 에너지는 저항이 불가능했다.
조사결과 마인이나 괴수도 마력에 제한을 받는다고 한다.
자신까지 느려진다면 사실상 모든 능력자가 피할 수 없다고 보는 게 맞겠지.
듣기로는 지옥과 연결되어 있는 기둥도 있다고 하던데. 그것도 잠깐 연결되었다가 금방 끊어진다고 한다.
'아마 지옥의 동화가 점점 진행되고 있는거야.'
이 구조물이 지구의 마력을 점점 잡아먹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그 범위가 아주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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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 동화 반지]
▶ 전설 등급
▶ 정체불명의 불길함이 담긴 반지.
▶ 사용 시 지옥과 동화를 진행하는 검은 기둥을 소환합니다. 검은 기둥은 지옥의 기운을 내뿜으며 지구의 마력을 빨아들입니다. 기둥의 주변에 있는 인간은 제대로 마력을 사용하지 못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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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연에게는 내기의 신에게 받은 지옥 동화 반지가 있다.
가짜 던전 계획의 피날레가 되어줄 물건.
아이린의 도움으로 검은 기둥은 물론이고 이상 현상이 발생한 던전도 몇 번이나 들어갔다.
여러 경험과 연구로 가짜 던전의 완성도는 매우 높아졌다.
방학이 끝나기까지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마법진은 거의 완성되었지만, 검은 기둥과 조합을 테스트하기 위해 계속 검은 기둥에 방문했다.
혹시나 지옥의 기운으로 마법진의 발동이 안 될 수도 있으니까.
"… 익숙해지지는 않네."
혹시나 지옥의 기운에 계속 노출되면 익숙해지지 않을까 하는 기개도 있었지만, 아쉽게도 그렇진 않았다.
이호연이 검은 기둥을 노려보며 앞으로 행동을 고민하고 있을 때.
뒤에서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또각또각.
"… 이게 재밌는 거야? 왜 자꾸 보여 달라고 하는 걸까."
"재미는 없고요. 개인적인 연구입니다."
이호연은 언제나와 같은 연구 핑계를 댔다.
이것도 마법사의 특권이다.
'연구는 무슨.'
아이린은 이곳이 싫었다.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힘이 빠지는 곳을 뭐가 좋다고 허가가 날 때마다 오는 걸까.
마법사들은 역시 이상한 사람들이다.
특히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대답하는 이호연의 태도도 더더욱 마음에 안 들었다.
자신이 여기까지 직접 데려와줬는데, 감사하다는 말 하나도 없고.
"더 할 게 없긴 하네요."
이호연은 답답함을 털어내기 위해 기지개를 켰다.
방학 내내 돌아다니면서 정보를 모았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오늘로 검은 기둥의 방문도 마지막이다.
남은 건 계획의 시기뿐.
최적의 타이밍을 잡기 위해서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이제 가는 거야?"
"네. 슬슬 머리가 아프네요."
이호연은 고개를 휘휘 저었다.
지옥의 기운에 오래 노출되는 건 이호연에게도 딱히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 너희 집으로?"
"당연히 저희 집이죠."
"오늘 우리 집 비었는데."
"아이린 씨 집은 매일 비었잖아요."
"…… 그렇게 말하면 어쩔 수 없고."
이호연은 눈을 찌푸리는 아이린에게 다가갔다.
한 달간 며칠에 한 번 씩 몸을 섞다 보니 아이린과 꽤 친해졌다.
물론 이호연만의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침대 위에서는 예전만큼 적의가 없었다.
"농담이에요. 오늘은 아이린 씨랑 쉬러갈게요. 저 데려온다고 고생했는데."
"… 응."
집에 쉬러 가자.
너무나 노골적인 말이지만, 아이린은 거절하지않았다.
이호연은 눈을 피하는 아이린을 보며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
빅토리아 아카데미의 고급 주택가.
위로 올라갈수록 고급지고 넓은 저택이 나오는 이 거리의 안 쪽에는 엘리스의 저택이 있다.
혼자 살기엔 넓은 곳이지만, 아이리스 길드의 위상이나 여러 가지를 고려하다 보니 결국 엘리스 혼자 저곳에 살고 있다.
그 바로 옆 집에는 이호연이 살고 있는데, 스칼렛이 전 고용주였던 엘리스를 약간이나마 배려한 일이었다.
현재 그 배려는 고맙게도 아이린이 잘 사용하고 있었다.
"아, 아무리 그래도 여자 넷이랑 사는 건… 으, 으응…."
"… 그게 다 사정이 있다고 했잖아요. 다들 지낼 곳이 없어서 힘든 사람들이라고요. 응? 당신이 뭘 알아. 내가 이 세상에 얼마나 봉사하고 있는지 알아? 응? 아냐고."
"그, 그렇겠지… 알겠어… 잠시. 잠시만… 아, 아앙."
이호연은 엎드린 아이린의 위에 올라타 몸을 딱 붙인 채 허리를 움직였다.
몇 번이나 억울한 사정을 이야기했는데 알아들을 생각을 하지 않으니, 몸으로 교육시켜줄 수밖에 없다.
열심히 몸으로 교육하다보면 아이린도 인정하겠지.
"아이린 씨. 스칼렛한테 이상한 말 안 했죠?"
"아, 안 했다니까… 그 뒤로 본 적도 없어… 강효린 한국 지부장한테도 아무 말하지 말라고, 아. 아흐으윽…!"
"그렇게 하면 얼마나 좋아요. 우리 사이좋게 지내요."
"아으, 아… 아앙. 아흡…."
이호연은 절정한 아이린의 배를 쓰다듬으며 자세를 바꾸고 고민을 이어갔다.
여자 관계가 복잡해지면서 고민도 엄청나게 늘었는데, 아이린의 경우엔 엘리스다.
한 달간 열심히 몸의 대화를 나누며 아이린과 관계를 만들긴 했다.
하지만 엘리스가 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아직 그 것에 대해서는 제대로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이호연은 허리 움직임을 멈추고, 정자세로 누워있는 아이린과 눈을 마주쳤다.
"아이린 씨."
"으응…?"
"엘리스는 언제쯤 온데요?"
"… 글쎄. 아마 일주일 안으로 오겠지. 그리고 내가 엘리스 이름 꺼내지 말라고 했잖아. 차라리 조여달라고 말을 해."
"아니, 조이라고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 궁금해서 그래요. 아이린 씨한테도 말이 없었어요?"
아이린은 엘리스의 이름이 나오자마자 살짝 표정을 굳혔다.
동시에 보지가 꾸욱 조여왔다.
엘리스의 이름만 부르면 보지가 조여와서 섹스 중에 종종 쓰곤 했는데, 지금은 순수한 궁금증이었다.
"응. 그런 언급은 없었어."
"흐음. 뭐, 그럼 그렇다 치고. 엘리스가 오면 어떡할 거예요?"
"… 어떡하다니?"
"엘리스가 오면 우리 사이는 여기서 끝?"
"…… 그래야지."
"진짜요?"
꾸욱. 꾸욱.
이호연은 아이린의 양다리를 위로 치켜올리며 자지를 안 쪽으로 때려 박았다.
귀두로 자궁구를 쿡쿡 찌르는 자세.
아이린은 몸을 파르르 떨면서 대답했다.
"그, 그런 약속이었잖아. 이제 와서 왜… 아, 아흡…."
"아이린 씨도 알잖아요. 저 나쁜 남자예요. 아이린 씨가 없으면 너무 아쉽겠지만… 눈물을 흘리며 결국은 잊을 수 있거든요."
"… 눈물도 안 흘릴 거잖아. 넌 개새끼니까. 흑, 아ㅡ. 아응…."
이호연은 나쁜 말을 하는 아이린의 자궁을 몇 번 더 찔렀다.
옆구리를 톡톡 건드리며 젖꼭지를 입으로 빠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 아으… 제발. 그만, 그마. 아. 아…?"
"그만하라길래."
"…."
움직임을 멈춘 이호연은 불쾌한 표정을 짓는 아이린을 보며 천천히 몸을 숙였다.
클리토리스가 이호연의 하복부에 비벼질 정도로 가까이 몸을 붙인 이호연은 아이린의 귀에 조용히 속삭였다.
"그냥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지내는 건 어때요? 아이린 씨도 좋고. 저도 좋고."
"… 무슨 소리야."
"무슨 소리긴요. 처음 만났을 때랑 똑같이 돌아가면 되죠. 약속도 그냥 없던 일로 해요."
"너, 너… 또 엘리스를 건드리려고. 아, 아흐… 으, 음. 무으…."
이호연은 익숙하게 아이린의 뒤통수를 감싸며 키스로 이어갔다.
다행히 혀를 깨물지 않은 아이린은 천천히 혀를 엮어왔다.
"하아, 아이린 씨. 오케이라고 안 하면 안 싸줄 거예요. 빨리 오케이 해요."
"바보 같은 소리를 좀… 아, 하아… 그만해…!"
"큽…."
아이린은 양다리로 이호연의 허리를 감싸며 보지를 조였다.
한 달간 꽤 경험치를 쌓은 아이린은 이 정도의 테크닉은 쉽게 해낼 수 있었다.
'참기 힘든데. … 그냥 쌀까.'
이호연은 몰려오는 사정감에 한숨을 내뱉었다.
사실 이런 말은 애정표현이나 마찬가지.
어차피 이 정도로 아이린을 설득할 거라고는 기대도 안 했다.
아이린은 어떻게든 엘리스랑 엮을 생각을 했기 때문….
[띠리링]
그때.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엘리스의 저택의 문이 열리는 소리.
그리고.
저벅. 저벅.
누군가 올라오는 소리.
저 가벼운 발걸음과 마력은 누구인 지 알기 싫어도 알 수 있었다.
엘리스.
'왜 여기에? 아니, 그걸 생각할 때가 아니야.'
등에 전율이 느껴진다.
온몸에 돋는 소름.
바람피다 걸린 남자의 감정이 이런걸까.
이호연은 헐떡거리는 아이린에게서 자지를 빼내고 곧바로 몸을 일으켰다.
"하아, 하. 아, 가, 가버려. 아…. 아?"
"잠시만. 잠시만요. 아이린 씨. 큰일났어요."
"너, 진짜…. 왜 갑자기 빼는… 어?"
곧, 소리를 눈치챈 아이린도 눈을 크게 떴다.
*
띠리링
흥흐흥. 흥흥.
엘리스는 콧노래를 부르며 집의 문을 열었다.
한 달이 넘게 못 돌아온 집.
이호연에게 먼저 찾아갈까 언니에게 찾아갈까 고민하다가, 일단은 집에 와서 준비를 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마침 언니도 볼 수 있으니까.
오랜만에 보는 이호연에게는 최대한 예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엘리스는 현관을 열고 들어가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집은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프랑스에서의 특훈으로 강해진 엘리스는 예전보다 감각이 월등하게 날카로워졌고.
이상한 마력을 느낄 수 있었다.
… 집 안에 무언가 있다.
엘리스는 천천히 방을 올라갔다.
언니인 아이린의 방은 2층.
아이린의 방에는… 두꺼운 결계가 쳐져있었다.
'어째서?'
엘리스의 저택에는 기본적으로 결계가 쳐져있다.
아이린이 집을 쓰는 동안 마법진에 등록하라고 말해놨으니, 다른 사람이 방문하는 건 곧바로 인지할 수 있다.
… 무언가 엄청나게 집중하고 있는 게 아니라면.
아이린의 방 앞에 선 엘리스의 몸에 불안감이 휘몰아쳤다.
왠지 이 문을 열어선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애초에 언니의 방인데, 내가 마음대로 열어도 되는 걸까?
'언니가 내 마중을 나오지 않는 게 더 이상해.'
한 달 전의 아이린이었다면, 엘리스가 문을 열자마자 아래로 내려와 울먹이며 끌어안았을 거다.
귀찮은 듯이 아이린을 밀어내는 엘리스도 내심 기분좋은 듯 미소를 지었겠지.
하지만 아이린은 엘리스가 왔는데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설마 한 달 만에 사람이 그렇게 변할까?
엘리스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이린에게 사정이 있는 게 분명했다.
꿀꺽.
엘리스는 조용한 방문의 손잡이를 잡고, 비틀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