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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야겜에 빙의했다-446화 (446/648)

〈 446화 〉 446화. 방학의 끝 (3)

* * *

백아영과 임솔은 같은 아카데미의 직원이지만 꽤나 달랐다.

하루종일 연구실에 들어박혀있는 것처럼 보이는 임솔은 의외로 정보를 얻을 수단이 많았다.

일하는 조교를 이용할 수도 있었고, 나름대로 아카데미에서 오래 지냈기에 소문을 듣는 경로도 생겼다.

하지만 백아영은 달랐다.

아카데미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뿐더러, 양호 선생님 일을 할 때부터 지금 응급실에서 일할 때까지 한 번도 시간이 여유로운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임솔처럼 빠르게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루시와 루미의 말을 들은 백아영은 넋이 나간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커피를 뿜은 실례를 한 것은 이미 기억에서 지웠다.

"서, 성녀님. 갑자기 왜 그러세요?"

"크흡. 미안. 미안해요. 갑자기 사레가 들려서…."

백아영은 마법으로 옷을 청소하는 루시를 보며 방금 둘의 대화를 되새겼다.

루시와 루미가 이호연과 친한 사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다만 그 정도가 이렇게 깊을 줄은 몰랐다.

학교에서 같은 그룹에 있는 정도인 줄만 알았는데, 언제 그런….

백아영은 순간적으로 루시와 루미를 노려봤지만, 금방 감정을 가라앉혔다.

아니야.

진정하자.

임솔과 대화를 나누며 감정의 정리는 끝났다.

자신은 언제나 첫 번째.

다른 여자들은 보듬어주기로 했다.

5명과 함께하는 식사?

그것보다는 1대 1로 만나는 자신이 더 사랑받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오히려 자신이 첫 번째로서 그녀들을 감싸줘야 한다.

루시와 루미도 똑같다.

2명이 같이 만나는 건 자신보다 사랑을 절반밖에 못 받는다는 것.

'… 근데 11번?'

백아영은 기억을 되짚었다.

저 측정기는 사정받은 횟수가 아닌 관계를 가진 횟수.

'내가 이겼어.'

백아영은 미소를 지었다.

자세히 기억을 되짚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자신은 적어도 두배는 넘게 사랑을 받았다.

안심하며 경계를 풀려던 백아영은, 문득 생각했다.

'3명이 같이 만난다면 혹시 3명이 같은 침대에서…?'

3p.

꿀꺽. 백아영은 침을 삼켰다.

'그건 안되는데….'

그런 엄청난 첫경험은 자신이 가져가고 싶었다.

이왕이면 아는 사이인 솔이랑 함께….

"성녀님. … 성녀님?"

"아, 아, 네. 응. 뭐였죠?"

"그, 다음 상담은 연애 상담인데요…."

"여, 연애 상담. 네. 그렇죠."

"남자 친구가 여자한테 인기가 너무 많아서요. 저희가 어떻게 해야 할지…."

루시와 루미도 꽤 고민이 길었다.

백아영은 이호연의 치료를 위해 자주 만나는 사이였다.

그런 사람에게 이호연과 관계를 고백하는 건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건 칼없는 전쟁.

겨우 이 정도로 포기할 거 였다면 시작도 하지 않았다.

루시는 긴장한 루미의 손을 꽉 잡고 백아영에게 말을 이어갔다.

한편 백아영은 눈을 질끈 감고 싶었다.

연애 상담이라니.

지금이라도 둘을 내쫓아야 하는 걸까.

아니, 감싸주기로 했었지.

하지만 아무리 감싸더라도 자신이 경쟁자의 연애 상담을 하는 건….

백아영은 루시와 루미를 표정을 슬쩍 흘겼다.

너무나 순수한 얼굴.

눈앞에 있는 백아영이 자신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모르고, 성녀 님이라면 자신들의 고민을 해결해줄 거라고 생각하는 얼굴이다.

저렇게 순수한 아이들에게, 차마 질투심을 내보일 순 없었다.

백아영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 가끔은 그, 양보하는 미덕을 길러보는 건…? 세상에 반은 남자고 루시 양과 루미 양이라면 더 멋진 남자도… 아니, 더 멋진 남자는 없으니 괜찮은 남자를…."

"그, 그건 안돼요."

"네. 저랑 루미는 절대 포기하지 않기로 했어요!"

루시와 루미는 서로 마주본 뒤 주먹을 꽉 쥐었다.

결사항전.

절대 포기하지 않기로 마음먹었기에, 둘은 같이 찾아온 것이다.

"으음. 네. 그냥 해본 말이에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이건 솔이랑 상담이 필요해.'

백아영은 지끈거리는 두통을 참으며 루시와 루미의 이야기를 들었다.

*

이호연은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금발의 남자를 보며 특유의 분위기를 느꼈다.

저번에 만났을 때는 잘 몰랐는데, 두 번째 보니까 확실히 알 것 같았다.

뭔가 신성하면서도 다른 사람 같은 분위기.

격이 다르다고 해야 하나?

화려한 장식이 붙어있는 옷과는 상관이 없었다.

몸에서 흘러나오는 아우라.

확실히 신이라는 이름을 장식으로 달고 다니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오랜만에 봤는데 차라도 내줄까?"

"제 자취방에 그런 건 안사놨는데요."

"나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이래 보여도 신이라고."

따악­

내기의 신이 손가락을 튕기자 허공에 캔커피 하나가 나타났다.

지금 상황에서 캔커피라니 뭔가 김 빠지긴 하지만, 준다니 마셔야지.

치익.

이호연은 캔커피를 마시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자신을 부른 건 저 쪽이니, 할 말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기의 신은 이호연을 훑어보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왜 나랑 만나게 되었는지 알겠어?"

"그 기둥 때문이겠죠. 그런 엄청난 게 갑자기 세상에 나타났으니까."

"역시 눈치가 빠르네."

"저번에 봤을 때는 모든 게 다 끝나고 보자고 했잖아요. 한참은 볼 수 없는 줄 알았는데 의외로 쉽게 다시 보게 되네요."

"뭐,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사실 너를 만나기 위해서는 포인트가 필요하거든. 나는 이 세상에 소속된 게 아니니까."

"어떤 포인트요?"

"응. 네가 히로인들을 공략하면서 얻은 포인트. 그걸 써먹고 있는 거야. 그래서 오래 얘기는 못해."

"당장 정보만 내놓고 돌아가세요."

이호연은 다 마신 캔커피를 쓰레기통에 집어던졌다.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어.

내가 얼마나 개고생을 하고 있는데.

"너무 화내지는 마. 네가 생각보다 너무 열심히 해줘서 내가 모습을 드러내는 게 어렵지 않았거든. 사실은 나도 네 능력에 놀라는 중이었어. 어떻게 11명이나 꼬신 거냐?"

"…."

이호연은 머릿속에 여자들의 이름을 한 명씩 떠올렸다.

루시. 루미. 문수린. 남다은. 엘리스. 스칼렛. 레베카. 임솔. 백아영. 릴리아나. 아이린.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11명.

솔직히 이호연 자신도 놀라웠다.

특전이 있다고 하지만 이 정도면 꽤 대단한 능력 아닐까?

"아무튼, 네가 11명이나 공략하면서 포인트를 꽤 많이 모았어. 내가 얘기했지? 네가 내기에서 이겼을 때 이 세계의 신의 목숨을 가져가려면 추가적인 페널티를 져야 한다고. 그래서 다른 여자들을 공략한 거잖아.

"그렇죠."

내기의 신이 말한 대로.

이호연을 이곳에 끌고 온 이 세계의 신에게 한 방 먹이기 위해, 원래 히로인들이 아닌 다른 여자들까지 공략했다.

내기의 공평성을 맞추기 위해 내기의 신이 힘을 써줬기 때문이다.

이호연은 그렇게 함으로서 이 세계의 신과 같은 조건까지 올라올 수 있었다.

"솔직히 나는 잘해봤자 한 두 명이라고 생각했어. 그 정도면 신을 죽이기엔 부족하지만 어떻게든 넌 살릴 수 있었거든."

"… 그럼 미리 말을 좀 해주면 좋잖아요."

"그때는 시간이 없었어. 그리고 목표는 높을수록 좋잖아? 봐봐. 지금도 미리 말했다면 네가 11명이나 공략했겠어? 이제 엔딩을 보기만 하면 신의 목숨은 물론이고 이 세계에서 사는 것도 꿈이 아니야."

이호연은 기쁜 듯 고개를 끄덕이는 내기의 신을 보며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입을 다물었다.

지난 일을 말하기보다는 빨리 대책을 생각해야 한다.

"알겠어요. 다 알겠으니까, 빨리 중요한 이야기를 하죠. 지금 나타나는 검은 기둥은 정체가 뭐예요?"

"너도 조금은 예상하고 있을 텐데? 지옥의 동화작용이야. 지옥의 문은 알고 있지?

"네. 던전이 폭주하면서 지구와 지옥이 연결되는 거잖아요."

지옥의 문.

스토리의 후반부.

던전에서 시작한 이상현상이 점점 심각해지며 지옥과 이어지는 현상이다.

당연히 검은 기둥 같은 건 나타나지 않는다.

"그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돼. 다만 던전이 완전히 동화되기 전이라서 지옥에서 추가적인 구조물을 설치한 거지."

"제가 일으킨 나비효과에요? 저는 지옥을 건드린 적이 없는데요?"

"으으음… 사실 그래서 내가 네 앞에 나타날 수 있던거야. 저 쪽에서 먼저 수를 썼으니, 나도 공평성을 위한 개입을 해야 했거든."

"… 저 쪽?"

"네가 말도 안 되게 잘하고 있으니까 겁을 먹은거겠지. 지금도 나한테 개입하지 말라는 신호를 죽일 듯이 보내고 있어."

내기의 신은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아마 그가 말하는 건 이 세계의 신이겠지.

이호연을 이 세계에 끌고 온 미친놈.

자신이 너무 잘하고 있다는 이유로 직접 개입한 것이다.

그 검은 기둥으로 지옥의 동화를 앞당기고 있었다.

"… 그럼 저는 어떻게 해야 해요? 신이 개입하는 상황을 막을 능력이 없잖아요."

이호연은 표정을 찌푸렸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이 세계의 신을 어떻게 이길수 있을까.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너무 걱정하지 마. 말도 안 되는 개입은 내가 어떻게든 막을 거니까. 그리고 선물도 몇 개 준비했어."

"갑자기 선물이요?"

"응. 얘기했잖아. 저 쪽에서 수를 썼으니 공평하게 만들어줘야지."

내기의 신은 손가락을 움직여 이호연의 가슴을 가리켰다.

손가락 끝에서 나온 밝은 빛이 이호연의 가슴으로 파고들었고, 이호연은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무언가 몸에 들어온 건 확실했다.

'… 이게 선물인가?'

일단 받아놓으면 어딘가는 도움이 되겠지.

이호연은 몸에 들어온 이상한 기운을 받아들이고 정면을 바라봤다.

"혹시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면 뭐든 대답해줄게."

"… 상태창의 호감도가 100이 되면 정확히 뭐가 달라지는 건가요. 솔직히 지금 한계거든요?"

만약 내기의 신을 다시 만난다면 꼭 물어보고 싶었던 게 이거다.

이호연은 11명의 여자를 모두 공평하게 대해주고 싶었지만, 사실 꽤 힘들었다.

이미 벌여놓은 일인 만큼 해결해야 하는 건 자신의 과제다.

하지만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지금 네가 준비하고 있는 거 있잖아. 가짜 던전?"

"네."

"개인적으로 아이디어는 좋다고 생각해. 하지만 위험성이 너무 커. 만약 걸리기라도 한다면 돌이킬 수 없겠지."

"… 그렇긴 해요. 저도 그게 제일 불안했어요."

조사팀은 속일 자신이 있었다.

문제는 임솔.

세계의 조사팀을 전부 데려와봤자 괜찮았지만, 그녀의 눈짓이 더 무서웠다.

임솔의 재능은 이호연도 예측할 수 없다.

자신을 만나며 더 개화한 그녀는 원작보다도 강해졌다.

물론 할 수 있는 노력은 다 했다.

최대한 설계를 비틀고, 마력을 꼬고, 마법진을 몇 중으로 복잡하게 만들었다.

지옥의 마력을 섞고, 이호연의 마력은 거의 지웠다.

하지만 임솔이 알아낼 가능성이 0%냐고 물어본다면… 확답할 수 없다.

"걱정하지 마. 이것도 줄테니까."

이호연은 내기의 신이 던지는 반지를 받았다.

검붉은 보석이 박혀있는 은반지.

"이게 뭔데요?"

"원하는 곳에 검은 기둥을 소환할 수 있는 장치야."

"… 네?"

"검은 기둥. 알지? 가까이 가기만 해도 인간은 버티기 힘든 힘을 내뿜어. 자세한 능력은 네 능력으로 읽어보면 될 거야. 돌아가면 선물이랑 같이 확인해."

그때, 내기의 신의 모습이 희미해지고 내 방이 검은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 벌써 가는 거예요?"

"응. 그래도 네가 열심히 해준 덕에 선물도 챙겨줬잖아. 혹시 질문이 많았어?"

"많죠. 마왕의 약점이나 지옥의 동화를 막는 법. 아니면 히로인들을 질투하지 않게 만드는 법. 그것도 아니면 마왕을 이길 정도로 강한 힘을 갖는 법."

저번에 내기의 신을 만났을 때.

못 물어본게 너무 많았다. 묻고 싶은 걸 산더미나 준비해놨는데 벌써 사라진다니.

"그런 건 나도 몰라. 나는 어디까지나 중재인. 형평성을 맞추는 역할일 뿐이야. 지금처럼 저 쪽에서 먼저 움직이지않는 이상, 내가 개입할 순 없어."

"… 그럼 이거라도 얘기해줘요. 처음에 클리어 확률이 6%라고 했잖아요. 지금은 얼마나 돼요?"

"지금은…."

내기의 신은 허공을 바라보며 고민하다가,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20%?"

"할만하네."

이호연은 만족스러운 듯 웃었다.

6%에서 세 배가 넘게 올랐다.

이 정도면 인생을 걸만한 도박이지.

"다음에는 진짜, 다 끝나고 만나는 거야. 저번에도 말했지만, 그 민폐 신 좀 처리해줘."

"여기까지 왔으면 끝을 봐야죠."

이호연은 사라지는 내기의 신을 덤덤히 바라봤다.

화려한 황금 장식품을 몸에 두르고 있는 그에게는 오랜 친구같은 편안함이 느껴졌다.

'돌아가면 뭐부터 해야할까.'

일단은 선물부터 확인해야겠지.

검은 기둥을 소환하는 반지가 무엇인지 상태창으로 확인도 해봐야한다.

혹시 바깥에 있는 여자들이 걱정하진 않을까….

내기의 신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진 후.

이호연의 눈 앞이 암전됐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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