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0화 〉 440화. 빅토리아 빌딩 (3)
* * *
빅토리아 빌딩의 최상층 노아홀.
넓은 홀에서는 후드를 뒤집어쓴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몸살이라도 걸린 건지 자도 자도 피곤하군."
"집에만 있어서 그래. 밖에 나가서 움직이면 몸이 가벼워져."
"여기 술이 조금 부족한데."
후드를 뒤집어써서 얼굴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만 빼면, 이상할 게 없는 모습이었다.
다만 개 중에서 몇몇은 후드 사이사이로 보이는 얼굴과 술잔을 들고 있는 손이 인간과는 사뭇 달랐다.
울긋불긋한 사마귀가 나있는 사람이 있었고, 후드 사이로 뿔이 튀어나와있는 사람도 있었다.
"… 여기 있는 게 다 마인들이라는 겁니까?"
"조금만 조용히 말하세요. 학생회장."
문수린은 표정을 찌푸리며 노아홀을 바라봤다.
마인의 파티.
흔히 마인이라고 하면 인간의 피를 즐기고 전투에 열광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은 마인도 많다.
마인이 된 것부터 평범하진 않지만, 여기 모인 마인들은 그나마 온순한 마인들이었다.
물론, '마인'중에서 온순하다는 것이다.
"강한 마인들은 아니지만, 워낙 머릿수가 많아서 여기 있는 마인들만 해도 전력이 꽤 엄청나니까 조심해야 해요."
"… 그럼 우리도 인원을 더 데려와야 하는 거 아닌가요?"
"괜찮습니다. 이런 곳은 인원이 적은 게 더 나아요. 한국 지부장까지 데려왔으니까요."
"… 네에."
문수린은 한국 지부장을 뻔히 바라봤다.
자주 본 얼굴이다.
아니, 자주 보다 못해 당장 오늘 아침에도 업무 보고를 받았었다.
객원 교수인 강효린 박사.
그녀는 문수린과 마찬가지로 후드를 뒤집어쓴 채 살며시 고개를 숙였다.
"아카데미의 교수가 아이리스 길드의 지부장이라는 건 학생회장으로서 조금… 불편한 진실이네요."
"학생회장님. 딱히 아카데미의 정보를 빼돌리진 않았어요. 정말이랍니다. 그리고 저와 아이린 님, 그리고 학생회장이면 충분히 강한 전력이에요."
"…."
딱히 부정하진 않았다.
아이린과 강효린 박사의 실력은 충분히 알고 있고, 문수린 자신의 실력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해야 할 일은 마인 토벌이 아니라 문성민 체포다.
헌터 협회보다 빠르게 문성민의 윤곽을 파악한 아이리스 길드의 능력은 대단하지만, 문성민을 잡지 못한 이유는 전투력이 아니라 그의 엄청난 도주 능력 때문이다.
"그에겐 정체불명의 도주 능력이 있어요. 건물 바깥에 아이리스 길드원들이 대기하고 있나요?"
"괜찮습니다. 한국 지부장의 능력이라면 문성민의 도주를 막을 수 있어요."
"학생회장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 셋이면 여기 있는 마인들도 전부 정리할 전력이에요. 물론 아버님의 일이라 걱정하는 건 당연하겠지만."
"… 예."
문수린은 조용히 마인들을 바라봤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이상 없는 고위인사들의 파티 같았다.
그때, 하나뿐인 출입구가 끼익 열렸다.
문성민.
그가 당당하게 정면에서 들어왔다.
"저건 누구지? 얼굴을 드러내고 있잖아. 룰을 모르는 놈이 왜 여기 온 거야."
"… 잠시만. 저 얼굴. 분명 어디선가…."
마인들이 상황을 파악하고 있을 때.
문성민은 주변을 둘러본 뒤 가까이 있는 마인의 얼굴에 주먹을 처박았다.
"케흑!"
콰드드드득!
동시에 마력을 내뿜으며 공간을 장악했다.
문성민과 가까이 있던 약한 마인들이 증발하듯 사라지고, 강한 마인들은 몸을 추스르며 뒤로 후퇴했다.
강효린은 잔에 남아있는 와인을 비우며 중얼거렸다.
"이렇게 대놓고 할 줄은 몰랐네요."
"그러게. 생각보다 과격해."
"… 어떻게. 어떻게 해요?!"
문수린이 놀람을 감추지 못했을 때.
아이린과 강효린은 여유롭게 술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당황한 문수린을 위로하듯 말을 이었다.
"기다리면 돼요. "
"지금 기다린다고요?"
"네. 마인들이 대부분 죽고 우리에게 시선을 줄 때까지."
"여유롭게~. 긴장된다면 술이라도 한 잔 마셔요."
"…."
아이린과 강효린은 무표정하게 결계로 몸을 감쌌다. 마치 집 앞 편의점에 가는 것처럼 여유로운 행동이었다.
눈앞에서 사람이 죽는 일 정도는 둘에게 너무나 익숙했다.
가장 좋은 타이밍을 노리기 위해서라면, 눈앞에서 몇 명이 죽어도 괜찮았다.
"끄아, 아아아아악!"
"무, 무슨 일이야. 경비. 경비!"
"마인을 노리는 미친놈이야! 도망쳐!"
노아홀은 높은 곳에 있는 창문 몇 개를 제외하면 출입구가 하나밖에 없는 폐쇄적인 공간이다.
최상층인 만큼 홀을 빠져나가면 도시를 내려다볼 수 있는 통창이 있지만, 마인들의 비밀스러운 파티는 보안이 좋은 노아홀에서 열렸다.
아이린은 문성민의 움직임을 면밀히 관찰했다.
화동 던전에서 마주쳤던 적이 있었기에, 대충 그의 강함은 알고 있었다.
"… 저번보다 강해진 거 같은데? 학생회장, 생포는 힘들지도 몰라요."
"마인이라는 게 그렇죠. 다른 마인들의 마석을 흡수한 거 아닐까요?"
"일단, 시도는 해보죠."
문수린은 긴장한 채 정면을 바라봤다.
콰득. 콰직.
끄아아아악.
사람이 찢겨나가는 끔찍한 소리와 비명 소리.
방금 전까지 살아있던 사람, 아니 마인이 두 동강 난다.
쓰러진 마인과 눈이 마주쳤다. 살아있던 눈이 생기를 잃는다. 죽음의 경계를 지나 생명에서 시체로 변한다.
처음 보는 광경은 아니지만, 문수린은 일련의 과정이 자신의 아버지와 관여되어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불쾌했다.
빠직. 콰악.
행동이 빠른 마인들은 벽을 부수고 도망치거나, 높이 있는 창문에 몸을 들이밀어서 탈출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마인들은 그럴 시간도 없이 문성민에게 당했다.
문성민이 홀에 진입한 지 몇 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절 반이 넘는 마인이 당했다.
정신을 차린 마인들이 합공 했지만, 문성민의 마력을 뚫을 수 없었다.
여기 모인 마인들은 전투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문성민에게 대항하기가 더욱 힘들었다.
마력이 흩날리며 문성민이 난잡하게 움직였다. 깔끔한 궤적의 주먹이 마인 둘의 배를 뚫었고, 그대로 몸을 돌려 뿔이 달린 마인의 머리통을 날렸다.
그는 폭주기관차처럼 밀고 들어오며 뭉쳐서 대항하려는 마인들에게 마력을 쏟아부었다. 같은 마인이지만 힘 차이는 극심했다.
콰앙 캉. 캉. 캉.
홀 내부에 피가 낭자한다.
아직 마인들이 많이 남긴 했지만, 문성민의 컨디션이 안 좋은 지금이 적기였다.
"1팀장님. 슬슬 진입해도 될 거 같습니다."
"응. 준비해요. 학생회장."
"… 네."
꿀꺽.
문수린이 손의 땀을 생도복에 문지르자마자, 아이린과 강효린의 결계가 풀렸다.
마인들을 학살하던 문성민은 곧바로 이상현상을 눈치채고 고개를 돌렸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3명의 마력.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어 정체를 알 수는 없지만, 느껴지는 기세가 위험했다.
애초에 10분 내로 도주할 계획이었다.
여기서 더 시간을 쓰기엔 힘들었다.
문성민은 상황을 파악하자마자 입구 쪽을 바라봤다. 하지만 이미 아이린의 마력이 입구를 감싸고 있었다.
"아버지! 도망치지 마세요!"
"…."
칩입자 중 한 명이 후드를 걷고 얼굴을 드러냈다.
자신의 딸. 문수린.
… 문성민은 잠깐 고민했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지직. 지지직.
그의 특기인 단거리 이동.
마력이 아닌 타고난 권능인 이 능력은 지금까지 그의 완벽한 도주가 가능하도록 만들었지만, 이상하게 오늘은 마력이 응답하지 않았다.
"아마 생각대로 안될걸요?"
강효린.
한국 지부장인 그녀는 마력을 흐트러트리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자신의 마력도 약해지기에 실제 전투에서 쓰기에는 많은 준비가 필요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유용하게 쓸 수 있었다.
"흐음…."
문성민은 자신의 상태를 살폈다.
몸 상태는 좋지 않다. 싸울 수 있지만, 마인들을 죽이는 데에 마력을 꽤나 소비했다.
능력으로 도주할 수 없다. 입구도 막혀있다.
그렇다면 어디로 도망쳐야 할까.
"… 후우."
문성민의 주먹에 마력이 쏠렸다.
강하고 파괴적인 마인의 마력. 문성민은 그 주먹을 그대로 바닥에 꽂았다.
"자, 잠시만. 막아!"
쾅!
문성민의 주먹이 박힌 바닥이 무너졌다. 얼마나 강했는지, 나머지 땅에도 금이 가며 위태로워졌다.
문성민은 다시 한번 바닥을 내려찍으며 아래로 떨어졌다. 노아홀의 중심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고, 그의 주변에 있던 마인들까지 휘말렸다.
"강효린. 아래 층은 뭐지?"
"식당입니다!"
"젠장… 민간인들이 휘말리지 않도록 막아! 학생회장. 따라오세요. 저희도 내려갑니다."
"네, 네!"
아이린은 마력을 몸에 두른 채 아래로 떨어졌고, 강효린과 문수린도 그 뒤를 따랐다.
*
투둑. 툭툭.
오늘은 즐거웠다.
건배사를 이상하게 했지만, 그래도 즐거울 거라고 생각했다.
다희에게 실수한 것 같아서 미안하긴 했다. 하지만 그 정도는 웃으며 넘어갈 수 있겠지.
다희도 이제 중학생이고, 우리 집에서 지내며 점점 어린이 같은 티를 벗기 시작했다.
아직 다은이에게는 조금 어리광을 부리지만… 그것도 금방 괜찮아지겠지.
그니까 괜찮을 거다.
성기발기 정도야 뭐… 요즘 애들이 얼마나 빠른데. 응?
아니, 심지어 끝까지 하지도 않았잖아. 그게 큰 잘못인가?
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이렇게 되었을까.
"자, 자기야! 끄아아아악!"
"여기, 여기 사람이 깔렸어요!"
툭. 투둑.
나는 머리 위에 묻은 먼지를 털어냈다.
다행히 철근과 콘크리트 조각들은 결계에 막혔지만, 먼지는 막을 수 없었다.
나와 같은 테이블에 있던 여자들도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어, 언니. 나 무서워. 언니…."
"내가 지켜줄게. 다희야. 괜찮아."
"뭐야? 뭐야? 갑자기 왜 천장이 부서져?"
"레베카 님. 느껴지십니까?"
"응. … 마인이 엄청나게 쏟아지고 있는데?"
레베카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허공에서 마인들이 떨어졌다.
철퍽. 철퍼덕.
떨어지자마자 바닥에 피를 흩뿌리는 마인이 있었고, 정체불명의 괴성을 지르는 마인도 있었다.
"이게 뭔데 이 개새끼들아…."
나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마력을 일으켰다.
식사가 끝나진 않았지만, 이런 상황에 식욕은 이미 없어졌다.
마인들을 처리하고 민간인을 구할 생각이었다.
타악.
그때, 내 앞에 남자 한 명이 떨어졌다.
상처 없이 떨어진 남자는 주변을 확인한 후 나와 눈이 마주쳤다.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내 표정이 썩어 들어갔다.
"이 씨발. 장인어른. 당신이구나."
"… 자네가 왜 여기에 있지."
"그건 내가 묻고싶네요. 수린 누나가 얼마나 걱정하고 있는데 당신은…."
문성민도 나를 여기서 마주친 상황에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나는 이를 악 물었다. 외식을 망친 것보다 더 짜증 나는 건, 이 사람이 수린 누나를 걱정시키는 걸로 모자라 내 앞길을 항상 막기 때문이다.
대체 나랑 무슨 악연이 있는 걸까.
"레베카 씨, 스칼렛. 릴리아나랑 다희를 보호해줘요. 할 수 있으면 사람들도 구해주고."
쿵. 투둑.
위에서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도망치게 두지 않아.'
나는 레베카와 스칼렛의 대답을 듣지않은 채 마천궁을 전개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