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야겜에 빙의했다-439화 (439/648)

〈 439화 〉 439화. 빅토리아 빌딩 (2)

* * *

마인 연쇄 살인 사건.

문수린은 이 사건을 조사하느라 방학의 대부분을 사용했다.

범인을 이미 알고 있는데도 추적하는 게 쉽지 않았다. 교묘하게 수사망을 피해 가는 문성민의 범행은 점점 심해져갔다.

처음에는 단순히 신원불명인 마인이 피해자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일반인과 헌터도 휘말리기 시작했다.

마인들을 노리는 건 몰라도 일반인과 헌터까지 피해를 받는다면 그때부터는 아카데미의 권한이 아니다.

당연히 헌터 협회도 수사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아버지… 어째서 이렇게 된 걸까요."

스윽.

문수린은 민간인이 피해를 입은 사건 리스트를 보며 고민을 이어갔다.

헌터 협회가 잡기 전에 문성민을 잡고 싶었다.

처벌받는 건 막지 못하더라도, 그전에 둘이 대화를 꼭 해보고 싶었다.

이사장은자신의아들을포기하라고말했지만,문수린은포기하기싫었다.

아버지였다.

10년간사라져있던사람.

적어도그이유는알고싶었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이호연이라는 버팀목이 있다.

문수린의 정신이 말끔했기에, 오히려 피하지 않는 것이다.

똑똑.

문수린의 고민을 끊는 노크 소리.

"네. 들어오세요."

문수린은 책상에 널려져 있던 서류를 치우며 말했다.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모든 일에는 전문가가 있는 법이다.

아직 문수린은 아카데미를 대표하지 않는다. 가능하다고 해도, 개인적인 일을 조사하는 데에 빅토리아 아카데미의 힘을 쓸 생각은 없었다.

그렇기에 이런 일의 전문가를 불렀다.

"흐음. 최근 이슈인 마인 살인 사건의 범인 말인가요."

눈앞의 여인. 아이린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상대방을 꿰뚫는 것 같은 눈빛.

아이리스 길드의 1 팀장은 그 자리에 걸맞은 패기를 보여줬다.

"범인에 대한 정보는 마침 아이리스 길드에서도 모으고 있었습니다. 마인을 노리는 마인은 희귀한 사건이다 보니 관심도도 높거든요."

"… 아이리스 길드에서 꽤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어디까지나 소문이지만… 아카데미 학생회장의 부탁이라면 아이리스 길드에서도 전력을 다해야죠."

아이린의 말에 문수린의 눈이 반짝였다.

아이리스 길드의 협력을 받는다면 헌터 협회보다 빠르게 꼬리를 잡을 수 있다.

"그렇다면…."

"하지만 학생회장의 부탁임을 감안해도 그렇게 쉽지는 않을 거예요. 저희도 품이 많이 드는 일이라서…."

은근한 미소를 짓는 아이린을 보며, 문수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가를 지불하는 건 당연히 생각하고 있었다. 준비해 놓은 조건도 여러 가지가 있었다.

한국에서 빅토리아 아카데미의 권한은 엄청났고, 아이리스 길드가 원하는 걸 들어주기엔 충분했다.

"… 준비해놓은 것들이 있습니다."

문수린은 준비한 계약서를 내밀었다.

아이리스 길드가 문수린 개인에게 협력하는 대가로 아카데미에서 해줄 수 있는 것들.

나름 좋은 조건이었지만, 문수린은 처음부터 협상을 생각했다.

어느 정도 출혈은 감당할 수 있다.

"흐음…. 아이리스 길드의 도움을 받아서 생포하고 싶다는 거군요."

아이린은 조건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리스 한국 지부에 이걸 가져가면 충분히 일하고 있다는 티를 낼 수 있겠지.

… 요즘 이호연을 만나느라 출근을 거의 안 했으니 아이린도 양심이 찔렸다.

"다만 조건들이 저도 꽤 부담이 있어서… 천천히 제공할 수 있을까요?"

"네. 당연하죠. 학생회장이 약속을 지키지 않을 리가 없으니까요."

아이린은 입꼬리를 올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아요. 그럼 바로 갈까요?"

"네? 어, 남은 이야기는 아이리스 길드 쪽에서 진행하는 건가요?"

"아니요. 조건은 그걸로 괜찮습니다."

뜯어내려면 더 뜯어낼 수 있겠지만, 아카데미와 좋은 관계를 위해 이 정도만 하기로 했다.

아이린은 미소를 지으며 눈을 끔벅이는 문수린을 바라봤다.

"문성민이 있는 곳으로 가야죠."

"서, 설마. 은거지를 아는 건가요?"

"그건 아니에요. 하지만 빅토리아 빌딩의 노아홀. 그곳에서 마인들의 행사가 있다는 정보를 문성민에게 슬쩍 흘렸어요. 그리고 방금 전 문성민의 흔적을 발견했는 정보가 들어왔어요.가능성이 굉장히 높아요."

아이린은 스마트 워치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아이리스 길드의 정보력은 아카데미까지 들어와 있었고, 문수린이 문성민에 대한 정보를 필요로 하는 것도 알고 있었다.

"시간이 없어요. 바로 가시죠. 학생회장. 저도 함께 갈께요."

"… 네."

문수린은 긴장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

아카데미에서 조금 떨어진 번화가.

미녀 넷과 귀여운 여자 아이 하나를 끼고 있는 남자가 당당하게 거리를 걸어갔다.

지나가다 보면 한 번은 뒤돌아볼만한 미녀들이 넷이나 있었는데도, 사람들은 이상할 정도로 그 무리에 관심을 주지 않았다.

이호연과 레베카의 룬의 결계 때문이었다.

오랜만의 외식.

릴리아나가 가장으로서 밥을 사겠다고 하고, 스칼렛이 좋은 식당을 예약했다고 해서 다 같이 시간을 내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다.

다섯 명이 이렇게 한꺼번에 걸으니 기분이 새로웠다.

"난 치킨이 조아. 치킨치킨. 잉­ 치킨. 잉­ 치킨."

"너무 재밌습니다. 릴리아나 님."

"역시 스카웃. 너는 내 개그를 알아듣는구나."

"스칼렛. 제발 그런 거 받아주지 말라고. 너는 괜찮겠지만 감당은 다른 사람이 한다니까."

"애기 아빠. 릴리아나한테 왜 그래. 귀엽기만 한데."

"아니, 하아… 레베카 씨. 강하게 키워야 한다니까요. 그렇게 다 받아주면 나중에 책임 못집니다."

"잉­ 치킨. 잉­ 치킨. 재밌기만 한뎅…."

릴리아나는 웃긴 표정을 하면서 헛소리를 이어갔다. 이호연은 귀여운 듯 받아주는 다른 여자들을 원망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우리 집은 무언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

릴리아나가 귀엽다면서 일도 안 시키고 저런 개그도 다 받아주니까 애가 저렇게 됐잖아. 완전 폭군이 따로 없다.

역시 집 안 관리는 내가 해야지. 내일부터 릴리아나한테 집안일을 맡기던지 해야겠다.

청소 담당 말고 다른 걸로.

"언니. 나는 고기 먹고 싶어."

"응. 릴리아나 씨가 사준다고 했으니 맛있게 먹자."

"내가 쏜당! 고기 먹으러 고기고기!"

릴리아나는 신나는 표정으로 앞장서서 걸어갔다. 오늘은 기분이 날아갈 것 처럼 좋았다.

자신이 쏘는 외식에 다들 기뻐하는 모습이 아주 바람직했다. 이호연은 인정하지 않지만, 역시 집안의 가장은 자신밖에 없다.

모두를 이끄는 리더십부터 분위기를 살리는 능력까지.

자신이 아니라면 누가 할 수 있겠어.

이호연을 가장으로 인정할 수 있는 건 침대 위뿐이었다.

"릴리아나. 잉­ 치킨인지 뭔지를 먹는 거 아니었어? 아, 그런데 기름이 많은 음식은 임산부한테 안 좋긴 해."

"그건 그냥 해본 말이야! 레스토랑으로 가자!"

이호연은 앞장서서 걸어가는 여자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쓸데없는 일은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 다 같이 밥이나 먹자.

집에서 다 같이 식사를 한 적은 많았지만, 이렇게 단체로 바깥에 나온 적은 없었다.

이제 와서 생각하니 그것도 신기하네.

거리는 엄청나게 시끄러웠지만 이호연과 여자들의 주변은 강한 인식 저하 결계로 보호받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비켜지나가고, 혹시 눈이 마주쳐도 평범한 사람으로 보게 만든다.

'이런 평화로움이 좋아.'

가끔은 이런 시간을 보내는 것이 필요했다.

시끄러운 싸움이나 훈련과 떨어진 평화로운 일상.

예쁜 여자들에게 둘러싸여서 레스토랑에 가다니, 이런 호화로운 휴식은 없었다.

"레스토랑. 릴리아나 님은 괜찮은 거 같은데, 당신은 괜찮아요?"

"응. 내가 싫어하는 게 어딨어. 야. 그리고 릴리아나 개그 좀 받아주지 말라니까."

"릴리아나 님이 귀엽지 않습니까."

"귀엽긴 해도… 쩝."

이호연은 다가온 스칼렛에게 주의를 줬지만, 귀엽다는 말은 차마 부정할 수가 없다.

그래도 그런 개그는 자제해줬으면 좋겠다. 개그가 귀여운 외모를 망치고 있다고.

일행은 높은 빌딩의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고층이라 뷰도 좋은데 맛있기로 유명한 고급 레스토랑이다.

예약에 몇 달이나 걸리는 인기 있는 레스토랑이었는데, 스칼렛이 운 좋게 예약했다고 한다.

"스칼렛. 그러고 보니 여기는 어떻게 예약한 거야?"

"한국 지부장에게 부탁해서 자리를 받았습니다. 왜인지 몰라도 남는 자리가 생겼다고 하더군요."

"역시 아이리스 길드 출신이네. 잘했어."

"대기업이라 그런가 해고당했어도 스카웃을 대우해주는구나?"

"……."

스칼렛은 입술을 꿈틀거렸지만 릴리아나의 말에 대답하지는 않았다.

아무리 설명해도 릴리아나는 스칼렛이 해고당했다고 굳건히 믿고 있었다. 더 설명하기도 힘드니 포기하는 게 낫다.

음식이 나온 뒤에도식사 분위기는 매우 좋았다.

고기를 손으로 들고 뜯어먹으려는 릴리아나에게 예절을 지적하고, 남다희를 챙기는 남다은에게는 고기를 썰어줬다.

레베카는 임산부에게 좋다는 아스파라거스와 소고기 스테이크를 조신하게 썰어먹고 있었다.

아직 임산부가 아닌데도 저러는 이유가 참 궁금했다.

"기쁜 건 알겠는데 좀 조심히 먹어. 옷에 다 묻잖아."

"으브븝."

이호연은 릴리아나의 입에 묻은 양념을 닦아주며 말했다.

"호연아. 이것도 먹어봐. 맛있었어."

"고마워. 다은아."

"집에서도 이런 요리를 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렇죠. 레베카 씨?"

"다은이라면 가능할 거야. 내가 자부하는 일 등 신붓감이니까."

"으음. 나도 집에서 맛있는 고기를 먹고 싶엉."

사실 이호연이라는 중심으로 뭉치긴 했지만, 여자들끼리도 사이가 좋았다.

이호연은 멍하니 고기를 썰면서 여자들의 대화를 들었다.

그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느낌이었다.

이 평화로움과 예쁜 여자들에게 둘러싸인 상태로 맛있는 식사까지.

쌓여있던 스트레스가 모두 날아가는 것 같았다.

심지어 내가 사는 것도 아니다.

돈이 부족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공짜는 좋았다.

"우리끼리 술이나 한 잔 할까요?"

"… 술?"

"네. 다희는 콜라라도 따라주면 되니까요."

스칼렛은 웨이터에게 받은 와인을 들고 미소를 지었다.

술이라. 생각해보면 같이 술을 먹어본 적은 없었네.

"술 좋아! 나도 와인 먹어볼래!"

"저는… 호연이가 먹으면 한 잔 정도만…."

"으음. 임산부한테 술은 안 좋을 거 같은데."

"… 레베카 씨. 아직 임신 안 했잖아요."

"애기 아빠는 분위기를 모르네. 그럼 몇 잔 할까? 애기 아빠가 건배사를 하자."

"건배사요? 제가 왜 그걸…. 아니, 애초에 여기 레스토랑이에요. 무슨 건배사야."

"소리가 나가지 않도록 옅은 결계가 쳤으니 괜찮습니다. 그리고 건배사를 당신이 해야지 누가 하겠어요."

"건배사는 나도 하고 싶은데…."

스칼렛이 와인을 따르며 말했고, 릴리아나는 주인공이 되지 못해 아쉬운 듯 중얼거렸다.

자신이 사는 곳이라면 자신이 해야하는 게 아닌가.

릴리아나는 그렇게 주장할 생각이었다.

"릴리아나 님은 다음 잔에 하시죠. 원래 첫 잔보다는 취기가 오른 두 번째 잔의 건배사가 중요한 겁니다."

"크흠. 그랭?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첫 잔은 이호연이 해!"

남다은과 릴리아나는 와인의 향을 맡고 있었고, 스칼렛과 레베카는 미소를 지으며 날 바라보고 있었다.

레스토랑에서 건배사라니 그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이호연이 거절할 틈도 없이 정해져버렸다.

이미 다른 여자들은 잔을 든 채 이호연만 뻔히 바라보고 있었다.

"…."

자리에서 일어난 이호연은 테이블을 내려다봤다.

초롱초롱하게 빛나는 눈빛들.

여자 다섯 명이 자신을 저렇게 바라보다니. 기분이 영 이상했다.

"… 잔 드세요."

건배사를해 본 기억은 없다.

그래도 인터넷에서 본 건배사는 몇 개 있었다.

못한다고 갈굴 사람도 없으니, 즐겨도 되겠지.

"성공을 기원하며. 발전을 기원하며. 성…"

'아, 다희가 있는데 다른 걸로 할 걸.'

릴리아나 때문인가?

자신도 모르는 새에 멍청해졌다. 순간 다희가 있는 걸 까먹어버렸다.

다행히 뒷 부분은 안 말했으니, 이호연은 여기서 자연스럽게 마무리할 생각이었다.

"… 성, 성공 합시다."

이호연은 부끄러움에 고개를 푹 숙였다.

건배사가 이렇게 부끄러울 줄이야.

그래도 나름 즐거웠다. 이 평화로운 일상이 언제까지나….

우지끈­ 쿵­

그때, 위에서 커다란 굉음이 들렸다.

이호연은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봤고, 레스토랑의 천장이 무너지며 일어나있던 이호연의 머리에 철근이 떨어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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