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2화 〉 432화. 테러리스트와 협상은 없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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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십 년이라는 삶이 인큐버스에게 그렇게 긴 세월은 아니다.
알베도는 200년이 넘는 삶을 살았다.
인큐버스의 평균 수명이 1000년인 걸 생각하면, 30살인 서큐버스는 어린 아이나 마찬가지였다.
우연히 길에서 릴리아나 칼리오페를 처음 만났을 때, 알베도가 처음 느낀 감정은 귀여움이었다.
많은 서큐버스를 보고, 몸을 겹쳤다.
하지만 릴리아나 칼리오페는 그 중에서도 으뜸이었다.
이제 막 성인이 된 것 같은 파릇파릇한 느낌.
마왕의 후계자였던 그는 릴리아나의 어깨를 잡고 대뜸 말을 걸었다.
'이봐. 서큐버스. 내가 누군 지 알고 있나? 마왕의 후계자 카르만 알베도다.'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다가간 알베도는.
'이 쓰레기가 뭐라는 거야?'
200년 마생 처음으로 죽기 직전까지 처맞았다.
지옥에서 마왕이라는 존재는 유일하다.
마왕의 조건은 가장 강한 마족.
그렇기에 유일한 존재인 것이다.
단지 그것뿐. 다른 조건은 필요하지 않다.
가문이나 정통성 같은 건 강함 앞에서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마족의 기본은 탐욕.
당연하게도 마왕의 자식은 한 두 명이 아니다.
지옥 곳곳에 있는 귀족이나 유력가에서 아름다운 여자를 바친다.
여자뿐만이 아니다.
가끔은 남색마저도 즐기는 게 마왕이었다.
수많은 자식 중에서 마왕의 후계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건 엄청난 재능을 타고난 4명뿐.
파멸(??)의 루시퍼.
패기(?)의 켄타우로스.
악몽(?夢)의 인큐버스.
그리고… 학살(??)의 서큐버스.
그 학살의 서큐버스는 당연히 지옥에 단 1명이다.
수 많은 서큐버스 중에 단 한 명이란 소리다.
그런데 하필이면 지나가던 귀여운 서큐버스가 자신의 이복형제일 줄이야.
그때는 아직 마왕의 후계자로 인정받기도 전이라 얼굴도 몰랐으니, 처맞는 알베도의 입장에서도 억울한 일이었다.
단 한 번의 실수였다.
그녀에게 추파를 던진 것.
그렇게 흠뻑 두들겨 맞았으니 용서받았으리라 생각했지만, 릴리아나 칼리오페의 괴롭힘은 끝나지 않았다.
자신이 만든 세력을 거의 다 흡수하고, 후계자 경쟁을 포기하기 직전까지 자신을 몰아붙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패기의 켄타우로스라고 불리던 케이론을 반죽음상태로 만들어 은둔하게 만들고, 계승이 확실시되던 루시퍼와 경쟁할 정도로 성장했다.
겨우 30년밖에 살지 않은 서큐버스가 해낸 일이라기엔 너무 놀라운 업적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추파 때문에 그런 추태를 겪은 건 아니겠지.
하지만 알베도의 가슴에 남은 공포는 진짜였다.
언젠가 복수하겠다는 마음을 품고있었지만.
그녀는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리고 마왕은 후계자를 정하겠다면서 휴식기에 들어갔다.
루시퍼 진영은 이미 승리한 듯 기뻐했지만, 알베도는 방심하지 않았다.
그 여자의 무서움은 진짜였다.
그 년이 하루아침에 포기할 리가 없다.
알베도는 그렇게 불안감에 떨며 하루하루를 보냈고, 어느 날 케이론처럼 눈앞에 마법진이 떠오르며 지구에 소환되었다.
그리고,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알베도의 앞에는 인큐버스로 추정되는(?) 인간이 서있었다.
그의 옆에는 릴리아나 칼리오페가 멍하니 서있었다.
둘이 무슨 관계인 지 파악할 수가 없었다.
"너한테 물을 게 많긴 한데, 그전에 이거부터 묻자. 지구에는 왜 온 거냐?"
"… 나도 모른다. 눈을 떠보니 여기 있었으니까."
"지옥에서는 뭐 하면서 살았냐. 혹시 너도 케이론처럼 은둔생활?"
"케이론…? 네가 케이론을 어떻게 아는 거지?"
"내 말에 대답이나 해. 지옥에서 뭐 하고 있었냐고."
"…… 나는 마왕의 후계자로서 후계자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물론 후계자 전쟁이라는 건 허울뿐이었다.
지옥에서는 이미 루시퍼를 다음 마왕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릴리아나 칼리오페에 대한 기록은 거의 사라졌으니까.
"그렇게 약한데 마왕의 후계자가 되는 거야?"
"약하지 않다! 내가 약해진 건 지구의 마력이 나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아까부터 싸가지가 없네. 너 지금 포로야. 포로."
"…."
알베도는 즉시 입을 닫았다.
이 남자가 늑골을 발로 찰 때 얼마나 아픈 지는 잘 알고 있다.
"원래 저렇게 한심한 인큐버스야?"
"응. 그래도 진짜 후계자인 모양이네."
싸움 실력이 허접해서 혹시나 했는데 다행히 제대로 된 놈이었다.
서큐버스인 릴리아나도 원래 지옥보다 약해졌다고 했으니, 아마 정기를 쓰는 그 종족들이 약해졌을지도 모르겠다.
문득, 이호연의 머리에 세뇌어가 생각났다.
"아, 맞네. 이거 안 말했구나. 너 내가 말하는 거 따라 해봐. 투 아르마 마에스트로."
"… 투 아르마 마에스트로."
이호연은 알베도의 상태를 살폈다.
호흡이나 마력은 지극히 정상.
룬의 결계로 몸을 훑어도 다른 점은 없었다.
그 말은 즉 세뇌에 걸리지 않았다는 것.
"세뇌 때문에 약해진 게 아니라 진짜 지구랑 안 맞는 거였네.
"나도 지구랑 안 맞아. 원래 이거보다 강했다니깐."
"케이론의 기억만큼 강했어?"
"그만큼은 아니었던 거 같은뎅… 그래도 동네에서 제일 셌어."
옆에서 릴리아나가 팔을 들며 멋있는 자세를 취했다.
물론 근육은 하나도 없었다.
"카, 칼리오페에게 반말을 하다니. 제대로 미친놈이 분명해…."
"뭐라는 거야. 너 릴리아나에 대해서 아는 게 많은 거 같은데, 마침 잘됐다."
물어볼 게 많았다.
이호연은 케이론과 대화를 하며 지옥의 정세를 대충이나마 알아냈다.
릴리아나가 엄청나게 강했다는 것도 알았고, 마왕이 1년간 휴식기에 들어간 것도 알았다.
하지만 릴리아나가 갑자기 사라진 건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지 못했다.
알베도는 케이론과 다르게 후계자 경쟁을 계속했다고 말했으니, 원인은 모르더라도 그 후에 어떻게 상황이 진행되었는지는 알겠지.
케이론은 은둔한 용병이라 정보의 한계가 있었다.
'그전에 릴리아나에 대해서 물어볼까.'
케이론과는 다른 정보가 나올지도 모른다.
"네가 아는 릴리아나에 대해서 말해봐. 아무거나 괜찮으니까."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네 옆에 칼리오페가 있는데 직접 물어보면 되는 거 아닌가?"
"일단 말해보라고. 릴리아나가 얼마나 강했는지. 무슨 소문이 났는지. 이런 거 말이야."
알베도는 릴리아나에게 눈을 돌렸지만, 릴리아나는 이호연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인간 세상에서 아무 걱정 없이 새로운 삶을 살려고 했는데, 설마 여기서도 칼리오페를 만날 줄이야.
그녀는 자신을 처음 보는 사람처럼 대하고 있었다.
'이게 그녀의 새로운 괴롭힘인가?'
그때의 실수를 인간 세상에서도 잊지 않은 걸까.
어쨌든 포로로 잡혀있다면 뭐든 해야겠지.
알베도는 생각나는 것들을 입 밖으로 꺼냈다.
"칼리오페는… 강한 서큐버스였다. 정말 상상 이상으로 강했지. 겨우 30살인 서큐버스가 지옥의 강자들을 꺾고 다녔으니까."
"그 정도로 강했어?"
"설명이 필요 없었다. 그녀의 별명은 학살의 서큐버스였다."
"… 학살은 영어가 아닌데."
이 새끼들은 영어고 한자고 왜 마음대로 갖다 쓰는 걸까.
혹시 한글도 있는 거 아니야?
이호연은 쓸데없는 생각을 멈췄다.
지금은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서큐버스는 전투에 강하지 않다. 보통 마왕의 정부인 서큐버스가 당대의 서큐버스 퀸이 되는 것으로도 알 수 있지. 하지만 칼리오페는 달랐다. 매혹에는 거의 흥미를 두지 않았고, 피가 난무하는 전쟁을 좋아했다. 서큐버스 중에서도 별종이었지."
"그래서 Killer Queen이라는 이름이 있는 거네."
"그 이름을 얘기하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칼리오페는 그 이름을 싫어했다. 주저없이 그 이름을 꺼내는 걸 보면 역시 칼리오페와 깊은 사이인가 보군."
"… 깊은 사이가 맞긴 한데."
이호연은 입맛을 다시며 중얼거렸다.
역시 지옥이 이상한 게 아니라 그 켄타우로스가 미친놈이었어.
케이론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분명 그런 이름을 부르지 말라고 했는데 혼자서 Killer Queen이라고 소리치며 달려갔었지. 그 미친 자식. 그러니까 처맞는 거 아니야.
"그녀의 재능은 싸움에서 더욱 빛났다. 서큐버스인데도 매혹의 힘은 하나도 사용하지 않으며 다른 후계자들을 제치고 지옥의 귀족들을 자신의 휘하로 끌어들였지."
"호오… 그럼 너는 매혹 전문이었냐?"
"… 아니다. 힘이 사라졌을 뿐. 나도 전투 계열이었다."
알베도는 케이론보다 자세히 상황을 알려줬다.
어쩌면 지옥에서는 알베도가 케이론보다 강했을지도 모르겠네.
"그래도 잘 알고 있네. 릴리아나랑 같은 마왕의 후계자라 그런가."
"같은 후계자였지만 나와는 급이 달랐지. 나는 그녀의 괴롭힘에서 도망치기 바빴다. 마주칠 때마다 전력을 빼앗기기만 했다."
"네가 잘못한 거 아니야? 너도 케이론처럼 실수를 했겠지."
"… 칼리오페는 나뿐만 아니라 모든 마족을 괴롭혔다."
"그냥 릴리아나가 양아치였구나."
이호연은 금방 납득했다.
지금도 성격이 제멋대로인데 케이론의 기억처럼 강했다면 얼마나 무서웠을까.
과자를 내놓으라는 이유로 마족들을 팼을지도 모른다.
"내가 그럴 리가 없는뎅…."
릴리아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억울한 티를 냈지만,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이호연은 릴리아나에게 괴롭힘 당했을 지옥 놈들에게 애도를 보냈다.
"오케이. 대충 알겠어. 그럼 릴리아나가 사라진 뒤에는 어떻게 됐는데? 릴리아나의 세력이 엄청나다면서. 설마 그 세력들도 다 사라진 거야?"
"그건 아니다. 하지만 그 세력들은 하루아침에 흩어졌다. 칼리오페에 대한 충성심이 엄청난 놈들이었는데도… 아무 불만을 제기하지 않고 흩어졌지."
"흠… 너는 후계자잖아. 더 알 수 있는 게 없었어?"
"나도 개인적인 조사를 했지만, 아무 흔적도 남지 않았다. 다만 비슷한 시기에 서큐버스 퀸이 은거했고 마왕이 휴식기에 들어갔다. 아마 그 둘과 관련이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
서큐버스 퀸.
릴리아나의 어머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릴리아나의 어머니가 두 명이 아니라면, 릴리아나가 말하던 어머니가 서큐버스 퀸이겠지.
릴리아나가 게임을 하며 인생을 낭비하는 동안 그 옆에 있던 어머니가 서큐버스 퀸이라는 소리다.
'그게 말이 되는 건가?'
서큐버스 퀸이라는 존재를 잘 아는 건 아니지만, 퀸이잖아. 퀸.
여왕.
즉 한 종족의 제일이라는 뜻인데, 집에서 게임만 하던 릴리아나를 갈구던 서큐버스가 서큐버스 퀸이라니.
얼마나 웃긴 일인가.
이호연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하아. 릴리아나. 네 생각은 어때. 묻고 싶은 게 있어?"
"으으으으음. 잘 모르겠어. 지금은 생각나는 게 없엉."
"그럼 됐어. 고생했다. 알베도."
이호연은 익숙하게 마력을 일으켰다.
지옥의 존재를 죽인 적은 없지만 마인을 죽이는 건 익숙했다.
물론 익숙해져서 좋을 게 없는 감정이지만… 내 정신은 살인을 앞두고도 평온했다.
"사, 살려줘. 말하라는 건 다 말했잖아. 뭐, 뭘 바라는 거야!"
알베도는 다가오는 이호연의 변화를 깨달았다.
목 끝까지 다가온 살의.알베도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호연은 무표정하게 알베도를 내려다봤다.
자신을 건드린 것도 아니고 자신의 여자를 건드렸다.
죽일 건데 유언을 들을 필요는 없겠지.
"저기. 이 쪽."
그때, 살짝 떨어져있던 릴리아나가 손짓으로 이호연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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