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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야겜에 빙의했다-424화 (424/648)

〈 424화 〉 424화. 망나니 인큐버스 (2)

* * *

화동 던전 탐사를 마친 다음 날.

나는 아침부터 임솔 교수님에게 연락을 하고 있었다.

­ 나 : 지금 갑니다. 교수님? 지금 가요?!

­ 솔이 교수님 : 천천히 오라니까. 이제 아침이야.

­ 나 : 아니, 급하다니까요. 진짜예요.

­ 솔이 교수님 : 알았어. 그럼 한 시간 뒤에 와.

탁­

나는 초조한 표정으로 스마트 워치의 화면을 껐다.

나도 아침부터 연락하기는 싫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사실 어젯밤에 당장 가려고 했는데 너무 늦었다고 거절당했다.

이미 퇴근해서 집에 있다길래 쳐들어가기도 뭐했거든.

그렇게 급하면 내일 아침에 오라고 하길래 열심히 준비 중이다.

"놀러 가는 거야?"

"아니야. 아는 교수님이 있는데, 인큐버스가 건드릴까 불안해서."

오늘따라 일찍 일어난 릴리아나는 내 옆에 달라붙어있었다.

또 심심한가 보네.

"다급한 걸 보면 그 교수님은 처녀인가 봐."

"…."

릴리아나는 당연한 걸 말하는 표정이었다.

그렇게 직설적으로 말하면 대답하기가 뭐하잖아.

나는 릴리아나의 지루함도 풀어주고 화제도 돌릴 겸 말을 꺼냈다.

"릴리아나. 인큐버스의 정기 측정을 막는 법은 없어?"

"정기를 확인하는 건 인큐버스의 목숨이나 마찬가지야. 쉽게 막을 수 없어."

"그래?"

목숨을 건 정기 확인이라고 하니까 할 말이 없네.

서큐버스인 릴리아나가 하는 말이니까 의심할 필요도 없다.

처음부터 정기 측정을 막는 건 힘들다고 봐야겠지.

"그럼 그 후의 매혹을 막는 방법은 있어?"

"실드로 막아야지. 바보야."

"… 아니 그건 그렇지. 근데 더 효과적인 방법이 있냐고 묻는 거야."

결계나 실드로 매혹을 막을 수 있는게 문제가 아니다.

내가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좋을텐데.

"글쎄. 일단 매혹이라는 건 결국 매력 어필이나 마찬가지야. 정신력이 강하면 버틸 수 있겠지."

"만약 버티는 사람이 처녀라면?"

"그건 힘들걸. 인큐버스는 처녀를 상대할 때 강해져."

"흐음…. 엄청 강한 마력을 가지고 있어도 안될까?"

"나도 몰랑. 그건 인큐버스가 얼마나 강하냐에 따라 다르겠지."

나는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지옥에 사는 놈들은 역시 다 이상하구나.

처녀에게만 강해지는 인큐버스는 살다 살다 처음 들어본다.

그리고 내 예상이 맞다면, 그 인큐버스는 마왕의 자식.

아마 인큐버스 중에서도 최상위에 속해있겠지.

과연 임솔이 버틸 수 있을 지 불안했다.

"아니면 내성이 생기는 방법도 있어. 비슷한 강도의 매혹을 계속 받다 보면 내성이 생길 거야."

"… 그러면 너무 늦잖아."

릴리아나는 최대한 날 생각하며 말해줬지만 들어도 딱히 달라질 게 없었다.

나는 임솔을 염려하며 중얼거렸다.

"답답하네…."

"그냥 처녀 딱지를 떼는 게 제일 좋을텐뎅."

"그게 안되니까 문제지."

그렇게 허무하게 임솔과 진도를 나갈 거였으면, 미국의 숙소에서 해버렸을 거다.

참은 만큼 달콤한 과실이 떨어지는 법.

지금까지 한 노력이 있으니 버텨야 한다.

'물론 하고 싶어도 못하겠지만.;

애초에 인큐버스가 온다고 허락해줄 리가 없지.

내가 아는 임솔이라면 코웃음을 칠 거다.

자신의 마법을 엄청나게 믿는 사람이니까.

"애기 아빠. 어디 가려고?"

"아, 레베카 씨. 잠시 아카데미에 가려고요."

그때, 다가오던 레베카가 말을 걸어왔다.

붉은 머리를 찰랑거리는 게 방금 씻고 나온 모양이다.

"임솔 마법사 님한테 가는 거야?"

"네."

"그럼 나도 데려가야지! 약속했잖아."

"… 아. 맞네."

레베카는 기대감이 가득 찬 미소를 지으며 내게 다가왔다.

생각해보니 이 사람도 데려가기로 했었지.

'그냥 데려가자.'

사람이 많으면 좋지 뭐.

레베카는 처녀도 아니니까.

"그럼 30분 뒤에 출발해요."

"응. 준비할게."

임솔은 1시간 뒤에 오라고 했지만, 30분 뒤에 가야겠다.

내 말을 들은 레베카는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준비를 시작했다.

나는 그동안 릴리아나의 허벅지에 누워 인큐버스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이어갔다.

*

똑똑똑.

레베카와 나는 임솔의 연구실을 두드렸다.

평소라면 자연스럽게 안으로 들어가겠지만, 30분 일찍 왔으니 배려를 해야지.

띠링­

그러자 스마트 워치에서 답변이 왔다.

­ 솔이 교수님 : 왜 벌써 온 거야.

­ 나 : 보고 싶어서 빨리 왔어요. 아, 전에 말했던 마법사도 같이 왔어요.

­ 솔이 교수님 : 알았어. 그럼 들어와.

"됐다. 레베카 씨. 들어가죠."

대답을 받고 옆으로 고개를 돌리자 기도하는 것처럼 고개를 숙인 레베카가 보였다.

이 사람은 뭐 하는 거야?

"레베카 씨?"

"애기 아빠. 안 되겠어. 나 가슴이 너무 떨려. 나는 조금 이따 들어갈게."

"…?"

"심호흡. 심호흡을 하고… 후우."

레베카는 진심으로 긴장한 것 같았다.

임솔을 만나는 게 그렇게 떨릴 일인가?

룬의 일족을 찾는 것만큼 대단한 일인가 보네.

"알겠어요. 그럼 진정되면 들어오세요. 집무실로 찾아오면 될거에요."

"응. 먼저 가 있어."

레베카는 긴장을 풀려는 듯 후하후하 숨을 쉬었다.

한 시라도 빨리 교수님을 보고 싶었던 나는 레베카를 두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제는 익숙해진 연구실의 풍경을 지나 임솔이 지내는 집무실로 향했다.

타닥­ 탁­

안으로 들어가 보니 편한 핑크 츄리닝을 입은 채 마법 실험구를 들여다보는 임솔이 보였다.

평소대로의 모습을 보니 안심이 된다.

나는 임솔에게 다가가며 인사를 건넸다.

"솔이 교수님! 저 왔어요!"

"응. 엄청 빨리 왔네."

나는 여전한 미소를 짓는 임솔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다행히 별 일은 없다.

하루 만에 무슨 일이 생기진 않았다.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몰라요. 후우…."

"그래그래. 무슨 일이길래 그러는 거야. 이제 말해봐."

"음…."

임솔은 태연하게 물었다.

나는 인큐버스에 대해 말해도 될지 잠시 생각했다가, 그냥 말하기로 했다.

어차피 아이리스 길드원들도 인큐버스를 봤으니 문제는 없겠지.

중요한 건 임솔의 안전이니까.

나는 임솔에게 화동 던전에서 만난 인큐버스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강한 매혹 능력을 지닌 인큐버스가 있다.

인큐버스는 미녀의 정기를 흡수하려고 한다.

그리고… 처녀는 인큐버스의 공격에 취약해진다.

"으흐음…."

"상태도 볼 겸 이걸 말해드리려고 찾아왔어요. 앞으로 결계에 더 신경 쓰시라고요. 교수님은 인큐버스가 탐낼만큼 예쁘잖아요."

임솔은 조용히 내 말을 듣더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제자가 말하는 거면 그래야겠지."

"네. 그럼요. 제가 얼마나 걱정했는데요."

"나한테만 급히 찾아온 걸 보면 다른 친구들은 괜찮나 봐?"

"…."

임솔은 정곡을 찔러왔다.

혹시라도 저렇게 말할까 봐 말하기 겁났는데, 진짜 생각한 대로 말하네.

"임솔 교수님이 먼저 생각나서 그런 거죠."

"내가 무력은 제일 강할 텐데?"

"… 그게 뭐가 중요하겠어요."

"흐으응."

임솔은 고개를 끄덕이며 묘한 미소를 지었다.

마치 정말 그렇게 생각하냐는 표정이었다.

…그래도 중요한 말은 전했으니 괜찮겠지?

나는 주제를 돌리기 위해 다른 말을 꺼냈다.

"그건 그렇고, 제가 마법사 한 분을 데려왔거든요. 근데 교수님을 엄청 좋아하시더라고요."

"신기한 마법사네."

"네. 셋이 대화라도 나누면 좋을 거 같아서요. 아마 교수님도 좋아하실거에요."

"그래. 아, 이따 아영이도 온다고 했는데 괜찮지?"

"응? 아영 씨요?"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자기 백아영이 왜 오는거야.

"네가 아침부터 온다고 하니까 아영이도 바로 준비한다고 하던데? 다 같이 보면 되잖아."

"… 음. 안될 건 없는데."

사실 큰 문제는 없다.

아침부터 임솔한테 온 것에 대해 삐질수도 있지만,백아영한테도 인큐버스에 대해 설명하면 납득하겠지.

아마 임솔이 처녀라는 사실을 반가워할지도 모른다.

똑똑똑­

­ 들어가도 될까요?

그때,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줄 레베카가 등장했다.

임솔의 허락을 받은 내가 집무실의 문을 열자, 긴장한 표정의 레베카가 안으로 들어왔다.

"아, 안녕하세요. 임솔 마법사님."

"네. 처음 뵙겠습니다."

"이 쪽이 제가 말했던 마법사, 레베카 씨예요. 결계를 전문으로 다루는 분이에요."

"… 그래?"

임솔은 레베카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한 채 대답했다.

아마 상대의 힘을 가늠하고 있는 거겠지.

잠시 레베카를 바라보던 임솔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차 한 잔 드릴까요?"

"네. 감사합니다."

'인정받았네.'

임솔의 얼굴만 봐도 알 수 있다.

레베카에게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결과지.

레베카 씨가 얼마나 강한데.

임솔은 미소를 지으며 레베카에게 차를 내줬고, 둘은 곧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레베카 씨? 저와 대화를 나누고 싶어 했다고 들었어요."

"네. 임솔 마법사 님의 연구를 보고 감명을 받았거든요. 꼭 한 번 말해보고 싶었어요."

"아하… 신기하네요. 제 나이 또래에 레베카 씨처럼 강한 마법사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처음에는 어색해하던 둘은 금방 서로를 인정했다.

레베카는 워낙 임솔을 보고 싶어 했고, 임솔도 자신과 같은 나잇대에 이런 마법사가 있다는 사실이 기쁜 모양이었다.

겉으로 티는 안내도 약간은 신경쓰고 있었으니까.

나말고 다른 마법사가 등장하는 게 기쁘겠지.

손수 차를 내오며 대화를 이어가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원래는 단답밖에 안 하는 교수님이 길게 대화를 이어갔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건 레오나르도 술식 증명과 카미그린 정리거든요. 그리고…."

"레오나르도 술식 정리는 저도 좋아하는 주제예요. 평행 세계에 존재하는 마법진과 다른 마법이…."

"여, 역시 임솔 마법사 님. 그런 관점에서도…."

"그러고 보니 레베카 씨는 결계 마법의 스페셜리스트라고 하셨죠?"

"네. 아, 여기서 한 번 보여드리면…."

임솔과 레베카는 신나게 마법에 대한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레베카가 이렇게 마법에 진심일 줄은 몰랐네.'

레베카는 아이돌을 만난 소녀팬처럼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하긴, 저 나이에 저렇게 강하려면 마법에 진심이여야겠지.

아마 룬의 일족을 찾으러 다닐 때부터 강해 지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했을 거다.

그때 임솔의 연구가 많은 도움이 되었나 보네.

"대단하네요. 결계라고 하지만 그걸 뛰어넘은 무언가가…."

"네. 제가 결계 안에 있다면 이런 것도…."

둘은 내가 있는 걸 신경도 안 쓰고 신나게 마법에 대한 대화를 즐겼다.

그래.

가끔은 저렇게 취미 생활에 몰두해야지.

나도 대충 다 알아들을 수는 있었으니 소외되는 느낌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까 백아영도 온다고 하지 않았나?

'여기 백아영이 오면 엄청 불편하겠네.'

나는 마법 얘기에 낄 수 있지만, 백아영은 그러지도 못한다.

그녀는 기본적인 지식만 있을 뿐 이런 전문적인 분야는 잘 모르니까.

그렇다고 이 두 사람이 백아영을 배려해 마법 얘기를 멈출 것 같지도 않았다.

띡­ 띠딕­

나는 스마트 워치를 두드려 백아영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나 : 아영 씨. 임솔 교수님 연구실로 오는 거예요?"

­ 백아영 : 응. 지금 가는 중이야. 왜?

­ 나 :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빨리 오세요.

나는 슬쩍 자리에서 일어났다.

백아영이나 데리러 가야겠네.

둘은 내가 일어나는 것도 모르고 대화에 빠져있었다.

마법과 공간이 어쩌고 하는 걸 보니 아직 대화할 거리는 많이 남았다.

인큐버스가 걱정돼서 왔는데, 다행히 별 일은 없었다.

나는 둘을 내버려둔 채 집무실 밖으로 나와 곧 찾아올 백아영을 기다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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