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2화 〉 422화. 화동 던전 탐사 (3)
* * *
던전의 입구를 막고 있는 정체불명의 생도.
느껴지는 마력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생도의 모습을 보면 우연히 던전에 흘러들어왔다고 보는 게 타당하겠지.
아이리스 길드의 조사팀은 수상한 인간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잠깐 당황했지만, 금방 상황을 파악했다.
그리고 나와 똑같이 생각한 듯, 길드원 한 명이 생도를 향해 다가갔다.
"안녕. 빅토리아 아카데미의 생도니? 여긴 어떻게 들어온 거야?"
"…."
"놀라지 마렴. 우리는 너를 건드릴 생각이 없단다. 대신 어떻게 들어왔는지만…."
여길드원이 미소를 지으며 생도에게 다가가던 그때.
비릿한 미소를 지은 남생도가 한 발짝 앞으로 걸어 나왔다.
동시에 여길드원은 몸의 균형을 잃고 혼절하듯 쓰러졌다.
"하, 하으읏…."
"… 뭐야?! 안젤리나!"
"안젤리나가 쓰러졌어!"
안젤리나라고 불린 여자는 남생도가 가까이 오는 것만으로 쓰러졌다.
뒤에 있던 길드원들은 놀란 듯 했지만, 자세한 걸 보진 못한 것 같았다.
"방금 분명히…."
'개안'을 활성화시키고 있던 나는 확실히 확인했다.
안젤리나가 쓰러지는 그 순간.
그녀는 황홀한 미소를 지으며 허벅지를 비비고 있었다.
공격을 당한 사람의 얼굴은 아니었다.
꿀꺽.
'… 이상해.'
길드원들 사이에 긴장이 퍼져나갔고, 나도 진지한 표정으로 눈앞의 남자를 노려봤다.
왜인지는 몰라도 엄청난 적의가 가슴을 불태운다.
저 남자를 내 눈앞에 살려두면 안 될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다.
"몸매는 괜찮은데, 얼굴이 내 취향은 아니네."
남생도는 쓰러진 안젤리나의 얼굴을 보고 중얼거렸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내 머릿속의 퍼즐이 맞춰졌다.
'사도. 분명 사도가 있다고 했었어.'
내가 생포한 마인들이 곧 사도가 온다고 말했었지.
저 놈이 만약 사도라면….
"야. 정신들 차려봐."
퍽 퍽
나는 질질 끌고 오던 마인들을 걷어차며 말을 걸었지만, 둘은 기절한 채로 일어나지 못했다.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더 친절하게 다룰걸.
"가, 강효린 박사님.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 제가 나서겠습니다. 모두 뒤로 빠지세요."
겁에 질린 길드원들은 강효린 박사를 바라봤다.
강효린이 한국 지부장으로서 움직이려고 할 때, 아이린이 그 앞을 막았다.
"아니, 내가 갈게."
"아이린 님? 아닙니다. 그럴 필요는…."
"괜찮아. 내가 제일 강하니까."
아이린은 모두를 뒤로 물리고 앞으로 나섰다.
사실 가장 강한 그녀가 먼저 나서는 게 좋은 방안은 아니었지만,그녀의 표정이 험악했다.
자신이 보는 앞에서 아이리스 길드원이 쓰러졌으니 당연하겠지.
보기보다 일에 투철한 사람이니까.
"좋은 말로 할 때 투항해라. 그렇다면 대우는 좋게 해 주겠다."
"… 흐음."
남생도는 점점 다가오는 아이린을 보더니, 마치 벌레를 본 것 처럼 얼굴을 찌푸렸다.
"당신은 꽤 취향이지만… 처녀가 아니네. 조금만 일찍 만났으면 좋았을 거야. 나한테 처녀를 바쳤으면 귀여워해 줬을 텐데."
"뭐, 뭐라고?"
아이린은 갑작스러운 성희롱에 얼굴을 붉히며 상대를 바라봤다.
뒤에서 잔뜩 긴장한 채 대화를 듣던 우리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남생도는 당황한 아이린을 무시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마인은 잡혀있고… 미친놈도 이미 도망친 거 같고… 마음에 드는 여자도 없으니 여기 있을 이유가 없잖아."
놈은 딱히 이 던전에 용무가 없어보였다.
두근
동시에 내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전투 감각의 전조.
"마천궁 전개."
나는 무의식적으로 마천궁과 룬의 결계를 펼쳤다.
그와 동시에, 정체불명의 불쾌한 기운이 날 포함한 길드원들을 강타했다.
마치 케이론의 텔레포트를 봤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기분나쁘고 음울한, 지옥 특유의 기분나쁜 분위기.
나는 상대의 공격에 빠르게 반응했지만, 시간이 부족해 전부 막지는 못했다.
결국 내 주변에 있던 길드원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그 기운에 노출되었다.
"크으으으으윽! 아, 아아악!"
"흐으응…."
"아, 아하앙…."
기운에 노출된 길드원들은 서서히 반응하기 시작했다.
몸을 파르르 떨더니, 나머지 인원에게 마법을 발사하기 시작한 것이다.
"잠시만, 에스더! 무슨 짓이야!"
"수잔! 멈춰!"
"김서준이 이상해졌어!"
나는 빠르게 상황을 파악했다.
기운에 노출된 길드원들은 정신이 이상해졌다.
아마 저 사도의 특별한 능력이겠지.
내 예상이 맞다면 아마도 '매혹'같은 능력일 거다.
마천궁을 펼쳤는데도 마력에 의한 공격이 아니었기에 이미 매혹에 걸린 길드원들을 치료할 순 없었다.
"씨발, 진짜 어이가 없네…."
나는 마천궁 내부의 마력을 조종해 날아오는 마법을 막아내고, 혼란한 길드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상대의 마법 같습니다. 당황하지 말고 눈이 풀린 사람들만 제압해주세요."
"… 알겠어요. 모두 제 주변으로 모이세요!"
다행히 나머지 인원들은 금방 정신을 차렸고, 강효린 박사를 중심으로 매혹에 걸린 길드원들을 서서히 제압해나갔다.
사실 이 쪽을 공격하는 길드원들은 적었다.
대부분은 매혹에 걸린 채 머리를 쥐어뜯으며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아마 경험이 없는 사람만 제대로 매혹에 걸리는 게 아닐까하는 추측이다.
'뭐 이딴 능력이 다 있어.'
짜증 나는 점은 남자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나는 정면에서 바닥을 구르는 아이린에 다가갔다.
"아이린 씨. 일어나세요. 놈이 도망쳤잖아요."
"아, 아읍… 흐윽…."
아이린은 고통스러운 듯 바닥에서 몸을 비틀고 있었다.
성적인 쾌감 같은 건 아닌 것 같고, 물리적인 고통을 느끼는 것 같았다.
아마 상대와 가까이 있었으니 그만큼 강한 충격을 받았겠지.
'가질 수 없으면 부숴버리겠다는 건가.'
고통스러워하는 아이린의 몸에 손을 대고 마력을 불어넣었다.
마력으로 몸을 건드리자 고통은 줄어든 것 같았지만, 역시 마력으로는 치료할 기미가 안보였다.
"아, 아윽… 크흡…."
"아이린 씨. 잠시만 참으세요."
나는 조용히 아이린을 바라보다가, 아이린의 가슴에 손을 올렸다.
부드럽게 내 손을 감싸는 가슴의 감촉.
그대로 손을 움직였다.
옷 위로 만져도 이렇게 극상의 촉감이라니. 역시 축복받은 유전자구나.
잠시 동안 가슴을 만지자, 곧 탁 하는 소리와 함께 손등에 얼얼한 아픔이 느껴졌다.
"이, 이 미친놈. 여기서까지 그런 짓을 하려고 하다니. 아무리 그래도 이건…."
"이제 안 아프죠?"
"… 어?"
내 손을 쳐낸 아이린은 자신의 몸 상태를 확인했다.
방금까지 느껴졌던 아픔이 순식간에 사라진 모양이다.
'그럴 거 같더라.'
처녀를 그렇게 따지는 놈이었으니, 그 능력도 다른 남자가 건드리면 사라질 것 같았다.
아무리 사도라지만 아무 조건도 없이 매혹을 걸어버리는 건 너무 강하잖아.
"그, 그 자식은…?"
"도망쳤어요."
"…… 하아."
"아프다. 손이 너무 아파."
"미안. 그런 의도인 줄 몰랐어. 당연히 성희롱인 줄 알고…."
"괜찮아요. 저도 반신반의했거든요."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텅 빈 던전의 입구를 바라봤다.
놈에게 느껴지는 기세는 약했다.
하지만 저 이상한 기운은 나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
그 남자가 사도 중 하나인 건 확실한 것 같다.
"괜찮아? 태현아?!"
"세희, 김세희! 정신 차려!"
나머지 길드원의 정리도 대부분 끝난 것 같았다.
아이린은 나머지 길드원들을 살피러 갔고, 나는 고민을 이어갔다.
판데믹이 소환하는 사도.
첫 사도인 케이론을 생각해보면 나머지 사도도 마왕의 자식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마왕의 자식들을 알고 있다.
[ 지옥의 망나니 소환 계약서 ]
지옥의 망나니들을 불러낸 자가 당신인가
4마리의 망나니 중 하나를 골라라.
1. 인육에 미친 정육점 사장 악마 루시퍼
2. 지옥 아카데미 아다폭격기 금태양 인큐버스
3. 20년째 F급 용병. 백전백패 노장의 저력 켄타우로스
4. 50살째 노처녀 거미줄 치기 장인 서큐버스
지옥의 망나니.
그건 마왕의 자식을 말하는 단어다.
아마 저 놈이 아다폭격기 금태양 인큐버스라는 놈이겠지.
"어이가 없네…."
저딴 기분 나쁜 놈을 사도로 소환해서 어쩌자는 거야.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전투력은 강하지 않았지만, 놈은 여자들의 적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 여자에게 다가오게 하면 안 된다.
"… 빨리 나가야겠어."
나는 길드원들에게로 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빨리 수습해서 바깥으로 나가야지.
그렇지않으면 혹시나 기분 나쁜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
빅토리아 아카데미의 한 교수실.
방문에는 업무중이라는 팻말이 걸려있었고, 그 안에서는 음란한 소리를 내는 두 남녀가 몸을 섞고 있었다.
생도복을 입고있는 금발의 남자와 여교수였다.
"하, 하악. 아, 조, 좋아…."
여교수는 동공이 풀린 채로 쾌락을 추구하며 허리를 움직였다.
찰박거리는 물소리가 교수실에 울려퍼졌다.
짧은 시간동안 몸을 섞은 후.
금발의 인큐버스는 자신의 몸 위에서 음란하게 허리를 철벅이는 여교수를 밀어냈다.
여교수는 자연스럽게 바닥에 철퍼덕 넘어졌지만, 그럼에도 다시 인큐버스의 허벅지에 매달려왔다.
그녀의 눈은 단단한 남성기에 고정되어있었다.
"청소라도 하고 있어."
"네, 네엡…."
인큐버스는 여교수에게 큰 관심을 주지 않았다.
어차피 최소한의 정기만 취하고 버릴 여자.
여교수가 인큐버스의 사타구니에 머리를 박고 있는 동안, 인큐버스는 여교수가 제공한 명단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재밌는 세상이네… 나도 이런 곳에서 태어났으면 좋았을 텐데."
마왕의 후계자 자리를 포기하고 은둔한 자신이 갑자기 인간 세상에 소환되었을 때는 매우 놀랐지만, 적응은 빨랐다.
자신을 소환한 남자는 마에스트로라고 소개했고, 인간 세상에 혼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옥에는 수 많은 강자들이 있다.
그들이 아니라 자신이 소환된 이유는 아직도 모르겠지만,생각할수록 고마운 남자였다.
'그녀'가 없는 세상이라니, 그에게는 천국이나 마찬가지.
이곳에서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게다가 예쁜 인간들도 많고…. 음?"
멍하니 아카데미의 여생도 명단을 훑어보던 인큐버스는 한 곳에서 손을 멈췄다.
1학년 A클래스.
그는 천천히 A클래스의 여생도들을 살폈다.
명단을 바라보던 인큐버스의 눈이 서서히 커졌다.
그야말로 경국지색.
지옥에 있었다면 여자 하나 때문에 전쟁이 일어날 정도로 아름다운 여자가 무려 넷이나 있었다.
인큐버스는 가슴 깊은 곳을 채우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떨어져."
"아, 아흥."
인큐버스는 자신의 물건에 매달려있는 여교수를 떼어냈다.
이런 여자에게 자신의 정력을 낭비할 순 없었다.
그는 그대로 교수실을 빠져나왔다.
손에는 1학년 A클래스의 명단이 들려있었다.
인큐버스라는 종족은 기본적으로 정기를 획득해야한다.
정기는 곧 힘의 척도.
미녀를 취할수록 인큐버스의 힘은 강해진다.
그 중에서도 인간 여자의 정기는 최상급이다.
"처녀라면 엄청난 정기를 빨아들일 수 있어. 만약 넷이 전부 처녀라면 나도 다시…."
인큐버스는 기대감에 주먹을 꽉 쥐었고,그의 중얼거림은 조용히 허공에 흩어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