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1화 〉 421화. 화동 던전 탐사 (2)
* * *
"젠장, 젠장…. 어째서 여기 있는 거야!"
"사도님이 오고 있다. 그 전까지만 버티면… 이봐, 앞에 사람이 있어!"
이 쪽으로 달려오는 마인들의 모습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머리에 시커먼 뿔이 달려있는 위협적인 모습.
나는 '개안'을 활성화하며 마인들을 살폈다.
'꽤 강하네.'
S급에서 하위 수준.
나보다는 약하겠지만, 일반적인 시선으로는 강한 축에 속하는 마인들이다.
저런 마인이 둘이나 있는 걸 보면 판데믹 소속인 건 확실하다고 봐도 되겠지.
"이, 이호연이다. 이런!"
"씨발… 저리 비켜!"
"뭐라는 거야."
마인들은 나를 보고도 속도를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전투가 목적은 아닌 것 같았다.
내 옆으로 도주할 생각 같았는데, 절대 그냥 보낼 순 없지.
"마천궁 전개."
화동 던전 내부에 판데믹의 마인이 있었으니, 더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던전의 이상 현상은 판데믹의 계획과 관련이 있다는 뜻이다.
저 마인들은 생포해야한다.
지이잉
마천궁을 전개한 상태로 아크까지 소환했다.
나는 눈앞의 마인들을 보며 마력을 퍼트렸다.
"라이트닝 웨이브."
콰지지직
내 발끝을 중심으로 번개가 퍼져나갔다.
내게 달려오던 마인들은 익숙하게 번개를 피했지만, 그 정도로 피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
"다크 스웜."
마인들이 도망치는 곳에 검붉은 안개를 펼쳤다.
들이마시는 순간 맹독에 감염되는 독 안개.
놈들은 바닥에서 쫓아오는 번개와 독 안개를 피하느라 정신이 흐트러졌고, 내 아크에서 소환되는 다른 마법을 피하지 못했다.
'크리스탈 필드.'
극저온의 냉기가 퍼지면서, 마인들의 발을 묶었다.
크리스탈 필드가 발을 묶었고, 그 주위를 번개와 독 안개가 감쌌다.
"말도 안 되는… 마법을 동시에 몇 개나 펼치는 거야?"
"내가 시간을 끌게. 너라도 도망쳐. 루크!"
"… 아르엔. 그럴 순 없어."
"루크…!"
"지랄을 해라."
"으악!"
나는 사랑이 담긴 시선을 교환하는 마인들의 몸을 마력 밧줄로 단단히 묶었다.
왜 여기서 로맨스를 찍고 있어.
괜히 열 받아서 루크라고 불린 남자 마인의 뒤통수를 후렸다.
"크, 크어억…."
"야. 아픈 척하지 말고 정신 차려."
"루크! 소용없어. 어떤 고문을 하더라도 우리는 절대 말하지 않을 거니까!"
아르엔이라고 불렸던 여자 마인은 이를 악 물고 있었다.
아무리 세뇌에 걸려 고문에 강하다고 해도 때리다 보면 뭐든 나오겠지.
내가 별생각 없이 마인들을 훑어보자, 남자 마인들은 내 표정을 읽었는지 여자 마인을 보호하며 앞으로 나섰다.
"제, 제발… 살려줘. 뭐든 지 할 테니 아르엔만은…."
"루크…!"
"태도가 좋네."
이 둘은 말하는 거만 봐도 세뇌가 약해진 상태인 걸 알 수 있었다.
어쩌면 원래 연인이었을지도 모르겠네.
이런 마인들에게는 세뇌어를 말해서 세뇌를 푸는 것도 방법이다.
'그전에 일단 합류할까?'
사실 나 혼자 정보를 아는 게 더 좋지만, 아이리스 길드원들을 먼저 만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판데믹의 마인들이 이 둘만 있다는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이 두 명의 표정이 문제였다.
분명 누군가에 쫓기는 것 같았단 말이지.
"혹시 누구한테 쫓기고 있던 거냐?"
"…! 이럴 때가 아니야. 안에 미친놈이 있다. 당장 도망쳐야 해."
"미친놈?"
그건 또 누구야.
'아무튼 누가 있는 모양이네.'
역시 그냥 아이리스 길드에 합류해야겠어.
나는 마력 밧줄이 단단하게 묶인 걸 확인하고 마인들의 목을 잡았다.
그리고 그때.
누워있던 여자 마인이 중얼거렸다.
"아, 아아… 늦었어."
저벅. 저벅.
마인들이 달려온 통로에서 누군가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아까 다급하게 뛰어오던 마인들과는 다르게 여유가 느껴졌다.
잠시 후 중년 남자 하나가 통로를 빠져나왔고, 나는 그를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
"자네는 어째서 여기 있는 거지?"
"그건 제가 묻고 싶네요. 문성민 씨, 아니 장인어른."
문성민도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그도 내가 여기 있다는 사실은 몰랐겠지.
'대체 어떻게 되고 있는 거야?'
마인들이 나온 것 까진 그렇다 쳐도, 문성민은 왜 있는 거지?
혹시 마인을 잡으러 왔다가 우연히 나랑 마주친 건가?
문성민은 나를 잠깐 바라봤다가, 내 뒤에 묶여있는 마인들을 쳐다봤다.
"마인들을 넘기게."
"하아, 죄송합니다. 뜯어낼 정보가 많아서요."
"방해한다면 어쩔 수 없군."
문성민은 내 반응을 예상한 듯 전투태세를 갖췄다.
두근
나는 몸을 채우는 전투감각을 느끼며 마나를 끌어올렸다.
질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문성민과 마지막으로 싸웠을 때는 아크와 마천궁을 배우기 전이다.
지금은 훨씬 강해졌으니 당연히 이길 수 있겠지.
"… 짜증 나네."
하지만 짜증 나는 건 사실이다.
항상 일이 배배 꼬인다.
조금만 편한 길을 찾으려고 하면 이렇게 막아대니, 이게 운명이라는 건가?
세상을 원망할 수밖에 없다.
"이번엔 안 봐드립니다. 장인어른."
나는 블러드 비트를 사용하며 마력 회로를 가속했고, 뛰어드는 문성민을 보며 마법진을 그렸다.
*
한편, 화동 던전의 텅 빈 보스룸.
조사팀은 마나 농도 측정기를 정리하며 아이린에게 결과보고를 하고 있었다.
"아이린 님! A조와 B조 모두 조사 끝났습니다."
"C조와 D조도 마찬가지입니다."
"… 고생했어. 다들 공동으로 돌아가서 대기해."
"예!"
타다닥
아이린은 휴식 시간을 가지러가는 조사팀을 보며 한숨을 내뱉었다.
이호연의 감시를 위해 왔는데, 왜 자신이 이러고 있는 걸까.
막상 일터에 오니 완벽한 일처리를 더 우선하는 자신이 짜증이 났다.
'그래도 이상한 짓을 하진 않는 것 같아.'
소식이 없긴 하지만 아마 정말 던전의 연구가 목적인 모양이다.
"… 나도 돌아가야지."
아이린은 터덜터덜 걸으며 공동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때, 강효린 박사가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아이린 님. 고생하십니다."
"응. 한국 지부장도 고생이 많네."
"조사 팀들은 내버려 둬도 잘할 텐데요. 제가 할 일을 대신해주시니까 감사하네요."
아이린에게 가까이 온 강효린은 조사팀의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내가 편하고 싶어서 하는 거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이 거리감이 살짝 불편하긴 했지만, 차마 티를 낼 수 없던 아이린은 먼저 공동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강효린은 아이린을 놀리듯 딱 달라붙어왔다.
"아이린 님."
"응."
"혹시 사정이 있는 건가요?"
"사정?"
갑작스러운 강효린의 말에 아이린은 고개를 갸웃거렸고, 강효린은 표정을 진지하게 바꾸고 말을 이었다.
"당연히 이호연과 연인관계일 줄 알았는데… 그런 게 아닌 것 같아서요. 혹시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거면 도와드리겠습니다."
"… 그런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아."
"그런가요? 괜히 걱정하면서 따라왔네요. 하긴 이호연 생도가 나쁜 짓을 할 리가 없겠죠."
강효린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미소를 지었다.
그걸 본 아이린은 강효린이 불편했던 이유를 다시 떠올렸다.
겉으로 보기와 다르게 남의 이해관계를 파악하고 있다.
지금 말로 자신의 상태를 떠 본 거겠지.
그 눈이 자신의 몸을 훑어볼 때마다 마치 가치를 파악당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빴다.
문제는 일을 매우 잘한다는 것.
아카데미에 잠입하고 한국 지부를 너무나 완벽하게 이끌고 있으니 뭐라고 불만을 내뱉을 수가 없었다.
아이린은 표정을 관리하며 강효린에게 말했다.
"조사는 다 끝난 거지? 돌아가자."
"네. 아, 근데 이호연 생도가 아직 안 왔어요."
"이호연이?"
"처음부터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고 하는데, 아직 연락이 없더라고요."
"음… 한 번 가보자."
"알겠습니다."
아이린은 괜히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이 던전에서 이상한 짓을 할 것 같진 않았지만, 정말 혹시 모르니까.
공동에 도착한 아이린은 조사팀을 데리고 이호연이 들어간 통로로 향했다.
처음에는 평범한 통로 같았지만, 안으로 들어갈수록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아이린 님. 마력 측정기가 오류가 나고 있습니다. 농도가 너무 높아요!"
"안 쪽에서 전투가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 빠르게 합류하자."
조사팀은 빠르게 안 쪽으로 들어갔고, 곧 마인과 대치하는 이호연을 볼 수 있었다.
그의 뒤에는 묶여있는 마인 두 명이 있었는데, 아마 그 마인들을 생포하기 위해 다른 마인과 싸우는 것 같았다.
"…."
아이린은 자신의 눈에 들어오는 전투를 보며 입을 벌렸다.
이호연의 몸 주변에 떠다니는 푸른색 마력구.
그리고 마력 측정기에 오류가 날 정도로 높아진 마력 농도.
그 안에 서있는 이호연은 상대 마인을 압도하고 있었다.
상대 마인의 기세는 S급에서도 상위.
자신이 싸우더라도 승패를 장담할 수 없는 상대를 압도적인 마력으로 누르고 있었다.
콰아아앙!
전투는 이미 막바지였다.
어마어마한 마력이 서린 얼음 창이 마인의 가슴에 꽂히고, 찬란한 빛이 사방으로 뿌려진다.
조사팀 모두가 그 광경에 압도당하고 있을 때.
이 쪽을 돌아본 이호연이 소리쳤다.
"보고 있지만 말고 좀 도와줘요! 생포해야 될 거 아니에요!"
"… 모두 움직여!"
"예, 예!"
이호연은 그제서야 움직이는 조사 팀들을 보며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예상대로 문성민을 압도하긴 했지만, 생포하는 건 다른 문제였다.
마침 아이리스 길드가 합류해줘서 안도했더니, 계속 전투를 지켜보기만 해서 얼마나 짜증 났는지 모른다.
"… 젠장. 곧 오겠군."
"뭐라고요?"
그때, 혼잣말을 중얼거린 문성민이 남은 마력을 끌어올렸다.
스르륵
문성민은 마나를 두른 주먹으로 이호연의 공격을 튕겨내며, 도망칠 준비를 했다.
"잡아야 해요!"
"응!"
이호연의 옆에 온 강효린 박사가 마법을 펼치고 아이린이 문성민에게 달려들긴 했지만, 문성민의 움직임은 빨랐다.
그의 몸이 연기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이호연은 순식간에 사라진 그의 모습을 보며 분한 듯 바닥을 걷어찼다.
"아오, 마력이 조금만 더 있었어도…!"
하필 중요한 순간에 마력이 다 떨어졌다.
조금만 더 강했다면 문성민을 잡을 수 있었을 텐데.
이호연은 아쉬운 마음을 거두고 아이리스 길드원들을 보며 말했다.
"보시다시피 전투가 일어나서 늦었습니다. 여기 마인 두 명은 생포했으니까 돌아가죠."
"으, 으응. 가자."
아이리스 길드원들은 자신을 불편한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다들 표정이 왜 이래?
이호연은 조사팀의 얼굴을 보며 눈을 끔벅거렸다.
*
문성민을 아쉽게 놓친 나는 마인 두 명을 질질 끌고 던전의 초입까지 돌아왔다.
'그래도 엄청 강해지긴 했네.'
마인 두 명도 잡았고, 강해진 전투력으로 자신감도 생겼다.
다만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는데, 문성민이 날 죽이려고 했다는 것이다.
'예전에 만났을 때는 이 정도가 아니었는데.'
그때도 날 생포하려고 했다가 실패하고 도망쳤었지.
하지만 오늘은 완전히 날 죽일 기세로 달려들었다.
인간은 건드리지 않던 그의 마음가짐이 바뀐 것이다.
'왜 이렇게 된 거지?'
내가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앞서 나가던 길드원이 소리쳤다.
"앞에 누군가 있습니다! 아카데미의 생도로 보입니다!"
"… 생도라고?"
아이린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앞을 바라봤고, 나도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던전의 입구에는 정말 생도복을 입은 남자 하나가 서있었다.
"저건 또 누구지?"
"혹시 네가 아는 생도야?"
"아니요. 애초에 빅토리아 아카데미 생도가 아닌 것 같아요."
아이린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빅토리아 아카데미의 생도라면 내 기억에 남아있어야 한다.
저 남자의 얼굴은 기억에 없다.
나는 처음 보는 금발의 남생도를 보며 눈을 찌푸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