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6화 〉 416화. 동아리 건물
* * *
월요일 아침.
물론 방학이라 평일과 주말의 구분은 없지만, 방학이라도 왠지 주말에 나가긴 싫은 법이다.
아쉽게도 평일이 되어버렸으니 더 핑계를 댈 순 없다.
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외출 준비를 했다.
오늘은 수린 누나를 만나러 가는 날.
수린 누나 : 미안! 오전에는 미팅이 있어. 점심 시간 쯤에 와주면 좋을 거 같아.
하지만 오전 시간대에는 아무래도 바쁜 것 같았다.
학생회장이다 보니 방학에도 쉬는 날이 없는 모양이네.
여기선 매너있는 내가 배려해야겠지.
알겠다는 답장을 보낸 뒤 외출준비를 끝냈다.
어차피 학생회도 동아리 건물에 있으니 가는 김에 루시와 루미를 먼저 만날 생각이다.
루시와 루미를 만나 놀다보면 점심 시간이 되겠지.
그 때 수린 누나에게 가면 된다.
어차피 미국에서 돌아온 이후로 다 만날 생각이었다.
집을 빠져나와 아카데미 지부를 멍하니 걸었다.
방학이라 조용한 이 느낌.
2~3주면 방학도 끝난다.
이 고요함이 사라지는 건 뭔가 아쉽네.
'가짜 던전 마법진을 방학 안에 완성시킬 수 있으려나.'
레베카와 하는 연구는 며칠만에 엄청나게 진전되었다.
무한의 엔트로피와 마천궁, 그리고 핵심 술식까지 더해지니 해결된 문제가 많았거든.
아직 남은 문제가 많긴했지만 완성은 정말 시간문제였다.
"벌써 왔네."
끼익
동아리 방에 도착한 나는 고민을 멈추고 동아리 방의 문을 열었다.
안 쪽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있던 루시와 루미는 나를 보자마자 벌떡 일어났다.
"호연 씨!"
"이호연!"
"응응. 오랜만이야."
나는 미소를 지으며 둘에게 다가갔고, 루시와 루미도 내 옆에 딱 달라붙어왔다.
"보고 싶었어…."
"맞아요. 히잉."
"나도 당연히 보고 싶었지."
꾸욱 꾸욱
루시와 루미는 날 끌어안으며 상체에 얼굴을 비벼댔다.
얼마나 반가운 건지 눈이 촉촉해지길래 등을 쓰다듬으며 달래줬다.
이렇게 반가워하면 나도 기분이 좋네.
우리는 인사를 나누고 테이블에 앉아 재잘재잘 떠들기 시작했다.
"잘 지냈어? 방학 동안에 한다는 수련은 어때?"
"루시가 엄청 강해졌어요. 호연 씨가 미국에 있는 동안 마법 연구를 많이 했거든요."
"교수님이 루미랑 같이 있으면 현장에서 뛰어도 된다고 말하셨어!"
"정말? 대단하네. 아, 내가 발표한 논문 봤어? 마법사한테 도움이 많이 될 텐데."
"응. 근데 너무 어려워."
"맞아요… 루시랑 같이 읽어봤는데 이해를 못 했어요."
"그럼 내가 알려줄게. 마법진 펼쳐봐."
"정말?!"
오랜만에 만나서 그런 지 잡담만 해도 즐거웠다.
나는 루시와 루미에게 핵심 술식에 대해 짧은 강의를 해준 뒤, 둘의 성과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재능이 있어서 조금만 알려줘도 잘하네.
마법 강의를 끝내고 테이블에 있는 쿠키를 집어먹는데, 루미가 밝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호연 씨. 호연 씨. 저희 같이 놀이공원 갈까요?"
"놀이공원?"
"네. 예전부터 가보고 싶었어요!"
"맞아. 루미가 그런 곳 좋아하거든."
나는 루미의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저렇게 해맑게 웃어서 왠만하면 허락해주고 싶지만, 쉽지가 않다.
하루 시간을 통으로 빼려면 꽤 많은 걸 희생해야 하거든.
"시간이 나면 꼭 가자. 너희에게 제일 먼저 말할게."
"아… 네!"
"루미. 그러지 말고 카드게임이라도 하자. 나는 게임도 좋아."
"응응! 카드 게임 하자."
루미는 내 말에 담긴 뜻을 파악했는지 살짝 아쉬운 듯했지만, 대화에 끼어든 루시를 보고 금방 활기를 되찾았다.
루시도 분명 내 말을 이해했겠지.
그러니까 저렇게 말을 끊어준거다.
'미안하네.'
루시와 루미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지만, 나도 사정이 있었다.
하루 전체를 데이트에 사용하면 그날은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진다.
그 정도라면 문제가 아니다.
하루 정도 비우는 건 괜찮으니까.
그런데 일주일 내내 여자들에게 불려 다닌다면 어떨까?
내 개인 시간은 물론이고 다른 활동을 할 수도 없어진다.
그거야말로 말짱 도루묵.
여자들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의미가 없어진다.
'그래도 미안한 건 맞지.'
여러 여자를 보는 나와 다르게 루시와 루미는 나만 바라보고 있다.
그 생각을 할 때마다 미안함이 생긴다.
내가 괜히 미안한 감정에 빠졌을 때.
내 배 위를 간지럽히는 감촉이 느껴졌다.
옆을 돌아보니 루시의 손이 내 가슴을 타고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입꼬리를 올리고 있는 루시를 보며 말했다.
"루시, 카드 게임은?"
"네가 이상한 표정을 짓길래. 놀러 왔는데 그러면 안 되잖아."
"… 응. 그렇지. 미안."
"흐으응…! 가, 갑자기."
나는 루시의 목에 팔을 두르며 손으로 가슴을 건드렸다.
동시에 나머지 한 손으로 옆에서 이 쪽을 바라보던 루미의 허벅지 안 쪽을 쓰다듬었다.
"호, 호연 씨."
"놀이 공원은 다음에 꼭 가자. 무조건 시간을 마련할 테니까."
"네, 네엣…."
루미의 손이 내 고간으로 향했다.
허벅지에서 느껴지는 약한 습기.
이제 루미도 참기 힘든 모양이다.
내게 가슴을 맡긴 루시도 내게 몸을 붙이며 아련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나는 둘을 보며 웃음을 지었다.
이 야한 쌍둥이들.
"침대로 갈래?"
"네…."
"… 응."
우리는 시선을 교환하다가 천천히 침대로 향했다.
*
"헤엑…."
"흐으, 으으응."
"음…."
나는 야한 자세로 침대에 쓰러져있는 쌍둥이를 보며 몸을 일으켰다.
루시루미와 섹스를 하면 항상 이렇게 되어버린다.
둘이나 있으니 조절을 못하겠어.
"루시, 루미. 괜찮아?"
"으으…."
"흐아…."
둘은 몇 번이나 가버린 몸을 꿈틀거리기를 반복했다.
엄청나게 지쳤나보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겉옷을 챙겨입었다.
"나 먼저 돌아갈게. 얘들아."
"네, 네에…. 호연 씨…."
"흐읍, 흐으으….."
"다음에 또 놀자."
루미와 눈을 마주치고 인사를 한 뒤에,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는 루시의 엉덩이를 한 번 주물러주고 동아리 방을 빠져나왔다.
'놀이동산 갈 시간은 마련해야겠네.'
동아리 방에서 나오자마자 생각했다.
루시 루미가 슬퍼하는 걸 보니 마음이 약해진다.
겨우 놀이동산도 못 가주면 남자 친구라고 말할 수도 없겠지.
'확실히 관계가 깊어질수록 힘들어져.'
한 두 명도 아니고, 여자들과 깊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시간을 더 써야 한다.
내 몸이 하나인 이상 불만은 나올 수밖에 없다.
'레베카 말고도 도와줄 사람이 있으면 좋겠는데.'
결국 하렘을 포기하지않는 이상, 해결법은 가짜 던전 계획 밖에 떠오르지가 않는다.
여자들의 불만이 터지기 전에 가짜 던젼 계획을 빠르게 완성시키려면 단 두 명으로는 부족했다.
"후보는 두 명인가?"
가짜 던전 계획을 도와줄 후보.
바로 엘리스와 스칼렛이다.
내 하렘을 알고 있으면서 신경 쓰지 않는 여자여야한다.
그 조건에 맞는 건 두 명.
물론 그 둘이라고 해도 불안감이 사라지진 않는다.
엘리스는 가짜 던전 계획의 대상 중 한 명이고, 스칼렛은 신경 쓰지 않는 척 해도 의외로 마음이 여리니까.
아무리 쿨해도 그런 쓰레기 계획을 들었다가는 허락해주지 않을 거다.
허락해주는 레베카가 정말정말 이상한 거지.
"…아니면 릴리아나?"
하지만 릴리아나를 끌어들이기도 좀 그랬다.
평소처럼 헛소리를 하다가 실수로 말하면 어떻게 해.
릴리아나는 사람이 불안해서 탈락.
나는 고민을 이어가며 학생회실로 향헀다.
오전에 일정이 있다고 했지만, 조금 미리 가서 기다려도 되겠지.
학생회실에 도착한 뒤, 나는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다른 학생회 부원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 학생회장인 수린 누나만 출근하는 거겠지.
네. 빅토리아 아카데미의….
저희 아이리스 길드에서도 좋은 기회가….
학생 회장실 안 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나는 별생각 없이 안 쪽으로 들어갔다.
"그나저나 학생 회장은 나이에 비해 대단하군요."
"칭찬 감사드립니다. 아이린 씨."
나는 안에서 들려오는 이름에 무의식적으로 학생 회장실 안을 확인했다.
'아이린…?'
살짝 안 쪽을 들여다보자 수린 누나의 맞은편에 금발의 미녀가 보였다.
엘리스와 닮았지만 조금 더 성숙한 얼굴.
잠시만 바라봐도 아름답다는 말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오랜만에 보는 아이린의 얼굴이었다.
아이린의 모습에 순간 당황하고 가만히 서있자, 수린 누나가 창 밖의 날 발견했다.
"응? 호연아?"
"네?"
수린 누나는 날 보고 반갑게 인사했다.
아이린도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돌렸다가 나를 보며 눈을 크게 떴다.
"이, 이호연…?"
"안녕하세요."
나는 고개를 숙이며 아이린에게 인사했다.
수린 누나는 인사하는 날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이린 씨하고 아는 사이야?"
"네. 프랑스에 갔을 때 만났거든요."
"아아… 호연이가 아이리스 길드에서 직업 체험을 했었지. 그때 만났구나."
"맞아요. 잠시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대화 끝나면 그때 불러주세요."
"아니야. 지금 끝났어. 학생회장. 그럼 그렇게 알고 있겠습니다."
"고마워요. 아이린 씨."
아이린은 수린 누나에게 고개를 살짝 숙이고 내 옆을 지나갔다.
나가는 길에 나와 눈이 마주친 아이린은 눈을 떨고 있었다
갑자기 날 만났으니 마음에 동요가 생겼겠지.
나도 의도한 일이 아니라 꽤 놀랐다.
"오랜만이네요 수린 누나."
물론 원래 목표는 수린 누나였으니, 일단 수린 누나에게 집중해야 한다.
"응. 잠시 이리 와볼래?"
자리에서 일어난 수린 누나는 미소를 지으며 양팔을 벌렸다.
와서 안기라는 뜻이겠지.
나는 안 쪽으로 들어가 수린 누나의 품에 안겼다.
킁킁.
백금발의 머리가 내 얼굴을 간지럽혔다.
여성의 몸에서 나는 좋은 향기.
남자를 자극하는 설명하기 힘든 향이다.
"다치진 않았지? 미국에서 고생했다며."
"에이. 저야 뭐. 언제나 잘하잖아요."
"응응. 믿고 있어."
수린 누나는 날 끌어안은 채 등을 토닥거려줬다.
왠지 기분이 좋네.
"누나, 계속 이러고 있을 거예요?"
"안되나?"
"안 되는 건 아닌데…."
"후후…."
수린 누나는 귀여운 미소를 지으며 날 바라봤다.
저렇게 귀엽게 웃어버리면 놓으라고 할 수도 없겠네.
나는 몇 분 더 수린 누나에게 안긴 상태로 있다가 자리에 앉았다.
"아이린 씨랑은 무슨 대화를 하던 거예요?"
"빅토리아 아카데미와 아이리스 길드가 협업하는 걸 말하고 있었어."
"그걸 이사장 님이 아니라 수린 누나가 해요?"
"이사장 님하고도 했지. 근데 실권은 나한테 있거든."
"오…. 역시 수린 누나는 엄청나네요."
역시 문수린이 빅토리아 아카데미의 실세구나.
그런데 궁금한 게 생겼다.
'그럼 이사장을 포함해서 다른 직원들은 대체 하는 일이 뭐지?'
분명 월급도 엄청나게 받을텐데, 일은 항상 수린 누나가 다 하고 있잖아.
내 여자친구를 위해서라도 이 쓰레기같은 집단을 갈아치워야하지않을까.
내가 진지하게 아카데미의 존속을 고민할 때, 수린 누나가 내게 찻잔을 내밀었다.
"이상한 생각 하지말고 차라도 마셔. 아, 할 말이 있다고 해서 온 거 아니었어?"
"맞아요. 물어볼 게 있었거든요."
그래. 아카데미 놈들은 나중에 생각하자.
지금은 더 중요한 일이 많으니까.
나는 의자를 잡아당겨 앉아 수린 누나와 대화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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