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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야겜에 빙의했다-415화 (415/648)

〈 415화 〉 415화. 귀국 (3)

* * *

일요일 아침.

나는 커튼 사이로 빠져나오는 아침햇살에 부스스 눈을 떴다.

"이러다 뒤지겠네."

뿌득­ 뿌드득­

몸을 움직일 때마다 관절에서 소리가 났다.

어젯밤을 뜨겁게 불태운 흔적이다.

"앞으로는 무조건 순서를 정해야 해."

귀국 첫날이라고 4명을 전부 상대했다가 진짜 죽을 뻔했다.

몸 안의 혼이 빠져나가는 게 이런 느낌이겠지.

'그래도 좋긴 했어.'

나는 기지개를 켰다.

힘들지만 후회는 없다.

미국에서 쌓인 성욕을 다 푼 느낌이거든.

몸을 부르르 떨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바깥으로 비실비실 걸어 나오자 마침 같은 타이밍에 방에서 나오는 남다은이 보였다.

하품을 하는 게 아직 잠이 덜 깬 모양이다.

"다은아, 좋은 아침."

"아, 호연아… 괜찮아?"

남다은은 내 얼굴을 보자마자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가왔다.

"괜찮지. 왜?"

"어제 너무 미안해서… 내가 저녁 먹을 때 말을 안 꺼냈으면…."

"아니야. 그랬으면 더 귀찮았을지도 몰라."

남다은이 말을 꺼내서 그렇게 된 건 맞지만, 차라리 순서를 정하는 게 낫다.

만약 4명이 모두 내 방에 침입하면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다.

"아침으로 먹고 싶은 거 있어?"

"음, 계란찜?"

"알겠어. 이따가 준비해줄게. 아직은 다들 자고 있을 거야."

"그럴지도 모르겠네."

어제 늦게까지 안 잤으니 아침에도 늦게 일어나겠지.

"맞아. 내가 미국에 있는 동안 다희한테 일은 없었지?"

"응. 우리가 잘 지키고 있었어."

"잘했네."

나는 남다은의 어깨를 붙잡고 조심스럽게 끌어당겼다.

역시 내 여자 친구야.

"으응… 고마워."

남다은은 내 허리를 안으며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여자의 부드러운 몸을 끌어안을 때가 제일 기분이 좋다니까.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

그리고 건강한 남자라면, 이런 기분좋은 상황에 반응이 오기 마련이다.

"호연아. 배에…."

"큼. 아침이라 그래."

"… 아직 다들 자고 있어서 괜찮을 거야."

남다은은 조심스럽게 내게 속삭였고, 순간 눈이 돌아간 나는 남다은의 몸을 번쩍 들었다.

"남다은. 안되겠어. 이리 와."

"읏으으. 조용히…."

*

잠시 후.

나는 혼이 빠진 것 처럼 거실 소파에 누웠다.

"… 섹스를 좀 줄여야겠는데?"

몸이 정상이 아니다.

어제 그렇게 해놓고 아침에 또 했더니 피곤해서 쓰러질 것 같다.

'에브리데이나 볼까.'

요즘은 뉴스를 보는 것보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보는 게 이슈가 더 빠르다.

미래의 일꾼인 빅토리아 아카데미의 생도들이라면 특히 이슈에 민감한 법.

한국에 왔으니 한국의 뉴스를 봐야겠지.

나는 누워서 스마트워치를 확인했다.

­ 한국의 대표 마법사 임솔을 잇는 천재 마법사 이호연? 그의 재능과 커리어에 대해 파헤쳐보자.

­ 이호연의 조용한 선행. 자주 봉사를 왔다는 보육원 원장의 인터뷰.

­ '치명적인 남자' 옴므파탈 이호연의 매력 5가지.

­ 이호연과 가상 인터뷰. 그가 원하는 여성상은?

"기자들은 여전하네."

내가 저런 말은 했나 싶은 게 기사로 쓰여있으니 나도 잘 모르겠다.

물론 '기억 보완 능력'이 있는 내가 틀릴 리가 없으니 저 기자들이 틀린 거겠지.

"별 거 없잖아."

일주일이 길다면 긴 시간이지만, 짧다고 하면 또 짧은 시간이다.

다행히 내가 없는 사이 엄청난 일이 발생한 건 없었다.

나는 밑으로 시선을 내리다가 익숙한 이름을 발견했다.

­ 프랑스에서 떠오르는 신인, 아이리스 길드의 엘리스. 아이리스 길드의 현실적인 후계자 교육에서 배워야 할 점.

"엘리스는 언제 오는 거지?"

엘리스가 정확한 날짜를 말해주지 않아서 확실히 모르겠지만, 아마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을 거다.

길어봤자 일주일 뒤면 오겠지.

"일단 오늘은 쉬다가… 내일은 수린 누나 만나러 갈까."

나는 스마트워치를 덮고 할 일을 생각했다.

생각해보니 아이린도 만나야 한다.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정리가 쉽지 않네.

"맞다. 판데믹의 인류 멸망 계획도 있었지."

나는 소파에서 몸을 일으켜 옆에 있던 노트를 폈다.

이럴 때는 계획의 우선순위를 정리해야한다.

­ 판데믹의 인류 멸망 계획…?

"대체 이건 뭐야?"

마인 제로스가 말해준 인류 멸망 계획.

내가 모른다는 건 당연히 원작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

그런데 인류 멸망 같은 엄청난 계획이 원작에 나오지 않을 리가 없잖아.

"아마 원작에 이름만 안 나오고, 실행하는 건 나왔을 거야."

판데믹의 테러는 앞으로도 엄청나게 많다.

한국에 하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중국 베이징을 강타하는 거대한 싱크홀이나 미국에 발생하는 좀비 바이러스.

그 외에 마왕을 소환하기 위한 기괴한 전조들까지.

워낙 많다 보니 하나를 떠올릴 수가 없었다.

"큰 틀로 보면 결국 마왕 소환을 위한 준비일 텐데…."

탁­ 탁­

나는 테이블을 펜으로 때리며 고민했다.

마왕 소환을 위한 전조라고 하지만, 그것도 한 두 개가 아니다.

케이론처럼 사도를 소환할 수도 있고 베이징이나 미국의 테러도 따지고 보면 마왕 소환의 전조라고 할 수 있다.

이럴 때 공략집이라도 있으면 참 좋을 텐데, 현실에는 공략이 없구나.

"하음… 뭐 하는 거야?"

"릴리아나. 좋은 아침. 너도 일어났구나."

"웅. 아침부터 공부중?"

나는 하품을 하며 다가오는 릴리아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릴리아나는 내 옆자리를 차지하고는 내가 메모하던 노트를 훔쳐봤다.

"뭐야 이건?"

"그냥 앞으로 무슨 일을 할까 계획 짜고 있었어."

나는 당당하게 노트를 보여줬다.

원작이니 뭐니 하는 이상한 내용도 아니고, '판데믹의 인류 멸망 계획'이라는 한 문장만 쓰여있었기 때문이다.

이 정도는 변명할 수 있다.

"인류 멸망 계획? 계획 이름부터 무서워. 왜 이런 걸 하려는 거야."

"내가 멸망시키는 게 아니고 적이 하는 걸 막는 거란다."

"아하?"

릴리아나는 아침부터 심심한지 헛소리를 하며 내게 달라붙었다.

곧 손에 푹신한 가슴이 느껴졌다.

탱탱하면서도 부드러운 극상의 감촉.

아까 남다은과 한 번해서 버틸 수 있었다.

나는 평정을 유지하며 물었다.

"심심해?"

"다들 너무 안 일어나. 12시간이나 자고 일어났는데 왜 아무도 없지?"

"그거야 네가 제일 먼저 잤으니까."

어젯밤, 나와 관계를 맺는 건 가장인 자신 이어야 한다며 박박 우긴 릴리아나는 결국 첫 번째 순서를 차지했다.

남들은 당연히 그만큼 늦게 일어나겠지.

참고로 나는 자연 치유력 덕분인지 몇 시간만 자도 피곤이 풀리는 몸이다.

잘 몰랐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렇게 바뀌었다.

"조금만 기다려. 할 일 정리만 하고 놀아줄게."

"나도 도와줄게. 그 인류 멸망 계획이라는 게 뭔데?"

"나도 몰라."

"네가 막는다며. 근데 왜 몰라?"

"그니까 답답한 거지."

릴리아나의 날카로운 지적에 나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막아야 하는 건 맞는데 뭘 막는지는 나도 모르겠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일단은 설명을 시작했다.

"아마 판데믹의 주도로 이상한 일들이 일어날 거야. 큰 테러가 될 수도 있고, 케이론처럼 사도가 나타날 수도 있고, 갑자기 지옥의 괴물들이 나올 수도 있겠지. 아마 몇 년 이내에 무조건 발생할걸."

"으으음… 지옥에서 보던 마력 흐름이 지구에서 느껴지는 건?"

"그럴 수도 있지. 지옥과 점점 가까워지는 거니까. 혹시 아는 거라도 있어?"

나는 릴리아나의 머리를 만져주며 대화를 이어갔다.

지옥에 대한 대화를 하는 게 불편할 수도 있는데 티를 내지 않는 게 참 좋았다.

보기보다 섬세하다니까.

물론 별생각 없는 걸 지도 모르겠지만.

"어… 으으응. 뭐였더라. 기억이 안 나네."

"뭐야. 생각나는 게 있어서 그런 거 아니었어?"

"으으으…."

릴리아나는 눈을 찌푸리면서 고민하다가 고개를 휘휘 저었다.

그 모습이 어쩐지 고통스러워 보여, 나는 조심스럽게 릴리아나의 어깨를 쓰다듬었다.

"릴리아나. 괜찮아?"

"괜찮아…. 으. 잠을 못 자서 그런 것 같아. 좀 더 잘래."

"같이 가자. 데려다줄게."

"아니야. 좀 쉬다가 방송이나 할랭."

릴리아나는 비틀거리며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 뒷모습을 보던 나는 노트를 덮었다.

"뭔가 이상한데."

아무리 릴리아나가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는 한량 같은 서큐버스지만, 저렇게 수상한 모습을 보이면 의심할 수밖에 없다.

나는 눈을 찌푸린 채 허공을 보며 말했다.

"스칼렛."

"예. 호연 님."

스르륵­

내 말과 동시에 벽에 붙어있던 스칼렛이 튀어나왔다.

"한국에 돌아온 기념으로 은신하고 있던 거야?"

"오랜만에 숨어봤는데 역시 잘 찾아내시는군요."

스칼렛은 미소를 지으며 내 맞은편에 앉았다.

내가 소파에 앉기 전부터 스칼렛의 마력이 느껴졌으니 대화는 다 들었을거다.

"스칼렛, 방금 릴리아나랑 대화하는 거 들었지? 짐작 가는 거 있어?"

"하나 있습니다. 당신이 미국에 있을 때 릴리아나 님이 했던 말이 있거든요."

스칼렛은 스마트워치를 건드리더니 내게 기사 하나를 보여줬다.

며칠 전에 올라온 작은 기사.

세계 곳곳에서 던전의 마력 측정이 실패하고 있다는 기사였다.

사실 던전 자체가 인류에게 아직 골칫거리였으니, 측정이 실패하는 건 종종 일어나는 일이었다.

"이게 왜 문제라는 거야?"

"글쎄요. 여기서 고향에서 보던 마력 흐름이 느껴진다고 하시더군요."

"흠…."

지구의 던전에서 지옥의 마력이 느껴진다라.

나는 원작을 떠올리며 고민을 이어갔다.

판데믹의 사건은 워낙 많았지만 금방 떠오르는 무언가가 있긴 했다.

지옥와 지구의 동화(?化)작업.

마에스트로가 마왕을 소환하기 위해 지구의 환경을 지옥과 비슷하게 만드는 작업이다.

그 시작은 당연히 던전.

아직 밝혀지지 않은 공간인 던전에서는 조금 이상한 일이 일어나더라도 의심이 적다.

'결국에는 던전을 통해 지옥과 이어지지.'

던전에서 튀어나오는 지옥의 군단과 마왕은 원작의 마지막 전투를 화려하게 장식한다.

그럼 동화작업을 벌써 시작한건가? 라고 생각해봤지만, 그것도 조금 이상했다.

'시기가 너무 빨라.'

원작에서는 극후반에서야 시작되는 동화작업.

그게 벌써 시작되는 건 빨라도 너무 빨랐다.

"스칼렛, 혹시 이 기사와 관련된 이상한 일이 있나 한 번 알아봐 줘. 나도 개인적으로 조사해볼게."

"알겠습니다."

이건 한 번 확인해볼 필요가 있겠네.

마침 내일 수린 누나를 만나러 갈 생각이었으니 그때 수린 누나한테 물어봐도 될 것 같다.

오늘은 주말이니까 쉬고 내일 물어보지 뭐.

"할 일이 또 늘었네. 맞다. 한국에서 일은 할만해?"

"나쁘지 않습니다. 전 직장은 보수는 좋았어도 시간 내기가 힘들었거든요."

"하긴. 요즘은 집에 자주 보여서 좋아."

예전에 엘리스 밑에 있을 때는 집을 비우는 시간이 대부분이었지.

물론 그 때는 동거가 아니었지만, 아무튼 지금이 더 자주 보이니까.

"그러고보니 아이린은 네가 여기 있는 거 알아?"

"아마 모르실겁니다. 그래서 항상 주의하고 있습니다."

"네가 고생이 많다. 내가 대표로 감사할게."

귀찮은 잡 일을 처리해주는 것도 그렇고, 스칼렛이 뒤에서 고생을 많이 한다.

역시 릴리아나 보다는 스칼렛이 가장에 어울리는 거 아닐까.

"그럼 오늘의 식사 준비나 도와주시겠습니까."

"아침?"

"네. 오랜만에 돌아오셨으니까요."

나는 스칼렛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지.

"그럼 한국식 정이 듬뿍 담긴 김치찌개를 끓여줄게. 요리 실습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어."

"단순히 준비만 도와주시는 게…."

"아니야. 나 요리 할 줄 안다니까."

"그냥 제가 다 하겠습니다."

스칼렛은 내 말을 듣고 고개를 저으며 부엌 쪽으로 걸어갔다.

아니, 자기가 말해놓고 왜 저래.

치즈 순두부도 아니고 김치찌개가 왜 문제야.

내가 남다은이나 스칼렛만큼 요리를 잘 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못하는 건 아니다.

나는 내 요리를 증명하기 위해 당당하게 부엌으로 향했다.

그리고 김치찌개를 먹은 여자들의 표정을 본 순간, 다시는 요리를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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