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4화 〉 414화. 귀국 (2)
* * *
"마법진을 짤 때 마력이 충분하다는 걸 인지해야 해요."
"응. 아예 처음부터 바꿔야 할지도 모르겠네."
"아예 갈아엎을 필요는 없어요. 필요한 부분만 조금씩 살펴보죠."
"아쉬운 건 세 번째 마법진이야. 마력 구조는 좋은데 다른 마법사들에게 들킬 가능성이 너무 높아."
"그건 마력을 쏟아부어서 해결해야 할 것 같아요. 일단은 은폐술식을 한 겹 더 넣고…."
나와 레베카는 서로 의견을 교환하며 마법진을 설계했다.
레베카의 룬의 결계에 마천궁의 영역을 전개하는 방식을 더하고, 핵심 술식으로 마법진을 강화했다.
생각할 게 늘어날수록 마법진이 점점 복잡해져 갔지만, 그만큼 가능성이 보였다.
처음에는 이게 과연 가능할까 싶었는데, 이제는 시간만 쏟아부으면 가능할 정도로 발전했다.
레베카에게 처음 계획을 말했을 때와 비교해보면 엄청난 성과다.
'이거 어쩌면 금방 될지도 모르겠는데.'
어느새 마법진은 던전의 구색을 갖추고 있었다.
이렇게 하나씩 채우다 보면 의외로 금방 만들지도 모른다.
"의외로 괜찮은데요? 자신감이 샘솟는 기분이에요."
"응. 계획이 점점 발전하고 있어."
"이제 정말 금방 만들 수 있겠어요."
"역시 애기 아빠는 머리가 참 좋아. 계획 자체도 참 좋잖아. 걸리지만 않으면 어떤 여자라도 넘어올거야!"
"… 칭찬 감사합니다."
내 계획을 보고도 그런 칭찬을 해주다니, 레베카는 사실 천사가 아닐까?
현재 내 가짜 던전 마법의 계획을 알고 있는 건 레베카뿐이다.
같은 집에 사는 스칼렛이나 남다은에게도 말하지 않을 정도로 극비로 진행 중인 이 계획은 내 이미지를 위해서라도 계속 비밀로 가져가는 편이 낫다.
'여자들을 꼬시려고 가짜 던전까지 만드는 건 확실히 이상한 놈이지.'
물론 개인적인 사정이 있지만, 그걸 알아주는 사람이 없으니 아무 의미가 없다.
이게 다크나이트의 삶인가.
모두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걸 내 여자들은 알고있을까.
"맞아. 애기 아빠. 내가 이걸 봤어."
"어떤 거요?"
레베카는 스마트워치를 보면서 버튼을 꾹꾹 누르더니 내게 화면을 내밀었다.
임신 잘 되는 자세. 관계 후에 다리를 든 상태로 자궁에 정액이 잘 들어가도록….
"… 아, 이런 게 있네요."
"응. 나는 이런 게 있는 줄 몰랐어."
레베카는 진심이 우러나오는 기쁨의 미소를 지었다.
당연히 가짜 던전 마법진에 도움이 되는 내용인 줄 알았는데, 그 쪽이었구나.
저런 행위가 쓸데없다는 걸 본 기억이 있긴한데, 그것도 인터넷에서 본 거라 뭐가 맞는지는 잘 모르겠네.
저 자세를 해서 레베카의 마음이 편하다면 그걸로 괜찮겠지.
"다음에는 꼭 저렇게 해봐요."
"응. 안 그래도 임신이 안됐으니까 오늘 밤에 빠르게 처리하자."
"오늘 밤이요?"
"애기 아빠가 피곤한가? 오늘 귀국하긴 했지."
"그래도 뭐… 레베카 씨랑 섹스면 시간을 빼야죠."
"고마워. 그래도 임신하면 10개월은 쉬게 해 줄게!"
레베카는 기분 좋은 듯 미소를 지었다.
섹스를 해주는 걸로 저렇게 기뻐하면 내 기분도 뭔가 이상야릇해진다.
'맞다. 레베카한테도 줄 선물이 있었는데.'
마침 생각난 김에 줄까.
나는 주머니에서 작은 선물상자 하나를 꺼냈다.
"레베카 씨. 이거."
"으응?"
"받아요."
"이건 뭐야? 이것도 마인한테 훔친 거야?"
레베카는 내가 준 상자를 받고 이리저리 돌려보며 마력을 불어넣었다.
아마 이것도 마법에 관련된 물품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니요. 제가 레베카 씨 주려고 산거예요."
"…?"
나는 레베카의 손에서 선물 상자를 가져온 뒤 직접 까기 시작했다.
레베카는 안 쪽에서 나온 은목걸이를 보며 눈을 끔벅거렸다.
"레베카 씨한테 어울릴 거 같아서 사 왔어요. 어때요?"
나는 목걸이를 잡은 손을 들어올렸다.
가운데에 하트 장식이 있는 고급스러운 은목걸이.
레베카에게 주면 참 어울릴 것 같았다.
목걸이를 건네주자, 눈을 파르르 떤 레베카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돌렸다.
"뭐, 뭐 이런 걸 다… 사고 그래. 응…."
레베카의 반응에 나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방금까지 임신 잘 되는 자세를 보여주던 사람이 뭐가 부끄럽다고 귀를 빨갛게 물들인 거야.
"왜요. 창피해요? 매일 애기 아빠라고 부르면서 목걸이를 부끄러워하는 건 너무 귀여운데."
"으으. 그래도 고마워. 잘 쓸게."
레베카는 내가 준 목걸이를 소중하게 챙기더니 고개를 휙 돌렸다.
부끄러운지 눈도 못 마주치는 모습에, 나는 참을 수 없는 충동을 느꼈다.
"안 되겠다. 지금 해야겠어요."
"… 뭐를?"
"아이 만들기요."
성큼성큼 걸어서 레베카에게 손을 뻗자, 레베카는 몸을 떨며 내게 떨어졌다.
"지, 지금은 안 돼!"
"왜요. 딱 좋은데?"
지금 하면 아주 질 좋은 유전자가 나올 거 같다.
안 그래도 쌓여있었는데 이렇게 흥분했으니까.
"아무튼 지금은 안 돼. 이, 이따가 밤에 와…."
레베카는 그렇게 말하며 날 억지로 방 바깥으로 밀어내더니, 문을 쾅 닫아버렸다.
마지막까지 얼굴이 붉었던 걸 보면 갑자기 부끄러워진 모양이다.
"… 허."
억지로 밀려난 게 어이없긴 했지만, 반응이 귀여워서 기분은 좋네.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거실로 향했다.
섹스는 쉽게 말하면서 선물은 왜 부끄러워하는 거야.
역시 여자는 참 어렵다.
거실에 나와보니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 저녁을 준비하고 있겠지.
"릴리아나!"
"으응? 어디 있었어. 계속 기다리구 있었는데."
"미안미안. 레베카 씨한테 보여줄 게 있어서."
나는 소파에 앉아있는 릴리아나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보니 릴리아나한테도 줄 게 있었다.
"자. 이거 미국에서 사 온 선물."
"우왕. 초코당."
릴리아나는 레베카랑 다르게 별 반응 없이 내 선물을 받았다.
뭐, 릴리아나는 매일 선물을 사 오라고 소리를 치니까.
부끄러움을 느끼는 게 이상하겠지.
"냠냠. 옴뇸뇸."
"맛있어?"
"하우우… 맛있어용."
"…?"
릴리아나는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양 손을 모았고,나는 헛소리를 하는 릴리아나를 뻔히 바라봤다.
그 이상한 추임새는 어디서 배워온 거야.
"넌 또 왜 그러냐."
"흐음. 왜 반응이 없지? 분명 남자가 좋아하는 애교라고 했는데…."
"제발 이상한 거 좀 그만 배워와라."
나는 릴리아나의 머리를 잡고 이리저리 흔들었다.
하우우는 또 뭐야.
대체 인터넷에서 뭘 보고 다니길래 이러는 걸까.
역시 릴리아나가 하는 방송을 모니터링해봐야 하나.
"으악! 이거 놔!"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이리 와."
나는 릴리아나를 내 무릎 위에 올리고, 가슴에 손을 얹은 채 몸을 끌어안았다.
그래 이거지.
몸에 닿는 감촉이 아주 좋았다.
어제 임솔과 같이 자긴 했지만, 펠라만 하고 섹스를 못했거든.
그 부족함을 채워야 한다.
"아읏…."
"릴리아나. 오랜만에 봤는데 기뻐하지도 않네. 응? 초심을 잃었어."
"주인님…."
나는 내게 달라붙는 릴리아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부드러운 엉덩이를 비벼오는 게 장난이 아니다.
이게 서큐버스구나.
"이따 밤에 하자. 지금은 밝으니까."
"으응…."
마음 같아선 지금 하고 싶지만, 부엌에서 요리를 하고 있으니 좀 참아야지.
저녁 준비 다 됐어요!
"밥이나 먹으러 가자."
"응. 배고파."
때마침 남다은의 목소리가 들렸고, 나는 릴리아나의 엉덩이를 토닥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호연 님. 못 팔았습니다."
"어?"
저녁시간.
밥을 입에 집어넣던 나는 스칼렛의 말에 손을 멈추고 눈을 끔벅거렸다.
"설마 그 마력구? 벌써 갔다 온 거야?"
"예. 맞습니다."
스칼렛은 무심하게 테이블 위에 마력구를 내려놨다.
"근데 못 팔았다고? 그게 하루 만에 결과가 나와?"
"전문가에게 감정을 맡긴 결과 가치가 없다고 하더군요."
"말도 안 돼. 마력이 가득 차 있는데?"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정교한 모조품 같다고 하던데요."
"모조품?"
나는 마력구를 보며 눈을 찌푸렸다.
아니, 이렇게 마력이 많은데 모조품이라고?
그 자식 사기꾼 아니야?
지이잉
도저히 못 믿겠으니 내가 직접 해봐야지겠다.
나는 마력구에 마력을 불어넣고 천천히 안 쪽을 훑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느꼈다.
"이거 지옥의 마력이었네?"
꽤 견고하게 숨겨져 있어서 집중하지 않으면 알아채지 못할 정도였다.
아마 지옥의 마력을 모르는 전문가의 눈에는 가치가 없어 보였겠지.
"지옥의 마력 말입니까?"
"응. 이러면 평범한 전문가는 모르겠지."
지옥의 마력.
릴리아나의 동무을 받아 가공한다면 쓸 수 있긴 하지만, 가공하는 데 들어가는 힘과 시간을 아껴서 내 마력을 쓰면 된다.
즉, 쓰레기다.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자 볶음밥을 입에 쑤셔 넣던 릴리아나가 대화에 끼었다.
"나 그 구슬 예전에 많이 본 거 같은뎅."
"어디서? 지옥에서 본거야? 게임에서 봤다고 하면 혼낸다."
"게임 아니거든! 으음, 지옥에서 영역 표시하는 데에 쓰는 거였나? 기억이 잘 안나네."
"… 영역표시?"
나는 볶음밥을 먹으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릴리아나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뜬금없이 영역 표시라니, 어디에 쓰는 건 지 모르겠네.
"그래도 챙겨놔야겠지."
별생각 없이 팔아서 용돈으로 쓰려고 했는데, 지옥의 물건이었다.
에이든의 집에서 나온 물건에 지옥의 마력이 담겨있다는 건 당연히판데믹의 물건이라는 뜻.
나중에 사용처가 나올지도 모른다.
나는 조심스럽게 마력구를 주머니에 집어넣고, 다시 식사를 이어갔다.
"다희야. 야채도 다 먹어야 해."
"으으… 냠."
내 옆에 앉아있던 남다은은 남다희를 챙기면서 미소를 짓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고는 내 앞접시 위에도 고기를 올려줬다.
"이것도 먹어.호연아."
"응? 고마워."
나는 별생각 없이 남다은이 준 고기를 받아먹었다.
으음. 맛있네.
역시 우리 집 여자들은 요리를 잘해.
남다은은 고기를 먹는 나를 바라보더니, 슬쩍 내 어깨에 얼굴을 기대며 속삭였다.
"그, 오늘 밤에 피곤할까…?"
"…."
나는 남다은의 말에 대답하려다가, 정면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마력이 거의 없는 다희는 남다은의 말을 듣지 못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다 들었으니까.
그 증거로 릴리아나와 스칼렛, 레베카가 동시에 식사를 멈췄다.
"아하… 한국에서는 남자한테 고기를 주는 게 그런 뜻이야? 몰랐네. 나도 다음 식사부터는 애기 아빠한테 고기를 줘야겠어."
"제가 알기로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다은 양이 먼저 시작했을 뿐이죠."
"나랑 애기 아빠는 무슨 자세로 할까도 이미 정했는데?"
"내가 제일 먼저야. 나도 아까 약속했다구."
"… 그런가요? 제가 늦은거였군요."
나는 셋의 대화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남다은은 마치 자신이 잘못한 것처럼 안절부절못하다가 남다희를 챙기기 시작했다.
"언니. 레베카 언니가 무슨 말하는 거야?"
"시, 신경 쓰지 마. 드라마 얘기인가 봐. 우리는 밥 먹자."
"하아…."
한숨을 쉬며 눈을 떴다.
릴리아나와 스칼렛, 그리고 레베카는 날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의견을 제시했다.
"일단 싸우지 말고… 가위바위보라도 해서 사이좋게 순서를 정하는 건 어떨까."
"흐으음. 일단은 그렇게 할까?"
"제 불찰이네요. 미리 순서를 생각해놨어야 했는데."
"난 1등이 좋은데… 내가 이 집의 가장이잖아."
"릴리아나. 예전부터 궁금했는데 네가 왜 이 집의 가장이야? 가장은 애기 아빠잖아."
"레베카. 내가 이 가정을 이끌고 있다니까?"
나는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는 셋을 보며 이마를 눌렀다.
머리가 지끈거린다.
오늘 밤도 쉬기엔 글렀구나.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