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3화 〉 413화. 귀국
* * *
이호연이 미국에서 에이든을 체포한 날.
한국의 빅토리아 아카데미에서는 아이린과 이사장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1팀장님. 앞으로도 좋은 관계를 유지했으면 좋겠군요."
"네. 고마워요. 이사장 님."
이사장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이리스 길드는 세계에서 제일가는 정보길드.
한국 지부와 연이 생기는 일은 그도 좋은 일이었다.
한편 아이린도 고개를 숙이고 이사장실을 빠져나왔다.
그녀는 복도를 걸으며 개운한 표정을 지었다.
이걸로 아카데미와 협업에 대한 대화는 끝났다.
이제 아이리스 길드 한국 지부도 아카데미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겠지.
아이린은 스마트워치를 확인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아이리스 길드장의 딸 아이린 한국 방문.
빅토리아 아카데미와 아이리스 길드 간의 좋은 관계 구축 기대….
"별 것도 아닌데 호들갑이 심하네."
그래도 저런 기사 하나하나가 자신이 인정받는다는 증거.
아이린은 미소를 지었다.
아이리스 한국 지부에서는 일이 별로 없었지만, 그래도 한국에 방문한 김에 1팀장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처리했다.
휴가 느낌으로 온 한국이지만 이 정도 일은 아이린에게 휴가나 다름없었다.
아쉬운 점은 엘리스가 본국에 돌아갔다는 것.
그때, 아무 생각 없이 눈을 내리던 아이린은 아래에 있던 기사를 발견했다.
임솔과 이호연 내일 한국으로 귀환. 마법의 역사를 바꾼 연구는 무엇인가?
이호연에게 최연소 학회장 상 수여를 고려중?
마법사 학회장 아서 '마법사의 미래는 이호연이다.' 미국 헌터 협회장 '이호연과 임솔에게 감사를 전한다.'
"…."
아이리스 길드의 1팀장인 자신에게는 미국의 정보도 많이 들어온다.
특히 마법사 학회 같은 큰 집단의 정보는 샅샅이 파악해야 한다.
그렇기에 이호연이 미국에서 한 일이 얼마나 대단한 지도 알고 있었다.
"20살이라기엔 말도 안 되잖아…."
아이린은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전 세계를 뒤집어엎을 연구를 발표한 것도 모자라 마법사 학회에 숨어있던 마인까지 잡아냈다고 한다.
물론 후자의 정보는 일반인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자신이 알고 있으니 당연히 아버지와 어머니도 알고 있겠지.
'이래서는 엘리스가 아깝다는 핑계도 못 대.'
아이리스 길드의 후계자인 엘리스와 천애고아인 이호연.
저렇게 능력을 보여주면 격이 맞지 않는다는 핑계를 댈 수도 없어졌다.
20살부터 저런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는 괴물이니까.
그의 무력까지 고려한다면 오히려 엘리스가 부족할 지도 모른다.
아이린은 고민을 이어가며 조용한 집으로 돌아왔다.
프랑스에 돌아간 엘리스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기에 집에는 그녀 혼자였다.
"… 내일이면 옆 집에 오는 건가?"
아이린은 슬쩍 창문을 열었다.
이호연이 미국에 간 동안, 당연히 개인적으로 추가적인 조사를 했다.
그리고 알아낸 것이 바로 저 옆 집.
저 옆집에 이호연이 산다는 것.
엘리스에게 확인한 사실이니 확실할 거다.
"…."
거기까진 괜찮았다.
아니, 괜찮진 않았지만 엘리스가 개의치 않아 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겠지.
그런데 어째서….
"왜 저 빈집에서 인기척이 느껴지는 거야."
이호연의 저택에는 강한 결계가 펼쳐져 있었다.
처음에는 집이 빈 동안 이호연이 설치해놓은 결계라고 생각했지만, 아이린은 느꼈다.
집에 둘러싸인 결계의 마력이 매일같이 보충되고 있었다.
즉, 누군가 집 안에 있다는 것.
아이린은 그 점이 마음에 걸렸다.
'엘리스한테 한 번 떠볼까?'
사실 다른 사람이었다면 누군가 집을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는 인간이 아니라 짐승이었다.
혹시 숨겨놓은 여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엘리스가 프랑스에 있었으니, 한국으로 돌아온다면 떠 볼 수 있겠지.
"아무튼 주의해야 해. 그리고 내일 이호연이 돌아오면…."
아이린은 입을 다물었다.
이미 마음은 잡은 지 오래.
비록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흘렀지만 엘리스를 지켜야 한다는 그녀의 마음은 바뀌지 않았다.
"지켜야… 해. 응. 엘리스를 지켜야지."
물론 시간이 지날수록 지킨다고 표현하는 게 맞는 건지 그녀 자신도 헷갈렸지만, 생각해도 답은 나오지않았다.
아이린은 그저 지켜야한다는 말을 되뇌이며 휴식을 취했다.
*
토요일.
나와 임솔은 미국을 떠나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엄청나게 깔려있는 기자들을 보며 눈을 끔벅거렸다.
"따로 도망쳐야겠는데요. 솔이 교수님."
"그렇게하자. 나는 이제 인터뷰같은 거 하기 싫어."
"미국에서 이상한 말을 해서 그런 거 아니에요…."
"난 먼저 갈게. 다음에 연구실로 들려."
"넵. 다음에 봬요."
나와 임솔은 짧은 인사를 나눴다.
저 기자들을 뚫을 바에는 각자 도망치는 게 낫겠지.
미국 공항을 나갈 때도 귀찮았는데 여기서도 그럴 순 없었다.
'이번 여행은 꽤 재밌었어.'
마음에 걸리는 건 역시 학회장인 아서에게 인사는 못했다는 점이었는데, 인터뷰를 보니 내 이름을 엄청나게 언급하고 있었다.
"혹시 저걸로 때우려는 생각은 아니겠지?"
아니면 쓸모없는 학회장 상 수여 같은 거로 넘어갈 생각일지도 모른다.
역시 무한의 엔트로피를 챙기길 잘했네.
나는 공항에 깔려있는 기자들을 피해 집으로 돌아왔다.
"호연아…!"
"응. 나 왔어…."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내게 다가오는 남다은을 안아줬다.
온다고 말은 해놨지만, 공항에는 기자가 많을 테니 마중 나오지 말라고 했거든.
많이 아쉬웠던 모양이네.
"다른 사람들은?"
"다들 방이랑 거실에 있어. 내가 불러올까?"
"아니야 아니야. 나 조금만 쉬었다가 나올게. 왔다고 얘기만 해줘."
"아… 미안해. 쉬어."
"미안할 필요는 없어."
나는 조심스럽게 내 몸을 놓는 남다은의 머리를 툭툭 쳐주고 내 방으로 들어갔다.
오랜만에 본 여자들하고 인사를 하고 싶긴 했지만, 너무 힘들었다.
"힘들어 죽겠네…."
사실 힘들다고 하지만 일정이 힘들진 않았다.
뭐랄까.
오랜만에 집에 들어오면 일단 침대에 눕고 싶잖아.
바깥에서 쉬는 거랑 집에서 쉬는 거랑은 느낌이 다르거든.
'뭐부터 하지?'
나는 침대에 누워서 멍하니 고민했다.
일단 스칼렛에게 장물을 넘기고, 레베카에게 무한의 엔트로피를 보여줘야 한다.
"공항에서 산 선물도 나눠줘야지."
끼익
침대에서 일어나 바깥으로 나왔다.
할 일이 이렇게 많은데 언제 쉬고 있어.
거실에 나오자마자 스칼렛이 보였다.
아마 남다은의 말에 바깥으로 나온 모양이다.
스칼렛은 날 발견하자마자 미소를 지었다.
"오셨습니까. 호연 님."
"오랜만에 들으니까 기분이 좋네."
"그런가요? 참 다행입니다."
"마침 줄 게 있었어. 스칼렛. 이거 봐봐."
나는 주머니에서 붉은 마력구를 꺼냈다.
스칼렛은 눈을 크게 뜨더니, 소중한 걸 챙기듯이 내가 주는 마력구를 손 위에 올렸다.
"이건 뭐죠? 혹시…."
"그거 좀 팔아줘. 미국에서 얻은 장물이야."
"아. 예. 팔아드리면 되는군요."
긴장한 표정이던 스칼렛의 얼굴이 무표정하게 바뀌었다.
왜 저러지?
"응. 아티팩트 같아. 그런 건 네가 잘하잖아."
"맞습니다. 이런 건 정보 길드 출신인 제가 전문이니까요. 아주 잘 처리하겠습니다."
스칼렛은 불편한 표정으로 아티팩트를 챙겨갔다.
나도 자세히 보진 않았지만 저런 장물은 전문가한테 맡기는 편이 낫다.
임솔이 챙겨 온 물건이니 품질은 좋겠지.
"맞아 스칼렛. 이것도 처리해줘."
"… 또 뭔가요."
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급스럽게 포장되어있는 상자를 내밀었다.
공항에서 비싸게 산 명품 머리 리본이다.
스칼렛이 생각나서 하나 사왔다.
"……."
"오다 주웠다. 너 써라."
"… 역시 멘트는 별로네요."
내가 입꼬리를 올리자, 스칼렛도 웃음을 터트리며 선물을 조심스럽게 챙겼다.
"잘 쓰겠습니다. 호연 님."
"방금 삐지려고 했지? 설마 내가 선물을 안 사왔겠어."
"당신은 이상한 곳에서 덤벙대니까요."
"그런가?"
임솔도 그렇게 말하는 걸 보면 진짜인가 보네.
개인적으로 나같이 철두철미한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나.
"아무튼… 아티팩트는 잘 처리하겠습니다. 제가 아는 사람이 있으니 오늘 안으로 처리할 수 있을 거예요."
"응. 잘 부탁해."
스칼렛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총총 걸어갔다.
발걸음에서 신난 게 보이네.
역시 비싼 걸 사주길 잘했어.
릴리아나가 조용한 걸 보면 방송 중일 테고, 남다은은 내가 쉰다는 말에 방으로 들어간 것 같았다.
'레베카는 마법 연구 중인가?'
나는 레베카의 방으로 향했다.
무한의 엔트로피도 빨리 까봐야지.
그녀의 방에 가까이 갈수록 마력이 진해지는 걸 보니 마법 연구가 맞는 모양이다.
똑똑
"레베카 씨. 저 왔어요. 문 좀 열어주세요."
노크를 하고 조금 기다리자, 천천히 문이 열리고 붉은 머리의 미녀가 보였다.
편한 츄리닝을 입고 있던 그녀는 날 보며 미소를 지었다.
"애기 아빠 왔네? 오늘 마중 못 나가서 미안해."
"괜찮아요. 레베카 씨는 연구 중이었어요?"
"나야 항상 똑같잖아. 들어와."
레베카의 방은 미국에 가기 전과 똑같았다.
태교 서적이 놓여있는 걸 보니 왠지 모르게 웃음도 나왔다.
다들 여전해서 좋네.
"미국에서 방금 돌아온 거 아니야? 안 쉬어도 돼?"
"쉴 시간이 어딨어요. 제가 레베카 씨 보여주려고 좋은 것도 가져왔거든요."
"좋은 거?"
나는 가져온 금고를 책상에 올려놨다.
마력이 풀풀 새어 나오는 게 빨리 마법진을 풀어야겠네.
"이건 뭐야?"
"이제 확인해봐야죠."
지지직 빠지지직
나는 금고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꽤나 두껍게 마법이 걸려있었지만, 풀기는 쉬웠다.
딸깍
금고를 열자 엄청난 양의 마력이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연기처럼 빠져나오는 마력을 잠재우며 안에 있던 물건을 확인했다.
금고 안에는 성배같이 생긴 물건이 놓여있었는데, 그 안에서 마력이 계속 새어 나오고 있었다.
혹시나 열었더니 무한의 엔트로피가 아니면 어쩌지 하는 생각도 했는데, 다행히 맞는 것 같네.
구우우웅
나는 무한의 엔트로피에서 나오는 마력을 억누르며 레베카를 바라봤다.
레베카도 이런 아티팩트는 처음인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미국에서 가져왔어요. 이게 있으면 마법을 만드는 게 조금이라도 더 편해질까 해서요."
"이건… 대단하네. 들어있는 마력이 엄청나. 마법사 학회에서 부상으로 받은 거야? 확실히 이번에 발표한 연구가 엄청나던데."
"그건 아니고요. 훔쳐온 거예요."
"어?"
레베카는 설마 하는 눈으로 날 쳐다봤다.
의외로 착한 사람이라 이런 거에 민감하구나.
"이상한 생각하지마세요. 마인의 집에서 훔쳐왔거든요. 나쁜 거 아닙니다."
"아하… 다행이네. 나쁜 짓은 태교에 안 좋아."
"저만큼 착하게 사는 아빠가 없어요."
"응응. 당연하지. 아, 애기 아빠가 학회에서 발표한 핵심 술식이론하고 영역 전개 마법진 좀 가르쳐줘. 그것도 마법에 도움이 될 거야."
"알겠어요."
생각해보니 레베카한테 핵심 술식에 대한 걸 말 안 해줬구나.
임솔과 발표할 생각에 아무한테도 말을 안 했더니 정작 레베카한테도 숨기고 있었다.
"그전에, 이 아티팩트는 어디다 놓을까요?"
"일단 거기 내려놔. 그러고보니 아티팩트의 이름이 뭐야?"
"무한의 엔트로피라는 거예요. 들어보셨어요?"
"아, 이게 그거야? 엄청 유명한 아티팩트잖아."
"레베카 씨도 아는구나."
임솔도 알았던 걸 보면 마법사들 사이에서 유명한 물건인가 보네.
나도 마법사긴하지만, 꾸준히 정보를 쌓아온 게 아니다보니 마법은 잘 알아도 이런 기본 상식이 부족할 때가 있다.
"말 그대로 무한의 마력으로 유명하잖아. 들은 것과 똑같네. 마력이 계속 샘솟고 있어. 마력 압축 장치를 하나 구해야겠는데?"
"그렇죠. 이걸로 가짜 던전을 만들면 부족한 에너지는 해결이 될 거예요."
"그렇긴 하겠지. 그런데 내가 알기로 최근에 마법사 학회에 무한의 엔트로피를 도난당했다는 뉴스를 봤는데… 아닌가?"
"…."
나는 눈을 감고 고개를 돌렸다.
불리한 건 진술하지 않을 거다.
묵비권이다.
"애기 아빠. 설마 애기 아빠가 학회에서 훔쳐온 건…."
하지만 저런 터무니없는 오해를 하는 건 막아야지.
"레베카 씨. 아까 말했잖아요. 마인의 집에서 훔친거라니까요. 마인이 학회에서 훔친 걸 제가 잠깐 빌린 거죠. 다 쓰고 학회에 돌려줄 거에요."
"아하. 그렇다면 괜찮겠네. 찾아준 값은 해야지."
레베카는 그제야 안심한 듯 웃으며 무한의 엔트로피를 상자에서 꺼냈다.
사실 뭐가 괜찮은지는 모르겠다.
일단 레베카가 괜찮다면 괜찮은 거겠지.
"같이 마법진이나 좀 점검할까요? 미국에서 일이 워낙 많아서 거의 못 건드렸거든요."
"저게 생겼으니까 처음부터 다시 살펴보자. 마력이 부족해서 제대로 만들지 못한 곳이 있었거든."
레베카는 딱히 신경쓰지않는 듯 마법진을 살피기 시작했고, 나도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레베카의 옆에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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