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1화 〉 411화. 비밀 마법 결사 (4)
* * *
"그래. 뭐가 이상하다 했어. 나는 몰라도 솔이한테 3명 밖에 안 가는 건 말이 안 되잖아. 그치."
"예, 옙. 제 독단입니다. 빨리 마법사 학회를 장악하려는 생각에…."
"흐음…."
어쩐지 뭔가 이상하더라.
나한테 한 명이 온 것도 그렇지만, 임솔한테 3명밖에 안 간 건 임솔을 무시하는 행위다.
내 정보는 덜 풀렸다고 해도 임솔의 정보는 충분할 테니까.
쿡 쿡
나는 팔짱을 낀 채 제로스의 몸을 발로 툭툭 찼다.
제로스는 내 마법에 몇 번이고 쓰려저 온 몸이 그슬려진 상태였다.
재생할 힘도 없이 그대로 쓰러져있었다.
"맞아. 판데믹하고 에이든은 무슨 관계야?"
"그, 그건…."
"대답 빨리 안해? 더 싸울래?"
"협력 관계입니다! 학회장으로 만든 뒤에 학회를 판데믹의 손에 넣을 생각이었습니다!"
나는 제로스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싸우려는 의지가 없어 보이길래 정보라도 뜯어내려고 몇 개 물어봤더니, 술술 대답해주는 게 참 편했다.
역시 사람은 맞아야 말을 들어.
이미 학회장에게 보고는 끝났으니 곧 학회에서 사람이 도착하겠지.
판데믹의 테러야 워낙 자주 있는 일이라 헤프닝으로 넘어갈 수 있는 일이지만, 뭔가 수상한 점이 있었다.
'세뇌가 약해진 건가?'
사실 판데믹의 간부가 독단 행동을 했다는 것부터 이상했다.
세뇌가 걸려있을 텐데도 저렇게 행동한다는 건 마에스트로에게 특이사항이 생겼다는 뜻.
마에스트로의 마력은 무한이 아니니, 다른 곳에 마력을 많이 사용했다면 이런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놈들 또 이상한 짓 시작한 거 아니야?'
나는 제로스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뭐 좋은 정보는 없냐? 판데믹의 정보."
"모, 모릅니다. 제가 아는 건 이게 다입니다…."
"스읍. 계속 그러면 학회에 안 넘긴다. 내가 데리고 살 거야."
"지, 지금 당장 생각해보겠습니다!"
제로스가 머리를 굴리는 동안, 나는 고개를 돌려 임솔을 바라봤다.
임솔은 눈을 찌푸리며 끌레르 로즈 라떼를 마시고 있었다.
표정만 보면 싫어하는 것 같지만, 이미 음료의 양은 반이 넘게 줄어있었다.
"먹다 보니 괜찮지 않아요?"
"…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근데 자존심 상해."
임솔은 불만인 표정을 지으며 끌레르 로즈 라떼를 쪽쪽 빨았다.
"저도 한 잔 주세요."
"응. 여기."
쪼옥
나도 오랜만에 맛을 봤다.
몸이 전율하는 느낌.
역시 이 특별한 맛은 잊을 수가 없어.
미국에도 파는 곳이 있어서 참 다행이다.
"솔이 누나. 학회장 님은 언제 온대요?"
"글쎄. 오늘 일 때문에 출장이라고 들었어. 아마 학회의 조사팀만 올 걸?"
"아하. 그러면…"
"아, 아! 맞아! 생각났습니다!"
"…."
나는 갑자기 소리를 지르는 제로스를 차가운 눈으로 바라봤다.
이 새끼는 임솔과 말하고 있는데 왜 끼어드는 거야.
마음 같아선 한 대 치고 싶었지만, 제로스는 내 표정을 눈치채지 못하고 신나게 떠들기 시작했다.
"인류 멸망 계획입니다. 이제야 기억났습니다!"
"…."
하지만 인류 멸망 같은 무서운 단어를 무시할 순 없지.
나는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그게 뭔데."
"마에스트로 님의 인류를 멸망시키기 위한 계획입니다."
"그니까 그게 뭐냐고. 자세히 설명해봐."
"자세한 건 저도 잘… 판데믹의 간부들은 자신의 일에 대한 정보만 알 수 있습니다."
이 새끼는 진짜 뭐하자는거지?
나는 제로스의 옆구리를 몇 번 더 밟았다.
그러고보니 학회를 빨리 장악하려고 한 이유를 안 물어봤구나.
"맞아. 학회를 빨리 장악하려고 한 이유는 뭐야?"
"엔트로피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발각되기 전에 추적을 멈추게 하려고…."
"엔트로피? 그건 또 뭐야."
"무한의 엔트로피를 말하는 건가보네."
"무한의 엔트로피요?"
나는 임솔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무한의 엔트로피라니, 나는 처음 들어봤다.
다행히 임솔이 아는 눈치였다.
"그게 뭐에요?"
"네가 마법 연구에 빠져있던 날에 아저씨가 말해줬어. 학회에서 도난당한 고급 마법 재료래."
"고급 마법 재료 정도가 아닙니다. 거의 무한의 에너지를 뿜어내는… 기적의 재료나 마찬가지입니다."
제로스는 임솔의 말에 대답하며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잘 모르겠지만 엄청난 물건인 모양이네.
근데 그걸 왜 니가 가지고 있어.
"그 기적의 재료를 어디다 쓰려고 훔쳐갔어? 니가 가지고 있냐?"
"마에스트로 님의 사도 소환식에 사용할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마에스트로 님의 연락이 오지않아서 엔트로피는 에이든이 보관 중입니다."
"에이든한테?"
"예. 하지만 저도 정확히 어디에 보관 중인지는…."
타다다닥
그때, 사람들의 발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바라보자, 마법사 무리가 눈을 크게 뜨며 달려오고 있었다.
"저기다! 마인이야! 당장 구속해!"
"사, 살려주십시오! 여기입니다!"
"… 어?"
바닥에 엎드려있던 제로스는 재빨리 튀어 나가 학회의 마법사들 앞에 무릎을 꿇었다.
저 새끼 못 뛰는 척 하더니 거짓말이었네.
"저, 접니다. 저에요. 판데믹의 간부 제로스! 하라는 건 뭐든 다 할 테니 제발…."
"어… 이호연 마법사님?"
"네. 데려가세요. 그 놈 맞습니다."
귀찮은 듯 손을 휘휘 저으며 제로스를 넘겼다.
정보도 다 빼냈으니 데려가야지.
나는 몸을 돌려 스마트워치를 보는 임솔을 바라봤다.
"솔… 임솔 교수님. 저희는 바다나 가죠?"
"아저씨가 급하게 이 쪽으로 오고 있대. 만나러 가야 해."
"… 하아."
그럴 거 같더라.
이 마인 새끼들은 진짜 도움이 안되는구나.
나는 아쉬운 한숨을 내쉬며 임솔의 뒤를 따라갔다.
*
언제나와 같은 호텔 1층의 로비.
나와 임솔은 아서가 보여주는 뉴스를 확인했다.
임솔 마법사와 이호연 마법사를 습격한 S급 마인들.
학회의 신진 마법사들도 테러에 노출되었다. 판데믹의 선전포고?
"너희가 습격당함과 동시에 학회도 습격당했다. 에이든 측의 마법사도 몇 명인가 사망했더군."
"… 그런가요."
"이호연 생도는 보기보다 마음이 약한가보구나. 표정이 안 좋아."
"… 네. 뭐, 사람이 죽었으니까요."
아서의 말에 부정하진 않았다.
솔직히 모르는 마법사가 죽었다고 슬프진 않다.
그냥 임솔과 바다에 못 가서 기분이 나쁜거다.
아서는 나를 보며 대견하게 웃더니, 다시 굳은 표정을 지었다.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지만… 아마 에이든 측의 마법사가 죽은 건 자작극이 아닌가 싶다."
"아저씨, 자작극이라니?"
"단순하게 생각하면 된다. 너희들에게는 S급 마인이 넷이나 붙었지만, 저 쪽에는 S급 마인이 한 명도 나오지 않았고 죽은 마법사들도 네임벨류가 낮은 놈들이었어. 뻔한 수작이지."
나는 둘의 대화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자기 편까지 여론전에 이용하려고 하다니, 정말 미친 놈들이네요."
"그래. 하지만 증거는 없다."
누가 봐도 이상했지만, 지적할 수도 없었다.
사람이 죽었는데 거기다 대고 너무 안 유명한 마법사가 죽었다는 태클을 걸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고 보니 아저씨. 그 무한의 엔트로피? 그 얘기 좀 다시 해줘."
"무한의 엔트로피? 내가 도와달라고 했더니 그럴 시간이 없다며 거절하지 않았었냐?"
"그 때는 그 때고. 지금은 다르잖아."
임솔은 아서에게 무한의 엔트로피에 대해 물었다.
아까 내가 궁금하다고 했던 걸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다.
"쉽게 설명하면 무한한 에너지 덩어리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정말 무한은 아니지만, 몇 천년 이상 사용할 수 있기에 무한의 엔트로피라고 불리지."
"지금은 도난당한 상태고?"
"그래. 지금 이 순간도 수색 중이다. 학회의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내가 퇴임 전에는 다시 찾아올…."
"그거 찾았어요."
"… 뭐?"
아서는 대화에 끼어든 나를 보며 눈을 크게 떴다.
저번에도 그러더니 또 이러시네.
나는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에이든이 가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오늘 잡은 제로스에게 직접 들은 정보에요."
"… 정말이냐? 하지만 아직 취조를 시작도 안 했을 텐데. 판데믹의 마인들은 고문을 잘 버티기로 정평이 나있으니까. 그리고 확실한 증언이 아니라면 에이든과 관계를 증명하기도 힘들어."
"연락해보시면 알아요. 제가 교육을 잘 시켜놨거든요."
뚜 뚜
내 자신만만한 말을 들은 아서는 우리의 눈 앞에서 전화를 연결했다.
"닉스. 이번에 생포한 간부들의 상태는 어때?"
여전합니다. 제가 맡은 놈은 제로스라는 마인인데… 역시 아무 것도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당장 말 안 하면 이호연이 찾아간다고 전해주세요."
나는 덤덤하게 말했다.
"크흠. 닉스. 증언하지 않으면 이호연 마법사가 찾아간다고 전해보게."
아서는 못 미더운 얼굴로 날 바라보긴 했지만, 말하는 대로 전해줬다.
이호연 마법사요…? 일단 말해보겠습니다. 이봐. 당장 말하지 않으면 이호연 마법사가 찾아온….
으아악! 다 얘기할 테니 제발!
닉스라는 남자가 내 이름을 꺼내자마자, 스마트 워치에서 끔찍한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서는 놀란 눈으로 날 보며 엄지를 들었다.
"자네 생긴 건 순해 보이는데 전투는 꽤 남자다운 모양이군. 다시 봤네."
"감사합니다."
이것도 세뇌가 약해졌으니 가능한 일이다.
물론 세뇌어를 말하면 아예 세뇌가 풀리겠지만, 그 마인이 원래 무슨 생각을 하던 놈일지 모르니 내버려 두는 게 나을 때가 많다.
마인은 워낙 미친 놈들이 많거든.
하, 학회장님! 제로스가 자백하기 시작했습니다. 에이든과의 관계를 인정했습니다!
"알겠네. 일단 상부에 알리지 말고 대기하도록. 내가 다시 연락하겠네."
아서는 부하를 진정시키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즉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증거가 생겨버렸군. 솔이와 자네에겐 일이 끝난 후 꼭 보상을 챙겨주겠네."
"아저씨, 지금 바로 가려는 거야?"
"그래. 증거가 생겼으니 이제 뒤집을 시간이다. 조사 허가를 기다렸다가는 늦을 수도 있으니, 일단 심복만 데리고 쳐들어갈 생각이다."
나는 열의에 불타는 아서를 보며 생각했다.
에이든을 잡든 말든 나랑 큰 상관은 없으니까.
하지만 그 때, 내 머리에 무한의 엔트로피가 스쳤다.
'그거 에이든이 가지고 있다고 했잖아.'
만약 가질 수 있다면 레베카와 만드는 마법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엄청난 크기의 마법이다보니 마력이 부족하다는 말을 자주 했었거든.
크흠.
나는 표정을 관리하며 말했다.
"학회장님. 사람이 필요하면 저랑 임솔 교수님도 도와드릴게요."
"… 나까지?"
임솔은 뜬금없이 불리는 자신의 이름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
"젠장. 젠장…!"
에이든의 저택.
그는 임솔과 이호연이 습격에서 살아남았다는 소식을 듣고 분주히 움직였다.
"그 미친 마인들을 믿는 게 아니었는데."
딸깍
업무용 책상 밑의 빈 공간.
그는 몇 겹의 마법진으로 보호 당하는 비밀 창고를 확인했다.
무한의 엔트로피.
판데믹의 마인이 요구한 대로 어떻게든 학회에서 빼 오긴 했지만….
"지금이라도 어딘가에 숨겨야 하나?"
이런 물건을 어디에 쓰려는 계획인지는 몰라도, 에이든은 무한의 엔트로피를 활용할 곳이 없었다.
"… 아니야. 진정하자."
에이든은 심호흡을 하며 무한의 엔트로피를 재봉인했다.
아직 판데믹을 포기할 수 없었다.
이번 습격이 실패했더라도 그들의 힘은 진짜였으니까.
판데믹의 마인은 고문에 굴하지 않기로 유명하다. 죽으면 죽었지,자신의 정보를 흘리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설령 자신의 이름이 나오더라도 조사팀에 있는 인맥이 미리 정보를 전해줄 거다.
"일단 며칠 정도는 지켜봐야해."
판데믹의 힘을 빌려 차기 학회장 후보까지 올랐다.
학회장이 되기만하면, 마인들에게 권력을 조금 주는 대가로 자신의 비밀 마법 결사를 학회에 편입시킬 수 있다.
그 때부터는 인간을 사용하는 마법 실험을 합법화할 수 있다.
자신의 꿈이 이뤄지는 것이다.
"이제와서 포기할 순 없어…."
포기하기엔 지금까지 이뤄놓은 일이 너무나 많았다.
에이든은 결국 끝까지 욕심을 포기하지 못했고,
콰와아아앙!
그게 그의 마지막 기회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