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8화 〉 408화. 비밀 마법 결사
* * *
마법사 학회란 본질적으로 더 나은 마법을 위해 연구하는 곳이다.
그리고 매년 학회에서 가장 좋은 연구를 해낸 마법사에게 부여하는 상이 바로 학회장상이다.
학회장상은 학회에서 뽑힌 뛰어난 마법사들과 원로들의 투표로 선출된다.
발표가 끝난 후.
이번 년도의 학회장 상을 뽑는 자리에서 아서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5대5라니."
"개표 결과 임솔 마법사와 에이든 마법사가 동률이 나왔습니다."
"…."
아서는 말도 안되는 투표 결과에 자신도 모르게 눈을 찌푸렸다.
전 세계의 마법사 학계를 뒤흔드는 논문이 발표되었는데 동률이라니.
이건 조작이 아니곤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주변의 원로들과 마법사들을 둘러봤다.
분한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고 있는 젊은 마법사들. 그 중 몇 명은 창피한 듯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아마 저들은 에이든에게 투표하도록 강요받았겠지.
문제는 당당하게 고개를 들고 있는 원로들이다.
아서는 이를 악 물고 원로들을 쳐다봤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에이든이 5표나 받다니요. 임솔의 논문을 보고도 에이든을 찍은 자가 있나요?"
"학회장. 원래 모든 일은 어떤 관점에서 보냐에 따라 느끼는 점이 달라지는 법이다. 에이든의 마법을 더 감명깊게 본 사람도 있는 거지."
"당신들은 정말… 마법사 학회를 위하는 마음이 단 한 줌도 없는 겁니까?"
"우리 모두가 마법사 학회를 위해 일하고 있어. 다만 방향이 다를 뿐이야."
원로들은 학회장을 바라보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학회장이 몇 번이나 바뀌는 동안, 그들은 자리를 유지해왔다.
정의를 외치던 몇몇 학회장들도 이미 자리잡은 원로들에게는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었다.
그걸 아는 아서는 더이상 화를 내지않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 분명 후회하게 될겁니다."
"올해까지 임솔 마법사가 상을 수상하면 벌써 5번째야. 4번도 전무후무한 기록인데 5번이라니. 그건 오히려 학회의 격을 떨어뜨리는 일이라는 걸 모르는가? 아무리 임솔이 자네의 인맥이라도 이건 좀 심하군."
"들을 필요도 없는 헛소리를 하는군요. 이제 당신들에게 존중은 없습니다. 나도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까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할 겁니다."
"힘내보게. 아서."
"크흐흐."
원로들은 아서의 반응에 가소로운 듯 웃었고, 아서는 주먹을 꽉 쥐며 회의장을 박차고 나왔다.
"자. 학회장이 나갔으니 오늘 회의는 여기서 끝내도록 할까?"
"예, 예…!"
남은 마법사들은 눈치를 보며 원로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
팡 팡
KLS에서 왔습니다! 인터뷰 한 번만…!
5번째 학회장 상이 확정이라는 게 사실입니까!
둘은 무슨 사이인가요?!
"어으…."
"나는 인터뷰 거부야. 분명히 말했어."
"아니, 좀 도와줘요."
나와 임솔은 발표장을 나오자마자 기자들에게 둘러쌓였다.
도대체 어디서 정보가 샜길래 벌써 저렇게 모인 거지?
"어떻게 알고 벌써 모인 걸까요? 기자들은 대단하네."
"전 세계에 마법사 학회의 지부가 있거든. 나나 너같이 초대받은 마법사들은 본부로 모이겠지만, 대부분의 마법사들은 중계로 확인해."
"… 그거 중계도 하는 거였어요?"
설마 내가 한 발표가 전 세계에 나온 건가?
그렇게 스케일이 큰 줄은 몰랐는데.
"응. 아마 실시간으로 본 기자들도 있을 테니 이렇게 모인 거겠지."
"제발 그런 건 미리 알려달라고요. 네?"
왜 우리 교수님은 이런 중요한 사실들을 말을 안 해주실까.
마법도 좋지만 나도 좀 생각해주면 좋겠다.
임솔 마법사님! 한 번만 대답해주세요!
마법의 새로운 길을 열었다는 게 사실입니까?!
나는 주변에서 들리는 엄청난 목소리에 임솔을 돌아봤다.
"인터뷰를 거절하기엔 다들 저 말고 교수님만 부르는데요."
"하아…."
임솔은 귀찮은 표정을 지으며 기자들을 뚫고 가기 시작했고, 나도 그 옆에서 임솔을 보호했다.
"자자. 지나갈게요."
"이번 발표에 관해 한 마디만 부탁드립니다!"
"학회에서 발표하는 걸 확인해주세요."
"이호연 생도의 데뷔에 관심이 많습니다! 어린 나이부터 엄청난 성장을 보이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것도 학회에서 발표할 겁니다."
나는 임솔의 보디가드처럼 기자들에게 대신 대답하며 길을 뚫었다.
우리 교수님이 인터뷰를 거절한다니까 내가 해야지. 뭐 어쩌겠어.
"임솔 마법사님! 남자친구는 있으십니까?"
"그런 질문은 안 받습니다."
"그럼 이상형은 있으십니까?"
나는 헛소리를 하는 기자들을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이 미친 놈들은 대체 무슨 질문을 하고 싶은 거지?
질문에 대답하는 게 귀찮긴 했지만, 기껏 열심히 준비한 연구를 발표했는데 막상 저런 질문이 오는 건 더 짜증 났다.
내 여자니까 건들지 말라고.
"… 지금은 연구에 대한 질문을 받는 시간입니다. 쓸데없는 이야기를 꺼내는 기자들은 내보내세요."
나는 헛소리를 하는 기자들의 얼굴을 확인했다.
저 놈들이 혹시 나한테 인터뷰 요청하면 거절해야지.
그때, 옆에 있던 임솔이 걸음을 멈추고 입을 열었다.
"저보다 강한 마법사라면 생각해볼지도 몰라요."
"… 네?"
내가 당황하자마자 기자들의 셔터 소리가 울려 퍼졌다.
찰칵 찰칵
"다시 한 번만 말씀해주세요!"
"임솔 마법사님!"
"하아…."
나는 한숨을 쉬며 임솔의 팔을 끌고 기자들 사이를 빠르게 지나쳤다.
진짜 미쳐버리겠네.
기자들이 쫒아올 수 없는 호텔 안 쪽으로 돌아온 이후.
나는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 지 모르는 임솔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그런 말을 하면 어떡해요. 대련 신청이 엄청나게 올 거 아니에요."
"왜? 긴장돼?"
"… 그게 문제가 아니라니까."
"네가 더 노력해서 빨리 날 이기면 되잖아."
"그러니까 그게 왜 그렇게 연결되냐고 이 답답한 사람아."
나는 미소를 짓는 임솔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정상이 아니야.
다들 정상이 아니다.
왜 내 주변 여자들은 다 이러는 걸까.
일부러 날 괴롭히는 건가?
'그게 분명해. 응.'
그런 게 아니면 이렇게 귀찮은 일을 만들 리가 없다.
이번 학회장 상을 놓칠 거라는 말이 많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차기 학회장 후보까지도 위험하다는 의견이….
바깥에서는 에이든이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질문을 대충 듣기만 해도 그의 표정이 안 좋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질문들이 쏟아지니까 그렇겠지.
그때, 에이든의 추종자들 중 한 명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수상한 자식이야.'
혼자 상하관계가 다른 것 같았던 놈.
분명 저 놈과 에이든 사이에 무언가가 있다.
내가 유심히 쳐다보고 있자, 그 놈 혼자 인터뷰 하는 에이든을 내버려 두고 슬쩍 뒤로 빠지는 걸 발견했다.
"… 교수님. 먼저 방에 들어가 있으세요."
"응?"
타다닥
나는 임솔의 대답을 기다리지않고 곧바로 놈의 뒤를 쫒았다.
'조금 더 가까이 가면 결계를 뚫고 정체를 파악할 수 있어.'
발표장에 있을 때는 가까이 갈 기회가 없었다.
놈은 호텔의 뒤 쪽 출구로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놈에게 다가갔다.
일단은 대화를 시도해야겠지.
"안녕하세요. 혹시 잠시 대화 좀 가능할까요?"
나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상대에게 다가갔다.
다다닥
하지만 놈은 슬쩍 고개를 돌리더니,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다급하게 도주하기 시작했다.
"아오, 진짜 짜증나네."
왜 제대로 되는 일이 없냐.
나는 재빨리 놈의 뒤를 쫒았지만, 나보다 신체능력이 좋은 놈 같았다.
나보다 빠르게 호텔 바깥으로 도주했다.
'이대로 쫒아가면 놓친다.'
나는 호텔 밖의 길을 떠올리며 놈이 도망칠 루트로 향했다.
'가속.'
상대가 아무리 빨리 도망친다고 해도 가속을 사용한 채 미리 대기하고 있으면…!
"크윽?!"
"잡았다. 이 자식아."
우리는 좁은 뒷골목에서 마주쳤다.
콰드드드득
놈은 무언가 찔리는 게 있는 듯 나를 보자마자 마법진을 그렸다.
내 다리를 타고 올라오는 마법 밧줄과 뜨거운 열기.
나는 가볍게 역산하며 놈에게 역으로 얼음창을 때려 박았다.
"크헉!"
동시에 이어지는 쉐도우 커터.
놈은 몸을 베어내는 그림자 칼날에 저항하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않고 마력을 이용해 놈의 몸을 확실하게 잡았다.
"무슨 짓이냐! 내가 누군지 알고 이런 짓을!"
"야. 너도 찔리는 게 있으니까 도망친 거지? 솔직히 말해. 왜 도망쳤어."
"이, 이제 보니 이호연 마법사 님이셨군요. 제가 평소에 적이 많아서…."
"뭐라는 거야."
"끄아악!"
콱
나는 쓰러져있는 놈의 복부를 걷어차고 주변을 둘러싼 결계를 해제했다.
동시에 느껴지는 불쾌한 마력.
그제서야 확실하게 놈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너 마인이구나? 어떻게 마법사 학회에 숨어들어온거야?"
"크, 크읏."
"에이든의 추종자 중에 마인이 있는데, 그 놈이 에이든을 조종하고 있다라. 흐음."
마인이 학회에 숨어들어올 정도라면 학회도 엄청나게 썩었나보네.
나는 놈의 품을 뒤적거렸다.
강함의 정도로 봐서는 이 놈은 단순한 하수인이다.
분명 증거가 될만한 게 있을 거다.
이내 사내의 품에서 익숙한 보라색 천이 흘러나왔다.
"판데믹의 증표?"
천에 그려져 있는 문양을 보면 꽤나 높은 등급이었다.
그만큼 중요한 일을 맡고있다는 것.
'… 모두 연관되어 있는 건가?'
에이든과 판데믹.
어쩌면 비밀 마법 결사까지.
이건 엄청나게 귀찮아질 것 같네.
나는 판데믹의 증표를 챙기고, 놈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얘는 일단… 내 방에 숨겨놓을까."
죽이거나 버리고 갔다가는 나중에 처리하기 힘들어진다.
나는 온 몸을 꽁꽁 묶은 마인을 데리고 내 방으로 향했다.
*
학회 발표가 끝난 다음 날.
나와 임솔은 카페에 앉아 아서와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눴다.
"고생했네. 어제 발표가 전 세계에서 난리가 났어."
"당연히 그래야죠. 저랑 솔이 교수님이 만든 건데."
"허어… 솔이 교수님이라. 둘이 많이 친해졌나 보구만."
"…."
"아악…."
임솔은 손을 테이블 아래로 내려 내 허벅지를 꼬집었고, 나는 고통을 호소하며 테이블에 머리를 박았다.
역시 남 앞에서 이렇게 부르는 건 아직 이른 모양이다.
"아무튼 내가 할 얘기는 이게 끝이다. 학회장으로서 정말 미안하게 됐다."
"몇 번이고 말하지만, 나는 딱히 상에 관심이 없어."
"그래. 그렇게 말해주면 참 고맙겠구나…."
아서가 하는 말은 간단했다.
올해의 학회장 상은 의견이 좁혀지지 않아 미뤄질 거라는 것.
사실 임솔이 받지 못하는 게 이해가 안되긴 하지만, 나한테도 딱히 의미가 있는 건 아니라 큰 관심을 두진 않았다.
오히려 나랑 임솔보다 아서가 더 아쉬워하는 것 같았다.
"아저씨. 그나저나 정말 도움은 필요 없어? 비밀 마법 결사인가 뭔가 때문에 일정을 조금 더 잡긴 했는데."
"비밀 마법 결사…. 글쎄다. 이제 그런 게 의미가 있는 지 모르겠군."
아서는 쓴 웃음을 지으며 한숨을 푹푹 쉬었다.
원래 저런 아저씨가 아니었는데 오늘은 왜 저러지?
"무슨 일인데? 또 원로하고 싸웠어?"
"항상 그렇지. 마법사 학회가 그런 곳 아니겠냐."
"그 학회장 상이라도 관련 있는 일인가 보네?"
"역시 솔이는 감이 좋구나. 정답이다."
"음…."
나는 둘의 대화를 지켜보며 끼어들 타이밍을 생각했다.
어제 잡은 마인은 여전히 내 방에 묶여있었다.
임솔과도 상의를 해봤지만, 일단 아서에게 말하는 게 맞겠다고 결론이 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서를 만나러 온건데, 오늘 아서의 상태가 영 별로였다.
만나자마자 피로에 찌든 직장인처럼 온 몸에 힘이 빠져있었다.
"에이든을 지지하는 놈들과 너를 지지하는 내가 대립중이다. 놈들은 너를 인정하지 않고 있어."
"그건 항상 그랬잖아."
"그래. 그랬지. 하지만 이번엔 정도가 심해. 그들은 선을 넘었어."
아서는 생각하기만 해도 치가 떨리는 듯 입술을 떨었다.
마법사로서 자존심이 상한 그의 분노가 나한테 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아저씨. 괜찮아?"
"너희들은 걱정말거라. 이건 내 마법사 인생을 건 싸움이야. 무슨 짓을 해서라도 놈들의 약점을 찾을 거다."
나는 아서의 말을 듣고 생각했다.
놈들의 약점?
'그거 내가 가지고 있는 거 아닌가?'
어제 잡아놓은 싱싱한 마인이 있잖아.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려 임솔을 바라봤다.
임솔은 날 보며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아서에게 말을 꺼냈다.
"그, 학회장 님. 마침 제가 보여드릴 게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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