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7화 〉 407화. 학회 논문 발표 (4)
* * *
이건 마법사 전의 혁명이야…
엄청난 역산 속도. 게다가 마법의 위력까지 줄어들었어.
차기 학회장은 에이든이 되겠구만.
"…."
에이든은 미소를 지으며 발표를 마무리했다.
마법사와의 전투를 위해 개발한 영역 전개.
발표부터 시연까지 계획대로 완벽하게 마쳤다.
'이 정도면 충분해.'
자신이 준비한 건 모두 보여줬다.
이번 발표로 차기 학회장 자리를 굳힌 후 학회장 아서를 끌어내리기만 하면 된다.
"에이든 님, 대단하십니다."
"이 정도면 올해의 학회장상은 떼놓은 당상이군요!"
"고맙습니다."
에이든의 추종자들이 손뼉을 치며 축하하는 동안, 에이든은 주변을 확인했다.
지금까지의 발표 중 가장 압도적인 퍼포먼스에 주눅 들어 어깨를 움츠리고 있는 다른 마법사들.
예상한 결과에 미소가 나오지만,신경 쓰이는 건 저들이 아니었다.
"… 웃어?"
"예? 에이든 님. 뭐라고 하셨…."
[다음 발표는 임솔 마법사와 이호연 생도의 공동 발표입니다. 단상으로 올라와 주시길 바랍니다.]
다들 웅성거리는 와중에도 평온해 보이는 임솔과 미소를 짓고 있는 이호연.
에이든은 그 두 명을 보며 굳은 표정을 지었다.
드디어 임솔인가.
학회장이 엄청난 걸 가져왔다고 했으니 기대해도 되겠지.
에이든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 자리에 앉았다.
이미 원로 한 명까지 매수가 끝난 상태.
어느 정도 뛰어난 논문 정도는 자신이 역전할 수 있었다.
'….'
하지만 임솔의 발표가 시작한 뒤.
에이든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꾹 다물고 임솔의 발표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
"즉, 모든 마법에는 핵심 술식이 있다는 걸 증명할 수 있습니다. 이상입니다."
임솔은 담담하게 핵심 술식에 대한 발표를 마무리했다.
모든 내용을 알고 있던 나는 솔직히 지루했지만, 다른 마법사들은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질문 있으십니까?"
"…."
"…."
발표장에 있던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 침묵했다.
발표를 구경하던 마법사뿐만아니라 발표를 진행하던 진행자까지 시간이 멈춘 것처럼 눈을 끔벅거리며 허공을 바라봤다.
얼마나 충격을 받았길래 저러는거야.
임솔은 주변을 둘러보다 질문이 없다고 판단한 듯 고개를 꾸벅 숙이더니 단상 아래로 내려갔다.
아니, 이렇게 내려가면 안 되지.
"이리 와요."
"…?"
짝짝짝짝
나는 임솔을 붙잡고 단상 중앙에 데려다 놓은 뒤, 손뼉을 치며 앞으로 나서서 말을 이었다.
"아아. 이상으로 임솔 마법사님의 발표가 끝났습니다. 혹시 질문이 있으시다면 지금 해주시길 바랍니다. 다음 기회는 없을 테니까요."
"질문, 질문 있습니다!"
"이해가 안 가는 점이 있습니다!"
그제서야 자신들이 무엇을 봤는지 깨달은 마법사들이 하나 둘 씩 정신을 차렸고, 수많은 마법사들이 손을 들며 질문하기 시작했다.
'이거 내가 발표할 시간이 오려나.'
저 공세가 끝나면 밤일 거 같은데.
나는 멍하니 임솔의 발표를 구경하며 끊고 들어갈 타이밍을 기다렸다.
"잠시, 질문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네."
"이호연 생도와 공동 저자라고 들었는데… 발표는 아까부터 임솔 마법사님만 하시는군요."
그때, 나이가 많아 보이는 마법사 하나가 날 훑어보며 쓸데없는 질문을 했다.
꿀 빨고 싶었는데 결국 들켰구나.
그러고 보니 왜 임솔만 말하는 거지?
마법의 역사를 바꾸는 현장에 제자의 이름을 넣으려고 했던 건가….
설마. 임솔이 그런 여자일 리가 없어. 마법에 미친 년이라고.
"하아…."
나는 웅성거리는 마법사들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좋은 게 좋은 거지 왜 굳이 나한테 일을 시키려고 하는 거야.
"누가 뭐라 해도 이호연 마법사는 이 논문을 작성하는 데에 큰 도움을 줬습니다. 쓸데없는 질문은 하지 말아 주세요."
"쓸데없는 질문이라기보단 단순한 궁금증입니다. 저도 그렇고 이호연 생도에게 기대하신 마법사분들이 많으니까요."
"…."
임솔의 눈이 서서히 찌푸려졌다.
저러다가 싸우기 전에 내가 나서야지.
"잠시만요. 교수님."
"내가 처리할게. 기다리고 있어."
"아니요. 처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쉬고 계세요."
나는 무서운 말을 하는 임솔을 뒤로 보내고 마법사들 앞에 섰다.
"마침 다음 발표가 제 차례이니, 그때까지 제가 질문을 받겠습니다. 그걸로 괜찮으시겠죠?"
"… 그렇다면야."
"임솔 교수님이 대답하던 질문을 이어서 답하겠습니다. 고유 마법에도 핵심 술식이 있냐는 질문이었나요. 어떤 방식의 마법이든 마법진을 그려야 한다면 핵심 술식은 존재합니다. 그 근거로 베른 리만의 코스비 정리를…."
사실 질문의 대답은 귀찮을 뿐, 어렵진 않았다.
내게 질문할 수도 있다는 임솔의 말을 듣자마자 관련 논문을 모두 확인했으니까.
처음에는 내 대답에 의구심을 갖던 마법사들도 몇 번의 질의응답 후에는 다시 질문하기 시작했다.
몇십분이나 지났을까.
나는 슬쩍 스마트 워치를 확인하고는 말을 이었다.
"질문이 너무 길어지면 안 되니 여기까지만 받도록 하겠습니다."
아쉬운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남자들이 그런 목소리를 내봤자 짜증만 나지.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누군가를 찾았다.
'저기 있네.'
구석에서 추종자들과 같이 앉아있던 에이든은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미 임솔의 발표로 그가 한 발표는 잊힌 지 오래.
화가 날 수밖에 없겠지.
'내가 다시 상기시켜줘야겠네.'
나는 에이든에게 미소를 지은 뒤, 정면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다음으로는 제가 발표할 마법입니다. 재밌게도 오늘 학회에 저와 비슷한 주제로 연구하신 분이 계시더군요."
지잉
찌뿌둥한 몸을 깨우며 가볍게 마력을 끌어올렸다.
"제가 발표할 마법은… 대(?)마법사전 비기. 영역 전개입니다."
"… 뭐?"
"영역 전개라면 에이든이 발표한 마법 아닌가?"
마법사들이 임솔의 충격으로 잊어버린 에이든의 마법을 떠올리도록 잠시 시간을 준 뒤, 마법진을 그렸다.
'마천궁 전개.'
몸 주변으로 퍼져나가는 마력 파장이 얇은 막을 만들었고, 그 막이 점점 커지며 단상을 가득 채웠다.
내 마천궁은 상대가 볼 수 없는 게 기본 형태지만, 에이든과 비교할 수 있도록 물처럼 흐물거리는 이펙트까지 따라 해줬다.
이렇게하면 문외한이라도 같은 종류의 마법이라는 걸 알 수 있겠지.
에이든 마법사님이 발표한 마법과 비슷한데요?
에이든은 10년이 넘게 현역에서 뛰던 마법사야. 당연히 에이든보다는 약하겠지.
데뷔부터 운이 없어. 상대가 에이든이라니.
고개를 돌려 뒤를 보니 눈을 크게 뜬 임솔이 보였다.
다른 마법사들과 다르게 이미 마천궁의 위력을 알아낸 모양이다.
"교수님. 아까 에이든이 한 거 기억하시죠? 똑같이 마법 좀 쏴주세요."
"… 응."
나는 정신을 집중하며 마천궁을 펼쳤다.
내 몸을 중심으로 커다란 역장이 무형의 파동을 내뿜었고, 주변 공간을 장악한 마력 파장은 내 주위를 돌며 영역을 구축했다.
마천궁 내부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이한 마력의 흐름.
나는 몸이 가벼워지는 감각을 느끼며 임솔에게 신호를 보냈다.
임솔은 미리 만들어놓은 마법을 내게 쏘아냈다.
아까 에이든이 막았던 기초적인 마법보다 역산이 어려운 고위 마법들.
파지지지직!
콰드득!
임솔의 마법은 내 영역에 들어오자마자 눈에 띄게 느려졌다.
에이든의 영역 전개와 똑같은 효과.
그의 마법은 거기까지였지만, 나는 내 영역에 들어온 임솔의 마법에 추가적인 지배력을 행사했다.
나는 특전인 [마력 감응]으로 모든 마력을 이해할 수 있다.
즉 다른 사람의 마법에도 간섭할 수 있는 것이다.
내 마력이 원래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임솔의 마법에 간섭했다.
영역을 전개하면서 역산이 쉬워진 만큼, 에이든이 보여준 퍼포먼스보다 더 강렬한 걸 보여줄 수 있었다.
"…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게 현실인가?"
"말도 안 돼. 저건…."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눈앞의 마법을 바라봤다.
임솔의 마법은 내 마력에 지배당한 채로 공중에 멈춰있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야.'
이대로는 에이든보다 조금 더 발전된 마법일 뿐.
나는 피날레로 달려가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손을 위로 쳐올렸고, 동시에 임솔이 쏘아낸 마법들이 하늘로 솟구쳤다.
콰과광 콰앙
마법들은 발표장에 있는 결계에 부딪히며 굉음을 터트리고는 사라졌다.
"…."
"…."
발표장에 있는 마법사들은 멍한 표정을 지으며 날 지켜보고 있었다.
'나쁘지 않네.'
남자들만 있는 게 아쉽긴 하지만, 주목을 받는 건 괜찮은 기분이었다.
"이것으로 대(?)마법사전 비기. 영역 전개에 대한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박수갈채가 나오지 않은 건 아쉽지만, 임솔과 내 마법을 연타로 맞아서 그런지 마법사들이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짝짝짝짝
그때, 내 뒤에서 박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 이거야말로 마법사 전의 혁명이네. 그렇지?"
"큭, 그럼요."
임솔은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을 걸었고, 그 소리에 정신을 차린 마법사들도 하나 둘 씩 우레같은 박수를 보냈다.
나는 관객들에게 허리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했다.
아직 어린 나이다보니 예의바른 이미지가 더 좋거든.
주변을 둘러보니 유일하게 조용히 있는 곳은 에이든의 파벌뿐이었다.
"조, 조작입니다. 여러분. 이제 겨우 1학년인 생도의 수준이 아니지 않습니까. 이, 이건 말이 안 되는……!"
서서히 박수갈채가 멎은 후. 조용해진 발표장에 에이든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자신이 준비한 마법이 생도에게 밀린다고 생각하니 자존심이 구겨지겠지.
어쩌면 여기서 에이든의 본성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을 때.
뒤에 서 있던 추종자 하나가 그의 어깨를 꽉 잡았다.
에이든이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자, 추종자는 고개를 휘휘 저었다.
마치 여기선 물러서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크윽…."
저게 무슨 상황인가 지켜보고있는데,놀랍게도 에이든은 곧바로 소란을 멈춘 채 자리에 앉았다.
'저 놈은 추종자가 아니야.'
기억해놔야겠네.
나는 머릿속에 놈의 인상착의를 기억하고 눈을 돌렸다.
아, 아… 이것으로 모든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학회를 빛내주신 모든 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어….
당황한 진행자가 상황을 수습하는 사이, 나는 몸을 돌려 임솔에게 다가갔다.
"드디어 학회도 끝났네요."
"그러게."
"아마 난리가 나겠죠?"
우리가 발표한 핵심 술식은 마법계의 역사를 뒤엎을 만한 내용이다.
임솔이 직접 그렇게 장담했으니, 틀림없겠지.
"엄청 귀찮아질 거야. 나는 인터뷰 거부니까 알아서 해."
"그런 게 어딨어요."
임솔은 귀찮은 듯 고개를 저으며 단상 밑으로 내려갔고, 나는 웃으며 그 뒤를 따랐다.
"교수님."
"응?"
나는 임솔에게 딱 붙으며 말했다.
"제가 어제 말했죠. 10년이나 걸리지 않을 거라고."
"… 그랬지."
"아무 걱정하지말고 기다리고 있으세요. 알겠죠?"
"… 응. 기대할게. 호연아."
나는 교수님의 붉어진 볼을 건드리며 미소를 지었고,임솔은 상기된 얼굴을 숨기듯 내게 고개를 돌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