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야겜에 빙의했다-406화 (406/648)

〈 406화 〉 406화. 학회 논문 발표 (3)

* * *

발표가 시작하기 전.

나는 학회장이 소개해주는 마법사들과 인사를 나눴다.

다들 엄청난 고위 마법사라 알아놓으면 나쁠 건 없겠지.

게다가 아서의 인맥이라면 이상한 사람은 없을 거다.

"이쪽은 더글라스. 얼굴은 바이킹처럼 생겼지만, 모기 하나 못 죽이는 순한 놈이야."

"이야. 천재 마법사 이호연이 자네구만!"

"네. 처음 뵙겠습니다. 이호연입니다."

수염이 덥수룩한 마법사 더글라스.

나이가 꽤나 있어 보이는 데도 기운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이외에도 여러 명과 인맥을 쌓으며 착실하게 시간을 보냈다.

"힘드네…."

빨빨거리며 발표장을 돌아다니던 나는 임솔과 학회장 옆에 앉아 숨을 돌렸다.

남자들한테 아는 척을 하고 다니려니까 더럽게 피곤하네.

아쉽게도 임솔만큼 예쁜 여자 마법사는 없었다.

여자가 딱 한 명 있었는데, 학회장님과 비슷한 나이대라서 친한 척을 하진 않았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앉아있는 아서에게 말을 건넸다.

"마법사 학회가 진짜 큰 이벤트인가 보네요. 유명인들이 이렇게 많다니."

"당연하지. 내가 판을 크게 키워놨으니까."

"아하...."

주변의 마법사들도 끼리끼리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지금은 발표가 시작하기 전에 가벼운 친목을 나누는 시간이었으니, 다들 인맥을 쌓기 위해 고생하고 있었다.

'여긴 조용하네.'

학회장님이 소개해준 마법사들이 아니었다면 나도 조용히 앉아있었겠지.

아쉽게도 학회를 잡고 있는 고인물들이 임솔을 좋아하지 않았으니까.

웃긴 건 다가오지 못하면서도 이쪽을 힐끗힐끗 쳐다본다는 점이다.

임솔과 나에게 쏠리는 시선이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아마 학회장이 올려놓은 기대감 때문이겠지.

"슬슬 시간이 됐군. 나는 심사 하는 쪽으로 가봐야겠어."

"잘 가요. 아저씨."

"심사도 잘 부탁드립니다. 학회장님."

"허허. 나야말로 좋은 발표 부탁하네."

저벅저벅­

아서는 미소를 지으며 발표장 너머로 사라졌다.

저 아저씨도 참 인상은 좋아.

나는 곧바로 임솔의 옆에 앉으며 말했다.

"교수님. 발표는 언제쯤 시작하는 거예요?"

"아저씨가 갔으니 바로 시작할 거야."

남자들하고 친목을 다지는 것도 이제 지친다.

빨리 발표나 시작했으면 좋겠네.

"안녕하십니까. 임솔 마법사님."

그때, 한 마법사들의 무리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호의적인 미소를 짓고 있으면서도 적대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남자.

나와 임솔은 갑자기 다가온 남자를 바라봤다.

'에이든?'

이 새끼는 또 왜 온 거야?

눈치를 보느라 말도 못거는 다른 마법사들과 달리 바로 다가오는 걸 보니 확실히 학회에서 어느 정도 위치가 있는 모양이다.

에이든은 우리 테이블로 다가와 임솔을 보며 말을 걸었다.

"임솔 마법사님. 이번 발표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고마워요."

"...."

임솔은 귀찮은 듯 에이든을 바라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하지만 에이든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호연 생도의 발표도 기대가 되네요. 데뷔부터 발표의 마지막을 장식하다니, 학회장님의 안목은 역시 특출난 것 같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왜 왔나 했더니, 발표의 마지막인 내게 부담이라도 줄 생각인가보다.

그게 그렇게 중요한 일인가?

"마법사 학회의 대미를 장식하는 만큼, 엄청난 마법이 나올 것 같네요.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나 생도 수준의 마법이 나왔다가는 다들 실망할 테니까요."

에이든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주변에 들리도록 목소리를 키웠다.

내가 아니라 다른 마법사들에게 말하려는 것 같았다.

저렇게 기대감을 키워주면 나야 좋은데?

"네. 나쁘지 않은 마법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에이든 마법사님도 엄청난 마법을 준비했다고 하시던데요."

"벌써 거기까지 소문이 퍼졌군요."

"저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에이든 마법사님."

나는 당당한 미소를 지으며 에이든을 바라봤다.

내 태도를 본 에이든의 얼굴에 살짝 불편한 기색이 스쳤다.

­ 잠시 후 마법사들의 논문 발표가 있겠습니다. 발표자들은 준비해주시기 바랍니다.

"좋은 발표 기대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에이든은 무언가 말을 하려다가, 곧 발표가 시작된다는 소리에 추종자들을 이끌고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에이든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임솔에게 말했다.

"귀찮은 사람들이 많네요. 교수님."

"한마디만 더 했으면 마법진을 펼쳤을 텐데, 운이 좋네."

"... 무섭게 그러지 마세요."

­ 아아. 마법사 학회를 빛내주신 여러분들게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먼저 심사위원 소개가....

드디어 기다리던 시간이 왔다.

지루한 심사위원 소개부터 학회장의 축사와 초청 마법사들 소개까지 끝나고나서 첫 발표가 시작했다.

"이것은 미란테오스 가설을 증명하는...."

발표의 순서를 정하는 기준이 궁금했는데, 아마 연구의 난이도가 낮은 것부터 발표하는 모양이다.

하긴, 앞에서 엄청난 게 다 나와버리면 뒤에서 발표하는 사람들에게는 집중도가 떨어질 테니까.

'이래서 에이든이 발작을 한 거구나.'

내가 자신보다 뒷순위에 있는 게 마음에 들지 않은 거다.

하지만 어쩌겠어.

난 학회장이라는 엄청난 인맥이 있다고.

"긴장되지는 않아?"

"네. 괜찮아요."

나는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내는 임솔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상한 질문이 와도 당황하지만 않으면 돼."

"걱정하지 마세요. 어젯밤에 침대에서 응원을 많이 받았거든요."

"...."

찰싹­

임솔은 눈을 찌푸리고 내 손등을 때리며 고개를 돌렸다.

나는 그 반응에 웃으며 정면의 발표를 구경했다.

"그래도 수준들이 나쁘진 않네요."

"나름 마법에 인생을 바친 사람들이니까."

우리는 발표를 보며 잡담을 나눴다.

나쁘지않은 발표들이었지만, 고쳐야 할 부분이 많이 보였다.

"저건 수정할 필요가 있는데요. 마력 배분이 너무 낭비가 심해요."

"연산부터 잘못된 거야. 매개체를 더 가벼운 물체로 바꿔야 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남들 훈수 두는 게 이렇게 재밌구나.

우리는 마법사들의 발표에 훈수를 두며 학회를 즐겼다.

마지막 차례다 보니 남들이 발표하는 걸 구경할 수 있어서 편했다.

­ 다음은 에이든 마법사의 발표가 있겠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에이든의 차례.

자리에서 일어난 에이든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단상으로 걸어갔다.

"마법사 에이든 밀러입니다. 지금부터 마법사와 전투를 위해 개발한 마법. 영역 전개를 발표하겠습니다."

지이잉­

에이든은 손을 움직여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곧 그의 몸을 감싸는 빛나는 마력이 얇은 막을 만들어냈고, 얇은 막은 점점 넓어져 단상을 가득 채울 정도로 커졌다.

마치 물 속을 보는 것 처럼 일렁거리는 마력은 꽤나 신기한 자태를 뽐냈다.

"흐음?"

옆에서 구경하던 임솔도 흥미를 가질 정도의 마법.

­ 뭐지? 저 공간만 마력이 짙어졌어.

­ 그뿐만이 아니야. 에이든의 기세가 더 강해진 거 같은데.

지지직­ 화르륵­

곧 에이든과 같이 올라왔던 추종자들이 마법을 캐스팅했다.

파이어 볼과 아이스 애로우, 윈드 커터 등 단순하지만 강한 마법들이었다.

목표는 에이든의 영역.

모두가 조용히 그의 발표를 바라봤다.

"발사해주세요."

이어지는 에이든의 말에 추종자들은 마법을 발사했다.

콰아앙­ 콰지직­

모든 걸 잡아먹을 기세로 발사된 마법은 곧 에이든의 영역에 들어갔고, 동시에 약속이라도 한 듯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했다.

­ 뭐야?! 마법의 속도가 느려졌어. 시전자가 조작한 건가?

­ 아니, 저 영역 안에 들어온 마법의 마력을 에이든이 조종하고 있는 거다.

­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 세기의 발견이다. 이건 마법사간의 전투에서 혁명이야!

다른 마법사들도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마법사를 상대하기위해 개발한 마법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효과였기 때문이다.

역산 과정 없이 상대방의 마력에 간섭하는 일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옆의 임솔을 쳐다봤다.

"교수님. 어때요?"

"신선하네. 아직은 보완할 곳이 많아 보이지만... 역산의 속도가 비정상적으로 빨라."

"그럼 저랑 비교하면요?"

"으음... 글쎄. 너랑 비슷할지도 모르겠네. 아마 보완된다면 너보다 빠르지않을까?"

임솔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솔직하게 대답했다.

천재 마법사인 우리 교수님이 저렇게 평가할 정도면 확실히 괜찮은 마법이긴 하네.

'딱 예상한 정도.'

물론, 내 예상대로였다.

영역 전개라고 해서 혹시나 했는데, 생각한 것 그 이상은 보여주지 못했다.

나는 발표를 끝내는 에이든의 모습을 바라봤다.

그는 후련한 표정으로 인사를 하고 있었는데, 그 얼굴을 보니 웃음이 나올 것만 같았다.

'저 미소가 얼마나 유지되는지 보자.'

­ 다음 발표는 임솔 마법사와 이호연 생도의 공동 발표입니다. 단상으로 올라와 주시길 바랍니다.

"가죠. 교수님."

"응."

마침 에이든의 다음이 우리였다.

자리에서 일어난 우리는 단상 위로 올라갔다.

­ 데뷔부터 마지막 차례라니, 특혜도 이런 특혜가 없구먼.

­ 저 어린 청년이 자신을 증명할 수 있을까.

­ 하필이면 에이든의 뒤라니. 쯔쯔.

나는 주변에서 들리는 평가에 헛웃음을 지었다.

나름대로 한 일이 많은데, 역시 아카데미 외부에서는 잘 모르는구나.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증명해야겠다.

임솔은 저런 시선에 익숙한 듯 아무렇지 않게 발표를 시작했다.

"임솔입니다. 지금부터 모노드로미 가설과 골드바흐 가설을 증명하겠습니다."

임솔은 매끄럽게 발표를 이어갔다.

언제 이런 걸 준비한 건지는 모르겠는데, 발표 전 몸풀기 느낌으로 미제 가설들을 해설하고 있었다.

역시 우리 교수님이 마법사 학회의 희망이구나.

­ 대단하군... 결국 밀레니엄 문제를 풀어낸 건가.

­ 게다가 너무나 완벽해. 아예 지적할 곳이 없어.

방금까지 에이든을 칭찬하던 마법사들도 임솔의 발표에 귀를 기울이며 집중했다.

그동안 나는 뒤에서 가만히 임솔을 구경했다.

이건 내가 준비한 게 아니니까.

"여기까지. 모노드로미 가설과 골드바흐 가설의 증명이었습니다."

임솔의 증명이 끝나자마자 마법사들의 감탄이 이어졌다.

흠잡을 곳이 없으니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 천재 마법사 임솔은 어딜가지않는군.

­ 능력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어....

하지만 좋은 말만 있는 건 아니었다.

­ 확실히 대단해. 분명 대단하긴 하지만... 뭔가 아쉬운데?

­ 그냥 평소의 임솔이잖아. 학회장이 이번엔 정말 대단한 거라고 했는데....

임솔을 원래부터 알고있던 고위마법사들의 반응이었다.

나는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내리며 표정을 유지했다.

이것만 보고도 감탄을 했는데 진짜가 오면 얼마나 놀랄까.

"다음으로는 마법의 핵심 술식에 대한 발표를 시작하겠습니다."

임솔은 곧바로 허공에 마법진을 그렸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푸르게 빛나는 마력이 세 개의 마법진을 그렸고, 곧 세 개의 불꽃이 허공에 나타났다.

­ 저게 뭐지? 파이어 볼 3개를 소환해서 어쩌자는 거야.

­ 이봐. 불꽃의 모양을 봐.

­ 잠시만. 모양이 확연히 달라.

임솔이 소환한 세 개의 파이어 볼은 확연히 특징이 나뉘었다.

하나는 화살같이 날카로운 모양을 하고 있었고, 하나는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 같았다. 나머지 하나는 작게 응축되어 아예 다른 마법 같은 형태였다.

­ 같은 마법진을 그렸는데 다른 결과가 나온건가? 무슨 원리지?

­ 추가적인 술식을 더한 거 아니야?

­ 아니. 내가 확실히 확인했다. 세 개의 마법진은 같은 모양이었어.

발표장에 앉아있던 마법사들이 혼란에 빠져있을 때.

임솔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지금까지 마법은 철저한 계산의 영역이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마법에는 시전자의 의지를 담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임솔과 이호연이 발견한 핵심 술식입니다."

발표가 이어질수록 발표장 내부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마법이라는 건 완벽한 마력의 양과 완벽한 마법진, 마지막으로정확한 마력 컨트롤까지 요구되는공식과 법칙에 목을 매는 학문이었다.

하지만 임솔의 발표는 지금까지 마법을 지탱하던 근간을 부숴버리고 있었으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당연히 엄청난 반발이 나와도 이상하지않은 상황이지만,임솔은 마법사들이 반응하기도 전에 핵심 술식에 대한 이론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같이 점검한 이론은 너무나 완벽했고, 의문을 제기하려던 마법사들도 서서히 임솔의 설명에 집중했다.

'역시 우리 솔이가 최고야.'

그리고 나는 임솔의 뒤에 서서 꿀을 빨고 있었다.

발표는 우리 솔이가 완벽하게 해주고 있으니 끼어들 틈이 없었다.

임솔은 마법에 대해 어느정도 지식만 있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있었다.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는 임솔이 저렇게 쓰는 건 아무리 봐도 힘들었을 거 같은데, 엄청나게 노력한 성과겠지.

'나중에 다시 칭찬해줘야겠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임솔의 발표를 구경했다.

* * *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