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2화 〉 402화. 아메리칸 드림 (4)
* * *
정면에 선 아서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을 걸었다.
"본래 아무리 재능이 넘치는 마법사라도 놓치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예."
"네 스승인 천재 마법사 임솔에게도 약점이 있었지. 내가 그런 쪽은 특기거든."
"아저씨. 이상한 말 하지 말고 빨리 대련 시작해요."
"그래그래. 알았다."
"잘 부탁드립니다."
눈앞의 아서는 마력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기세 자체는 나보다 약했지만, 경험에서 나오는 자신감과 패기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마력이 이렇게 차이 나는데도 기세가 밀리지 않는다고?'
단순한 힘의 크기로는 잴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이게 현 마법사 학회의 학회장인가.
꿀꺽.
일단은 탐색전부터.
나는 침을 삼키며 마법진을 그렸다.
그리고 약 10분 후.
"끄아아악…."
"아저씨! 아저씨!"
"…."
나는 내 앞에 쓰러져있는 아서를 보며 눈을 끔벅거렸다.
옆에서 구경하던 임솔 교수님은 아서에게 다가가 상태를 살폈고, 나는 그 둘을 보며 생각했다.
'이 아저씨 개허접이잖아.'
탐색전에 힘을 너무 빼길래, 진심을 보고 싶어서 살짝 강하게 마법을 날렸더니 바로 쓰러져버렸다.
설마 힘을 뺀 게 아니라 진짜 약할 줄이야.
이 아저씨 학회장 아니야? 왜 이렇게 약해.
"호연아. 아저씨의 마력을 느꼈으면 힘을 조절해야지."
"아니 그래도 학회장인데…… 넵. 죄송합니다."
솔직히 억울하긴 했지만 끙끙대며 쓰러져있는 아서를 보니 내가 잘못한 것 같아서 그냥 사과했다.
장유유서라는 것도 있는데 좀 배려할 걸 그랬어.
"끄으으… 괜찮다. 괜찮아. 솔아."
아서는 주변에 있는 검붉은 다이아몬드를 주우며 몸을 비틀거렸다.
저 마법은 처음 보는 거였는데, 저게 나올 때까지만 해도 숨겨둔 엄청난 수가 있을 줄 알았다.
설마 내 스파이럴을 1초도 못 막을 줄은 몰랐지.
"후우. 역시 오랜만에 몸을 움직이니까 힘들어."
"학회장님. 괜찮으세요? 제가 죄송합니다."
나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아직도 뭘 잘못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분위기상 숙여야지.
"아니야. 내가 오랜만에 신이 나서… 끄응. 그래도 대충 파악은 끝났다."
"오… 문제점이 있었나요?"
아서의 전투력에는 실망했지만, 그 분석력에는 아직 희망을 걸어볼 만하다.
교수님도 가르쳐줬다고 했으니까.
내가 모르는 전투 방식의 문제도 집어줄 수 있을 거다.
"아니. 너무 완벽해."
"… 네?"
그러나 아서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내 생각과 반대였다.
"솔이는 마력 자체의 순도가 높았지만, 마법의 마력 배분이 아쉬웠지.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고위계 마법을 사용하는 버릇이 있었어. 아마 높은 자존심이 원인이었을 거다."
"음… 네."
"하지만 너는 완벽해. 마력의 배분과 사용하는 마법의 종류, 반응속도, 마력의 질, 게다가 솔이와 같은 모든 속성 사용자… 그야말로 부족함이 없다.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주역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
나는 조용히 아서가 하는 말을 들었다.
어쩌면 당연한 얘기일지도 모른다.
나는 [전투 감각]에 의해서 보조받고 있으니까.
전투에 있어서는 완벽한 선택을 하거든.
"즉 너에게 필요한 건 시간이다. 아마 10년이면 솔이를 따라잡을 수 있겠지."
"10년이요?"
"너도 괴물이지만 네 스승도 괴물이야. 아마 그 정도는 걸릴 거다."
"허어…."
나는 아쉬움의 한숨을 내쉬며 입맛을 다셨다.
10년은 늦어도 너무 늦잖아.
'이럴 거면 안 배우러 왔지.'
무슨 10분 만에 쓰러지더니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어.
여기까지 걸어오는 데만 해도 20분은 걸렸다.
이거 완전 이상한 노인네 아니야?
"뭔가 불만이 있는 표정인데?"
날 빤히 바라보는 아서를 보며 나는 표정을 관리했다.
그리고 다시 말을 이었다.
"불만은 아니고… 아쉬워서요. 10년은 너무 길잖아요."
"나는 나름대로 엄청난 칭찬을 한 건데. 그리고 솔이는 강한 마법사라 10년이 지나도 미모가 여전할 거야. 그건 내가 장담하마."
"… 그게 문제가 아니에요."
나는 허허 웃는 아서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10년이면 이미 스토리가 끝나고도 남았다.
마왕을 잡아야 하는데 그렇게 서서히 강해지면 뭐 하냐고.
"꽤 많이 아쉬운 모양인가 보구나."
"조금은 그렇네요. "
표정을 관리한다고 했는데 나도 모르게 얼굴에 기분이 드러난 모양이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잖아.
엄청난 해결책을 줄 거처럼 말해놓고 10년 기다리라는 말을 하면 당연히 맥이 빠지지
아서는 내 얼굴을 뻔히 바라보다가 말을 이었다.
"자네. 마법의 이론은 잘 알고 있나?
"이론이요? 그래도 꽤 많이 알고 있습니다."
이래 보여도 빅토리아 아카데미의 이론 1등이다.
웬만한 마법 이론들은 다 꿰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의외로 이론을 중요시하지 않는 마법사들도 있거든. 그거 알고 있나? 같은 사람이 같은 마력을 집어넣고, 같은 마법진을 그려도 그날그날 마법의 효과가 다르다네."
"당연히 알고 있죠. 마법사잖아요."
아서가 말하는 건 마법을 써본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현상이다.
"그래. 모든 마법사가 알고 있는 현상이지만,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직도 밝혀낸 자가 단 한 명도 없어. 대부분 그날의 컨디션이라고 생각할 뿐이지."
"…."
'이거 핵심 술식에 대한 설명이잖아.'
나는 슬쩍 임솔 교수님과 눈을 마주쳤다.
우리가 이번에 발표할 주제가 바로 저 현상에 대한 설명이나 마찬가지다.
교수님이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는 걸 보니 역시 학회장님에게 말하지 않은 모양.
학회장은 우리의 마음도 모르고 열심히 말을 이었다.
"하지만, 감이라는 게 있다. 오랜 시간 마법사로 활동하다 보면 컨디션이 좋든 나쁘든 자신이 잘 쓸 수 있는 마법 계열을 찾기 마련이야. 그리고 더욱 나아간다면, 자신만의 마법을 창조할 수 있지. 보통, 이 경지가 되려면 10년 차 정도가 필요하다."
아서는 자신의 몸을 공전하는 검붉은 다이아몬드들을 소환했다.
방금 대련에서도 봤던 마법이다.
"그걸 고유 마법. 또는 비전 마법이라고 한다. 내 경우는 이 룬트레이서가 고유 마법이다. 상대의 마력을 추적해 알아서 공격하는 녀석들이지."
"고유 마법… 고유 스킬과 비슷한 거네요."
"그래. 다만 고유 스킬은 다른 사람이 쓸 수 없지만, 고유 마법은 다른 사람과 마법진을 공유할 수 있다는 차이점이 있지. 그렇기에 더욱 발전시키기가 쉽다."
"그걸 저한테 말해주시는 이유는요?"
이 아저씨 괜히 지고 나서 헛소리하는 거 아니야?
내가 살짝 의심하는 눈을 하자, 아서가 바로 말을 이었다.
"네가 정말 솔이를 이기고 싶다면, 고유 마법을 만들어라."
"방금 10년 차 이상이어야 한다면서요."
"평범한 마법사 기준으로는 그렇겠지. 하지만 너나 솔이 같은 괴물들은 달라. 실제로 솔이도 고유 마법을 사용하고 있으니까."
"그 커다란 마법진 말하는 거죠?"
"그래. 네가 본 그거다."
"음…."
나는 아서의 말에 고민을 이어갔다.
고유 마법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이미 충분하지 않나?'
스파이럴. 블러드 비트. 아크.
남다은의 특성을 따라 한 가속이나 룬의 결계까지.
내가 직접 만들어낸 스킬이 한두 개가 아니잖아.
"이건 안 되는 건가요?"
또르르
나는 손 위에 아크를 소환했다.
대련에서는 아크를 꺼내자마자 아서가 쓰러져서 제대로 못 써봤지만, 아크로 마법을 사용하는 걸 봤으니 무슨 스킬인지는 파악하고 있을 거다.
"그것도 나쁘지 않아. 아니, 사실 대단하지. 20살이라는 나이에 벌써 그런 고유 스킬을 만들어낸 건 고무적인 성과다."
"감사합니다."
"만약 네 목표가 솔이가 아니었다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 거다. 완벽한 새싹을 건드렸다가 괜히 엇나갈 수도 있거든. 하지만 목표를 솔이로 잡은 순간부터는 특별한 무언가가 필요해."
"특별한 무언가?"
"마법사의 전투에서 중요한 건 3가지. 마력의 힘과 마력의 속도. 그리고 수 싸움이다. 네가 아크를 이용해 수 싸움을 제압한다고 해도, 마력의 힘과 속도에서 밀리면 방법이 없어. 그렇기에 다른 방안이 필요한 거다. 솔이의 압도적인 마력을 극복할 방법을 찾아. 그 중에서 가장 빠른 방법은 고유 마법이다."
"오…."
나는 꽤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듣다 보니 틀린 말이 없잖아.
이 아저씨 꽤 잘 가르치는데?
'학회장 자리를 꽁으로 먹은 건 아닌 것 같네.'
말하는 재주가 좋아.
듣다보면 빨려 들어갈 것 같은 흡입력이 있다.
"마침 시기도 괜찮다. 이번 학회의 발표를 참고하는 것도 도움이 되겠지. 학회에는 특이한 놈들이 많거든. 내가 알기로 더글라스는 화산 폭발 이상의 파워를 내는 마법을 개발했다고 하고… 에이든은 공간을 장악해 자신의 영역을 구축하는 마법을 발표한다고 했었지. 그리고…."
"잠시만. 누구요?"
나는 순간 들려온 이름을 놓치지 않았다.
에이든.
분명 어제 만난 재수 없는 놈의 이름이 에이든이었잖아.
"응? 더글라스 말이냐. 더글라스라면 내가 소개해줄 수 있어. 수염은 덥수룩하지만 보기보다 착한 친구고…."
"아니. 그다음이요. 에이든이 차기 학회장 후보 에이든 말하는 거 맞죠?"
"에이든을 알고 있나?"
"어제 만났거든요. 그 사람이 가져온 마법에 관해 설명해주실 수 있어요?"
"에이든의 마법? 나도 정확한 건 모른다. 단편적인 내용만 들었을 뿐이야."
"그거라도 괜찮아요. 음, 일단 어디 앉아서 얘기하시죠?"
우리는 훈련장에서 빠져나와 가까운 카페로 들어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카페나 잡을걸.
"냠."
"교수님, 여기 초코 라떼는 맛있어요?"
"나쁘지않아. 적당히 달콤해."
나는 임솔 교수님이 초코라떼를 마시는 걸 보며 그 옆에 앉았고, 내 뒤를 따라온 아서는 내 맞은편에 앉았다.
아서는 가져온 커피를 쪽쪽 빨며 물었다.
"에이든에 대해 궁금해하는 이유는 뭐냐? 어제 만났다면 별로 궁금할 건 없을 텐데."
"… 뭔가 느낌이 안 좋거든요. 학회장님은 에이든하고 무슨 사이세요?"
"그놈이 차기 학회장 후보다. 아직 내 은퇴까지 시간이 꽤 남았지만, 내가 학회장을 그만두면 차기 학회장 당선이 거의 확실하다고 볼 수 있지."
"학회장을 할 정도로 잘난 놈 같진 않던데요?"
"맞아. 그놈도 경지가 꽤 높은 편이지만… 학회장 자리에는 부족하지. 하지만 원래 정치라는 게 그런 법이다. 나는 이 나이가 되도록 정치를 모르겠더군. "
아서는 어깨를 들썩거리며 웃었다.
학회장이 된 사람이 저렇게 말하는 것도 웃기네.
"실례가 아니라면 학회장님과 에이든의 사이를 물어도 될까요?"
"굳이 말하자면 정적이겠지. 그놈은 능력 주의가 아닌 인맥 주의거든. 서로 지지하는 마법사들이 달라."
"정적이라…."
나는 생각을 정리했다.
사실 임솔 교수님에 대해서 예전부터 가지고 있던 생각이 있었다.
임솔 교수님은 정말 강한 마법사다.
나를 만나서 더욱 강해졌지만, 그전에도 세계에서 손꼽히는 강자였다.
이건 틀림없는 사실.
하지만 원작 게임을 경험해본 나는 임솔 교수님의 강함을 볼 때마다 의문이 들었다.
'대체 이렇게 강한 사람이 어떻게 죽는 거지?'
원작의 배드 엔딩에서는 분명 임솔이 죽는 루트가 있다.
마왕을 막지 못하는 엔딩이라면 이해가 간다.
세계 자체가 멸망하는 거니까.
하지만 마왕이 나오기도 전에 죽는 루트도 있었다.
그때는 별 생각 없이 '그렇구나.' 하고 넘어갔지만, 지금 생각하면 이상하단 말이지.
미국에서 만난 에이든을 주의 깊게 보는 이유도 그거다.
그놈이 본심을 보여줬을 때를 생각하면 임솔 교수님에게 호감은 없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차기 학회장이라는 사람이 왜 임솔에게 다가오는 걸까.
'교수님의 마법은 아니야.'
처음엔 마법이라고 생각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상하다.
학회는 임솔 교수님의 강함을 견제하는 사람이 많다. 특히 에이든을 지지하는 인맥 마법사들이 그렇겠지.
만약 에이든이 학회장이 된다면 교수님을 받아들이기보다는 배제하는 쪽으로 가야한다.
그게 인맥 마법사들의 사고방식이다.
특히 에이든이 보기에 임솔은 눈엣가시일 거다.
정적인 아서의 강한 지원군이면서 자신보다 강한 마법사니까.
'일단 여기까지.'
더 추리하기엔 에이든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다.
나는 조용히 옆에 있던 임솔 교수님을 바라봤다.
교수님은 아서의 얘기에 관심이 없는 듯 작게 하품을 하고 있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돌렸다.
"…얘기는 다 듣고 있었어."
"네. 알고있어요."
교수님의 반응에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가슴 한 켠에 있는 불안감은 사라지질 않았다.
이번에는 꼭 내가 지켜줘야지.
언제까지 보살핌만 받을 순 없다.
'그 새끼일 가능성만 생각해놓자.'
심증은 있지만 물증은 없다.
그래도 머리 한 구석에 담아놓을 정도는 되겠지.
나는 표정을 수습하고 아서를 바라봤다.
"일단, 에이든이 발표하기로 한 마법에 관해 설명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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