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1화 〉 401화. 아메리칸 드림 (3)
* * *
"네."
"여전히 아름다우십니다. 이번 학회에서 무엇을 보여주실지 정말 기대가 되는군요."
"고마워요."
"그나저나 저번에 말씀드렸던 식사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식사요? 그런 말을 했었나."
나는 둘의 대화를 지켜봤다.
임솔 교수님은 평소와 비슷한 태도였다.
별 관심 없는 사람이 말을 걸었을 때처럼 추가적인 대화를 없애는 단답.
교수님을 오래 본 나는 금방 알 수 있었다.
'역시 깊은 친분은 아니야.'
혹시나 내가 모르는 인맥인가 했는데, 그런 건 아닌 것 같았다.
딱 봐도 관계가 보인다.
임솔 교수님에게 호감이 있는 이 남자가 학회 때마다 들이댔겠지.
우리 교수님은 마법 빼고 관심이 없으니 안 받아줬을 테고.
그는 교수님의 반응에 떨떠름한 웃음을 짓더니, 이내 나를 바라보며 말을 걸었다.
"아… 이쪽이 그 천재 마법사라는 이호연 군인가요? 20살에 학회 데뷔라니, 임솔 마법사님이 고생을 많이 하셨겠네요."
"…."
말투부터 느껴지는 불쾌함.
얼굴로는 미소를 짓고 있으면서 저렇게 음침하게 말하는 것도 재주다.
나는 쾌활한 미소를 짓는 남자를 무심하게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이런 사람을 퇴치하는 법은 잘 알고 있다.
"교수님. 아는 사람이에요?"
"얼굴만 아는 사이야. 차기 학회장 후보거든. 그러니까 이름이… 에반?"
"… 에이든 밀러입니다."
"아하. 처음 뵙겠습니다. 에반 씨. 임솔 교수님의 제자 이호연 마법사입니다."
나는 에이든의 얼굴을 보며 똑같이 미소를 지어줬다.
거기에 위아래로 훑어보는 건 덤.
미안하지만 음침함은 나도 안 밀리거든.
"… 반갑다. 에이든 밀러다."
"예."
"…."
나는 미소를 유지하며 손을 내민 에이든을 보며 고개를 까딱였다.
숙이는 게 아니라 까딱.
각도로 따지면 5도 정도 숙였을까.
에이든이라는 남자는 입꼬리를 꿈틀거렸다.
이미지 관리하는 걸 보니 아직도 임솔 교수님을 모르는구나.
우리 교수님은 마법만 잘하면 뭔 짓을 해도 신경을 안 쓰는데.
나는 손을 거두는 에이든에게 관심을 끄고 임솔 교수님에게 말했다.
"교수님. 식사 다 끝나셨으면 같이 관광이나 가죠? 이쪽 분도 딱히 용건이 없는 거 같은데."
"그럴까? 그럼 계산하고 있을게."
임솔 교수님은 디저트를 비우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테이블 앞에 있는 에이든은 신경도 쓰지 않는 모습.
내가 당했으면 자존심이 상할 것 같은데, 에이든은 꿋꿋하게 말을 이었다.
"아, 임솔 마법사님. 저와 식사는…."
"눈치가 없는 건지 일부러 저러는 건지 모르겠네."
"… 뭐라고?"
그리고 나는 안타까운 듯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저런 열정이 있다는 걸 존중 해줘야 하는 걸까.
아니면 오르지 못할 산을 쳐다보는 객기를 욕 해야 하는 걸까.
"안되는 건 일찍 포기하는 게 맞아요. 에이든 씨. 진심으로 충고하는 거예요."
나는 후자를 택했다.
어차피 죽일 놈으로 정했으면, 아예 적대하는 게 낫다.
애초에 남자랑 친해질 생각도 없지만.
에이든은 내 말을 듣자마자 주변을 둘러봤다.
교수님은 계산을 위해 이곳과 꽤 멀어진 상태였고, 그걸 확인한 에이든은 곧바로 미소를 풀며 사나운 눈초리로 날 노려봤다.
"아직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쓸데없는 말이 많아."
"역시 잘생긴 남자 중에 착한 놈은 없다니까."
교수님이 사라지자마자 본색을 드러내는 걸 보니, 역시 죽일 놈이 맞다.
내 촉은 죽지 않았어.
"임솔 마법사도 오랫동안 골방에 박혀있다 보니 안목이 많이 안 좋아졌군. 이런 놈을 제자로 받다니."
"네네. 그러시겠죠. 쯧."
나는 고개를 저으며 혀를 찼다.
임솔 교수님에게 진심인 열혈사내일 가능성도 있었지만,말하는 걸 보면 임솔 교수님을 정말 좋아하는 것도 아닌 것 같네.
아마 교수님의 마법이 목표겠지. 혹은 교수님의 이름이 목표일지도 모른다.
"네가 정말 임솔 마법사의 옆자리를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아? 좋은 말로 할 때 포기하는 편이 나을 거다."
"충고 참 감사합니다."
나는 에이든의 말을 무시하고 교수님 쪽으로 걸어갔다.
마법사 학회에 오니까 또 이상한 놈이 달라붙는구나.
주인공 생활은 참 힘들어.
그때, 에이든이 내 앞을 막았다.
"… 내 이름은 에이든 밀러. 차기 학회장 후보다. 너는 오늘 내게 취한 태도를 평생 후회하게 될 거야."
에이든은 마력을 풀풀 내뿜고 있었다.
곧 마법진이라도 소환할 기세.
확실히 차기 학회장이라는 게 거짓말은 아닌 듯, 임솔 교수님보다는 약했지만 나보다는 조금 강한 기세를 풍기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겁내지않고 피식 웃었다.
"그래서 여기서 싸우려고요?"
"…."
이쪽엔 임솔 교수님이 있는데?
에이든은 슬쩍 임솔 교수님을 바라보고는, 눈을 찌푸리더니 뚜벅뚜벅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나는 그 뒷모습을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별 이상한 놈들이 다 있네.'
어쩌면 저 놈이 학회장인 아서의 정치적 적일지도 모르겠다.
하는 꼴을 보아하니 그럴 것 같은 예감이 들어.
나는 질색하는 표정을 지으며 교수님에게 걸어갔다.
"잘 먹었어요. 교수님."
"응. 어디 보고 싶은 곳이라도 있어?"
"… 자유의 여신상 보러 갈까요? 실제로 본 적이 없어요."
"그 주변은 사실 별 게 없긴 한데. 그러면 거기라도 가자."
임솔 교수님은 이미 에이든을 잊고 어디를 가이드해줄지 고민하고 있었다.
조금은 불쌍하네.
저렇게 진심인데 아예 기억도 못하고 있으니까.
'물론 내가 알바는 아니지.'
나는 앞서가는 교수님의 뒤를 따라갔다.
데이트는 오랜만이네.
*
화요일.
오늘은 미국에 온 지 이틀째다.
첫날에는 식사를 한 후에 뉴욕에 있는 관광지를 돌아다녔는데, 정말 별 거 없었다.
신기한 것도 처음뿐이다.
요즘은 우리나라 건물도 신기한 게 많다.
마법이 보급화 된 이후로는 정말 으리으리한 건축물들이 많아졌으니까.
그나마 예쁜 임솔 교수님을 옆에 끼고 돌아다닌 게 참 좋았지만, 원래 여행의 즐거움은 숙소에서 보내는 뜨거운 밤이 포함된 거거든.
그게 없으니 느낌이 덜했다.
아무튼, 오늘은 좀 쉬기로 했다.
우리는 레스토랑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돌아와 소파에 앉아있었다.
교수님은 발표할 논문을 훑어보고 있었고, 나는 멍하니 누워있다가 문득 생각난 걸 물었다.
"그러고 보니 학회 발표가 엄청 시끄럽던데. 원래 교수님한테 관심이 이렇게 많아요?"
다름이 아니고 뉴스부터 시작해서 지나가는 일반인들까지 수군거린다.
임솔 교수님이 이렇게 인기가 많을 줄은 몰랐는데.
"아저씨 때문일걸?"
"학회장님이요?"
"응. 이번에 우리 제자가 엄청난 걸 찾았다고 했더니, 판을 키워준다고 했거든."
"아…."
나는 스마트워치를 실행해 뉴스를 살폈다.
[임솔 마법사와 함께하는 천재 마법사 이호연의 마법사 데뷔전]
[이번 발표는 마법사 학회를 뒤엎을 대발견!]
[천재 마법사 임솔과 이호연이 다시 한 번 한국의 이름을 드높이다!]
"난리났네."
나는 왠지 웃음이 나와서 피식 웃었다.
그 학회장 님. 교수님을 엄청나게 챙기는 거 같네.
"학회 분위기는 어때. 생각했던 것과 비슷해?"
"네. 마법사들이 이렇게 모이는 건 처음 봐서 신기해요."
게다가 다들 수준이 높다.
나와 대등하거나 그 이상.
아카데미 교수들보다도 수준이 높았다.
교수님은 내 표정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우리 제자는 귀엽네."
"아쉬운 것도 있긴 해요. 마법 수련할 곳이 있으면 좋겠는데, 수련 장소가 없더라고요?"
"애초에 자기들 수련하는 걸 보여주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야. 그리고 학회는 논문과 연구를 발표하는 곳이니까."
"마법 연구에 진심인 사람들만 있는 곳이네요."
나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사실 교수님과 계속 지내는 것도 불만이 있었다.
당연히 좋긴 했는데, 24시간 내내 같이 있으려니 너무 힘들었다.
'논문에 집중하느라 입으로 안 해주잖아.'
쩝.
나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24시간 옆에 있으면 남자라는 생물은 어쩔 수 없이 참기 힘들어진다고.
하지만 이걸 여자한테 설명할 수는 없으니여러모로 유감스럽다.
그때, 교수님이 말을 이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아저씨가 한번 보자고 하던데?"
"오늘요? 그 비밀 마법 결사인가 뭔가 때문이예요?"
"아니. 네 마법을 좀 보고 싶다고 했어."
"맞아. 마법 알려주기로 했었잖아요."
"그러니까 한 번 봐야지."
"전 좋아요."
어차피 할 일도 없다.
임솔 교수님하고 같이 지내다 보니 불안해서 마법 연구도 못 한다.
들키기라도 하면 머리아파지잖아.
아니면 '꺄악 내가 씻는데 들어오다니.' 같은 사건이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워낙 철저한 사람이라 그런 일도 없었다.
"그럼 바로 준비해. 가자."
"넵."
나는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며 나갈 준비를 했다.
*
호텔에서 조금 떨어진 강당.
학회장 아서는 내 앞에 서 있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음. 그래. 현역에서 내려온 지는 꽤 됐지만, 아직 마음은 젊거든. 형이라고 생각하고 편하게 대해도 된다."
"아… 네."
한 마디밖에 안 했는데 벌써부터 불편함이 느껴진다.
이것도 마법이 아닐까.
임솔 교수님은 제자를 어떻게 가르치는지 보겠다며 옆에서 지켜보고 계셨다.
아서는 자세를 잡고는 말을 이었다.
"이호연 생도는 강해지는 게 목표라고 했었지?"
"네. 맞습니다."
"강해지고 싶은 이유는 있나? 이유가 아니라면 구체적인 목표나 지향점도 좋아."
"당연히 있죠."
강해지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내 목숨과 여자들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서.
그리고 판데믹과 마왕을 깨부수기 위해서.
하지만 당장 눈앞의 목표는 역시 그거지.
"임솔 교수님을 이겨야 해요."
"… 솔이를?"
"네. 무슨 짓을 해서라도 이겨야 해요. 그래야 교수님이 제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거든요."
아서는 내 말을 듣고 눈이 커지더니, 히죽히죽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임솔 교수님에게 말을 걸었다.
"솔이 너. 호연 생도한테 사랑받고 있는 모양이네."
"…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정말."
"이상하다. 나한테 제자를 좋아하는 마음은 없다고 하지 않았나? 빨리 거절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네."
"… 아직은 아니라는 거지. 아저씨. 진짜 화낼 거니까. 이상한 소리하지 마."
"알았다알았어."
교수님은 살짝 붉어진 얼굴을 돌렸는데, 그게 엄청나게 귀여웠다.
역시 오늘 밤에는 무슨 짓을 해서라도 부탁해야겠어.
아서는 임솔 교수님을 충분히 놀린 후에 나를 바라봤다.
"뭐, 좋아. 목표가 높으니까 알려줄 맛이 나는구만."
"넵. 잘 부탁드립니다. 일단 마법부터 보여드릴까요?"
"아니지. 마법사에게 제일 좋은 수업은 대련이다."
"… 네?"
"사소한 점을 잡아내려면 대련부터 해봐야 아는 거야. 준비해."
"…."
교수님의 대련 사랑의 원인을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나는 마력을 일으켰다.
하지만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아서는 이미 현역에서 물러난 상태. 지금 나와 붙는다고 해서 날 이기진 못할 텐데.
뭐, 거기까지 내가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학회장도 나름대로 계획이 있을 거다.
"그럼 가겠습니다!"
두근
나는 마력을 회전시키며 정면을 바라봤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