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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야겜에 빙의했다-400화 (400/648)

〈 400화 〉 400화. 아메리칸 드림 (2)

* * *

아서는 카페 바깥으로 나가는 이호연을 보며 중얼거렸다.

"… 저건 괴물인가?"

"내 제자한테 그런 말 하지 마요. 보기보다 착한 애야."

"그걸 말하는 게 아니잖아. 아무리 내가 현역에서 내려왔다지만 그 정도는 알 수 있어. 솔이 네가 생도일 때보다 강한 것 같은데?

임솔은 웃으며 앞의 초코라떼를 들었다.

제자가 칭찬을 받으니 괜히 자신의 어깨가 올라가는 기분이었다.

이호연은 자신이 직접 키웠으니까.

"그건 그렇지. 내가 20살 때 보다 확실히 강해."

"저런 놈은 평생 처음 보는군. 솔이 너를 처음 봤을 때만큼 놀라워."

아서는 침을 꿀꺽 삼켰다.

아무리 현역에서 내려오고 시간이 흘렀다지만, 설마 생도에게 기세가 밀리다니.

자신의 상식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저 정도면 직접 알려줄 맛이 나겠군.'

재능이 있는 사람일수록 놓치기 쉬운 게 있다.

임솔도 마찬가지.

오만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

처음부터 모든 걸 알았으니, 정말 사소한 것을 간과하는 것이다.

아래부터 올라온 아서는 그런 점을 확실히 집어주는 게 가능했다.

"그러고 보니 솔이 너도 엄청나게 강해진 거 같은데… 둘이 대체 뭔 짓을 한 거냐."

"난 원래 아저씨보다 강했어."

"…그래 잘났구나. 아무튼, 할 얘기가 있다."

아서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응. 무슨 일인데?"

"이번에 학회에서 찾아낸 비밀 마법 결사가 있다."

"비밀 마법 결사…? 그런 건 다 사이비 아니야?"

"보통은 그렇지만 이번 놈들은 규모가 좀 커. 게다가 마인과 힘을 합치면서 전력이…."

아서는 임솔에게 설명을 이어갔다.

임솔은 초코라떼를 마시며 아서의 말에 집중했고, 설명은 초코 라떼를 절반이나 비울 때까지 이어졌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요. 도와달라고?"

"그렇지."

"아저씨 학회장이잖아. 왜 아카데미 교수한테 도움을 요청하는 거야."

"… 알잖냐. 요즘 정치싸움이 심해. 이런 건 학회의 힘을 빌리지 않고 내 힘으로 해결해야 하거든."

"제가 분명히 말했죠. 그런 자리는 귀찮을 거라고."

"미안하다. 학회장만 되면 모든 걸 바꿀 수 있을 줄 알았어."

임솔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실력 있는 마법사들이 대우받는 사회를 위해 학회에 뛰어든 아서지만, 학회장의 자리까지 올라서도 강하게 자리 잡은 원로들을 이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됐어요. 그 늙은이들이 아무리 발버둥 쳐봤자, 아래에 있는 마법사들이 인정하지 않는 순간 끝이야."

결국 아래에서 받쳐주는 사람이 있어야 권력도 의미를 갖는 법.

아서는 임솔의 말에 반색하며 물었다.

"그래. 말 한번 잘했다. 이번에 발표할 건 뭐야? 제자랑 공동 저자라니, 천재 마법사 임솔이 이런 건 처음이잖아. 혼자서 학회를 놀라게 하는 게 천재 마법사의 취미 아니었어?"

"이번에는 조금 열심히 준비했어요. 제자의 데뷔전이니까."

"호오… 기대해도 되는 건가? 이번에는 미리 귀띔도 안해주네?"

"아저씨라면 유출 걱정은 없겠지만, 그래도 안 돼요. 이번에는 정말 전 세계를 뒤집을 논문이거든요. 아저씨가 놀라는 반응도 보고 싶어요."

"네가 그렇게 얘기하면 진심인 거 같은데… 지금까지 그런 말은 한 번도 안 했잖아."

아서는 속으로 내심 놀랐다.

항상 학회를 뒤집을만큼 엄청난 걸 가져오는 임솔이지만, 한 번도 저런 식으로 자랑을 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별 거 아니라고 아쉬워했지.

"직접 보면 아실 거예요. 제자가 엄청난 걸 발견했거든요."

"좋아. 그럼 판을 키워주마. 우리 솔이가 그렇게 좋아하는 제자의 데뷔니까."

아서의 이죽거림에 임솔의 눈이 살짝 커졌다.

"… 무슨 소리야. 안 좋아하는데. 됐으니까 그날 봐요. 비밀 결사 때문에 도움이 필요하면 그때 연락하고."

임솔은 눈을 찌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페를 나가는 그녀의 볼에는 살짝 붉은 홍조가 올라와 있었다.

아서는 임솔의 뒷모습을 보며 커피를 들었다.

홀짝­

"천재 마법사에게도 봄이 온 건가…."

그는 나직하게 중얼거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

나는 스위트 룸으로 돌아와 마법진을 펼쳤다.

레베카 씨와 같이 만들고 있는 가짜 던전 마법.

시간이 남을 때 조금씩 만져줘야지.

레베카가 전체적인 틀을 만들면, 내가 디테일을 보충하는 방식으로 작업하고 있다.

결계에 대한 개념은 레베카가 훨씬 뛰어나니 던전을 구성하는 방식을 만드는 건 레베카에게 맡겨야지.

"이건 조금 더 강하게 하는 편이 낫고… 아무도 모르게 해야 하니까 지옥의 마력을 섞는 편이 낫겠는데."

이 던전은 아카데미의 생도뿐만 아니라 교수와 협회의 마법사들까지 상대해야 한다.

그들에게 가짜 던전인 걸 들키지 않으려면 꽤 공을 들여야겠지.

"특히 임솔 교수님이 문제네."

그 사람이 나와 레베카의 마법을 눈치채지 못해야 한다.

그러기위해선 더 견고하게 만들어야한다.

"지옥의 마력을 좀 더 섞자. 교수님은 괴물이야."

"뭐 하는 거야?"

"…!"

나는 등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깜짝 놀라 마법진을 해제했다.

뒤를 돌아보자 고개를 내밀어 내 마법진을 구경하는 교수님의 모습이 보였다.

"… 교수님, 왜 몰래 오고 그러세요."

"아, 미안해. 카페에서 유지하던 인식 차단 결계를 계속 쓰고 있었네."

나는 인식 저하 결계를 해제하는 교수님을 보며 침을 삼켰다.

설마 들키진않았겠지.

들키면 엄청나게 귀찮아지는데.

나는 당황한 걸 티내지않고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학회장님하고 얘기는 다 끝나신 거에요?"

"응. 그렇게 긴 얘기는 아니었어."

"그럼 첫날이니까 관광이라도 할까요?"

어차피 마법 연구는 글렀다.

교수님하고 시간이라도 보낼까.

"나쁘진 않네. 대신 식사 먼저 하는 거 어때? 여기 레스토랑 퀄리티가 괜찮아."

"오, 밥 먼저 먹는 거 좋아요."

안 그래도 배고프긴 했어.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최상층에 있는 식당으로 향했다.

'무슨 식당이 이렇게 고급스럽냐.'

나는 대리석으로 된 바닥을 보며 눈을 끔벅거렸다.

바닥은 내 얼굴이 비칠 정도로 깔끔했다.

한국에서 자주 가던 풍미당도 엄청 고급스러웠는데, 이건 뭐 비교도 안 되네.

"임솔입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입구에서 학회 초대장을 내밀자 입구를 지키던 직원이 손뼉을 쳤고, 안쪽에서 직원 한 명이 더 걸어왔다.

"이쪽으로 오시죠."

나는 교수님의 뒤를 따라 레스토랑의 내부로 걸어갔다.

안 쪽은 입구보다 더했다.

화려한 조명과 비싸보이는 장식들.

그리고 메뉴를 주문하는 손님들도 보였다.

"… 이거 밥을 사 먹는 곳이었어요? 난 음식 제공인 줄 알았네."

"내가 사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

"저도 돈 많아요. 교수님."

"쉿. 앉자."

우리는 창가 자리에 앉았다.

주변에는 다른 마법사들이 보였는데, 다들 우리를 보며 수군거렸다.

­ 임솔이잖아. 오늘 발표에 임솔이 있었나? 일정에서 못 봤는데.

­ 같이 발표한다는 제자가 이호연이었어. 20살 데뷔에 공동 저자가 임솔이라니… 저 친구도 대단하네.

­ 느껴지는 기세가 말이 안 돼. 아직 졸업도 안 한 생도 맞아?

­ 그러니까 임솔이 데리고 다니겠지. 남자의 얼굴이 잘생겼다고 데리고 다닐 사람은 아니잖아.

­ 하긴, 마법에 미친 여자니까.

나는 주변에서 들려오는 말에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나한테 들린다는 건 당연히 교수님한테도 들린다는 것.

하지만 교수님은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나는 입맛을 다시며 물었다.

"익숙하신가 보네요."

"너도 몇 년이나 듣다 보면 익숙해질걸? 식사는 뭐로 할래?"

다행히 정말 신경쓰지않는 모양이네.

"교수님 추천 메뉴로 할게요."

"그럼 가재로 하자."

임솔 교수님이 직원을 불러 주문 하는 동안, 나는 교수님의 복장을 살폈다.

매일매일 츄리닝만 입고 있던 것과 다르게 오늘은 제대로 정장을 챙겨입으셨다.

아무리 교수님이라도 예의가 있는 자리에서는 예의를 지키는구나.

잠시 교수님의 옷을 감상하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아까 학회장님하고 무슨 얘기를 했을까.

물어보면 알려주려나?

"아까 제가 없을 때 학회장님하고 무슨 말 했는지 물어봐도 돼요?"

"음… 아저씨는 비밀을 아는 사람이 늘어나는 걸 안 좋아하긴 하는데, 너라면 알려줘도 되겠지."

"당연하죠. 제가 어디가서 말하겠어요."

"마법사 계에는 비밀 마법 결사라는 게 있어. 미국에서 최근 늘어난 모양이야."

"비밀 마법 결사요? 처음 들어보는데."

내 기억에 없다는 건 원작에도 없다는 것.

아마 미국에서 일어난 일이라 원작에서 다루진 않은 모양이다.

"그렇겠지. 네가 알면 비밀 결사가 아니잖아."

"아하."

우리는 식사가 나온 뒤에도 천천히 대화를 이어갔다.

"원래부터 그런 흐름이 있었어. 마법 연구와 실험을 위해서는 마법 실험 윤리를 없애야 한다는 놈들."

"마법 윤리요?"

"쉽게 말하면 반인륜적인 실험을 원하는 놈들이지. 살아있는 인간을 실험 재료로 쓰고싶어 하는 놈들이야."

"아…."

원래 세상에서도 동물 실험 윤리 같은 게 있었다.

최소한으로 동물의 권리를 지켜주는 규칙이었지.

그런데 이 쪽 동네는 동물도 아니고 인간에게 실험하는 모양이네.

역시 무서운 세상이다.

"보통 실력 없는 놈들이 이상한 핑계를 대는 게 대부분인데… 그 규모가 커졌나 봐. 그래서 도움이 필요하대."

"아서 씨가 학회장 아니에요? 그럼 마법사 학회의 힘을 빌리면 되는 거잖아요."

"그게 쉽지가 않다네."

"흐음."

역시 권력이 있는 곳은 마음대로 되지가 않는구나.

학생회장인 수린 누나와 이사장님이 고생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나는 주먹을 쥐고 교수님과 눈을 마주쳤다.

"힘이 필요한 거면 저도 도울게요. 어차피 발표 전까지는 시간이 남으니까."

"나야 고맙지. 그런데 아까보니 마법진을 연구하고 있던데, 너도 개인 시간이 필요한 거 아니야?"

"… 그건 그냥 심심해서 만들어본 거예요."

"그럼 부탁할게."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제대로는 못 본 모양이네.

교수님에게 언제 들킬지 모르니 앞으로 가짜 던전 마법은 무조건 안전할 때만 써야겠다.

"근데 교수님. 부탁이 있는데요."

"응?"

임솔 교수님은 디저트로 나온 아이스크림을 떠먹고 있었다.

기분이 좋아보이니 지금 좀 놀려도 되겠는데.

"저도 솔이라고 불러보고 싶어요."

"…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교수님하고 친한 사람들은 다 그렇게 부르잖아요. 저도 그렇게 부르면 안 돼요?"

"또 이상한 소리 할래? 정말 혼낼 거야."

나는 교수님의 반응에 웃음을 지었다.

역시 이런 사람들을 놀리는 게 제일 재밌다니까.

"그럼 교수님 이기면 해도 되는 거죠?"

"… 날 이기면?"

"네. 하고 싶은 거 다 하라고 했잖아요."

"하아, 마음대로 해."

"약속한 거에요. 분명 말했어요?"

"다 해줄테니까 이기고 말해. 알겠지? 그리고 이상한 소리는 하지 말고."

교수님은 고개를 저었고,나는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이기기만 하면 되겠네.

약속은 받았으니 무슨 부탁을 해도 거절당할 걱정도 없다.

'근데 아이스크림이 뭐 이렇게 맛있냐.'

나는 아이스크림을 한 입 먹자마자 눈을 크게 떴다.

교수님이 좋아하는 이유가 이거구나.

엄청나게 달콤한데 부담스럽지가 않다.

"교수님, 여기 디저트가…."

뚜벅. 뚜벅.

나는 이쪽을 향해 걸어오는 걸음 소리에 말을 멈췄다.

직원이나 손님이었다면 무시했겠지만, 마법사의 기세가 느껴졌다.

게다가 자연스럽게 나오는 마력이 아닌 이쪽을 향해 일부러 마력을 뿌리는 느낌이었다.

정확히는… 이 쪽이 아니라 나를 향하고 있었다.

나는 다가오는 남자에게 눈을 돌렸다.

누가 봐도 괜찮다고 말할 얼굴과 훤칠한 키.

깔끔한 옷차림과 자신만만한 웃음까지.

나는 그 남자를 보며 생각했다.

'… 이 새낀 누구야?'

원작에는 나오지 않은 인물이다.

하지만, 내 경험상 저런 좋은 미소를 짓는 놈 중에 착한 놈은 없었다.

'게다가 남자.'

예쁜 여자라면 다시 생각해볼 여지가 있지만, 남자는 그런 여지도 없다.

그냥 나쁜 놈이라고 속단해도 무방하다.

"오랜만입니다. 임솔 마법사님."

그는 예상대로 우리 테이블로 다가왔고, 미소를 지으며 임솔 교수님에게 인사를 건넸다.

'죽일 놈으로 결정.'

나는 놈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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