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야겜에 빙의했다-398화 (398/648)

〈 398화 〉 398화. 아이린, 엘리스 (4)

* * *

"인생이 피곤하다. 릴리아나."

"원래 삶이 그런 거래."

나는 엘리스의 저택에서 나와 집에 돌아오자마자 릴리아나에게 안겼다.

다름이 아니고 요즘 너무 바쁘다보니 몸이 피곤했다.

하루에 두 세 번 씩 약속이 잡혀있고, 마법 수련도 몇 시간이나 하고 있다.

이러니 자동으로 하품이 나올 수밖에.

릴리아나는 내가 안겨도 귀찮은 티를 내지 않고 등을 토닥거렸다.

'근데 얘도 피곤해 보이네.'

시간대를 생각하면 방송이라도 한 걸까.

나는 릴리아나를 끌어안은 채로 말했다.

"방송이라도 했어? 피곤해 보이는데."

"응. 방금 끝났엉."

릴리아나도 피곤한 듯 나를 따라 하품을 했다.

"진짜 열심히 하는구나. 요즘 방송 분위기는 어때. 할만해?"

"아니. 이상한 놈들밖에 없어."

"… 그래?"

"맨날 성희롱만 하는 변태밖에 없다니까. 남자들은 이상해."

그러면 안되잖아.

아무리 쓰레기인 나라도 내 여자가 성희롱 당하는 걸 가만히 볼 순 없다.

"그럼 하지마. 이제 집에 사람도 많아져서 안심심하지않아?"

"으음. 그렇긴한데, 시청자들하고 놀아주다 보면 재밌거든. 그리고 걔들은 내가 인생이야. 내가 몇 명을 살리고 있는 지 알아?"

"… 어, 응. 힘내라. 인간을 대표해서 감사할게."

릴리아나는 자랑스럽게 가슴을 내밀었다.

자세한 사정을 알고 싶지는 않지만 응원은 해주자.

남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도 좋은 일이니까.

그리고 서큐버스다보니 성희롱에 좀 관대한 모양이다.

어차피 진짜 모습은 나한테만 보여줄 테니 상관없겠지.

나는 생각을 멈추고 릴리아나의 옆에 누웠다.

"릴리아나, 너도 누워봐. 안을 게 필요해."

"그럼 팔베개해줘."

나는 바닥에 누워 팔을 내밀었다.

팔 한쪽을 내주는 대신 내 몸으로 릴리아나를 감쌌다.

이러면 따뜻하게 누울 수 있지.

"조금만 자야겠어."

"으으… 나 편집해야 하는데."

"너무 졸려. 같이 자자."

"알겠엉."

난 릴리아나의 몸을 꽉 안은 채 눈을 감았다.

이러고 있는데도 흥분보다 피곤함이 먼저 몰려오는 걸 보면 몸이 피곤하긴 한가 보네.

나는 그대로 눈을 감고 몸에 힘을 뺐다....

"호연 님."

"헉. 스읍."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날 부르는 목소리에 눈이 번쩍 떠졌다.

눈앞에는 날 내려다보는 스칼렛이 있었다.

분명 자기 전에는 릴리아나를 안은 채 잠들었는데 릴리아나는 내가 잠들자마자 도망친 것 같다.

이 배은망덕한 서큐버스자식.

"스칼렛? 무슨 일이야?"

"보여드릴 게 있습니다. 이 쪽으로 오시죠."

스칼렛은 살짝 미소를 지은 뒤 총총 부엌 쪽으로 사라졌다.

보여줄 게 있다고?

"아으…."

나는 기지개를 피며 부엌으로 향했다.

스마트 워치를 꺼내 보니 꽤 시간이 지난 상태였다.

'한 3시간 정도 잤네.'

그래도 3시간이면 피곤함을 풀기엔 충분했다.

정신을 각성시키며 부엌으로 들어가보니 남다은과 스칼렛이 테이블에 앉아있었다.

그 중 남다은은 꽤 심각한 표정이었다.

"무슨 일이야?"

나는 테이블의 자리에 앉으며 둘을 바라봤다.

"오셨군요."

"응. 무슨 얘기하고 있는데?"

"제 일에 대한 얘기였습니다."

스칼렛은 내게 스마트워치를 내밀었다.

"이게 뭐야."

스마트 워치에는 s급 마인의 실험체를 거래한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암거래 사이트의 화면으로 보였는데, 판매자는 강효린 박사였다.

강효린 박사 밑에서 일하기로 했으니 판매 대행이라도 하는 모양이네.

"s급 마인… 어? 강효린 박사가 처분하는 s급 마인 실험체?"

그때, 내게 한 줄기 기억이 스쳤다.

이걸 내게 보여주는 이유는 분명 나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겠지.

그리고 나는 강효린 박사에게 s급 마인 하나를 넘겨준 기억이 있다.

"네. 그 실험체는 박민규입니다."

"역시."

박민규.

남다은과 남다희가 협박당하던 바이어 길드의 길드장이다.

그냥 죽이기엔 너무 나쁜놈이라 강효린 박사에게 실험체로 팔았었지.

그 뒤로는 잊고있었다.

근데 이걸 왜 보여주는 거야?

"이게 왜?"

"다은 양에게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뒤처리를 확실하게 했으니까요."

"어…."

솔직히 이해가 안 되네.

이걸 굳이 보여줘야 했나?

오히려 다은이에게 안 좋은 영향이 가지 않을까?

"내가 먼저 보여달라고 한 거야."

"아, 그래?"

그때, 내 표정을 읽은 남다은이 먼저 말해왔다.

"스칼렛 씨에게 예전부터 부탁했거든. 기회가 되면 박민규… 가 어떻게 됐는지 알려달라고."

"아…."

"나 때문도 그렇지만, 다희가 관련된 일은 확실하게 하고 싶었어."

"숨겨서 미안해."

"아니야. 날 위해 그런 거니까 이해할 수 있어."

그때는 남다은 몰래 박민규를 넘겼다.

박민규의 이야기를 길게 할만큼 남다은의 정신상태가 좋지못했기 때문이다.

'스칼렛이 말해준건가?'

나도 그 뒤로 잊고있었는데 아마 스칼렛이 말을 꺼낸 모양이다.

어쩌면 둘이 친해지고 나서 잡담을 하다가 우연히 튀어나왔을지도 모르지.

남다은은 날 보며 미소를 지었다.

"다희는 내가 지켜야 해. 호연이가 없을 때도 내가 지킬 거야."

"응. 다은이라면 할 수 있어."

"저도 도와드릴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나는 둘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내 여자들은 멘탈이 좋다.

마법사 학회때문에 또 자리를 비워야해서 살짝 걱정하고 있었는데,이렇게 든든한 걸 보면 미국에 가도 한국 걱정은 안 해도 되겠네.

*

일요일.

엘리스의 저택.

엘리스는 자신의 앞에 있는 아이린을 보며 입을 열었다.

"… 언니."

"응?"

"표정이 안 좋은데. 괜찮아? 오늘 하루종일 여기 있었잖아."

"미, 미안. 그러면 안돼?"

"안 되는 건 아닌데…."

사실 한국까지 파견을 와놓고 왜 자신의 방에서 잡담만 하고 있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지만, 엘리스는 뒷말을 삼켰다.

요즘 아이린의 상태가 안 좋아 보였기 때문이다.

아이린은 엘리스의 마음도 모르고 웃으며 스마트워치를 들었다.

"아, 엘리스. 이거 기억나? 네가 처음 인형을 받고 기뻐했을 때의 사진이야."

"… 이런 건 왜 가지고 있는 거야."

아이린은 엘리스의 표정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별거 아니지만 기뻤다.

자신이 말하는 것에 반응해주고 웃어주는 게.

예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던 일이었다.

'진작 이렇게 할 걸 그랬어.'

엘리스에게 조금 더 먼저 다가갔다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까.

차라리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말했다면….

"…."

"언니?"

"… 으, 으응. 미안. 다른 생각을 하느라."

"아무리 봐도 오늘 상태가 안 좋아. 방에 가서 좀 쉬어."

엘리스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하는 말부터 표정까지 아이린의 상태가 이상했으니까.

마치 정신을 어딘가 빼놓은 사람 같았다.

"아니야. 나는 정말 괜찮아."

"하아… 가서 쉬라니까. 계속 그러면 화낼 거야."

"알겠어…."

아이린은 아쉬운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엘리스는 그제서야 안심하고 미소를 지었다.

"오늘은 쉬고 있어. 내가 훈련 끝나고 찾아갈게."

"응. 잘 있어. 엘리스."

터덜터덜­

엘리스는 방 밖으로 나가는 언니의 뒷모습을 지켜봤다.

'요즘 왜 저러는 거지.'

최근 며칠간 아이린의 상태가 이상했다.

심각한 고민이라도 있는 것 같았지만, 물어도 대답해주질 않으니 답답할 수밖에.

"뭔가 있는데…."

아마 자신에게 말하기 힘든 고민일지도 모른다.

때가 되면 말해주겠지.

엘리스는 테이블에 누워 스마트워치를 확인했다.

­ 미친 바람둥이 : 엘리스, 오늘은 뭐 하고 있어?

엘리스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띄었다.

인정하고 싶지않았지만, 확실히 매력있는 남자였다.

엘리스는 이호연에게 온 메시지에 답장하며아이린에 대한 일을 뇌에서 지웠다.

한편 방 밖에서는 아이린이 한숨을 쉬고 있었다.

'왜 엘리스는 내 마음을 몰라주는 걸까.'

자신은 엘리스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다.

하지만 엘리스는 그걸 몰라줬다.

어릴 적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몇 시간이나 얘기할 수 있는데, 엘리스는 그 때마다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게 다 이호연 때문이야."

최근 자신의 마음이 싱숭생숭한 것도, 그게 얼굴에 드러나 엘리스의 방에서 쫓겨난 것도 다 그 때문이었다.

"… 어떻게 해야 하지."

이호연에게 '추가적인 약속'을 제안받은 지 3일.

엘리스를 위해서라면 그에게 연락을 해야한다.

"…."

하지만 그 날밤의 기억은 아이린에게 똑똑히 남아있었다.

다시 그 쾌락을 맛봤다가는 자신도 어떻게 될 지 모른다.

아이린은 그게 너무 두려웠다.

스윽­

아이린은 그 때를 떠올리는 것 만으로도 간질거리는 아랫배를 느꼈다.

자신도 모르는 새에 속옷까지 축축해졌고, 머릿속을 채우던 답답함의 자리에는 욕구가 가득찼다.

"하아…."

3일 내내 고민한 결과.

더는 부정할 수 없었다.

머릿속을 채우는 답답함과 안 좋은 기분.

모든 원인은 그였다.

그 쾌락을 겪은 순간부터 자신은 이미 늦어버렸다.

'… 엘리스라도 막아야 해.'

그 남자의 손길이 엘리스에게 미치기 전에,자신이 모두 감당해야 한다.

그게 모두가 행복해지는 길이었다.

아이린은 침을 꿀꺽 삼키며 스마트워치를 들었다.

*

시간은 흘러 일요일.

나는 오랜만에 내 방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미국에 가면… 아마 일주일 안에 오겠지. 그럼 그 다음은 어떻게 해야 할까."

지난 일주일간은 바쁜 일상의 연속이었다.

히로인들을 돌아가면서 만나고, 시간이 나면 섹스까지 했다.

마치 몸이 두 개라도 되는 것 처럼 열심히 움직였다.

하지만, 문제는 아무리 바쁘게 움직여도 모두를 만족시킬 순 없다는 점이다.

"루시루미랑은 세 번 봤는데… 수린 누나는 일정이 안맞아서 한 번밖에 못 봤어. 그리고 아영 씨는 두 번…. 엘리스도 두 번."

나는 히로인들과 일정을 정리하며 고민을 이어갔다.

사실 당연한 일이겠지.

혼자 열 명을 감당하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니까.

내 입장에서는 매일같이 여자를 만나는 거지만, 그녀들의 입장에서는 일주일에 한 두 번 밖에 못 보는 것이다.

게다가 같이 밤을 보낼 수 없는 게 제일 큰 문제.

'이건 조치가 필요해.'

내가 분신술이라도 쓰는 게 아니면 해결할 방법은 하나뿐이다.

'가짜던전계획'

한 방 역전을 노려야한다.

모두의 호감도를 완전히 높여서 내가 갑이 되는 거다.

'미국에 가서도 마법진 연구를 해야겠네.'

내가 할 수 있는 건 레베카 씨를 열심히 도우면서 기도하는 것 뿐.

히로인들의 불만이 폭발하기 전에 계획을 실행해야 한다.

아니면 진짜 분신술이라도 만들까.

' … 아니야. 너무 이상해."

분신술을 만드는 건 둘째치고 그녀들에게 들키기라도 하면 난리가 날 것이다.

차라리 원래 계획에 집중하는 게 낫다.

나는 대충 계획을 정리한 뒤에 기지개를 켰다.

당장 내일이면 떠나야하니, 이제 여행의 준비를 해야겠지.

교수님과 첫 여행이니 준비할 게 많다.

띠링­ 띠링­

그때, 내 스마트워치에 아이린이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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