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6화 〉 396화. 아이린, 엘리스 (2)
* * *
'역시 강효린 지부장은 좀 이상하다니까.'
집으로 돌아가던 아이린은 고개를 휘휘 저었다.
이상하게 한국 지부장만 만나면 기운이 쭉 빠지는 느낌이다.
특유의 말투나 대화방식이 상대의 힘을 빠지게 한다.
'그래도 일은 잘하지.'
하지만 일을 너무 똑 부러지게 하니 지적할 점은 없었다.
직장마다 한 명 씩 있는 일을 잘해서 깔 수 없는 타입이다.
아이린은 엘리스의 집으로 돌아가며 생각을 이어갔다.
파견으로 한국에 왔지만, 딱히 할 일은 없었다.
애초에 그런 파견이었다.
판데믹의 위세가 커졌다는 정기 보고에 본부에서 반응하지 않을 순 없으니, 한 명 정도 파견을 보내는 것.
사실 1팀장인 자신이 오는 건 지금 생각해도 이상했다.
1팀장인 자신이 하기에는 너무 쉬운 일이었다.
그렇기에 아이린은 다른 일을 할 여유가 있었다.
'이호연....'
아이린은 자연스럽게 한국에 있는 그의 얼굴을 떠올렸다.
이제 아카데미도 방학을 했으니 엘리스와 이호연의 접점은 없어야 한다.
그런데 왜 불안한 마음은 가시지가 않는 걸까.
"괜찮겠지…."
아이린은 집으로 돌아왔다.
고급 주택가에 있는 엘리스의 저택.
한국에 있는 동안은 엘리스의 집에서 지내기로 했으니, 아이린은 기분이 좋았다.
엘리스와 같은 지붕 아래에서 지낼 수 있는 건 그녀로선 행복한 일이다.
똑똑
"엘리스, 들어가도 될까?"
아이린은 엘리스의 방 앞에 섰다.
아침에 인사는 했지만, 이왕이면 자주 보기 위해 할 일이 없을 땐 엘리스의 방에 가서 대화를 나눴다.
다행히 엘리스도 대화를 싫어하진 않는 것 같았다.
"응. 들어와."
엘리스의 말을 듣고 방으로 들어가자, 미소를 지으며 스마트 워치를 보고 있는 엘리스가 보였다.
침대 옆에 의자에 앉은 아이린은 엘리스와 대화를 시작했다.
"오늘은 한국 지부장을 만나고 왔어. 역시 할 일이 별로 없더라."
"... 그러니까 왜 언니가 파견을 나와. 길드는 정말 괜찮은 거야?"
"으응. 걱정하지 마. 아버지가 허락한 일이니까."
"그렇다면야..."
아이린은 엘리스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는 게 엘리스가 가진 마법이다.
조금 올라가는 입꼬리만으로도 아이린의 마음을 자극했다.
다만 아쉬운 건 엘리스를 봤는데도 약간 남은 답답함이 가시지않는다는 것.
이 답답한 감정이 아이린의 고민거리였다.
"언니, 표정이 왜 그래?"
"으응. 아무것도 아니야. 맞아. 오늘 같이 저녁 식사라도 하러 갈래? 언니한테 맛있는 한국 식당 알려줘."
"오늘...? 오늘은 시간이 애매해. 내일은 어때?"
"내일도 좋긴한데. 오늘 무슨 약속이라도 있어?"
"곧 이호연이랑 만나기로 해서."
"... 이호연이랑?"
아이린은 엘리스의 입에서 나온 이름에 침을 삼켰다.
왜 그가 엘리스와 만나는 거지?
그는 분명 자신과 약속을 했다.
그런데 왜….
"그러고 보니 이호연이 언니 팬이라고 했었던 거 같은데."
"... 그랬어."
지금 생각해보면 그 말도 거짓말이 아닐까.
그냥 인사치레일 거다.
엘리스는 아이린의 마음도 모르고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이따 말 걸어보든가. 아마 우리 집으로 올 거야."
"... 우리 집에 왜 와? 무슨 일로?"
"딱히 이유가 필요해? 그냥 온다고 하던데."
아이린은 가슴을 가득 채우는 불안한 감정에 입을 다물었다.
엘리스가 너무 덤덤했다.
그녀의 성격상 이렇게 넘어갈 리가 없는데.
혹시 집에 놀러 오는 행위가 자연스러운 걸까?
그렇다면 그는 약속을 안 지키고 있는 건가?
"언니도 같이 와인이라도 한잔할래? 작전도 같이 했고 나름 아는 사이잖아."
"나는…. 괜찮아. 조금 쉬고 있을게."
"하긴. 언니는 오늘 도착했으니까. 좀 쉬고 있어."
"응응. 이따가 다시 올게."
아이린은 엘리스에게 인사를 하고 방에서 나왔다.
그리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면서 고민을 이어갔다.
'약속. 약속은 지키고 있는 걸까.'
자신의 몸을 즐기는 대가로 엘리스와 멀어지기로 한 그 약속.
혹시 지켜지지 않는다면....
'다른 조치를 취할 수 밖에 없어.'
역시 직접 얼굴을 마주 해야 한다.
아이린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잠재우며 자신의 방으로 달려갔다.
*
"들어가버렸네."
나는 집으로 들어가는 아이린의 뒷모습을 보며 서 있었다.
뒤를 쫒다보니 엘리스의 집까지 도착했기 때문이다.
계속 말을 걸까말까 고민하다가, 결국 그냥 보내버렸다.
아직 성급하게 행동할 필요가 없으니까.
나는 스마트워치를 꺼내 엘리스에게 연락을 보냈다.
나 : 오늘 한 번 놀러 가도 될까?
엘리스 : 괜찮아. 언제 올건데?
나 : 그럼 조금 이따 바로 갈게.
엘리스 : 바로?
나 : 응. 어차피 옆집이잖아.
엘리스는 그 뒤로 답장이 없었다.
아마 방금 집으로 들어간 아이린과 대화를 하고 있겠지.
만약 아이린이 나를 만나기 위해 온 거라면, 엘리스와 접촉한 후에 알아서 다가올 거다.
그걸 기다리면 된다.
나는 엘리스의 집 앞에서 몇 분 정도 기다리다가, 벨을 눌렀다.
딩동 딩동
덜컥
벨을 누르자 잠겨있던 대문이 열리며 안으로 들어갈 공간이 생겼다.
난 커다란 대문을 밀어내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현관 앞에서 잠시 기다리고 있다보니 문이 열리며 엘리스가 나왔다.
엘리스는 집에서 입는 편한 복장을 하고 있었는데, 펑퍼짐한 옷을 입어도 라인이 좋다보니 섹시함이 부각되는 느낌이었다.
"진짜 바로 왔네."
"응. 옆집이니까 보고 싶을 때 올 수 있잖아. 안돼?"
"... 안 되는 건 아니지. 들어와."
엘리스는 내 말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
이제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튀어나온다.
인간은 진화하는 동물이라는 말이 맞구나.
우리는 같이 방으로 올라갔다.
익숙하게 의자 하나를 잡고 앉자, 엘리스도 내 앞에 앉았다.
"확실히 가까우면 자주 볼 수 있네."
"그러게."
우리는 테이블에 앉아 자연스럽게 대화를 시작했다.
한국에 돌아온 후에 엘리스를 잘 보지 못했으니 할 말은 많았다.
"엘리스 너는 방학 때 아이리스 길드로 돌아간다고 하지 않았어?"
"응. 근데 언니가 오면서 잠시 미뤄지고 있어. 아마 다음 주는 되어야 프랑스로 갈 거 같아."
"아하. 나도 학회 준비 때문에 다음 주면 미국으로 가는데."
"타이밍이 괜찮네."
"그러게. 내가 미국에 가면 어차피 못보니까."
우리는 잠시 근황에 관해 대화를 나눴다.
예쁜 여자랑 단둘이 대화하는 건 역시 즐거웠다.
그러고보니 슬쩍 아이린에 대한 것도 물어볼까.
"그러고 보니 아이린 씨 있잖아."
"언니?"
"응. 혹시 한국에 온 거야? 집에서 아이린 씨의 마력이 느껴지는 거 같은데."
"맞아. 이번에 아이리스 길드 한국 지부에 파견 나왔어. 근데 언니의 마력을 느끼다니 대단하네. 나는 같이 있는데도 못 느끼겠던데."
"나는 마나 감응력이 높으니까."
역시 일이 있어서 온 게 맞았다.
거기서 바로 아는 척을 안 하길 잘했네.
"근데 언니에 대한 건 왜 물어봐?"
"응? 별 이유 없어. 그냥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야."
"흐음...."
엘리스는 날 빤히 쳐다봤다.
약간 경계하는 눈이었다.
왜 그런 눈으로 날 보는 건데.
뭐가 문제야.
"혹시 그 저주인지 뭔지 때문에 우리 언니도 건드릴 생각은 아니겠지?"
"...."
나는 눈을 끔벅이며 엘리스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거였구나.
엘리스는 내가 저주에 걸렸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뭐, 어떻게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저주'라는 단어는 틀렸지만, 비슷한 느낌은 맞다.
"그런 거 아니야. 애초에 그런 저주도 아니고."
"그럼 어떤 건데?"
"으음...."
나는 잠시 고민했다.
사실 히로인들에게 내 상황에 관해 얘기하지 않은 건 얘기해봤자 좋은 게 없기 때문이다.
게임이니 뭐니 하는 건 아예 미친 짓이고, 다르게 각색해서 얘기했다가 괜히 이상해지는 것도 두려웠다.
하지만 이미 그런 추리를 끝낸 엘리스라면 괜찮지 않을까.
적당히 각색해도 들키지않을거다.
"정확히 말하긴 어렵지만... 걱정하지 마. 절대 내가 먼저 다가가진 않을 거야."
"약속할 수 있어?"
"당연하지. 약속."
내가 새끼손가락을 내밀자 엘리스도 내게 손가락을 걸었고, 엘리스는 그제야 만족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틀린 말은 아니지.
아이린이 직접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이상 내가 공략하려고 노력하진 않을 거다.
그녀때문에 엘리스와 관계를 망칠 순 없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엘리스를 빤히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뒤에 섰다.
"뭐야? 왜 그래."
"아니, 요즘 몸은 좀 괜찮나 해서. 관리를 못해줬잖아."
조물조물.
나는 자연스럽게 엘리스의 어깨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프랑스에서 집중적으로 했던 섹스로 엘리스의 몸은 치료가 끝난 상태다.
선천적마력장애가 있던 때와 다르게, 이제는 완전히 일반인과 같은 마력 파장을 내뿜고 있었다.
물론 그녀의 강함보다 느껴지는 기세가 아직 약했지만, 적응 중이겠지.
"컨디션은 좋아. 요즘은 매일같이 적응훈련 중이야."
"어쩐지. 그래서 바빴구나."
"응. 하루하루 강해지는 게 느껴졌거든."
"나한테 말했으면 도와줬을텐데."
"단순히 내 마력에 적응하는 거라 혼자해도 괜찮았어."
이제서야 엘리스가 바빴던 이유를 알 거 같았다.
그녀는 혼자서도 노력하고 있었다.
"그래서 연락이 좀 뜸했구나."
"미안, 그래도 어쩔 수 없었…. 흐, 으읏."
나는 엘리스의 몸에 마력을 집어넣었고, 엘리스는 곧바로 반응하며 목을 뒤로 젖혔다.
입술을 살짝 깨물고 눈을 게슴츠레 뜬 엘리스는 나를 보며 말했다.
"하고 싶은 거야?"
"오랜만에... 어때?"
"오늘은 안 돼. 집에 언니가 있는 거 알잖아."
"아...."
안될 거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막상 들으니까 아쉽네.
내가 아쉬운 표정을 짓자, 엘리스도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어? 이거 한 번 비벼볼까.
"그럼 입으로만 해주는 건?"
"... 그렇게 하고 싶어?"
"좋으니까 그렇지. 오랜만에 봤잖아."
"...."
엘리스는 내 말에 고민하는 듯 입맛을 다셨다.
이렇게 부탁해도 안 되는 걸 보면 아이린이 있는 집안에서 하는 게 꽤 부담인 것 같다.
나라도 내 가족이 있는 집이라면 하기 불안할 것 같으니 이해는 한다.
"손으로 해줄게. 그 이상은 못 하겠어."
"좋아."
물론 이해는 하지만 성욕이 조금 더 앞섰다.
부끄러워하는 엘리스를 보는 건 꽤 즐거웠다.
손으로 해주는 건 조금 아쉽지만, 반응이 재밌으니까 참아야지.
나는 엘리스의 옆에 앉았다.
엘리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 앞에 앉으려고 했는데, 나는 엘리스를 다시 앉히며 말했다.
"그냥 앉아서 손만 이렇게 빼봐."
"이렇게? 이건 좀 불편한데."
"내가 잡아줄게."
왼팔을 팔걸이에 올린 엘리스는 몸을 내 쪽으로 숙여 오른손으로 내 물건을 잡았다.
나는 엘리스가 불편하지 않도록 엘리스의 상체와 머리를 손으로 잡아줬는데, 자연스럽게 가슴에도 손을 올릴 수 있었다.
"이러면 편하지?"
"편하긴한데… 으읏. 응…."
얼굴과 상체는 내게 안긴 상태로 손만 야한 행위를 하는 자세.
부끄러워하는 엘리스의 얼굴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날 위해 노력해주는 모습이 꽤 귀여웠다.
가끔은 이런 것도 나쁘진 않네.
정신적인 만족감이 좋거든.
엘리스는 서서히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고, 나는 엘리스를 안은 채로 의자에 등을 맡겼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