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3화 〉 393화. 마법사 학회 준비 (3)
* * *
"아영이가 있으니까 현실처럼 고통을 올릴 거야."
"… 굳이 그렇게 해야 해요?"
삑 삑
미소를 지으며 훈련장을 세팅하는 임솔 교수님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현실적으로 하는 대련을 왜 그렇게 좋아하실까.
"이런 기회는 잘 없잖아."
"그러니까 제가 왜 그런 기회를 가져야 하는데요."
안 아프게 할 수 있는데 굳이 고통을 느껴야 하는 이유는 없지않나?
내 질문에 대답하는 교수님은 신난 표정이었다.
"내가 하고 싶거든. 진심으로 긴장감을 느끼며 싸워본 적이 너무 오래됐어."
"아, 예…."
그래도 나를 인정해주니까 고맙다고 해야 하나.
아픈 건 싫지만, 죽도록 아픈 마법도 미리 맞아보는 게 좋긴 하겠지.
훈련장에서 흘린 땀이 전장에서 흘리는 피를 대신한다는 말도 있으니까.
"솔아. 그, 생도 상대로 너무 열심히 하면 안 돼. 알지?"
"아영이 너도 우리 제자가 싸우는 걸 보면 그런 말이 안 나올걸?"
"아니. 너는 교수잖아. 호연이는 생도야 생도."
백아영은 날 걱정하는 듯 임솔 교수님에게 당부하고 있었다.
"괜찮아요. 아영 씨. 교수님도 진심으로 나오진 않을 테니까. 저번에도 페널티가 있는채로 대련했거든요."
"… 네가 그렇다면 알겠어."
나는 백아영의 어깨를 두드리며 안심시켰다.
물론 페널티를 엄청나게 걸고 방심한 교수님 상대로 무참하게 발린 건 비밀이다.
"준비 끝났어. 가자."
교수님은 기쁜 표정이었다.
초심을 잃지않고 마법에 참 진심인 모습은 참 좋네.
"룰은 저번과 똑같이 가시는 거죠? 이미 사용한 마법은 다시 사용하지 않기. 그리고마법은 다중 캐스팅 없이 하나만 사용."
"응. 저번 대련 때 사용한 마법도 안 쓸 거니까 걱정하지 마."
"… 얼마나 많은 마법을 아는 거예요."
"우리 제자 경험을 늘려줘야지."
교수님은 먼저 훈련장으로 올라갔다.
나는 그 뒤를 따라가다가 슬쩍 고개를 돌려 백아영을 바라봤다.
백아영은 마치 링에 올라가는 남자친구를 보며 기도하는 것처럼 양 손을 꽉 맞잡고 있었다.
"괜찮아요. 진짜 하나도 안 위험해요."
"… 응. 화이팅."
백아영은 주먹을 쥐며 날 응원해줬고, 나는 미소를 짓고 빠르게 훈련장으로 올라갔다.
내 맞은편에 서 있는 교수님은 내가 올라오는 걸 확인하자마자 훈련장을 가동했다.
그와 동시에 내 몸에 얇은 막이 둘러졌다.
내 목숨을 지켜주는 마나 막이었다.
이제 죽을 위험이 생기면 알아서 대련장이 멈춰주겠지.
"고통을 거의 재현했어. 맞으면 꽤 아플 테니까 조심해."
"… 교수님도 조심하세요. 저도 안봐드립니다."
"응응. 우리 제자 화이팅. 그래도 현실에서 맞는 것보다는 여기서 맞는 게 나을거야."
짝
교수님이 손뼉을 치자, 마법진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벌써 시작이구나.
'주화포.'
교수님의 손길에서 뜨거운 불길이 느껴졌다.
나는 익숙하게 룬의 결계를 치며 전략을 고민했다.
사실 저번 대련과 비교했을 때 달라진 건 하나뿐이다.
'아크.'
마법의 핵심 술식을 이용한 마력 구체.
아마 교수님도 상상하지 못한 마법일 테니 지금 사용한다면 분명 뭔가 해낼 수 있다.
가능성은 매우 작지만 이길 수도 있겠지.
'지금 써야 하나?'
단순히 생각하면 당연히 쓰는 게 맞다.
교수님과 대련하면서 숙련도도 높아질 거고, 마법사의 마법에 대처하는 방법도 늘어날 테니까.
하지만 임솔 교수님을 이기는 게 목적이라면, 계속 숨기며 몰래 숙련도를 높이는 게 옳은 선택일 지도 모른다.
결국 중요할 때 한 방이 중요한 거거든.
콰아앙
"집중 안 해?"
"합니다. 해요."
일단은 싸워볼까.
나는 날아오는 나무 덩굴을 보며 잠시 고민을 미뤘다.
*
'저번이랑 똑같네.'
임솔은 눈앞의 제자와 대련하며 생각했다.
저번 대련과 달라진 게 하나도 없었다.
물론 그때는 방심해서 잠깐 위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때의 약점도 내주지 않고 있었다.
정신계 마법을 쓰지 않았고, 날아오는 반격도 막지않고 모두 격추해버렸다.
임솔은 살짝 지루함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이래선 프랑스에 가기 전하고 똑같은데? 우리 제자 실망이야."
"한 달도 안 됐는데 드라마틱한 변화를 바라는 게 이상한 거 아닐까… 요!"
"나는 한 달이면 마법계의 난제 하나를 풀어냈어."
"그건 교수님이고요!"
콰드드득
이호연은 날아오는 바위들을 하나씩 쳐내면서 간신히 대답을 이어갔다.
자신의 비밀을 공개할 때마다 점점 교수님을 이기기 힘들어진다.
지금도 임솔은 정신계 마법을 아예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아크는 역시 숨겨야 하나.'
정신계 마법과 눈앞에서 구성이 바뀌는 마법.
이 두 가지를 들킨 것만으로도 빈틈을 노릴 방법이 사라졌다.
여기서 아크까지 알려주면 호구도 이런 호구가 없잖아.
"쯧…!"
이호연은 날아오는 얼음 덩어리를 피하며 몸을 굴렸다.
그의 뺨을 타고 흐르는 땀방울이 바닥으로 뚝뚝 떨어져 내렸다.
눈앞의 임솔은 쉬지 않고 마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반격은 무슨, 방어를 하는 것만으로도 힘든 상태다.
아크를 사용하지 않으면 임솔의 하위호환에 불과한 자신의 문제점이었다.
촤악
세차게 휘몰아치는 설한풍(雪?風)이 이호연의 뺨을 할퀴고 지나간다.
살짝 손을 대보니 붉은 혈흔이 보였다.
게이지가 깎인 거로도 모자라 이런 현실적인 요소가 있구나.
더럽게 아프네.
슬쩍 시선을 내려 훈련장 아래를 바라보자 조마조마한 표정의 백아영이 보였다.
이렇게 처참한 상황에도 손을 꽉 쥐고 자신을 응원하는 걸 보니 괜히 마음이 쓰였다.
정면을 바라보자 지루한 표정의 임솔이 보였다.
지루해 보이는 와중에도 내 발전을 위해 새로운 마법을 사용해주는 게 감사하긴 하지만, 지루한 상대가 되는 것이 자존심 상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 놈의 자존심이 문제야.'
남자가 빨리 죽는 이유는 다 자존심 때문이라는데 이제야 공감할 것 같았다.
여자들이 저렇게 날 실망하는 눈으로 보는 게 너무 싫었다.
지는 게 정상인 상황에서도 존재감을 보여주는 한 방을 먹이고 싶었다.
남자로 태어났으면 그렇게 살아야지.
"아크 컨저레이션. 3개."
또르르
결국이호연은 아크를 소환했다.
생각해보면 나쁜 것도 아니다.
숙련도를 높여서 이기는 선택지도 나쁜 건 아니거든.
"블러드 비트. 출력 최대로."
두근 두근
내부의 마력 회로를 빠르게 도는 마력.
[전투 감각]과 함께라면 순간적으로 임솔과 맞먹는 마나를 가지게 된다.
물론 그만큼 싸울 수 있는 시간이 대폭 줄겠지만… 괜찮다.
목표는 어떻게든 한 방 먹이기다.
"그건 뭐야? 처음 보는 마법인데."
임솔이 아크 컨저레이션을 분석하기 전.
그리고 아직 방심하고 있는 지금승부를 봐야 한다.
이호연은 빠르게 마력을 회전시켰다.
'템프스트 윈드.'
'블레이즈 플레어.'
알고 있는 고위 마법들의 핵심술식을 아크에 집어넣었다.
이런 고위 마법은 파괴력이 강하지만 시전하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
초 단위로 승부가 갈리는 마법사의 싸움에서 이런 마법을 사용하는 건 패배하겠다는 소리나 마찬가지.
하지만 이호연은 멈추지 않았다.
임솔의 틈을 만들려면 이 정도로도 부족했다.
'아쿠아 블래스터.'
고위 마법 3개.
이호연의 주변을 회전하는 아크는 핵심 술식을 빨아들이며 자동으로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크는 마법의 핵심 술식을 만들어서 주면 나머지 마법진을 그려주는 구체다.
그 사이에 이호연은 강한 룬의 결계를 펼쳐 몸을 숨겼다.
임솔은 그제서야 심상치않은 마력을 느꼈다.
아크를 분석하기 위해 잠깐 틈을 보인 그녀는 아직 방심을 풀지않았고,심상치 않은 마력에 반응하기까지 걸린 찰나의 시간.
이미 이호연의 마법이 완성되었다.
콰과가가가각 쿵!
"언제 고위 마법을 세 개나?"
임솔은 순식간에 완성된 고위 마법에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하나도 아니고 세 개.
훈련장을 가득 채운 강풍과 고온의 불길.
그리고 그 틈을 채우는 위험한 물줄기.
순식간에 구성된 이호연의 마법은 임솔의 눈앞까지 다가왔다.
임솔은 강한 쉴드를 삼중으로 펼치면서 고위 마법진을 그렸다.
그녀는 대련의 페널티였던 다중 캐스팅을 사용했지만, 몸이 반응한 일이기에 아직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칠광압주염(七光???)'
임솔의 머리 위로 떠 오른 7개의 붉은 구슬.
이미 완성된 고위 마법을 제압하기 위해선 이쪽도 압도적인 마력이 필요했다.
7개의 붉은 구슬은 하늘을 가르기 시작했다.
임솔의 압도적인 마력은 이호연의 마법을 완전히 억눌렀다.
고위 마법 중에서도 훨씬 위계가 높은 마법이었고, 임솔의 마력이 이호연보다 압도적이었으니까.
임솔은 마법을 억누르면서 동시에 이호연의 본체를 노렸다.
"후우. 후우…."
훈련장 바닥이 녹아버릴 정도로 이호연이 서있던 곳 주변을 공격했지만, 이호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디지?'
임솔은 숨을 고르면서도 방심하지 않았다.
연기와 수증기로 가득 찬 대련장은 눈으로 상대를 파악할 수가 없었다.
임솔은 마력을 흩뿌리며 이호연의 위치를 탐색했다.
어딘가에 숨어있을 게 분명하니 날아오는 마법에 주의해야 한다.
그건 뒤일지도 모르고, 옆일지도 모른다.
'반응할 수 있어.'
이제 방심하지 않는다.
방금 같은 심상치 않은 마력이 나타나면 곧바로 제거하면….
"여기에요."
그 순간 뒤에서 속삭이듯이 들리는 이호연의 목소리.
파앗
임솔은 눈을 크게 뜨며 급하게 등에 결계를 펼쳤지만, 때는 늦었다.
그녀는 등에서 느껴지는 충격에 앞으로 튕겨 나갔다.
등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 임솔은 오랜만에 느껴보는 강한 고통에 눈을 질끈 감았다.
"해치웠나?"
임솔에게 한 방 먹인 이호연은 룬의 결계를 해제하며 마력을 갈무리했다.
스파이럴을 등에 제대로 때려 박았으니, 꽤 아플 텐데. 교수님은 괜찮으려나.
임솔을 걱정하던 이호연은 허공을 바라봤다.
게이지는 80대 65
놀랍게도 앞서고 있는 80이 자신이었다.
방금 한 방의 공격으로 35나 게이지를 깎은 것이다.
고위 마법을 사용해 만들어낸 잠깐의 시간 동안 뒤를 잡은 게 효과가 있었다.
블러드 비트를 최대치로 돌리고 아크의 도움을 받은 룬의 결계는 임솔의 마력 탐지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으니까.
지금까지 임솔의 앞에서는 근접 전투로 싸우는 걸 보여준 적이 없었다.
그 빈틈을 노리는 공격이었다.
'더 시간을 주면 안 돼.'
이대로 몰아붙여야 한다.
이호연은 빠르게 임솔의 뒤를 따라붙었다.
하지만.
지이잉
순간 공간을 덮는 밝은 빛이 이호연의 눈을 감게 했다.
1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
이호연은 룬의 결계를 펼친 뒤 거리를 벌리고 눈을 떴다.
눈앞에 보이는 건 찬란하게 빛나며 허공에 떠오르는 수십 개의 마법진들.
그리고 그 앞에 서 있는 임솔은 푸른색 마력에 뒤덮여 있었다.
그녀의 기세는 훈련장을 떨리게 만들었다.
마법 박람회 테러를 막았을 때 봤던 임솔의 진심 모드였다.
임솔은 그대로 마력을 펼쳤고, 거대한 마법진들이 천천히 돌아가며 빛을 내기 시작했다.
쾅 쾅 쾅 쾅
허공에서 떨어지는 4개의 빛기둥.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를 보는 것 같았다.
주위의 공간은 완전히 임솔의 영역으로 바뀌었다.
숨쉬기 힘들 만큼 강력한 압박감이 이호연의 장기까지 파고들었다.
어떻게든 룬의 결계를 펼쳐봤지만, 룬의 결계는 빛기둥에 닿자마자 유리처럼 부서졌다.
웅 웅
훈련장의 마력이 파르르 떨리고, 내 몸을 덮고 있는 마력 막도 진동하기 시작했다.
'이거 좆된 거 같은데.'
느껴지는 마력의 힘이 예사롭지않았다.
저런 마법을 훈련장이 버틸 수는 있는 건가?
'이걸 버티면 내가 아니라 이 훈련장을 만든 사람이 마왕을 잡으러 가야겠지.'
이호연은 임솔의 눈을 보며 생각했다.
임솔의 눈은 딱 마법 박람회 때와 똑같았다.
말리려고 해도 말려지지가 않는 저 차가운 눈빛.
저 사람 설마 대련에 흥분해서 예비 남편도 못 알아보는 건 아니겠지.
… 아니겠지?
지이잉
"임솔! 그만해!"
그때. 훈련장에 올라온 백아영이 크게 소리쳤고,그와 동시에 임솔은 이성을 되찾았다.
"… 어?"
당황한 임솔은 주변을 살폈다.
완전히 무너져버린 훈련장의 시설.
그리고… 자신이 소환한 빛기둥 사이에 갇혀있는 제자까지.
"제자. 아니, 호연아?!"
"교수님. 저는 괜찮으니까 일단 마법부터 해제해주세요…."
"아, 알았어. 지금 바로."
임솔은 재빨리 마력을 해제하며 이호연에게 달려갔고, 이호연은 그제서야 일어날 수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