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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야겜에 빙의했다-389화 (389/648)

〈 389화 〉 389화. 방학식

* * *

월요일 아침.

드디어 새로운 주의 시작이다.

'방학에는 뭐 하지?'

미국에 있는 협회에 가는 일정이 있긴 한데, 그거 빼고는 딱히 할 게 없다.

일정까지 일주일 정도 남았으니 그때까지 할 일이나 좀 생각해야겠네.

'아니면 오랜만에 좀 쉴까.'

쉬는 날 하루 없이 움직이다 보니 피곤하긴 했다.

가끔은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자고 싶기도 하다.

"오늘은 언제쯤 돌아오십니까."

"글쎄. 별일이 없다면 바로 돌아올 것 같긴 해."

"그럼 늦게 돌아오시겠군요."

"…."

나는 앞에 앉아있던 스칼렛의 말에 조용히 커피를 삼켰다.

오늘 느낌이 안 좋아서 그럴지도 모르겠네.

"스칼렛 너는 뭐할 거야?

"혹시 모르니 다희양의 상태를 보다가 새 직장을 구하러 갈 것 같습니다."

"뭐야, 벌써 새 직장이라고?"

나는 스칼렛을 보며 짝짝 손뼉을 쳤다.

벌써 백수를 탈출하려 하다니 기특하구나.

"네. 아마 아이리스 길드처럼 출퇴근 느낌이 아니라 프리랜서로 일할 것 같지만, 그 정도만 돼도 나쁘지 않으니까요."

"말하는 걸 보니 좋은 직장인가 보네? 어디야?"

역시 에이스 스칼렛 답다.

벌써 그런 좋은 직장을 구하다니.

"호연님도 아는 사람입니다. 아카데미에서 교수로 일하는 강효린 박사요. 아마 담당 과목이 헌터학일겁니다."

"강효린 박사? 아, 그 아이리스 길드 한국지부장?"

"네. 다희 양을 구해주신 분이요."

"당연히 기억하고 있지. 엄청 착하신 분이잖아."

매우 감사한 분이다.

대가를 지불하긴 했지만, 그보다 더 큰 서비스를 해줬거든.

나중에도 필요한 일이 있으면 연락하라고 했지만, 딱히 없어서 연락을 안 했었는데, 스칼렛하고 이렇게 엮이는구나.

"나중에 한 번 찾아뵙든지 해야겠네. 근데 아이리스 길드에 사표를 냈는데 강효린 박사님 밑에서 일해도 괜찮은 거야?"

"괜찮습니다. 한국 지부의 소속이 아니라 프리랜서니까요. 게다가 강효린 박사랑은 원래부터 아는 사이거든요."

"아하… 그럼 괜찮겠네."

나는 아침으로 차려진 토스트를 우걱우걱 입에 집어넣었다.

슬슬 등교해야지.

마지막 날인만큼 기합을 넣어야 한다.

"일도 잘하고… 다은이랑 다희도 잘 부탁해."

"예. 당분간은 제가 지켜보겠습니다."

스칼렛은 남다은과 남다희에게 붙어있기로 했다.

판데믹을 소탕하긴 했어도 아직 불안 요소는 남아있으니까.

나는 인사를 하고 집을 빠져나왔다.

아카데미에 가는 길에 보이는 생도들은 다들 들뜬 분위기였다.

이제 방학이 시작되기 때문이겠지.

딱히 행사가 있는 것도 아닌데 엄청 난리네.

­ 방학에는 뭐 할 거야?

­ 역시 바다를 보러 가는 게 좋지 않을까?

­ 바다…? 굳이?

'다들 놀 생각만 하는구나. 난 힘들어 뒤지겠는데.'

개 같은 놈들.

나도 바다나 놀러 가고 싶다.

실없는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금방 아카데미에 도착했다.

A클래스 내부도 여전히 시끌시끌해서, 나는 재빨리 루시와 루미 사이에 앉았다.

"얘들아, 좋은 아침."

"응. 안녕!"

"좋은 아침이에요. 호연 씨."

나는 익숙하게 둘을 바라보며 대화를 시작했고, 루미는 주먹을 꽉 쥐며 말을 이었다.

"저희는 다이어트에 돌입할 거에요."

"다이어트?"

"응. 요즘 살이 쪘거든."

"… 너희가?"

더 빼면 죽을 거 같은데.

역시 여자는 남자와 다른 시야가 있는 모양이다.

루시루미와 하는 대화는 영양가 없는 잡담이었지만, 그게 마음이 편했다.

"얘들아 안녕."

"다은아! 오늘은 좀 늦었네?"

"으응. 잠깐 할 일이 있어서."

남다은도 금방 도착했다.

아마 남다희에게 조심하라고 주의라도 줬겠지.

드르륵­

"자, 모두 조용."

남다은이 들어오자마자 김진혁 교수도 들어왔다.

생도들은 조용히 김진혁 교수의 말을 듣기 시작했는데, 어깨를 들썩거리는 것만 봐도 설레는 게 감춰지지가 않는다.

"알다시피 최근 늘어난 테러로 인해 행사는 모두 취소다. 서울 쪽에서 마인들의 세력 경쟁이 있다고 하니까 절대 위험한 행동은 하지 말도록."

""네!""

"제일 중요한 건 자기 자신의 성장이다. 휴식도 좋지만 놀지만 말고 안전한 곳에서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해보길 바란다. 내가 할 일이 늘어나니까 절대 사고는 치지 말도록 하고."

마지막 말은 날 보며 얘기했다.

교수님에게는 좀 미안하긴 하네.

나랑 상관도 없는데 괜히 일만 늘어났으니까.

김진혁 교수는 자신의 말에 하나도 집중하지 않는 생도들을 보며 한숨을 쉬더니 말을 이었다.

"아무튼… 잘 할 거라 믿는다. 방학 중에도 아카데미에 남아있는 교수님은 많다. 혹시나 발전을 위해 질문하고 싶은 게 있으면 언제든지 찾아오도록. 해산!"

"감사합니다!"

김진혁 교수가 등을 돌리자마자 생도들은 신나게 떠들기 시작했다.

대학교 다닐 때는 이러지 않았던 거 같은데.

역시 다들 같은 수업을 들어서 더 돈독한 모양이네.

내 옆에 있던 루시도 내게 말을 걸어왔다.

"우리 파티할까? 파티!"

"갑자기 파티를 하자고?"

"응. 방학기념 파티! 동아리 방에서 모이자. 다은이도 올래?"

텐션이 엄청나게 올라간 루시는 남다은의 팔을 붙잡았다.

자신의 이름이 불릴 지 몰랐던 남다은은 눈을 크게 떴다.

"… 나도?"

"네. 다은 양도 오면 좋을 것 같아요. 분명 재밌을 거에요."

"우리 동아리 방에 보드게임도 많아."

"아! 다은 양이 오면 4명이 하는 게임도 할 수 있어요."

남다은은 갑작스러운 루시와 루미의 초대에 어쩔 줄 몰라하다가, 슬쩍 내게 고개를 돌렸다.

나는 피식 웃으며 어깨를 들썩였다.

가고 싶으면 가면 되지. 뭘 날 바라보고 있어.

"그래. 다은이 너도 가자. 어차피 동생은 더 늦게 끝나잖아."

"으음, 알겠어."

"좋아! 우리의 특별한 곳을 소개해줄게."

"맞아요. 비밀기지거든요."

"비밀기지…? 동아리방 아니였어?"

루시와 루미는 신나는 듯 남다은의 팔을 붙잡았다.

사람이 4명이나 모일 줄이야. 이건 귀하네.

그러고보니 파티인데 음식은 없나?

"루시, 동아리 방에 케이크 같은 거라도 있어?"

"앗. 오늘은 준비 안 했는데."

"그럼 내가 사 갈게. 저번에 거기 맛있더라."

"호연 씨. 거기는 예약이 필요해요."

"가보고 없으면 다른 곳에서 사가지 뭐."

나는 자진해서 케이크 담당을 맡았다.

남자니까 이 정도는 해줘야지.

'다은이가 잘 어울렸으면 좋겠네.'

셋은 떠들면서 동아리방으로 향했다.

저렇게 친해지다니 참 기쁜 일이야.

나는 천천히 아카데미 밖으로 걸어갔다.

다은이가 친구를 만드는 건 좋은 일이다.

다희도 새로운 친구를 만났다는데 다은이도 친구를 사귀어야지.

'근데 다희는 진짜 잘 지내네?'

사실 집에서 보여주는 모습 때문에 걱정을 많이 했다.

아직도 정신 연령이 어린 것 같았으니까.

그래도 학교에서는 잘 지내는 모양이라 안심이다.

나는 지도를 보며 아카데미의 거리를 걸었다.

방학식을 마친 생도들이 엄청나게 돌아다니는 걸 보니, 케이크 가게에 예약이 꽉 차 있을 것 같기도 하네.

"여기였지?"

나는 예쁜 간판의 케이크 가게에 들어갔다.

안에는 손님 몇몇과 직원이 있었다.

다들 예약손님 인 것 같긴한데, 혹시 모르니 물어는 봐야지.

"안녕하세요. 혹시 지금 케이크 주문 가능한가요?"

"아, 마침 예약이 하나 취소된 게 있어요. 딸기 케이크인데 괜찮으세요?"

"네. 그걸로 주세요."

딸기 케이크.

아마 저번에 먹었던 것도 저거 같은데.

마침 예약이 비었다고 하니 운이 좋았다.

"엄마! 나 이거 사주세요."

"그래. 대신 쿠키는 사지 말고."

"알겠습니다!"

내 바로 옆에는 귀여운 남자아이가 있었는데, 어머니에게 케이크를 사달라고 하는 모습이 꽤 귀여웠다.

나도 어릴 때는 저렇게 귀여웠겠지.

'내 아이도 저런 느낌이려나.'

뭔가 기분이 이상하네.

레베카도 그렇고, 백아영도 그렇고, 내 아이를 가지고 싶어하는데 막상 아이가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이것도 대책을 세워야 할 텐데.

"일단 빨리 갈까. 기다리겠네."

대책도 좋지만 눈앞에 여자들이 더 중요하다.

나는 직원에게 케이크를 받아 가게 밖으로 나왔다.

이제 아카데미로 돌아갈 일만 남았다.

오싹­

그때.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척추를 때리는 한기에 나는 주변을 확인했다.

'뭐야.'

갑자기 느껴지는 미지의 공포와내 몸을 옥죄어오는 불길한 기운.

나는 급하게 마력을 끌어올리려다가, 전투 감각이 발동하지 않는 걸 깨닫고 날 감싸는 마력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전투 감각이 발동하지 않는 걸 보면 상대는 날 눈치채지 못했거나 적의가 없는 거다.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리며 주변을 살피자 수많은 인파 사이에 돋보이는 남자 하나가 보였다.

그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거리를 걷고 있었지만, 그의 얼굴은 내 눈에 확실하게 들어왔다.

피곤한 듯 쳐져 있는 눈과 퀭한 눈동자는 암울한 기운을 뿜어냈지만, 그런데도 눈에서 보이는 총기가 이상한 부조화를 선사했다.

나는 남자의 얼굴을 다시 확인했다.

몸에서 풀풀 피어나는 불안한 기운은 둘째치고, 무슨 자신감인지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원작을 플레이한 나는 그의 얼굴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전 세계 헌터 협회에 수배되어있는 범죄자.

인류 역사상 최악의 테러 집단인 판데믹의 수장이자 가장 높은 현상금이 걸려있는 마인.

'…… 마에스트로?'

나는 눈을 의심했다.

왜 저 남자가 여기 있는 거지?

저렇게 직접 몸을 드러내는 사내는 아닐 텐데.

혹시 이곳에 테러가 일어나나? 아니, 그렇다고 그가 직접 오진 않아.

전투 감각과는 다른 느낌으로 심장이 쿵쾅거렸다.

특전인 [뚜렷한 정신력]이 내 심장을 진정시켜보려 해도 떨림은 멈추지 않았다.

'피하자.'

혼자서 마주친다고 가능한 상대가 아니다.

게다가 다른 마인이 숨어있을 가능성도 매우 높다.

침을 삼키며 그의 옆모습을 바라보는데,문득 그가 고개를 돌렸다.

마에스트로는 내가 있는 곳을 바라봤다.

나도 최대한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렸지만, 짧은 순간 눈이 마주치는 건 피할 수 없었다.

'일단 이곳을 피해야….'

탁­

나는 아카데미 쪽으로 발을 내딛었다.

그리고,한 걸음을 내딛자마자 내 귀에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세요?"

"…."

"죄송합니다. 길 좀 물어도 될까요?"

"…."

나는 스르르 고개를 돌렸다.

살짝 웃고 있는 마에스트로는 내게 가까이 와있었다.

분명 백 미터 이상 떨어져 있었는데 어떻게 순식간에 가까이 온 거지?

룬의 결계가 펼쳐져있었는데도 마에스트로는 자연스럽게 결계를 뚫으며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 죄송합니다. 저도 이쪽 지리는 잘 몰라서요."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나는 떨림을 숨기며 쓸데없이 총명한 목소리에 간신히 대답했다.

마에스트로는 고개를 꾸벅 숙이더니 내게서 멀어졌다.

'뭐야. 이게 끝?'

나는 멍하니 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무방비해 보이는 걸음걸이와 결계 하나 없는 방어상태.

무슨 이유로 내게 다가온 건 지는 몰라도, 지금처럼 좋은 기회는 없었다.

'지금이라면 가능할지도.'

아크를 소환하고 가장 강한 마법을 때려 박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3초 미만.

지금이라면 반응하기도 전에 죽여버릴 수 있다.

꿀꺽.

"…."

하지만, 몸에 마력이 들어가지 않았다.

몸을 옥죄어오는 답답함에 나도 모르게 무릎에 힘이 풀렸다.

케이크가 바닥에 우당탕 떨어졌지만, 거기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결국 그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게 된 후에야 나는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이런 시발…."

나는 욕짓거리를 뱉었다.

이게 운명이라는 건가.

프랑스에서 케이론이 했던 말을 이제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인간은 그를 이길 수 없다는 말.

운명이 함께하고 있다는 말.

저런 기세를 뿜어내는 걸 보면 그런 말이 절로 나올만 하지.

강함과는 다른… 설명하기 힘든 기운이었다.

하지만 괜찮다.

'다음에는 움직일 수 있어.'

오늘 느낀 감각은 확실하게 기억했다.

그가 왜 내게 얼굴을 보였는지는 몰라도 그건 실수였다.

두 번째 만남에는 이런 한심한 행동은 절대 하지 않을 테니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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