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8화 〉 388화. 근접 전투 훈련
* * *
촤자자작
나와 남다은은 동시에 거리를 벌렸고, 대련장의 마력결계가 풀리자마자 나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고생했어. 호연아."
"하아, 하아…. 응. 고마워."
나는 훈련용 검을 내려놓고 숨을 몰아쉬었다.
역시 직접 몸을 움직이는 건 더럽게 힘드네. 처음에 마법사를 고른 선택은 역시 완벽했다.
"수분 공급하시죠."
"아, 고마워."
"아닙니다."
스칼렛은 옆에서 물을 내밀었다.
그래도 물을 마시니까 조금 나아지네.
"후우, 방금 어땠어? 나름 나쁘지 않았던 거 같은데."
나는 땀을 닦아내며 방금 날 상대한 남다은에게 물었다.
처음으로 마법을 사용하지 않은 대련이었는데, 남다은이 봐준 걸 감안해도 나쁘지 않은 대련이었다.
애초에 벌써 남다은을 이길 생각 따위는 안 했으니까.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만족이다.
"음…."
"흠."
나는 두 여자의 반응을 기다렸다.
조용히 고민을 이어가던 남다은은 먼저 입을 열었다.
"나는 좋다고 생각해. 갈고닦으면 충분히 나랑 겨룰 수 있을 거야."
"그 정도야?"
"응. 호연이는 재능이 있어."
남다은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확실히, 나도 그렇게 생각하긴 한다.
아예 배워보지도 않았던 칼질인데 이 정도라면 충분히 써먹을 만하지.
"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스칼렛 씨?"
하지만 이어지는 스칼렛의 말에 나는 들뜬 마음을 가라앉혔다.
"분명 재능이 있어요. 제가 봤던 왠만한 생도들의 근접 전투능력을 뛰어넘어요. 집중적으로 수련을 이어가면 남다은양만큼 강해질 수 있는 것도 사실이겠죠."
"근데 뭐가 문제야?"
마법도 강한데 근접 전투능력도 강해지면 엄청 강해지는 거 아닌가?
내 의문에 대답하듯 스칼렛은 말을 이었다.
"마법을 쓰는 당신은 원래부터 다은 양보다 훨씬 강하니까요. 당신의 목표가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훨씬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 응. 그렇지."
마에스트로와 지옥의 마왕.
세계관에서 제일 강한 악역들을 상대해야 한다.
적당한 강함으로는 너무나 부족하다.
"굳이 근접 훈련에 시간을 쓰기보다 마법에 집중하면서 근접전투의 기본적인 대처법만 배우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으음… 네 말도 맞지만, 마력 무효화 결계 때문도 있어."
스칼렛의 말처럼, 마법을 쓰는 게 더 강한 건 나도 당연히 알고 있다.
문제는 판데믹에 마력을 무효화하는 결계가 있다는 것.
실제로 당해본 경험이 있으니 이렇게 노력하려는 거다.
그게 없다면 나도 편하게 마법만 수련할 수 있겠지.
"마력을 무효화하는 결계. 그것도 큰 문제가 아닙니다."
"무슨 소리야?"
"상대도 마력을 못 쓴다면 아무리 마인이라도 큰 피해를 주기 힘들어요."
"하지만 인간과 마인은 체급부터 다르잖아. 마력이 없을 때 체급으로 찍어누르면 어떡해?"
"마인의 몸으로는 그런 정교한 전투가 불가능하고, 그게 가능한 마인들도 마력이 없다면 큰 피해를 주지 못해요. 제가 말한 대로 기본적인 대처법만 배우면 상대의 공격을 막으며 버티는 정도는 가능합니다."
스칼렛은 품에서 웬 종이들을 꺼냈다.
"이렇게 근접 전투의 기본 교재도 만들어왔는데… 이건 필요 없을 것 같네요."
"… 교재도 만들었다고? 대체 언제부터 준비한 거야?"
"예전에 말을 꺼냈을 때부터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이론보다 호연 님의 감각이 더 뛰어난 것 같아요. 방금 대련에서 대처가 너무 완벽했거든요. 다만 기본기가 없어서 그 점만 늘리면 될 것 같습니다."
"칭찬은 고마워."
난 전투에 있어서는 특전의 보정을 받거든.
대부분의 상황에서는 내 선택이 베스트라고 봐도 무방하다.
스칼렛은 교재를 다시 품에 집어넣고 말을 이었다.
"차라리 대련을 더 해보죠. 문성민과 싸우면서 느낀 점이 있으니 저희를 부른 거잖아요."
"응. 근접 전투군이 속도 면에서 나보다 압도적이다 보니까, 그걸 극복하고 싶었거든."
"사실 마법사가 거리를 내준 순간 불리해지는 게 이치에 맞는 일이지만… 일단 해볼까요. 이번에는 저랑 다은 양이 동시에 덤벼볼게요."
"… 저도 같이요?"
"네. 그래야 호연 님의 멀티태스킹 능력이 늘어날 테니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대련이라면 더 힘들게 해도 괜찮겠지.
"알겠어."
"저희가 당신의 마법을 가볍게 버틸 만큼 강자라고 생각해보세요. 그럼 다른 방법이 떠오를지도 몰라요"
나는 훈련장의 대련 모드를 활성화했다.
마력을 잔뜩 집어넣었으니, 다칠 위험은 없었다.
반대편에는 스칼렛과 남다은이 자리 잡았다.
앞선 전투로 뜨거워진 몸에는 기분 좋은 전투 감각이 돌고 있었다.
'마력으로 찍어누르지 않고 둘을 상대하기는 힘들 것 같은데.'
나는 스칼렛이 한 말을 되새기며 전략을 고민했다.
내 특기는 압도적인 마력 컨트롤로 상대보다 빠르게 반응해 강한 마법을 때려박는 것이다.
하지만 강자를 상대할 때는 그 방법이 제대로 먹히지가 않았다.
차라리 잡기술이 있었다면 틈을 노리기 쉬웠을텐데, 나는 완전히 정공법이니까.
상대가 내 마법을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하면 중요한 건 기술이다.
문성민과의 대결에서 느낀 점은 다중 캐스팅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
대련도 아니고 실제 난전이 일어나는 전투에서 마법을 몇 개나 캐스팅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내 집중력의 문제도 있고, 애초에 사람의 몸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방식이다.
소프트웨어는 좋지만 하드웨어가 받쳐주지 못했다.
'더 간략하게 마법을 사용하는 방법이 필요해.'
고민을 이어가며 손에 마력을 모았다.
마법의 핵심 술식을 연구할 때부터 어렴풋이 떠올리던 것이 있었는데, 바로핵심 술식만으로 마법을 전개하는 것이다.
나는 마법의 핵심 술식을 뭉쳐 허공에 던졌다.
파즈 파즈즛 픽
핵심술식은 완벽했지만, 그 후의 가공이 없었기에 마력은 허무하게 무너졌다.
하지만 나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핵심 술식을 겹쳐서 만들어보기도 하고, 마법진 전체를 그린 후에 압축해보기도 했다.
목표는 나 혼자서도 모든 전투 상황을 풀어나갈 수 있도록 만드는 것.
상대의 빈틈을 만들기 위해서는 내게도 여유가 있어야 했다.
지금 내 전투방식은 임솔 교수님의 하위호환.
임솔 교수님처럼 압도적인 마력과 캐스팅 속도가 없으니 다른 방식으로 노력을 해야겠지.
아예 전투방식 자체를 뜯어고쳐야 했다.
"호연아? 대련은…."
"쉿. 다은 양. 가만히 내버려 두세요. 무언가 깨달음을 얻을지도 몰라요."
둘의 대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지만, 나는 눈앞의 만들어진 구체에 집중했다.
수 많은 방법 중에 이게 제일 실전성 있는 방법이었다.
──『 아크 컨저레이션 』 ──
▶ 고유 스킬
▶ 마법의 핵심 술식을 완벽한 마법으로 구현하는 마력 구체.
시전자의 마력과 의지력을 소모하기 때문에 늘릴 수록 부담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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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됐다."
나는 내 주변을 회전하는 마력 구체에 템페스트 윈드의 핵심술식을 집어넣었다.
콰가가가각
마력을 집어넣자마자 생성되는 강풍을 보며 난 미소를 지었다.
'충분해.'
마법의 핵심술식을 이용한 새로운 마법.
내 의지력 일부를 떼어 만든 구체에 마법진을 그리는 능력을 부여한 것이다.
이러면 마법진을 그려야 하는 다중캐스팅보다 마법 하나하나에 드는 시간이 매우 줄어든다.
"아크 컨저레이션… 아크라고 하면 되겠네."
이름이 너무 길면 집중력이 떨어진다.
깔끔하게 아크라고 부르자.
나는 앞에서 기다려주던 스칼렛과 남다은에게 사과하며 말했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 새로운 마법이 하나 생긴 거 같은데, 실험 좀 도와줘,"
"얼마든지요."
"잘 부탁해."
촤르륵
나는 내 어깨 옆에 아크 두 개를 소환했다.
살짝 두통이 느껴졌지만, 곧 익숙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
다음 날.
어제는 완전히 훈련에 몰두해 밤까지 대련을 이어갔다.
마지막에는 스칼렛과 남다은이 쓰러질 것 같길래 어쩔 수 없이 멈췄지만,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촤악
나는 내 주변에 아크를 소환했다.
아직 살짝 두통이 있긴해도 처음 만들어냈을 때 보다 훨씬 덜해졌다.
이 정도면 실전에서 써도 될 것 같네.
"…."
"아으…."
"얘들아. 괜찮아?"
거실에 나가보자 테이블에 엎드려있는 스칼렛과 남다은이 보였다.
평소였으면 아침을 준비할 시간인데 저러고 있는 걸 보니 진짜 힘든 모양이네.
"온몸이 아파. 이런 건 처음이야…."
"조금 쉬면 괜찮아지겠지만… 정작 당신은 그렇게 팔팔한 이유가 뭐죠?"
"나는 자연 치유력이 좋거든."
루시를 공략하며 얻었던 자연 치유력 향상.
이게 의외로 엄청나게 도움이 된다.
싸움에서 얻은 상처는 물론이고 훈련의 피로도 없애주니까.
"오늘 아침은 내가 준비해줄게."
둘의 상태를 보니 아침은 못 먹을 것 같다.
난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 선반에 있던 시리얼을 그릇에 담아 둘 앞에 내려놨다.
"고마워 호연아."
"이게… 네. 이거라도 먹겠습니다."
"시리얼이 뭐 어때서. 이게 얼마나 맛있는데."
나는 팔을 부르르 떨며 시리얼을 퍼먹는 둘을 보며 웃다가, 문 여는 소리에 슬쩍 고개를 돌렸다.
"아흐, 졸려…!"
"릴리아나, 좋은 아침. 근데 옷이 왜 그러냐?"
익숙한 문 여는 소리와 함께 릴리아나가 방에서 나왔다.
릴리아나는 내 말에 고개를 내리더니, 눈을 크게 떴다.
"으응? 아, 어제 방송이 끝나자마자 잠들어서 그런가 봐."
"좀 적당히 섹시하게 입어. 그건 너무 야하잖아."
나는 릴리아나의 섹시한 옷을 보며 말했다.
가슴과 아랫부분만 간신히 가린 의상은 내가 봐도 너무 야했다.
저런 걸 막 남한테 보여주면 어떡해.
"으응? 괜찮아. 서큐버스라도 화면에서 매혹하는 힘은 없거든."
"… 뭐라는 거야. 내가 싫으니까 입지 말라고."
"지금 질투하는 거야? 후후후."
"와서 아침이나 먹어."
"그냥 좀 질투한다고 해주면 뭐가 어때서!"
릴리아나는 눈을 찌푸리며 방으로 다시 들어갔다.
혹시 삐졌나?
끼익
잠시 후, 릴리아나는 누가 봐도 건전한 츄리닝을 입고 나왔다.
그리고 나를 흘깃흘깃 쳐다봤는데, 왠지 뭘 바라는지 알 것 같아서나는 릴리아나에게 다가가 칭찬을 해줬다.
"나한테는 보여줘도 되지. 근데 다른 놈들한테는 너무 야한 건 금지야. 알겠지?"
"알겠어. 그렇게 말하면 얼마나 좋아."
릴리아나는 그제서야 만족한 듯 내 손에 얼굴을 비비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테이블에 가서 시리얼에 우유를 붓더니 수저로 퍼먹기 시작했다.
아니, 시리얼을 따로 덜어서 우유를 말아먹어야지.
시리얼 봉투에 우유를 퍼붓는 사람이 어딨어.
"애기 아빠. 좋은 아침!"
"아, 레베카 씨. 기분이 좋아 보이네요?"
릴리아나에게 한 마디 하려는데, 레베카가 말을 걸어왔다.
기지개를 피며 등장한 레베카는 왠지 기분 좋아 보였다.
"으응. 왠지 몸이 무거운 게 임신을 한 것 같아."
"음…. 좋은 소식이긴하네요."
저런 말을 할 때마다 어떻게 반응해야할 지 모르겠단 말이지.
와! 임신! 하고 박수를 쳐줘야하나.
"그리고 판데믹의 압박도 줄어든 것 같아. 인맥들이 다시 내 연락을 받기 시작했어."
"오, 그건 진짜 좋은 소식이네요. 아직 하루도 안 됐잖아요."
"응. 아마 이쪽을 견제하는 것 같아. 역시 애기 아빠의 말이 효과가 있었어."
"제가 뭘 했다고요. 레베카 씨가 다 했지."
그리고 아직 첫날이니까 좀 더 지켜봐야 한다.
좋은 결과가 나왔으면 좋겠네.
"애기 아빠는 이제 뭐 해? 곧 방학식 아니야?"
"네. 당장 내일이면 방학식이에요."
말이 방학식이지 특별한 건 없다.
그냥 정규 수업이 끝나는 날일 뿐이다.
행사 같은 건 따로 없었으니 테러도 없겠지.
판데믹의 기세를 꺾어놓기도 했고, 원작에서도 조용히 넘어가는 이벤트니까.
"…."
"으응? 애기 아빠, 얼굴이 왜 그래? 어디 안 좋아?"
"아니요. 왠지 오한이 들어서."
"이리 와. 내가 따뜻하게 해줄게."
레베카는 날 끌어안고 등을 쓰다듬어줬다.
따뜻하니까 마음이 참 편하긴 한데, 괜히 불안하네.
지금까지 이 세계에서 살아남은 내 경험이 말하고 있었다.
절대 조용히 넘어갈 리가 없다고.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