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6화 〉 386화. 두근두근 가정방문! (2)
* * *
문수린의 집.
개인 훈련실.
치이익
주말의 개인 훈련을 끝낸 문수린은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훈련장에서 빠져나왔다.
일로 받은 스트레스를 모두 훈련에 쏟아낸 그녀는 상쾌한 표정으로 훈련복을 벗었다.
"오늘은 나쁘지 않았어."
그녀의 능력인 염동.
각성 이후로 확실히 늘어난 문수린의 실력은 이제 웬만한 중상급 S급 헌터와도 비견할 만했다.
물론 학생회장의 자리가 직접 전투를 할 기회는 적었지만, 그렇다고 훈련을 줄일 순 없었으니 문수린은 주말에도 쉴 시간이 없었다.
"씻고 나서 밀린 서류 작업하고. 으음…."
방에 돌아온 문수린은 테이블에 앉아 일정을 체크했다.
밀려있는 일이 많긴 했지만, 그녀도 일을 좋아하는 건 아니었다.
훈련이 끝나자마자 서류작업에 들어가는 건 힘들었다.
"씻고 나서 조금만 누워있을까? 잠깐이면 괜찮을지도."
그녀는 의자에 앉아 기지개를 피며 방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사진을 바라봤다.
하나같이 똑같은 남자가 찍혀있는 사진들에는 하나하나 문수린이 써놓은 감상평이 붙어있었다.
[사랑해♡ 너무 사랑스러워♡]
[아이스크림 먹는 모습…♥ 나도 먹어줘 ⊙.⊙]
[학생회에 들어올 때 CCTV에 인사하는 거 귀엽 ㅋㅋㅋ]
[오늘은 마음의 거리가 약간 가까워진 느낌… 아님 말고!]
.
.
.
"… 너무 많아졌나?"
처음에는 뉴스 기사에 나오는 사진들을 모았다.
그 다음에는 파파라치들이 찍는 사진.
그걸로도 모자라 나중엔 직접 사진을 찍었다.
다른 사람에겐 없는 특별한 사진을 가지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나 둘 씩 취미로 모으다 보니 어느새 방을 가득 채우게 돼서, 자기 자신도 가끔 놀랄 때가 있었다.
그래도 이렇게 보다보면 뿌듯한 때가 많았다.
"이렇게나 많이 남았네."
벽에 붙이다 못해 남은 사진들은 책상에 쌓아놓은 상태였다.
언젠가 처리를 하긴 해야 할 텐데, 버리긴 아까우니 어쩔 수 없었다.
이호연은 자신에게 특별한 사람이었다.
스토커 때문에 받았던 스트레스.
아버지와 학생회장 일로 받던 압박.
그 모든 걸 잊게 해 준 게 이호연이었다.
그는 자신을 단지 여자친구 정도로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문수린은 그에게 인생을 걸었다.
이호연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힘든 업무를 버티는 것도 그를 위해서니까.
"… 어차피 씻을 거니까."
문수린은 침대에 누워 천장에 있는 이호연의 사진들을 바라봤다.
거리를 돌아다니는 이호연과 학생회실에 들어오는 이호연.
학생회실에서 뜨거운 관계를 나누고 돌아가는 그의 뒷모습과 학생회 의자에서 서로 끌어안고 있는 모습.
사진을 하나하나 훑을 때 마다 그녀의 몸이 아랫배부터 뜨거워졌다.
마치 파블로프의 개 처럼 이호연의 사진을 보기만해도 반응하는 것이다.
딸깍
누나, 사랑해요. 수린 누나.
"응, 아. 호연아…."
침대 위에 있는 블루투스 스피커를 건드리자마자 이호연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목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울리는데, 역시 이게 운명이라는 거겠지.
찌걱 찌걱
듣기만 해도 심장이 벌렁거리는 미성에 집중하며, 문수린은 사타구니 사이로 손을 밀어 넣었다.
이미 젖은 팬티는 방해되니 벗어버렸다.
"아, 아앙…. 으읏…."
한 번. 두 번. 세 번.
잠깐의 휴식을 취하려던 문수린은 정신없이 손을 움직였다.
스트레스를 푸는 데에는 이만 한 게 없었다.
그가 매일같이 섹스를 해주면 좋을텐데.
자신도 그도 바쁘다보니 시간이 나질 않았다.
쯔읍 쯔읍
문수린은 엄지로 클리토리스를 건드리며 중지는 질구 안 쪽을 문질렀다.
몸이 부르르 떨리고 발끝이 쭉 펴지는 감각.
쾌락에 중독된 것 처럼 자위에 몰두하던 문수린은 문득 정신을 차렸다.
"헉. 지금 몇 시지…?"
분명 잠깐만 하려고 했는데, 너무 늦었다.
아직도 쌓여있는 일이 산더미다.
문수린은 빠르게 옷을 챙겨 욕실로 들어갔다.
땀으로 흠뻑 젖은 몸을 씻기 위해서다.
촤아악
차갑게 흘러내리는 물은 그녀의 정신을 각성시켰다.
방금까지한 창피한 행동이 떠올랐지만, 그녀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현자타임을 털어냈다.
"…."
스윽 스윽
찐득한 무언가가 잔뜩 묻은 다리 사이를 직접 닦아내는 문수린은 오묘한 기분을 느꼈다.
'역시 다음부턴 좀 더 자제해야지.'
몸 곳곳을 깨끗이 씻고 욕실에서 나온 문수린은 머리를 말리며 스마트 워치를 확인했다.
혹시 호연이에게 연락이라도 왔을까.
"… 어?"
스마트 워치를 본 문수린은 눈을 크게 떴다.
호연이 : 수린 누나. 이번에 판데믹의 은신처를 소탕했는데요. 아카데미에서 처리했다고 발표하고 싶어서 연락했어요. 그리고 추적하다가 아버님을 만났는데 이것도 얘기해드릴게요.
이호연에게 온 메시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안부를 묻는 내용이 아니라 엄청나게 중요한 용건이었다.
하필이면 훈련 직후 자위 타임에 온 메시지라 확인하지 못했다.
부재중 전화까지 있는 걸 보면 매우 급했던 모양.
문수린은 즉시 이호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그때.
띵동 띵동
인터폰이 울리는 소리에 문수린은 현관으로 고개를 돌렸다.
*
"분명 이 주변인데…."
나는 지도를 보며 아카데미 주변을 걸었다.
문수린의 집은 아카데미에서 가까웠는데, 우리 집이랑도 가까웠다.
"뭐 하길래 지금까지 연락이 없어."
아직도 조용한 스마트워치를 보며 중얼거리다 보니 수린 누나의 집 앞에 도착했다.
주소가 나타내는 위치는 여기가 맞는데… 막상 오니까 걱정되네.
수린 누나가 분명 미리 연락하고 와야한다고 단단히 주의를 줬기 때문이다.
"연락은 했지. 수린 누나가 안 받았을 뿐."
대답을 받으라는 말은 없지않았나?
아님 말고.
띵동 띵동
난 인터폰을 꾸욱 눌렀다.
누나가 꼭 연락하라고 했던 이유는 스토커 사건 때문일 거다.
기숙사에도 쫒아올 정도로 극성이었으니 불안한 마음이 남아있는 건 당연한 일.
하지만 스토커였던 신동민은 죽어버렸고, 이제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애초에 인터폰으로 내 얼굴을 보면 스토커라고 생각은 안하겠지.
"아니면 집을 더럽게 하고 사는건가?"
바깥에서는 깔끔한데 집은 더러운 사람.
그런 사람들이 의외로 많단 말이지.
수린 누나가 그런 부류일 수도 있다.
'예쁘면 그럴 수 있지.'
물론 그 정도 문제는 예쁘면 용서해줄 수 있다.
세상은 예쁘면 대부분은 봐주거든.
끼익
잠시 기다리자 문이 열렸다.
살짝 열린 문 틈에서는 물에 젖은 수린 누나의 머리가 톡 튀어나왔다.
"어… 호연아?"
"안녕하세요. 수린 누나. 연락이 없길래 무슨 일 있나 찾아왔어요."
"미안해. 잠깐 잠에 들어서 중요한 연락을 못 받았네."
"괜찮아요. 이사장님한테 연락해서 급한 일은 처리했거든요."
"아. 응… 다행이네. 응. 정말 다행이야."
나는 수린 누나를 바라봤다.
이 누나 오늘따라 분위기가 좀 이상하네.
방금 자다 깨서 그런가?
"누나는 이제 씻었나 봐요?"
"으응. 훈련이 끝나자마자 씻었어."
"엥? 잠깐 잠들었다고 하지 않았어요?"
"어. 어…."
문수린은 눈을 이리저리 돌리며 당황했다.
왜 이렇게 당황하는 지는 몰라도, 일단 넘어가줘야지.
"음, 그게 뭐가 중요하겠어요. 제 메시지는 보셨죠?"
"응. 봤어…. "
"… 저 좀 들어가면 안 돼요? 계속 밖에 서서 대화하려고요?"
아무래도 자다 깨서 정신이 없나보다.
손님을 이렇게 대접할 사람이 아닌데 말이야.
"집, 집이 좀 많이 지저분해. 하나도 못 치웠거든. 차라리 집 밖에 카페로 가는 건 어때? 그, 맞아. 끌레르 로즈 라떼를 하는 카페랑 가까운 곳으로 일부러 집을 잡은 거거든. 응. 금방 준비할 수 있는데…."
"네? 아니요. 중요한 이야기를 해야 해서 카페는 좀 그렇지않을까요."
"어… 어으. 안 되는데…."
"…?"
누가 보면 집에 다른 남자라도 숨겨놓은 줄 알겠네.
얼마나 더럽길래 이러는 거야.
하긴, 나도 자취할 때는 많이 더럽게 살았었지.
누나에게 그런 면이 있을 줄은 몰랐네.
이게 인간미라는 거구나.
나는 웃으며 문틈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괜찮아요. 저도 혼자살 때는 더럽게 살았거든요."
"안돼. 안돼, 진짜…."
"에이. 왜 그래요. 방이 조금 더럽다고 해서 실망 안 할 테니까. 그런게 다 인간미죠."
"아, 그런 거 아닌데. 정말 안 되는데…."
힘을 주며 날 밀어내던 문수린은 결국 내 몸을 막지 못하고 집 안으로 들여보냈다.
현관부터 살폈는데, 가지런히 정리된 신발과 먼지하나 없는 신발장을 보니 뭔가 이상했다.
이 정도면 충분히 깨끗한데?
"에엥. 엄청 깨끗한데요."
"응. 일주일에 한 번은 청소를 하니까…."
"그럼 뭐예요. 진짜 다른 남자라도 숨겨놨어요?"
"그럴 리가 없잖아…."
문수린은 현관에서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린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집이 더러운 것도 아니고 다른 남자도 아니면 뭐가 창피한 걸까.
혹시 야한 동영상이라도 보고 있었나?
드르륵
"… 어?"
나는 거실로 들어가자마자 눈을 크게 떴다.
그제서야 왜 문수린이 날 막았는지 알 수 있었다.
먼저 벽 한쪽을 가득 채운 내 브로마이드.
인터넷에 파는 저딴 걸 누가 살까 궁금해했는데, 그 사람이 여기 있었구나.
이게 끝이면 놀라지도 않는다.
거실 곳곳에 내 사진이 붙어있었다.
인터넷 기사에 나온 사진부터 시작해서, 언제 찍었는지 궁금할 정도로 이상한 각도의 사진들.
'아니, 나랑 섹스할 때는 언제 찍은 거야. 내가 그걸 못 알아챘다고?'
특이한 사진들도 문제지만.
화룡점정은 사진마다 적혀있는 감상평.
[학생회에 처음 왔을 때 모습… 파릇파릇함♡]
[마력 수업에 집중하는 것도 섹시해….]
[이건 외출복? 생도복도 어울리지만, 사복도 역시]
[학생 식당에서 밥 먹는 호연이. 나도 먹어주면 좋겠다….]
"…."
뭐야.
정말 뭐야?
문수린한테 이런 성벽이 있었다고?
'아닌데….'
원작에서 이런 성벽은 등장하지 않았다.
이렇게 중요한 내용이 생략될 리가 없으니, 이건 이 세상의 문수린이 개발한 성벽이라고 봐야겠지.
'그렇다면 이것도 운명이 바뀐건가?'
애매하네.
이미 있던 성벽이 사라진거라면 몰라도 없던 게 생긴거라면 다른 이야기잖아.
"기, 기분 나쁘지. 실망했어? 미안해…."
수린 누나의 성벽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찰하고 있을 때, 수린 누나가 뒤에서 내 손을 잡아 왔다.
고개를 돌리자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 수린 누나의 표정이 보였다.
"처음에는 그냥 재미로 시작했는데… 어느새 남들이 가지지 못한 사진을 가지고 싶어서 몰래 찍어버렸어. 범죄인 건 알아. 정말 미안해…."
"…."
나는 고개를 푹 숙인 문수린의 어깨를 잡았다.
수린 누나는 고개를 들어 살짝 날 올려다봤고, 나도 천천히 입을 열었다.
"누나."
"으, 으응…."
"이 정도는 부탁하면 얼마든지 해줄 수 있어요."
"어?"
내 말에 수린 누나는 놀란 듯이 날 쳐다봤다.
물론 처음에는 조금 놀랐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별로 실망할 일은 아니다.
분명 스토킹은 범죄다.
원하지 않는 상대가 날 쫓아오는 건 당연히 나도 싫겠지.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예쁜 여자가 날 스토킹하는건….
'나쁘지 않은데.'
아니, 오히려 좋을지도.
예쁘면 그것도 매력포인트다.
그러니 용서해줄 수 있다.
수린 누나는 아직도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채 날 쳐다보고 있었고.
나는 그 멍한 얼굴이 웃겨서 피식 웃음을 지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