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야겜에 빙의했다-374화 (374/648)

〈 374화 〉 374화. 기말고사 (3)

* * *

띠리리­ 띠리리­

"… 아."

탁­

나는 스마트 워치를 건드리며 알람을 껐다.

한국에 왔지만 아침에 일어나는 건 여전히 피곤했다.

짹­ 짹짹­

그래도 아침부터 새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확실히 집에 돌아온 느낌이 드네.

이건 옆집인 엘리스의 저택에서 들리는 소리다.

스르륵 창문을 열자 더욱 선명한 새의 울음소리와 함께 기분 나쁜 아침햇살이 날 맞이했다.

나는 몸을 비틀거리며 침대에서 다리를 내렸다.

바닥에 깔린 러그에 발을 댄 채로 기지개를 피자 그제서야 눈이 좀 떠지는 것 같았다.

"어디갔지?"

침대의 옆자리가 텅 비어있었다.

어젯밤 오랜만에 뜨거운 밤을 보낸 후에 남다은의 몸을 끌어안고 잤던 게 기억이 나는데… 어떻게 내 팔을 탈출한 거야.

따뜻함이 남아있지 않은 걸 보면 방금 일어난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바깥으로 나와보니 아직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듯 거실이 조용했다.

사실 당연하다.

오늘 아침은 교수와 면담이 있어서 일찍 일어났거든.

'그럼 다은이는 어디 간 거지?'

혹시 중간에 다희를 보러 갔나?

그럴지도 모르겠네.

어제 참지 못하고 다희 앞에서 내 걸 빨았던 걸 부끄러워했으니까.

'부끄러워 하는 것도 엄청 귀여웠는데….'

탁탁탁­

"응?"

남다은이 잘 자고 있나 확인하려고 가던 때, 부엌에서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도마에 부딪히는 칼 소리 같았다.

혹시나 해서 부엌으로 가보니 요리를 하고있는 남다은의 모습이 보였다.

다희한테 간 게 아니라 여기 있었구나.

나는 부엌으로 들어가며 남다은에게 말을 걸었다.

"다은아."

"아, 깼어? 아침이라도 만들려고 했거든."

"왜 굳이 힘들게 그랬어. 좀 더 자지."

"괜찮아. 하나도 안 피곤해. 하으…."

하품을 하며 저런 소리를 하면 어쩌자는 거야.

나는 웃으며 남다은에게 다가갔다.

가까이 다가가자 뭘 만드는 지가 보였다.

프라이팬에서 지글거리는 베이컨과 토스터에서 튀어 오르는 토스트.

그 외에 샐러드같은 것들.

쉽게 먹을 수 있도록 빵을 준비하는 모양이다.

"나 해주려고 일찍 일어난 거야?"

"응. 시험 많이 볼 텐데 배고플까 봐."

"내가 분명 꽉 끌어안고 잤는데 어떻게 탈출했어?"

"나도 이제 꽤 강해졌거든. 잠에 빠진 호연이의 팔은 몰래 탈출할 수 있어."

자랑스러운 듯 웃는 남다은을 보니 아침부터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았다.

뭔가 신혼부부 같네.

나는 뒤에서 남다은을 끌어안았다.

부드러운 여자의 몸이 내 정신을 각성시켜주는 것 같았다.

"으음, 호연아. 아침부터?"

"… 아니. 이건 그냥 생리현상이야. 딱히 그럴 의도는 아니었어."

아침에 다리 사이가 단단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고 말했는데도 남다은은 손을 아래로 내렸다.

"다들 일어나기 전에, 한 번만 할까?"

남다은은 소심하게 웃으며 손을 움직였다.

그 약간의 손길이 엄청나게 기분좋아서, 나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빵이 식긴 할 텐데 호연이가 좋다면… 아, 으음…."

나는 대답 대신 남다은의 가슴에 손을 올렸다.

부드러운 살결이 내 손에 가득 찼다.

… 아침 먹고 갈 수 있으려나.

*

나는 토스트를 입에 문 채 집 밖을 빠져나와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몇 걸음지나 천천히 걸으며 토스트를 마저 먹기로 했다.

"… 더럽게 불편하네."

냠.

예전에 보던 애니메이션에서는 이런 걸 어떻게 한 거지?

달리니까 식빵이 다 찢어지잖아.

사기꾼들 같으니라고.

토스트를 처리한 후에는 마력을 끌어올리며 아카데미까지 달려갔다.

어떻게 된 게 매일 지각하는 거 같지?

아카데미에서 집까지 그렇게 먼 거리도 아닌데 항상 이런 느낌이다.

물론 오늘은 남다은과 사랑을 나누느라 늦긴했지만.

'일단 김진혁 교수부터 만나러 가야지.'

A클래스의 담당 교수 김진혁.

아침부터 일정에 관해 면담을 하자고 해서 이렇게 달려가는 중이다.

나는 아카데미를 지나 교수의 연구실이 모인 건물로 향했다.

김진혁 교수의 연구실은 3층이었다.

똑똑­

"이호연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응. 들어와라."

대답을 듣고 문을 열자 평범한 연구실의 모습이 보였다.

사무용품들이 놓여있고, 커다란 책상과 학위들.

임솔 교수님의 연구실도 이 정도면 하면 좋을텐데.

나는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갔다.

"조금 늦었군. 곧 시험이니까 길게 말할 시간이 없겠어."

"죄송합니다."

"그럴 수 있지. 어제 귀국했으니까. 편한 곳에 앉아."

"네."

"요즘 난리가 났더구나. 천재 마법사 이호연 생도."

"음, 감사합니다. 교수님.

나는 김진혁 교수를 바라보며 소파에 앉았다.

검은 양복의 올백 머리인 교수는 테이블에 놓은 서류를 하나 둘 씩 집었다.

갑자기 천재 마법사라는 말은 왜 꺼내는거지?

"너 때문에 내 일이 몇 배가 됐는지 모르겠다. 어딜 그렇게 쑤시고 다니는 거야."

"죄송합니다."

"죄송할 일은 아니지. 빅토리아 아카데미 입장에서는 자랑스러운 일이다. 다만 내가 귀찮을 뿐."

한숨을 쉰 김진혁 교수는 종이를 넘기면서 말을 이었다.

"너도 알겠지만, 오늘 하루 내내 추가시험을 봐야 한다. 마법학 필기와 실기시험은 다른 생도들과 같이 치루고, 남은 시간은 엘리스 생도와 계속 시험만 보게 될 거야."

나는 김진혁 교수가 내민 일정을 확인했다.

'무슨 일정이 이래.'

일정에는 빼곡히 시험이라는 단어가 적혀있었다.

쉬는 시간이 단 30분도 없었다.

시험. 시험. 시험. 시험. 시험. 시험. 시험. 시험.

이동하는 시간을 빼면 점심시간도 얼마 되지 않았다.

"… 오늘은 엄청 바쁘겠네요."

"나도 차라리 시험을 미루자고 했지만, 학생회장과 이사장님이 허락했다. 너도 원했다고 하던데."

"맞긴합니다."

나도 할 일이 한 두개가 아니다보니, 시험에 시간을 쓰는 건 별로 원하지 않았다.

차라리 하루 바쁘게 돌아다니는 게 낫지.

"이사장 님과 학생회장은 왜 너한테 그렇게 신경을 쓰는 건지… 가만히 있어도 잘할 놈인데 말이야. 아무튼. 알았으면 빨리 시험 보러 가라. 나도 일찍부터 업무를 해야 하거든."

"알겠습니다."

"너무 사고 치지는 말고. 졸업하기 전에 너무 튀는 것도 좋지 않아."

"충고 감사드립니다."

나는 교수님께 고개를 숙이고 연구실을 빠져나왔다.

'튀는 것도 좋지 않다라….'

김진혁 교수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는 간다.

아카데미에서 까불던 놈들이 점점 사라지는 걸 직접 본 교수의 충고겠지.

오래 봤지만 사람 자체가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쩌겠어. 이미 되돌리기엔 늦은걸.

오히려 앞으로 얼마나 더 튈 지 걱정이다.

나는 스마트워치를 켜고 수린 누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생각난 김에 인사라도 해야지.

­ 수린 누나 : 수린 누나. 저 시험 보러 왔어요. 이따 연락드릴게요!

요즘은 수린 누나한테 제일 메시지를 많이 보내는 것 같다.

아무래도 관심이 제일 필요한 사람이니까.

사실 내 행동을 보고하라길래 너무 귀찮지않을까 걱정했는데, 누나가 하는 일이 워낙 많아서 일하는 시간에는 답장이 잘 안 온다.

지금도 답장을 못 보내는 걸 보니 바쁜 모양이네.

이따가 학생회실에 꼭 들려야지.

나는 스마트 워치를 끄고 시험장으로 향했다.

첫 시험은 헌터학 시험.

엘리스와 같이 보는 시험이다.

드르륵­

시험장에 들어가 보니 엘리스의 뒷모습이 보였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걸 보니 책이라도 읽는 모양.

나는 그녀의 옆에 앉으며 말을 걸었다.

"좋은 아침. 엘리스."

"왔구나."

"응. 미리 와있었네?"

"교수님과 면담을 더 일찍 했거든."

내 얼굴을 슬쩍 바라본 엘리스는 읽던 책을 덮었다.

대화에 집중해주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네.

"일정 봤어? 하루종일 시험이던데."

"어쩔 수 없지. 일주일 치를 하루 만에 보는 거니까.

엘리스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과 똑같은 일정표를 가지고 있었다.

사실 나는 이미 내용을 대부분 알고 있어서 괜찮은데, 엘리스는 정말 힘들지 않을까.

"프랑스에 있다가 한국에 오니까 어때? 역시 프랑스가 편하지?"

"딱히 그런 건 없어. 아빠랑 언니한테 연락이 너무 와서 귀찮긴하지만."

"아버님하고 아이린 씨한테?"

"응. 특히 언니한테 연락이 많아졌어."

우리는 교수가 올 때까지 평범한 대화를 나눴다.

역시 잠깐 비는 시간에는 예쁜 여자랑 대화하는 게 제일 즐겁다.

'그러고 보니 내 팬티에 대한 것도 물어봐야 하는데.'

어제 밤에 결국 엘리스에게 답장이 도착하지 않았다.

자기가 집으로 찾아오라고 했으면서 답장을 안 하면 어떡해.

팬티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내기가 힘들었지만,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음, 엘리스. 가져갔던 팬티는 안 줄 거야? 어제 집으로 오라고 했으면서 메시지에 답장을 안 하던데."

"…… 너무 충격을 받아서 답장을 못 했어. 왜 그런 걸 들고 다니는 거야."

"실수였어. 짐 싸는 걸 도와주다가 주머니에 들어갔나 봐."

"… 확실해?"

"당연하지. 내가 뭐가 좋다고 그걸 들고다니겠어."

엘리스는 이상한 걸 쳐다보는 눈으로 날 쳐다봤다.

그렇게 쓰레기처럼 보지 말아 줬으면 좋겠는데.

"그거 덮느라 엄청 귀찮았으니까 다음부터는 그러지 마."

"아, 어쩐지 기사가 안 나던데. 진짜 고마워."

스칼렛이 엘리스가 가져갔다는 말을 듣자마자 고개를 끄덕인 게 이래서구나.

아이리스 길드가 한국에도 힘이 있는 건 알았지만, 여론까지 컨트롤 할 줄은 몰랐다.

"네 잘못이니까 팬티는 압수할 거야."

"응. 당연… 잠시만, 압수라고?"

"불만 있어? 그거 덮느라 아이리스 길드에서 인력을 얼마나 많이 썼는데."

"어…. 불만은 없지. 근데 그걸 쓸 곳이 있어?"

"… 폐기할거야."

나 대신 일을 처리해줬으니 그 정도는 줄 수 있다.

문제는 내 팬티가 아니라 릴리아나의 팬티라는건데… 뭐, 괜찮겠지.

어제 아무 말도 없었던 걸 보면 어차피 릴리아나도 까먹을 거다.

근데 팬티를 폐기할거면 압수가 아니라 이미 버렸다고 하면 되는 거 아닌가?

드르륵­

"자, 이미 모였네요. 시험 시작합시다!"

때마침 시험지를 가지고 여교수가 들어왔다.

나는 엘리스의 옆에서 떨어져 여교수가 주는 시험지를 받았다.

'오랜만이야.'

눈앞에 놓여진 시험지를 보니 이제야 내가 아카데미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미 빅토리아 아카데미의 교육과정은 모두 익힌 지 오래.

나는 천천히 기억을 되짚으며 문제를 체크해나갔다.

*

아침부터 아카데미에 와서 시험을 보려니 기분이 참 이상했지만, 헌터학 시험을 제외하고도 두 과목을 더 치르고나니 시간이 꽤 지났다.

지금 시간이면 A클래스 생도들도 거의 등교했겠지.

루시루미와 남다은도 있을 거다.

나는 A클래스로 향했고,예상대로 대부분의 A클래스 생도들이 A클래스에 모여있었다.

시험 마지막 날이라 그런지 생도들의 텐션이 굉장히 높았다.

­ 빨리 집에 가고 싶다….

­ 그러고 보니 오늘 이호연도 오는 거 아니야? 엘리스는 있던데 이호연은 어디갔지?

­ 바보야. 저기 들어왔잖아.

­ 헉….

헉은 무슨 헉이야.

나는 살짝 웃으며 내 얘기를 하던 생도들을 지나갔다.

저 애들이 보기엔 내가 연예인처럼 보이겠지.

머리로 이해하고 있지만 저런 반응을 가까이서 보니까 느낌이 좀 신기하네.

난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폈다.

분명 저기 루시루미가 있어야 하는데.

"다은양. 이건 어떤가요?"

"괜찮은 것 같아."

"루미, 내가 예쁘다고 했잖아. 근데 이호연은 언제 오는 거야? 추가 시험이 아직도 안 끝났나?"

… 뭐지.

나는 루시 루미와 딱 붙어있는 남다은을 보며 눈을 끔벅거렸다.

재들은 언제 저렇게 친해진 거야?

"어? 호연 씨!"

"뭐야. 거기서 왜 가만히 있어?"

곧 날 발견한 루미와 루시가 내게 다가왔고, 나는 양손을 잡히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미안. 루시랑 루미를 너무 오랜만에 봤더니 넋을 놓았네."

"그게 뭐야. 큭. 빨리 이 쪽으로 와. 다은이도 있어."

"맞아요. 다은 양하고도 인사해야죠."

"… 응. 그렇지."

나는 어이없게 웃으며 남다은에게 다가갔다.

남다은도 루시와 루미에게 끌려오는 날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는데, 곧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이야. 호연아."

"… 그러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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