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야겜에 빙의했다-366화 (366/648)

〈 366화 〉 366화. 복귀 (3)

* * *

"대단하십니다. 호연 님."

"애기 아빠… 이번에는 좀 그랬어."

"…."

기자들을 피해 어떻게든 공항을 빠져나오자 스칼렛과 레베카가 보였다.

날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인데, 둘 다 떨떠름한 표정인 걸 보니 공항에서 벌어진 일을 아는 것 같았다.

"인생이 참 쉽지 않네요."

"애기 아빠, 그렇게 넘어가려고 하는 거야?"

"진짜 인생의 쓴맛이 뭔지 맛봐야 정신을 차릴 것 같습니다."

"… 미안. 근데 나 어떡하면 좋아?"

팬티가 떨어지자마자 주웠으니 사진을 찍은 기자는 없을 거다.

하지만 본 사람은 많단 말이지.

혹시나 한 명이라도 찍었다면 모든 기사에 퍼갈테니 더욱 큰일이고.

"그래서 그 검은 팬티는 대체 뭐였나요."

"릴리아나 거야. 왜 내 주머니에 들어있는지 모르겠네. 아마 짐을 싸다가 실수로 넣었나 봐."

"다행이네! 나는 혹시나 애기 아빠가 일부러 챙긴 줄 알았어."

"… 그럴 리가요."

­ 아닌데. 분명 이호연이… 읍.

나는 목걸이로 변한 릴리아나를 꾹 누르며 레베카의 눈을 피했다.

그나저나 기자들은 언제부터 있던 거지?

레베카와 스칼렛은 엘리스가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는 동안 먼저 출발했으니 상황을 좀 알고 있을 거다.

"근데 기자들은 왜 이렇게 많아?"

"어디서 정보가 샌 지 모르겠지만 이미 기자들이 깔려있었습니다."

"아니, 아이리스 길드의 보안이 그 정도밖에 안 돼?"

아니면 한국에서 정보가 퍼졌나?

항공사의 직원이나 같이 탄 손님이 퍼트린 걸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 정도의 거물인지는 모르겠지만.

"벌써 기사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큰일났네."

내일부터 팬티남이라고 불리는 거 아니겠지?

천재마법사 대신 팬티마법사라고 불리면 진짜 죽고 싶을 것 같다.

"근데 애기 아빠의 치부에 대한 얘기는 없어."

"정말요?"

"응. 내가 훑어봤는데 그런 내용은 없어. 가까이 있는 기자들은 제대로 봤을텐데, 이상하네?"

나는 레베카의 스마트 워치를 받아 기사를 살폈다.

[천재 마법사 이호연 귀국. 프랑스의 자랑 엘리스도 함께.]

[(포토) 이호연 엘리스. 공항에 팔짱 낀 채 등장. 당당하고 다정한 모습]

[빅토리아 아카데미의 특별시험. 이호연 특혜 논란?]

"진짜 없네?"

이호연이라는 타이틀을 단 기사들이 엄청나게 올라와 있었는데, 팬티에 대한 언급은 한 마디도 없었다.

아예 검은 천에 대한 내용도 없는 것도 신기했다.

설마 그걸 아무도 못 봤다고?

"… 그걸 아무도 못 본 건가요?"

"글쎄…? 멀리서 본 우리가 봤으면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확실히 봤을 텐데."

"호연 님. 그러고 보니 그 팬티는 어디 갔죠?"

"엘리스가 가져갔어."

"아…."

­ 이 팬티 도둑년! 분명 그 섹시한 팬티로 이호연을 유혹하려고 하는거야!

릴리아나는 분개하며 웅웅 떨었고, 엘리스가 가져갔다는 말을 들은 스칼렛은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왜?"

"아닙니다."

"아니, 뭔데."

"빨리 집이나 돌아가시죠. 남다은 양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그런가? 일단 집으로 가자."

"애기 아빠 여자친구가 참하더라구."

스칼렛의 말이 맞다.

기사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지.

팬티에 대한 내용이 없으면 좋은 건데 뭐 어때.

시험이 다 끝났을 시간이니, 남다은이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앞서가는 스칼렛을 따라 집으로 걸어갔다.

*

엘리스의 저택.

공항에서 돌아오자마자 집으로 돌아온 엘리스는 익숙한 침대에 몸을 눕혔다.

"네. 팬티나 검은색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무조건 막으세요. 속보만 막으면 나머지는 금방 처리할 수 있으니까요."

기자 중에서는 빠른 속보를 위해 최소한의 절차만 밟고 기사를 쓸 수 있는 기자도 많다.

게다가 제대로 된 언론사가 아닌 개인이나 소수가 운영하는 곳은 그런 절차도 없으니, 아예 그런 단어 전체를 필터링하는 편이 낫다.

뚝­

전화를 끊은 엘리스는 그제서야 외투를 벗었다.

이다음부터는 정보원들의 영역이다.

꽤 복잡한 일을 요구하긴 했지만, 아이리스 길드가 쌓아온 영향력은 전 세계에 퍼져있었다. 한국 지부가 예전부터 작업해놓은 인맥을 사용하면 그리 어렵진 않을거다.

"이 정도면 되겠지."

사실 괘씸함을 생각하면 전 세계적으로 창피를 주는 게 맞겠지만… 당황하는 얼굴을 본 것만으로 만족이다.

자신의 남자가 쓰레기라는 사실을 굳이 알릴 필요는 없다.

언젠가는 이호연과 연인이라는 걸 밝힐텐데, 그 때 엘리스의 이미지에도 손상이 간다.

"이건 진짜 뭐야?"

이호연의 당황한 얼굴을 떠올리리며 미소를 짓던 엘리스는 주머니에 있던 검은색 천을 꺼냈다.

팔짱을 꼈을 때 당황하지 않길래 아쉬웠는데, 설마 이런 사고를 직접 치다니.

"…."

검은색 팬티를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던 엘리스는 놀라서 입을 벌렸다.

이걸 팬티라고 할 수 있나?

통풍이라도 하려는 건지 구멍이 송송 나 있고, 가운데에는 하트 모양 구멍이 나 있었다.

"여기 구멍이 왜… 아."

음란하고 발칙한 구멍의 존재의의를 알아버린 엘리스는 팬티를 벽에 집어 던졌다.

탁­ 하는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진 천 조각을 혐오스럽게 바라본 엘리스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진짜…. 찾으러 오기만 해봐."

엘리스는 이호연의 성욕에 몸을 부르르 떨며 욕실로 걸어갔다.

분명히 여자한테 저 팬티를 입혀 음란한 섹스라도 하려는 생각이었겠지.

미친 변태 같은 놈.

'… 잠시만.'

욕실로 들어가던 엘리스는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검은색 팬티.

저걸 왜 가지고 왔을까.

공항에서 집까지는 자신과 함께 올 게 뻔하잖아.

그런데 가방도 아니고 주머니에 팬티를 넣어놓는다?

이상해도 너무 이상했다.

자신이 아는 이호연은 성욕이 많고 가끔 맹하지만, 적어도 멍청하지는 않았다.

'혹시 나한테 주려고?'

엘리스는 눈을 끔벅거리며 마른 입술을 혀로 핥았다.

아예 팬티도 일부러 떨어뜨려서 내게 신경 쓰게 만들려고 한 건가…?

'아니, 그건 아니겠지.'

이호연이 일부러 그런 행동을 하는 건 말이 안 된다.

엘리스는 침착함을 잃은 자신의 볼을 챱챱­ 때리며 떨어진 팬티를 주워들었다.

다시 봐도 너무 음란한 팬티지만, 그래도 처음 볼 때보단 나았다.

"… 입어나 볼까. 맞는지 안 맞는지."

부스럭부스럭.

엘리스는 천천히 팬티를 갈아입었다.

아주 잠깐.

딱 한 번만 입어볼 생각이었다.

"히이익…."

하지만 검은 팬티의 위력은 대단했다.

예상보다도 훨씬 통풍이 잘되는 팬티는 다리 사이에 시원한 바람이 스치게 했고, 깜짝 놀란 엘리스는 팬티를 벗어 다시 벽에 집어 던졌다.

*

"언니! 오빠가 맛있는 빵 사 오는 거 기억하고 있을까?"

"당연하지. 호연이는 똑똑하거든."

이호연의 집.

동생 남다희와 같이 간식을 먹던 남다은은 몇 초에 한 번 씩 스마트 워치를 확인했다.

분명 비행기에서 내렸다고 했는데, 왜 안 오는걸까.

공항에서 집까지 거리가 이렇게 멀었나?

"아침부터 기다렸는데. 힝. 오빠는 바보. 빵 맛있는 거 안 사 오면 릴리아나 언니랑 같이 때릴거야."

"언니도 같이 혼낼게."

남다은은 툴툴대는 남다희를 달래며 커피를 홀짝거렸다.

일주일이 넘도록 그렇게 기다렸는데, 막상 오는 날이 오니 기분이 이상했다.

왜 그 짧은 시간을 못 기다렸는지 이상함을 느꼈다.

그래도 다희에게 힘든 티를 내지는 않았으니 다행이었다.

띠리링­ 띠리링­

"어! 오빠 왔나 봐!"

"… 그러게. 나가보자."

남다은은 남다희의 손을 잡고 마당으로 나왔다.

그리고 양손에 짐을 한가득 가져오는 이호연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의 뒤에는 레베카와 스칼렛, 원래 몸으로 돌아온 릴리아나까지 있었지만 남다은의 시선은 한 명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흠흠.

남다은은 다가오는 이호연을 보며 표정을 관리했다.

너무 기쁜 티를 내면 어린 애같을거다.

아무것도 아닌 듯 맞이해야지.

"저기 다은 양과 다희 양이 기다리고 있네요."

"응? 진짜네. 왜 바깥에 나와 있지?"

"애기 아빠 여자친구가 진짜 참하다니까?"

점점 이호연의 목소리가 가까워졌다.

이제는 눈앞까지 왔는데도, 남다은은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마치 발에 풀이라도 붙은 것처럼 꼿꼿이 서 있었다.

"오빠! 맛있는 빵 사 왔어?!"

"당연하지. 3일 내내 먹어도 남을걸?"

"안돼. 반은 내 꺼야! 서큐버스는 빵을 먹고 살아야 해!"

다희가 이호연의 선물을 받으며 기뻐할 때.

남다은의 바로 앞에 선 이호연은 가만히 서 있는 남다은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은아. 오랜만에 봐도 예쁘네. 근데 왜 가만히 서 있어?"

"…."

꾸우욱­

무언가 말을 하려고 했지만, 입 밖으로 나오지가 않았다.

남다은은 본능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그의 따뜻한 체온과 단단한 등.

이제서야 그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이호연도 갑자기 안긴 남다은을 보며 살짝 놀랐지만, 곧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다녀왔어."

"응. 고생했어. 호연아."

얼굴을 부비적대며 이호연의 냄새를 맡던 남다은은, 뒤에서 들리는 말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이거봐. 얼마나 착해."

"바람둥이에게 아까운 여자긴 하죠."

"… 뒤에서 이상한 소리 좀 하지말아줄래요?"

"아앗…."

남다은은 자신에게 쏠리는 시선에 입술을 깨물고는 집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

"언니는 계속 먹었잖아! 이제 나도 먹을 거야!"

"안돼. 이 바게트는 또 먹어도 맛있거든."

릴리아나와 남다희는 돌아오자마자 빵을 두고 싸우기 시작했다.

빵집을 거의 털어왔는데 왜 싸우는 걸까.

애초에 애한테 양보할 생각은 왜 안 하는 거야?

"일주일간 집 청소만 한 거야? 엄청 깔끔하네."

"그런 건 아니야. 둘이 쓰는 공간은 좁았거든."

남다은은 뭐가 그렇게 좋은지 미소를 지으며 날 바라보고 있었다.

뭔가 부담되네.

"우리 애기 아빠 여자친구가… 다은이 맞지?"

"네. 맞아요. 레베카 씨."

"아주 착해. 딱 내 마음에 들어."

"… 다은 양은 건들지 마세요. 순수한 아이예요."

"나도 순수한데 무슨 소리야. 스칼렛 양."

곧 여자들끼리 대화를 시작했는데, 사람이 많으니까 진짜 시끄러워진 기분이다.

나는 틈을 타 스마트워치를 보며 메시지를 확인했다.

한국에 도착했다고 연락을 돌렸으니, 답장도 해야지.

답장하는 것도 일이다.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라서 하나하나 신경 쓰는 게 머리가 아팠다.

"… 응?"

메시지에 하나하나 정성스레 답장을 쓰고 있는데, 메시지 하나가 눈에 걸렸다.

­ 임솔 : 고생했어. 입국하자마자 미안한데, 급한 일이 있으니까 연구실에 들르도록 해.

급한 일?

이건 또 뭐야.

나는 임솔 교수 님의 메시지를 보며 눈을 찌푸렸다.

이 사람이 평소에 이런 말투를 썼었나?

너무 진지한 말투잖아.

'엘리스한테도 가야 하는데….'

릴리아나의 팬티를 훔쳐 간 엘리스의 집에도 가야 한다.

엘리스뿐만이 아니다.

수린 누나도 봐야 하고, 백아영도 만나야 한다.

내일은 루시와 루미도 만날 테니 정말 더럽게 바빴다.

"호연아, 무슨 일 있어?"

"응. 교수님이 부르시네. 급한 일 같아서 가봐야 할 것 같아."

"아… 응. 오늘 안에 돌아오는 거지?"

"당연하지. 저는 잠시 나갔다 올게요."

나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남다은의 손을 살짝 잡아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사람들은 이제 내가 나가는 건 신경도 안 쓰이는지 빵을 가지고 대화하고 있었다.

그래. 차라리 저게 낫지.

괜히 나갈 때 마다 미안해하는 것도 불편하다.

집 밖에는 아직 해가 쨍쨍했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와 칙칙한 건물들을 보니 진짜 한국에 온 게 실감이 났다.

'급한 일은 대체 뭐야?'

괜히 걱정되게 만들고 있어.

나는 오랜만에 한국의 냄새를 맡으며 임솔 교수님의 연구실로 달려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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