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야겜에 빙의했다-365화 (365/648)

〈 365화 〉 365화. 복귀 (2)

* * *

"우리 딸. 역시 지금이라도 전용기를 타고 가는 편이 낫지 않을까? 귀찮기도 하고 사고가 날 가능성도 있고…."

"아버지. 엘리스의 여행이 편안하도록 비행기의 좌석 전체를 사버리는 건 어떨까요."

"지금이라도 그래야하나?"

"…제발 둘 다 그만 좀 해."

"…."

공항에 도착한 뒤.

나는 아이작과 아이린의 대화를 들으며 헛웃음을 지었다.

이럴 것 같더라.

저 사람들이 엘리스를 그냥 보낼 리가 있나.

아이작과 아이린은 거의 울기 직전의 얼굴로 엘리스를 붙잡고 있었는데, 보기만해도 답답한 광경이었다.

"허니, 이제 그만 해요. 아이린 너도 그만하고."

"으음, 그래…."

"… 알겠어요."

다행히 같이 온 소피아 씨는 그나마 정상이었다.

아이작과 아이린을 중재해주는 게 딱 완벽한 어머니의 모습이다.

"잘 다녀오렴. 엘리스. 다들 너를 사랑해서 그러는 거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으응. 알아요."

"엘리스. 드디어 아빠의 마음을…."

대화가 길어질 것 같아서, 나는 잠시 뒤로 빠졌다.

솔직히 한 두 번은 재밌었지만 계속 듣기에는 지루했다.

딸 바보여도 저건 너무 심하잖아.

저러니까 엘리스가 싫어하지.

­ 우리 비행기는 언제 타?

"글쎄다. 30분 내에 탈 것 같은데."

나는 공항을 돌아다니며 릴리아나와 대화를 나눴다.

출발 시간까지 1시간 정도 남았으니, 슬슬 준비를 해야 한다.

"아, 애들 줄 선물이나 사야겠네."

­ 스읍, 빵을 사가는 게 어떨까?

"맛있었던 빵 좀 얘기해봐. 사가자."

공항에 있던 고급 빵집에서 릴리아나의 추천 메뉴를 전부 샀다.

품질 유지 마법이 걸린 고급 포장 박스도 샀으니 한국에서도 맛있게 먹을 수 있겠지.

그 외에도 다른 히로인들에게 줄 만한 악세서리같은 선물을 구입하고 나니 양손이 빵빵해졌다.

­ 이제 가자!

"응."

쇼핑을 마치고 원래 자리로 돌아오자 엘리스의 인사도 끝난 모양이다.

"이제 갈게요."

"엘리스. 언제든지 힘들면 언니한테 연락해. 알겠지?"

"흑, 우리 딸… 방학에도 올 거지? 아빠는 계속 기다리고 있으마…."

"네. 당연하죠. 그런데 이제는 진짜 가봐야 해요."

나는 아직도 저러고 있는 아이작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귀찮아하며 대답하는 엘리스의 옆에는 아이린도 보였다.

'아이린과도 오늘이 마지막이네.'

연락처를 주긴 했지만, 얼굴을 보는 건 오늘이 끝이다.

"…!"

그때, 마침, 내 쪽을 바라본 아이린과 눈이 마주쳤다.

가볍게 웃으며 눈인사를 하자 눈을 파르르 떤 아이린은 내게서 눈을 피했다.

나도 인사나 하러 가볼까.

어차피 길드장님한테도 인사를 하긴 해야 한다.

일주일이나 내 편의를 봐줬으니 감사를 전해야지.

"길드장님."

"흑… 음? 뭐냐. 이호연."

"인사드리려고 왔죠. 일주일간 감사했습니다. 부 길드장님도요."

"으응. 아니에요. 호연 군도 고생했어요."

"뭐… 그래. 고생은 했지.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허니, 또 왜 그래요. 응?"

툴툴거리는 아이작을 내버려 두고, 아이린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아이린 씨도 감사했습니다. 여러모로 챙겨주셔서요."

"… 응."

아이린은 가볍게 인사한 후 눈을 돌렸다.

딱히 대화를 이어가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뭐, 나라도 그렇겠지.

★히로인상태창

[아이린]

─[호감도: 30 ] (+0.2)

─[성욕: 50]

─[식욕: 40]

─[피로도:40]

현재상태: 엘리스랑 같이 있게 해도 괜찮을까…. 역시 내가 보호해야….

엘리스와 관계를 끊는다고 해서 그런지 호감도가 30까지 올랐다.

이 정도면 곧 연락이 오지않을까?

나는 잠시 빠져 엘리스가 인사를 마무리하길 기다렸고, 곧 인사를 끝낸 엘리스가 다가왔다.

"미안, 기다렸지?"

"괜찮아. 다들 널 많이 좋아하나 보네."

"귀찮아서 문제지."

나와 엘리스는 비행기에 타기 위해 탑승장으로 향했다.

*

­ 손님 여러분, 대한민국에 도착했습니다. 비행기가 완전히 멈춘 후에 물건을….

"… 벌써 도착이야?"

나는 시계를 보며 눈을 크게 떴다.

비행기에 탄 지 두 시간도 안 된 것 같은데 안내방송이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너는 시간표도 안 봤어?"

"응. 귀찮아서."

"…."

지금 시간은 오후 4시.

분명 아침부터 비행기를 탔는데 내려보니 오후였다.

시간을 손해보는 느낌이네.

우리는 짐을 챙기며 비행기에서 내릴 준비를 했다.

워낙 챙길 게 많아서 조금 복잡했지만, 그래도 집에 간다는 생각에 마음은 편했다.

"밖에서는 행동을 조심해."

"응?"

그때, 엘리스가 이상한 말을 꺼냈다.

조심하라니 뭘 조심하라는 거야?

"뭘 조심해?"

"사람들이 많을 거야."

"프랑스 공항에서는 얼마 없지 않았어?"

프랑스 공항에서는 이상할 정도로 엘리스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다.

아무리 시간이 이른 아침이었다고 해도 그렇지.

분명 설정상 엘리스는 연예인급 인기를 가지고 있을 텐데, 아이리스 길드의 정보단속으로 아무도 몰랐던 건가?

그렇다면 우리가 한국에서 내리는 것도 모를 거 아니야.

"나가면 알 거야. 조심하고, 잘해."

엘리스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바깥으로 나오자, 그제서야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 사람이 뭐 저렇게 많아?!

"…."

나도 이해가 안 되네.

내가 이렇게 유명했나?

찰칵­ 찰칵­

공항은 인파로 가득 차 있었다.

카메라를 들이대는 기자들부터… 내 팬클럽으로 보이는 사람들까지.

팬클럽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천재 마법사 이호연 팬클럽.]

[이호연의 복귀를 환영합니다.]

대놓고 팬클럽이라고 쓰여 있었거든.

­ 팬클럽? 너 팬클럽도 있어?!

"뭔데… 나도 모르는 팬클럽이 있냐."

릴리아나는 깜짝 놀란 듯 물었다.

근데 이번에는 나도 놀랐다.

인터넷에 내 이름을 자주 검색해봤는데, 내가 몰랐던 거면 대체 어디 숨어있던 거야.

어둠의 팬클럽이라도 되는 거야?

"… 나한테 왜 팬이 있지?"

"대단하네. 천재 마법사 씨."

"아니, 내 팬은 있는데 왜 네 팬은 없어?"

보통 예쁜 여자에게 팬이 있는 게 정상 아닌가?

왜 나 같은 놈한테 팬클럽이 생긴 거야.

"나는 프랑스에 있어. 어차피 빅토리아 아카데미를 졸업하면 프랑스로 돌아갈 테니 한국에 팬이 없는 게 정상이지."

"아, 그렇구나…. 근데 왜 프랑스에서는 안 보였지?"

"글쎄. 아침이라 몰랐나봐."

­ 나도 없는 팬클럽이 있다니….

릴리아나는 충격을 받은 듯 중얼거렸다.

뭔가 부담이네.

기자들을 이렇게 직접 보는 건 오랜만이다.

찰칵­ 찰칵­

부담스러운 셔터소리를 들으며 공항 출구를 향해 걸어갔다.

사람들이 많이 몰려서 가드들이 길을 막고 있었는데, 진짜 연예인이라도 된 기분이다.

스윽­

"이호연 생도! 프랑스에서 생포한 켄타우로스에 대한 인터뷰를 부탁드립니다!"

"빅토리아 아카데미의 특혜 논란에 대해 한 마디만 부탁드립니다!"

어우, 시끄러워.

기자들의 바로 옆을 지나가자 시끄러워서 눈을 찌푸렸는데, 갑자기 팔에 이상한 감촉이 느껴졌다.

엘리스가 내 팔을 붙잡은 것이다.

엘리스는 팔을 잡은 걸로도 모자라자연스럽게 팔짱을 꼈다.

얘는 또 왜 이상한 짓을 하는 거야.

나는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엘리스. 왜 그래?"

"남녀가 같이 입국할 때는 이게 매너야. 뉴스도 안 보고 살아?"

"… 그런가?"

생각해보면 시상식 같은 곳에서 항상 팔짱을 끼던데, 그거랑 비슷한 건가 보네.

난 몰랐지.

"오빠! 팬이에요! 꺄아아악!"

연예인들이 이런 기분인가.

긴장은 안되는데, 사람들이 나만 쳐다보니까 약간 부담스럽긴 했다.

찰칵­ 찰칵­

­ 이봐, 둘이 팔짱을 끼고 있는데?! 사진 찍어!

­ 오빠! 오빠!! 그년 뭐야!!!

그리고, 팔짱을 낀 채 걷다 보니 이상한 말들이 계속 들려왔다.

매너치고는 반응이 너무 격한데?

"야. 팔짱 끼는 거 맞아? 너 거짓말한 거지."

"……."

엘리스는 내게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어깨가 떨리는 걸 보면, 웃음을 참고 있지 않을까.

"에휴…."

또 속았네.

지금이라도 풀까 했지만, 이미 사진은 다 찍혔다.

금방 기사까지 나오겠지.

'다른 여자들이 보면 어쩌냐.'

모르겠다.

그때라도 속았다고 얘기하지 뭐.

워낙 위기가 많다 보니 이 정도는 위기로 느껴지지도 않았다.

나는 오히려 엘리스와 몸을 딱 붙이며 걸어갔다.

"뭐 하는 거야?"

"딱 붙어서 가려고."

"… 놔."

몸을 딱 붙이는 게 창피한 건지, 엘리스는 내게서 거리를 뒀다.

"내가 창피해?"

"아니, 이렇게까지 붙을 필요는 없잖아…!"

나는 엘리스의 반응이 재밌어서 몸을 더욱 붙였다.

자기가 먼저 시작해놓고 한술 더 뜨니까 왜 창피해하는 거야.

몸을 붙이려는 나와 떨어지려는 엘리스의 옷이 스치며 비벼졌다.

기자들이 바로 옆에 있는데도 딱 붙어있으니 오히려 창피해진 모양이다.

"이호연 생도!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엘리스 생도와 무슨 사이인가요!"

"하지 말라니까…!"

"네가 먼저 시작했잖아."

우리는 기자들을 스쳐지나갔다.

내가 엘리스랑 붙을 수록 팬클럽 사람들이 소리를 질러댔지만,뭐 어쩌겠어.

여자가 그렇게 많은데 팬클럽이 있는 건 이상하다.

나 말고 다른 사람을 찾아가도록 만들어줘야지.

나는 기자가 있는 것도 신경 쓰지 않으며 엘리스에게 더 달라붙었는데, 곧 내 주머니 쪽에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무언가 빠져나가는 느낌.

무의식적으로 시선을 내리자, 바닥에 떨어진 검은색 천이 보였다.

"어?"

바닥에 떨어진 릴리아나의 팬티를 보며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췄다.

아니, 시발.

이게 왜 여기 있어?

어제 분명히 바지에 쑤셔 넣고….

'잠시만.'

기억났다.

어제 릴리아나와 밤늦게까지 짐 정리를 하고 바지를 대충 벗어놓고 잠이 들었는데, 팬티가 들어있다는 사실을 까먹은 채아침에 다시 그 바지를 입고 왔다.

잠깐 장난치려고 한 거라 까먹기도 했고면적이 작은 팬티라 주머니에 들어 있는 것도 몰랐다.

"저거 뭐야? 손수건?"

"이호연 생도! 한 마디만 부탁드립니다!"

"혹시 팬티 아니야?"

주변에 있던 기자들이 팬티를 확인했다.

다행히 가드가 있어서 바로 팬티라는 걸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는데, 슬프게도 엘리스는 바로 내 옆에 서있었다.

"와…."

엘리스는 바닥에 떨어진 팬티와 날 번갈아 보며 입을 벌렸다.

평소라면 이런 쓰레기가 어딨냐며 매도했을텐데 너무 어이가 없어서 그런 지 까먹은 모양이다.

'자연스럽게 넘어가자.'

빠르게 생각을 정리했다.

사실 뭐… 엄청 이상한 상황은 아니잖아.

불법 행위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주머니에서 팬티 정도는 나올 수도 있는 거 아니야?

일단 팬티를 주워야한다.

생각을 많이 해서 그렇지 실제 시간은 몇 초 지나지 않았다.

기자들이 사진을 찍기 전에 챙겨야지.

나는 팬티를 줍기 위해 몸을 숙였다.

하지만, 내 손보다 빠르게 팬티를 채가는 손이 있었다.

"엘리스?"

엘리스는 내 팬티를 쥐고, 슬쩍 기자들의 눈치를 살폈다.

뭐야.

너 왜 그러는데.

"이호연 생도! 주머니에서 나온 물건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엘리스 생도와는 무슨 관계인가요!"

아직도 열심히 마이크를 들이미는 기자들을 본 엘리스는 슬쩍 미소를 짓더니, 내 팔짱을 강하게 끼며 내게 속삭였다.

"… 우리 집으로 찾으러 와."

엘리스는 릴리아나의 팬티를 자신의 주머니에 우겨넣고, 팔짱을 풀더니 우다다 앞으로 달려 나갔다.

저렇게 열심히 달리는 모습은 처음 봤다.

­ 뭐야! 내 팬티를 왜 들고 가! 저거 잡아!

릴리아나는 소리를 질러대며 웅웅 떨었고,나는 달려가는 엘리스의 뒷모습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그렇게 가버리면 난 어쩌라고….

* * *

10